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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제 밥그릇 찾기 바쁘고 제 살길 곤궁히 쫓는 이 시대에, 그는 마치 초계의 마음에 놓은 산맥 줄기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 그 기백이 바로 이름에서 말하는 백두산을 닮은 백기완이었다. 한 번도 제도권 내에 들어서 부귀나 영화를 누려 본 적도 없고 두 다리 뻗고 편한 삶 살기를 거부하는 그의 참살이 저항정신. 중동의 사막에 예수가 있다면 이 한반도에는 백기완이 있다. 박정희 유신시절에 받은 핍박과 지금 그의 딸로부터 받는 부조리함의 세상에서 그는 얼마나 염증을 낼 것이며 얼마나 전열을 다시 다질 것인가 생각하니 참 먹먹할 뿐이다. 그러니 이 책을 감히 펼치기를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는 한국 현대사에서 마이너 리그의 빛나는 아이콘은 아닐까. 올해로 그의 나이 80이다. 아직도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끝없이 부조리와 싸운다. 그렇기에 80의 노구를 이끌고 계속 나오게 했어야만 하는지, 상당히 민망하기도 하거니와 다시 한 번 더 부끄러운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이젠 편히 쉬시라고 말했다간 아직도 멀었다며 불호령이 내릴 것만 같아 연민스럽다. 왜 이렇게까지 나오시게 할 수밖에 없는 당대 세대들의 책임 앞에서 참으로 죄송스러운 일임은 틀림없다. 일생으로 점철된 고난과 시련, 끝없는 투쟁, 아직도 노구를 이끌고 전면에 서서 나오는 백발의 준엄함. 왜 그가 그렇게 자기희생의 삶을 살아가도록 우리들이 이렇게까지 대접해줄 수밖에 없을까라는 일종의 연민과 위로. 이런 복합적인 것들로 인해서 한편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그 어떤 느낌인지 알았어도 나는 쉽게 이 책을 펼치기를 두려워했다.
인생의 갈피는 무엇으로 잡는 것일까? 혹여나 자신의 삶에 갈피를 잡지 못한다는 말은 가끔 듣긴 하지만, 이 갈피라는 방향성에서 곰곰히 자신에게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인생 갈피, 즉 방향성에 대해서 말이다. 그의 인생 궤적은 한결같이 일직선으로 쭉 뻗어 있다. 갈팡질팡도 아닌, 오직 민중의 삶을 위한 자신의 헌신만이 그를 살리도록 하는 원동력이었다. 과연 그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 했다. 그의 몸이 으스러지도록 모진 고문에 모멸을 준다 한들 그의 삶을 꺾이지 않는 대나무의 선비를 닮았다. 이 시대의 진정한 선비정신이 무엇인가 말하라면 나는 주저 없이 백기완을 떠올린다. 지조와 한결같음이 그의 내면의 심장에는 문신처럼, 생의 근육질을 이루고 있다고 믿는다. 대학 시절에 김지하의 오적을 읽고 이 땅에 도적떼가 왜 그리 설치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렇지만 지금 김지하는 달라졌다. 일전에 믿기지 않게도 태백산맥을 쓴 조정래 작가는 박근혜의 정부를 믿음직스럽다고까지 하는 것을 보고 너무나도 의아스러웠고 믿을 수 없었다.(관련 신문을 검색해보시길 바란다.) 그러나 지금의 조정래는 다시 발자취를 바꿔 다른 걸음을 밟는다. 혼란스럽지 않겠는가? 늙음이란 것이 지난 세월을 부정하는 삶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백기완은 대나무처럼 푸르름을 읽지 않고 아직도 재야의 사자처럼 그의 흰머리는 사자의 갈기처럼 휘날리며 맨 앞장에 서서 우렁찬 목소리를 우리들에게 일갈하고 있지 않는가. 그의 평생소원이 통일이었다. 분단된 나라에 태어난 국민 전체가 통일에서만큼은 불행한 역사를 살고 있다. 당연히 그의 소원은 첫째가 통일이었을 것이다.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라는 직함이 이를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권력이란 무엇인가? 