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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순신 보다는 김용옥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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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는 비싼 책값 때문에 몇번을 주저하다가, 결국 이 책을 사고 말았다. 책은 재미있다. 다만, 중국사 전체에 대한 개괄적인 지식은 가지고 있어야 하겠다. 일전에 읽은 진순신의 "중국의 역사"(전 12권, 한길사, 절판)에 큰 감동을 받은 바 있기에 이 책 또한 진순신류의 역사평설에 현장의 기록이 추가된 형태가 아닐까 예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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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는 비싼 책값 때문에 몇번을 주저하다가, 결국 이 책을 사고 말았다. 책은 재미있다. 다만, 중국사 전체에 대한 개괄적인 지식은 가지고 있어야 하겠다. 일전에 읽은 진순신의 "중국의 역사"(전 12권, 한길사, 절판)에 큰 감동을 받은 바 있기에 이 책 또한 진순신류의 역사평설에 현장의 기록이 추가된 형태가 아닐까 예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막상 책을 읽어 보니, 조금 깊이 있는 여행기 수준으로 저자의 문체는 김용옥을 연상하게 한다.(자유분방함. 약간의 가벼움). 그리고 아무래도 잡지에 연재한 글 묶음이다 보니, 체제성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 책만 읽어서는 결코 위, 진, 남북조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단점을 주로 언급했는데, 장점을 보자. 이 책에는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오지에 산재한 옛 영웅들의 흔적, 수도의 폐허 등이 저자의 기행문과 함께 담겨있다. 그 간접 체험만으로도 충분히 책값을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사에 어느 정도 기초 지식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읽어서 후회하지 않으리라고 본다.
s*****9 2003.08.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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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진남북조의 역사를 오늘의 중국사진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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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진남북조. 삼국지의 시대. 삼국지를 본 사람들은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죽은 그 이후를 잘 알지 못한다. 아니, 거의 관심이 없다. 사마의의 손자 사마염이 진을 건국하고 통일한 이후 좀 혼란스러웠다가 수당시대가 왔다. 이게 전부다. 박한제 교수는 우리 나라에서도 드문 위진남북조 시대 전문가다. 그 분이 이번에 중국답사를 통해 위진남북조의 역사를 소개한 책이다. 일단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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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진남북조. 삼국지의 시대. 삼국지를 본 사람들은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죽은 그 이후를 잘 알지 못한다. 아니, 거의 관심이 없다. 사마의의 손자 사마염이 진을 건국하고 통일한 이후 좀 혼란스러웠다가 수당시대가 왔다. 이게 전부다. 박한제 교수는 우리 나라에서도 드문 위진남북조 시대 전문가다. 그 분이 이번에 중국답사를 통해 위진남북조의 역사를 소개한 책이다. 일단 책은 무척 고급스럽다. 따라서 가격도 좀 많이 비싸다. 사진이 많이 들어가서일까. 그래도 좀 과하다는 생각은 지워지지 않는다. 사진을 보다 보면 정말 처참하게 유적지들이 파괴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들의 무관심때문에, 오랑캐 유적이란 인식때문에, 무지로 인해 숭고한 유적들은 지금 겨우 흔적들만 남아있다. 저자는 중국역사학계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한다. 그동안의 날림 중국답사기들을 보면 중국을 찬양할 때 그들의 소수민족포용정책을 꼽는데, 저자는 그것을 부정한다. 수천년동안 계속되온 한족의 핍박과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해 비판한다.
y******a 2003.06.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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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문학이 만날때, 범인이 영웅을 만날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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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뿔도 없는 놈이 자꾸만 제왕학에 관심을 가지니 이것도 병이다. 중국 후한말의 삼국시대부터 위진남북조 시대를 아우르는 기행문의 첫 권을 읽고 드는 생각이다. 중국 역사상 오랑캐와 한족의 융합이 이후 역사에 어떻게 반영됐는지를 기행문의 형식을 빌어 진지하게 고찰한 이 책을 읽고 나는 고작 제왕학을 고민했다. 누가 그랬더라. 뭐,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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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뿔도 없는 놈이 자꾸만 제왕학에 관심을 가지니 이것도 병이다. 중국 후한말의 삼국시대부터 위진남북조 시대를 아우르는 기행문의 첫 권을 읽고 드는 생각이다. 중국 역사상 오랑캐와 한족의 융합이 이후 역사에 어떻게 반영됐는지를 기행문의 형식을 빌어 진지하게 고찰한 이 책을 읽고 나는 고작 제왕학을 고민했다. 누가 그랬더라. 뭐,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지 않는가. 적어도 역사에서는 유비가 <삼국지>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 뒤로 관심의 초점은 사실 조조라는 인물이었다. 어지러운 정치 상황에서 원소라는 맞수에게 절대 불리한 여건에 처해졌음에도, 바로 그 원소를 가장 먼저 정치무대에서 몰아낸 실력의 근본이 무엇이었던가. 자기 수염을 태워가며 꽁지가 빠지게 도망다닌게 한두번이 아니거늘 마침내 통일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던가. 