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편집자를 위한 철학에세이란 부제가 붙었다. 소위 편집디자인 회사로의 출근을 고작 4시간 남짓 남기고, 책장을 덮었다. 나름 입사를 위한 몸만들기용이라 생각하며 읽어나간 이 책. 한 마디로 '시원하다'. 지금껏 읽었던 편집자를 위한 책들이 편집의 기능적인 측면에 중점을 뒀다면, 이 책은 편집자로 살아가기 위한 '에디터십' 고양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마치 '영혼을 잃지 않는 편집 기획자'란 내 삶의 모토를 반영하듯, 첫장부터 마지막 에필로그까지 속속 들이 가슴에 와 박힌다.
정은숙 님의 '편집자 분투기'는 '편집'의 기술적 노하우를 자신의 경험에 녹여내 풀어낸다. 고경태의 '유혹하는 에디터'는 에디터의 능력(생각, 쓰기, 읽기)에 대해 폭을 좁여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다. 김학원 님의 '편집자란 무엇인가'는 편집의 A부터 Z까지 책 만들기 공정에 필요한 요소 요소를 백과사전식으로 정리하고 있다. 그럼에도 뭔가 미진한 그 무엇. 바로 편집자라 직업이 갖는 의미, 곧 정신이 부족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내게 의미있는 선물처럼 다가왔다.
저자 변정수는 한겨레와 서울북인스티튜트 등에서 출판 편집을 강의한다. 하지만 이 책에선 편집 실무에 대한 노하우보단 '편집자의 고민을 나눌 공간이 필요하다'란 취지에서 시작한다. 이제 경력 10년을 갓 채운 나에게 저자가 써내려가는 독설(혹은 냉정어린 비판)이 자꾸 나를 되묻게 했다. 이 책에서는 '에디터십 업그레이드 프로젝트'란 소기의 목적 달성을 위해 크게 3가지 부분에 대한 비판하고 있다. 판단능력 비판, 가공능력 비판, 조정능력 비판이 그것이다. '편집자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내내 마음에 품고 지내는 요즘이다. '하나의 책이 나오기까지 거의 모든 일을 맡아하는 사람?' 정도가 내가 내린 결론이다. 김학원 님이 '기획 편집자', '개발 편집자', '본문 편집자', '윤문 편집자' 등으로 하는 일에 따라 편집자의 종류를 나눠놓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정은숙 님의 '저자와 독자를 매개로 책을 만들면서, 세상의 일부를 함께 만드는 사람'이란 정의가 훨씬 마음에 와닿는다.
편집자는 '판단하는 일'을 대가로 봉급을 받는 사람이다. 따라서 그 판단은 판단의 주체인 자신에게만이 아니라, 그 판단을 사는 출판사에 가치 있는 것이라야 하며, 그 판단을 통해 만들어진 책을 사는 독자에게 가치 있는 것이어야 하고, 그 판단의 가치를 믿고 저작물의 출판을 허락한 저자에게 가치 있는 것이라야 한다. P69~70
잡지 편집을 주로 하고 있는 내게도, 편집 작업은 초기 기획단계부터 인쇄 납품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판단의 연속이다. 워낙 예상지 못한 돌출 사고가 빈번하게 등장하지만, 그 속에서 가장 효과적인 판단을 하는게 우리에게 주어진 숙명이다. 판단능력을 위해선 많은 경험과 상식이라 할만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춰야 한다. 무턱대고 원고에 함몰되어 고작 띄어쓰기와 오탈자 확인 정도만 끝내고 마는 게 작금의 편집자들이 주로 하고 있는 일이다. 가공능력이 대표적인 예다. 편집자하면 으레 교정, 교열을 하는 사람이라 여긴다. 맞춤법과 띄어쓰기에 편집증적인 강박을 갖고 있는 사람. 하지만 이 책에서는 중고등학교를 나온 평균적인 사회적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편집자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만큼 교정은 중요하지만,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기 십상이라 말한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바로 조정능력 비판이다.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스탭들이 동원되는지 아는가? 저자는 말할 것 없고, 포토그래퍼, 일러스트레이터(경우에 따라서), 교정교열자, 디자이너, 출력소 담당, 인쇄 담당, 제본 담당, 후가공 담당, 마케터 등 수많은 사람들이 한 권의 책에 관여한다. 이 모든 사람들을 조율하고, 조정하는 것이 바로 편집자의 몫이다. 이 책에서는 '성격 개조'에 초점을 맞춰, 흔히 기업에서 직장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소양을 설명하듯, 편집자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비판하며, 그것이 곧 성격과 관계한다는 흥미로운 관점을 보여준다. 기실 편집디자인 회사명을 살펴보면 의외로 ~커뮤니케이션, ~컴이란 이름이 많다. 그만큼 클라이언트사와 고객 사이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돕기 위한 매체 개발이 많다는 얘기다. 하지만 내가 지내온 대부분의 회사가 정작 '커뮤니케이션'으로 밥벌어 먹고 살면서도, 내부의 커뮤니케이션엔 너무나 폐쇄적이고, 심지어 소통 불능에 갇혀 있는 곳이 많았다.
저자가 내리는 결론은 '자기 자신과 대화하기'다. 비단 편집자가 아니더라도, 현대인들이라면 누구나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역지사지'를 실천하는 것인데, 무엇보다 효과적인 방법이 '독서'라고 말한다. 책을 통해 메타적 시선을 함양하고, 보다 내밀한 자기와의 대화를 통해 조정능력 함양은 물론 인생 전반의 풍요로운 삶을 만끽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무릇 편집자에겐 '비평가의 눈과 농부의 손과 시인의 가슴'이 필요하다고 했다. 새로운 변화 시기에 난 '편집자란 무엇인가'와 '영혼을 잃지 않는 편집자 되기는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었다. 항상 뒤를 되돌아보며 반성하게 된다. 5월 3일, 새로운 직장으로의 출근이 당장 샤워하기부터 시작하겠지만, 그곳에서 어떤 매체를, 어떤 사람들과 함께 하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여전히 내 삶은 편집해야 할 텍스트이고, 여전히 써내려가야 할 빈 노트임을 깨닫게 된다.
덧붙여, '교양'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언급한 김규항 님의 글이 눈길을 끈다. '교양은 바로 사회적 분별력이다. 분별을 가진 사람이 책임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고, 분별에 기반한 책임감을 가진 사람의 일 매무새가 허술할 수 없다.'(P2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