과연 권력을 모아놓고 이 권력으로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라는 점에서 본다면 북한의 권력이란 것과 남한의 권력이라는 것의 이 권력의 힘은 무엇을 위해 사용돼야 할 것인지는 자명한 일이지만, 이 역시 아직 그의 노력은 여전히 계속될 수밖에 없는 노고를 시대가 요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통일을 방해하는 모든 세력들은 권력이란 힘의 독점을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권력을 국민들에게 되돌려주는 길이 곧 통일의 지름길인지도 모른다. 북한과 남한의 합작된 통일된 민주주의 국가를 그리워하는 것일 테니까 말이다. 이 책은 그의 삶을 증명하며 일대기의 큰 획으로 은유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요즘 들어 그의 가르침이 더더욱 절실하게 와닿는 작금의 현실에서 그는 이 시대의 등불을 치켜든 인도자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통일과 분권과 민주와 노동의 모든 밑바닥의 울분이 그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날도 반드시 올 것이라 믿어 의심하지 않으며 그의 삶은 그야말로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투신하는 그 불굴의 꺾이지 않는 정신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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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거운 책이다. 이유가 뭘까? 우선 선생의 고집스런 고향말(?) 사용. 생전 처음 들어보는 단어들이 낯설어 책장이 잘 넘어가질 않았다. 그래서 따로 정리해 보았다.(물론 책 뒤에 따로 사전이 나오지만) 중반부를 읽고 나니 선생의 단어들이 정겹다. 선생은 우리가 지금 쓰는 말이 어려운 말이라 했다. '찰'을 어려운 말로 '시'라고 한다고 했다. 나에게는 '찰'이 쉽니도 어렵지도 않다. 다만 낯설었다. 낯선 것이 어려울 때도 있다. 그러나 차고 또 차서 찰찰찰 넘쳐나야 시가 되기 때문에 '찰'이라 한다는 설명을 읽고 난 후, 그리고 낯선 단어들을 입으로 조용히 웅얼거려보고 나서야 선생의 단어들의 낯설음이 사라진다. '굴묵' '맑티''갈마''랭이'고칠데''말네''탈돕네' 등등 입에 붙으니 정감이 간다.
다음은 선생의 일관성있는 곧음. 고문과 학대로 뒤틀린 무릎에서 시도때도 없이 나오는 피고름, 15년의 수감생활 등, 선생의 한살매동안 끈질기게 쫓아다니던, 지금도 끝나지 않은 폭력앞에서도 꺽이지 않은 이 민족의 통일과 민중의 해방을 위한 선생의 곧은 뜻, 그의 강직한 성품이 사실 책을 읽는 내내 나를 버겁게 했다.
남의 계략에 의해 나누어진 이 땅의 하나됨과 평등과 보편적 인권이 존중되어 가난한 민중이 인간의 존엄성을 누릴 수 있는 너른 대지를 만들기 위해 일생 골빼앗기고, 뼈 빼앗기고, 알짜까지 빼앗기도 나서도 '안간'으로 벼텨온 선생의 한살매을 몸으로 써 낸 작품이다.
옛날이야기 한마디도 못하고, '달동네'라는 말을 만들었다고 치도곤을 당하고, 정주고 눈물주고 살아온 동네 이름을 어느 날 갑자기 근본과 출처를 알 수 없는 '뉴타운'이란 이름으로 허락없이 바꿔버리고 그 정든 땅에서 무참히 쫓아내 버리는 이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무릎의 피고름을 퍼내가며 끈질지게 시종일관 남과 북을 하나되게하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하나되는 통일운동을 벌여온 선생은 진정 역사를 바로 잡고자 노력한 이 땅의 큰 어른이 아닌가 한다. 비록 세월은 그의 육신을 나약하게 했을지 모르나 그의 올곧은 뜻은 작게도 변질되게도 하지 못했음을 확인하며 책을 덮었다. 그러면서 생각해 본다. '우리 역사는 또 이런 어른을 가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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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젊은이, 백기완 선생님은 요즘 세상에 대해 이렇게 일갈하신다.