그럼에도 결국 중원 제패의 숙원은 아들대로 넘겨줘야만 했던 속사정은 무엇이었던가. 이런 것들이 삼국지를 읽으며 드는 생각이었다. 저자는 조조의 특징을 면후심흑(面厚心黑)이라는 네 글자로 규정했다. 철판같은 낯두꺼움과 뻔뻔스러움이라는 말이렷다. 하기는 조조는 쫓기는 자신을 반겨준 여백사의 일가족을 몰살시키고도 뻔뻔스레 한마디를 날렸다. "내가 차라리 남을 저버릴지언정 남이 나를 저버리게 하지는 않겠다"(寧我負人 毋人負我) 이런 조조는 사실 어렸을 적에 개망나니였다고 한다. 온동네 깡패들을 이끌고 다니면서 신혼 초야를 맞이하는 신부까지 겁탈했다니 말 다했다. 그랬던 그가 관리가 된 뒤로는 뇌물수수를 일소하는 청렴하고 유능한 관리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저자는 그 변신을 과히 높이 평가하지는 않는다. "사람이 달라진 것이 아니고 정치판 사람들이 흔히 연출하는 자작 변신극"이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조조에게 이런 박한 평가를 내리는 저자의 입장에서 볼 때, 관도 전투에서의 승리는 사실 조조가 뛰어나서라기보다는 원소가 스스로 무너져 내린 것일 수 밖에 없다. 또한 이미 명맥이 끊어진 것이나 다름없는 한 왕조의 황위를 끝내 스스로 앉아보지 못한 것도 사실은 그 자신이 너무 꾀를 부린 탓이다. 말하자면 조조는 그때그때의 임기응변에는 너무나 능했지만 새로운 시대를 이끌 비전을 없었던 셈이다. 그런가하면 조조와는 여러모로 비교되는 또 한명의 인물이 있다. 우리에게 흔히 알려져 있지 않은 부견이라는 군주다. 우리에게는 고구려 소수림왕 때 불교를 전파한 나라로 알려진 전진의 왕이다. 이 시기 북조 왕국이 대개 그렇듯이 부견 역시 오랑캐였다. 저족이라는. 그러나 그 이상은 높았다. 그는 오랑캐와 한족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회를 꿈꿨다. 그의 최측근 참모는 한족이었고, 최선봉의 장수들은 한때 그 자신에게 칼을 겨누었던 전연의 모용씨 가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상은 좌절되고 만다. 우선 그 시대 한족의 남조 정통왕국 동진은 아직 건재했다. 썩어도 준치라고, 당시 민심은 여전히 한족 왕조만을 정통이라고 믿고, 오랑캐 천자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하나의 이유이자 더 직접적인 이유는 내부의 배신이었다. 인의와 은신을 기치로 거둬들인 적국의 장수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부견에게 칼을 겨눈 것이다. 차라리 장군의 직위는 줄 지언정 군사는 주지 말았어야 했는데, 무조건 사람을 믿고 봤던 부견은 한때의 적국 장수에게 그가 이끌던 군사까지 고스란히 돌려줬던게 화근이었다. 말하자면 너무나도 높았던 그의 이상이 스스로 그의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이런 역사를 되새기며 저자는 일찍이 사마천이 한 말을 되뇐다. "나도 몹시 헷갈린다. 이른바 하늘의 도라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 하지만 나는 하나도 안 헷갈린다. 아마 사마천도 헷갈리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란 모름지기 그런 것이라는 걸 그 어른이 더 잘 알았을테니. <삼국지> 얘기 나온 김에 제갈공명 얘기를 잠깐 풀어보고 갈 만 하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삼국지의 진정한 주인공은 제갈공명이 아니던가. 드라마로서 삼국지는 사실상 공명의 죽음과 함께 막을 내리지 않던가. 하지만 그런 공명의 명성이야말로 뻥튀기의 극치라는게 저자의 분석이다. 먼저 '삼고초려'(三顧草廬)의 장면. 유비가 3번씩이나 공명을 찾아가지만, 공명은 자리를 비우거나 낮잠을 핑계로 유비를 기다리게 한다. '초당에 봄잠이 족한데 창 밖에 해는 길기도 하구나'하는 시를 읊으면서. 사실 공명은 "별 능력은 없으면서 착하기만 한 유비가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봄잠에 빠졌고, 잠에서 깨어나서도 의관을 정제한답시고 몇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그러니까 공명은 더 잘난 주인을 원했는데, 찾아주는게 유비 밖에 없어서 유비를 따라나설 수 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특히나 서서를 비롯해서 지인들과 정치 세미나를 벌이며 실력을 키워오던 차에, 3번 이상 튕기는 모험은 더더욱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스스로 와룡(臥龍), 즉 때를 못잡아 누워있는 용이 아니던가. 이러다 영영 승천하지 못하고 누워있을까 노심초사했을만 하다. 그렇게 유비를 만나서 내놓는 계책이라는게 바로 '천하 3분지계'인데, 이것도 벌써 몇백년 전에 나왔던 얘기의 리바이벌이었다. 이미 괴통이 한신에게 진언한 내용이었던 것이다. (혹시 모르는 사람을 위한 첨언. 한신은 유방의 휘하 장수로 젊은 시절 시정 잡배의 가랑이 사이를 지나간 일로 유명한 그 인물이다. 당시 유방은 항우와 싸우기만 하면 무조건 지고 있었는데, 오로지 한신만이 승승장구해 초나라 전력을 분산시키고 있었다. 바로 그때 한신의 참모 괴통이 이참에 아예 유방의 휘하에서 나와 독립하라고 부추기지만 한신이 듣지 않았다. 결국 유방이 천하를 통일한 뒤 모반의 죄를 뒤집어쓰고 죽었다. 이른바 토사구팽의 고사다.) 한마디로 그 정도 계책은 당시 모사꾼들의 '기본'이었던 셈이다. 조조가 사실상 건국한 위(북위)를 뒤이은 서진의 멸망 원인을 말하면서 저자는 '먹물'들에게 책임을 돌렸다. "먹물들에게 나라를 통째로 맡겨서는 낭패보기 십상이다. 먹물들은 따지기는 좋아하나 제대로 해내는 일이 없다" 여기에 또 한가지 추가할 만 하다. 남의 좋은 평판을 가만 두고 보지를 못하고 어떻게든 깎아 내린다. 저자 역시도 먹물의 범주에서 벗어나지는 못하리라.
k****9 2003.05.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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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5호 16국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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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삼국지연의에서 발원된 유비와 제갈량의 아름다운 군신 관계, 그리고 그의 탁월한 책략 등에는 과대포장된 면이 적지 않다. 우선 그 스토리의 절정인 삼고초려도 그들만의 가화가 아니었다. 유비표가 방덕공을 초빙하려고 몇 차례나 찾아갔으나 결국 탄식하면서 물러난 것이나, 손책이 장굉을 여러차례 방문한 끝에 초빙한 것이 그 예다. 융중대의 천하삼분의 계책도 일찍이 과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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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삼국지연의에서 발원된 유비와 제갈량의 아름다운 군신 관계, 그리고 그의 탁월한 책략 등에는 과대포장된 면이 적지 않다. 우선 그 스토리의 절정인 삼고초려도 그들만의 가화가 아니었다. 유비표가 방덕공을 초빙하려고 몇 차례나 찾아갔으나 결국 탄식하면서 물러난 것이나, 손책이 장굉을 여러차례 방문한 끝에 초빙한 것이 그 예다.

