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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고향 한라산을 걷다. (한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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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는 이의 마음을 넉넉히 품아주는 설화와 전설의 땅 제주도. 제주도가 먼저인지 한라산이 우선인지 얼른 분별하기 힘들지만 잠시 짬을 내어 한라산 일원을 걷고 왔다. 원래 계획은 영실에서 웃세오름을 거쳐 저번에 길을 열었다는 돈네코 코스로 내려오고자 하였으나, 간밤에 내린 눈으로 인한 교통의 여건과 시간을 감안하여 어리목으로 올라 영실로 내려오는 걸음이 되었다. 사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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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찾는 이의 마음을 넉넉히 품아주는 설화와 전설의 땅 제주도. 제주도가 먼저인지 한라산이 우선인지 얼른 분별하기 힘들지만 잠시 짬을 내어 한라산 일원을 걷고 왔다. 원래 계획은 영실에서 웃세오름을 거쳐 저번에 길을 열었다는 돈네코 코스로 내려오고자 하였으나, 간밤에 내린 눈으로 인한 교통의 여건과 시간을 감안하여 어리목으로 올라 영실로 내려오는 걸음이 되었다. 사제비 동산 즈음에서 굳은 날씨에 눈길을 여느라 고생을 조금 하였지만 곧 하늘이 열려 지난 번 한라산행과는 확연히 다른 설경에 도심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린다. 이번 여정에 아무런 책이나 문명의 이기를 가지고 가지 않았는데, 동료가 가져온 한 권의 책을 4일 동안 읽다보니 거의 외울 수준이 되어버렸다. 이 책은 최근에 나오는 올레길 중심의 책이 아닌, 한라산의 생태와 설화 등 지지(地誌)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한라산(강정효, 돌베개, 2003)'이다. (아래 사진은 2011.1.25. 찍은 윗세오름 인증 샷 입니다.)

 

 

<한라산 : 오름의 왕국·생태계의 보고>에 올레길은 없다. 하지만 한라(제주)의 탄생과 설화가 녹아있고, 역사와 유적이 있으며, 자연과 생태가 숨을 쉬는 푸근함이 숨어있다.

1부 '한라산의 자연과 생태'는 오름의 왕국이며 천의 얼굴을 가진 한라산의 지형·지질과 생태계에 대한 개념을 잡게한다. 약 370여개의 오름과 그 사이로 60여개의 실개천과 같은 골짜기, 1800여 종의 식물들이 자라는 한라산에 오르면서 <한라>가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 본 분들은 얼마나 될까? 한라산(漢拏山)이 '은하수를 끌어당길 수 있는'(雲漢可拏引也) 높은 산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14쪽)이라고 하니 그 감성이 예사롭지 않다. 작고한 이은상 시인은 우리말의 '하늘산'에서 비롯되었다는 색다르게 풀이하기도 하였음을 배운다. 특히 다른 책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제주도의 하천에 대한 소개는 매우 체계적이며, 생태계 편은 가히 하나의 보고서라 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읽을거리이다. 

 

2부 '설화와 역사가 만나는 한라산'은 한라산과 더불어 살아가는 제주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척박한 땅을 일구며 고난의 삶을 살아왔던 제주의 선인들은 돌담을 쌓았던 지혜만큼이나 다양한 역사와 설화, 신앙을 만들어낸다. 믿기지 않겠지만 제주도에는 서양의 창세기를 능가하는 천지개벽 신화가 있고, 수십 명이 나오는 그리스 신화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많은 1만 8,000여 신들이 이곳 한라산에서 태어난 '신들의 고향'이라거나, 설문대할망의 설화와 각종 전설을 읽노라면 한라산의 신성함과 선인들의 기상을 절로 느끼게 한다. 석가모니의 제자인 16존자 중 여섯번째인 발타라(跋陀羅) 존자가 이상세계로 여겨 눌러앉은 곳 또한 한라산의 영실이었다는 대목도 흥미롭다(발타라 존자는 900아라한과 더불어 탐몰라주에서 살았는데 탐몰라주는 탐라 즉, 지금의 제주라는 것이다).
이 책의 백미는 '한라산을 노래한 시와 산문'편이다. 조선시대 문헌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유람 기록과 한시 등을 대하노라면 선인들의 풍류와 기개가 온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구한말 의병장으로 널리 알려진 최익현의 등반기를 보면 한라산의 산세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표현이 있다. 산 형국이 동은 마(馬), 서는 곡(穀), 남은 불(佛), 북은 인(人)이라는 부분인데 "산세가 굴신고저(屈伸高低)의 형세를 따라 마치 달리는 말과 같다 하고, 위암층벽(危巖層壁)이 죽 늘어서서 두 손을 마주잡고 읍하는 듯한 것은 불(佛)과 같다. 평포광원(平鋪廣遠)하고 산만이피(散漫披)함은 곡식과 같고, 공포향북(拱抱向北)하여 수려한 산세는 사람과 닮았다고 하겠다(204쪽)"며 한라산 산세의 영향으로 말은 동쪽에서 생산되고, 곡식은 서쪽이 잘 되고, 불당은 남쪽에 모였고, 인걸은 북쪽에서 많이 난다고 해석한 것이다. 이외에도 정지용 시인의 '백록담' 시, 바위에 새겨진 여러 명문을 읽노라면 보다 자연 제주에 더해진 인문의 향기에 취하게 된다.

 

3부는 '한라산 가는길'이다. 앞 1,2부에 비해 조금은 일반적이긴 하지만 산꾼이기도 한 저자의 느낌과 경험이 잘 갈무리되어 있다. 지금은 성판악이나 관음사 코스를 통해서만 백록담에 오르게 하고 있지만 옛날에 백록담에 오르던 등산로 변천과정을 짚어가면 얼른 다른 코스가 열리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1970~1980년대 후반까지는 거의 대부분의 등산객들이 어리목과 영실 코스를 이용한 백록담 서북벽 코스를 거쳐 백록담에 올랐었는데... 언제 다시 이 길로 정상에 올라볼 수 있을꺼나...

 

요즘 제주와 관련된 책은 '올레길'이 대세이다. 이 책은 2003년에 출간되어 올레길은 설명 자체가 없다. 이 책에 올레길이 추가되어 증보판이 발행된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은 책이 될 듯하다. 또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와 관련된 부문과 '세계지질공원' 인증 부문 등 최근의 제주를 소화해 낸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단순한 제주 한라의 소개가 아닌 감성이 녹아있는 좋은 책을 뜻하지않게 함께한 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