“요즘 벗나래(세상), 그 돌아가는 꼴을 찬찬히 보고 있노라면 ‘이것도 사람 사는 벗나래든가?’ 그런 휫딱(착각)이 들 때가 있다. 대통령이라는 이명박이가 앞장서 뻔한 거짓을 참으로 바꾸고, 또 참짜 참은 아예 죽이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 가운데서도 땅불쑥하니(특히) 갈마(역사)라는 걸 갈기갈기 찢어버리고는 저희들 마음대로 갈마를 거짓꾸리고 있음을 본다.”(p.190)
하지만, 백 선생님은 그 가치를 절대 놓을 생각이 없으시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에서 정말이지 단호하시다. 그것이 한 순간의 치기로 만들어진 개똥철학이 아니라, 일생을 관통하면서 차곡차곡 쌓아온 절대적 신념체계임을 알 수 있다. 너도 나도 올바로 잘 사는 ‘노나메기’. 그것을 위해 필요한 불쌈(혁명). 과거의 물리적 투쟁보다는 문화예술을 통해 만들어야 할 불쌈.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에는 백범 김구 선생을 만난 기억도 있다. 백범 일지는 봐도, 누군가 백범 선생을 만난 기억이라고 내뱉은 것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내가 뵌 백범 선생’이라는 소제목으로 풀어놓은 이야기는 백범의 아우라와 포스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마도 우리가 알고 있는 백범을 떠올려도 매칭이 되는 이야기.
넉넉하지 못한 집안 형편에 세상을 늘 맨몸뚱이 하나로 부딪혀야 했던 어린 시절부터 재야 민주화운동의 투사로서 겪은 고초 등은 시대의 야만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증명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물론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다. 시대의 야만은 방법을 달리해 부메랑처럼 돌아왔고, 비열하고 졸렬한 방법으로 우리를 옥 죄는 것이 지금 시대다. 백 선생님 또한 이 시대에 대한 분명하게 일갈하지 않으셨는가 말이다.
하지만, 젊은 날 백 선생님의 기백을 보자면 그냥 불끈불끈 힘이 솟기도 한다. “그렇다, 나도 내 뼈를 갉아 애나무로 삼고, 내 피땀을 뽑아 거름으로 삼으며 온통 불을 지른, 젊은 한때가 있었다. 그렇다, 나는 그런 젊은 날에 마주해 요만큼도 뉘우침 따위는 안 한다. 도리어 모이면 으르고 뽑아대고 뜨거운 것이 빛나던, 그런 젊은 날의 눈물이 있었다. 이 새끼들아.”(p.142)
백 선생님의 시(詩) 중에 「젊은 날」이라는 시가 있다. “모이면 논의하고 뽑아대고/ 바람처럼 번개처럼/ 뜨거운 것이 빛나던 때가 좋았다/…/우리는 두려운 것이 없었다/ 헐벗고 굶주려도/ 결코 전전하지 않았다/ 돈벌이에 미친 자는 속이 비었다 하고/ 출세에 연연하면 호로자식이라 하고/ 다만 통일논의가 나래를 펴면/ 환장해서 날뛰다 밤이 내려/ 춥고 떨리면 찾아가던 곳/…”
읽을 때마다 뜨거움이 불끈 솟는 시가 아닐 수 없다. 백 선생님은 그렇게 시대를 밝힌 시인이었고, 시대를 저항한 투사였다. 너도 나도 잘 살되, 올바로 잘 사는 ‘노나메기’가 선생님 혼자의 꿈이 아니어야 한다. 이 책은 시대의 야만이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주고, 그것에 맞서 우리는 계속 꿈을 꿔야 한다는 것을 추동한다. 턱없이 없는 사람들 것을 뺏어대는 놈이 여전히 존재하고, 누군가는 주리고 깨지고 쫓겨난다. 이 어찌 내 처지가 아니라고 외면만 할 수 있단 말인가. 백 선생님은 '사랑'을 이야기한다.
“제아무리 굶더라도, 제아무리 됫싼 매를 맞는다고 하더라도 그 모딘 고비를 어영차 버텨내고 살아남기만 하면 사람은 더없이 착하고 어진 사람들도 만나게 된다. 이 벗나래(세상)엔 나쁜 치들만 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는 도막에 한술 닿은 끈매(인연)는 달구름(세월)이 가고 또 가도 끊기질 않는 것이 삶이라는 게 아닐까.”(p.14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