융중대의 천하삼분의 계책도 일찍이 과통이 제왕 한신에게 진언한내용 그대로다. 즉 초와 한이 둘로 나누어 다투는 마당에 한신이 독립하면 천하는 솥의 세 발처럼 서 있게 되면서 어느 누구도 먼저 움직이기 어려운 형세가 될 것이며, 하늘이 주는데도 취하지 않으면 도리어 재앙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한신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한다. 만약 한신이 괴통의 말을 따랐다면 토사구팽의 신세가 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융중대의 내용도 당시 명사들의 정세 분석에서 이미 공론화된 것이었으니 노숙이 손권을 만났을 때도 이것을 건의한 사실이 있다. 100쪽

 

필자는 지금까지 위진남북조와 수당 시대의 역사를 민족사적인 관점에서 주로 연구해 왔다. 그리하여 학계에 연구 가설로 제출한 것이 호한체제와 교구체제다. 이 시대는 중국사상 민족 이동의 시대이고, 민족 이동의 결과 북방에서는 이주민인 호족과 본지인인 한족 간의 갈등과 통합 관계(호한문제)가, 남방에서는 북방에서 피난 온 한족 교민과 토착 구인 간의 갈등 통합 관계(교구문제)가 이 시대 역사를 규정하는 가장 큰 변수였다고 보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세계 제국인 대당제국의 출현도 바로 이런 민족 간의 융합 과정을 거쳐 형성된 것이라고 필자는 보고 있다. 이런 필자의 주장은 그동안 중국 등 외국 학계에서 주로 논의되었다. 최근 일본의 한 중견 학자가 필자의 가설 가운데, 특히 교구 체제에 대해 장문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 요지는 남방 즉 동진-남조의 역사 전개에서는 교구 간의 문제뿐만 아니라 소위 만이와 한족 간의 문제(만한문제)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당연한 이야기다. 필자는 그동안 호한 간의 문제를 연구하는 데 주로 힘과 시간을 소비해 왔기 때문에 남반에서의 소위 이한 혹은 만한 문제에 대해서는 소홀하게 취급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106쪽

 

역사상 화번공주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북방 유목 민족 지역으로 끌려간 여인들이 수없이 많지만, 한 대의 오손으로 시집간 오손공주 세군 및 해우와 흉노로 가야만 했던 왕소군, 채문희 등과 당대 티베트로 시집간 문성공주 등이 특히 유명하다. 그러나 후세에 가장 화제가 되었던 여인은 왕소군과 채문희라 할 것이다. 148쪽

 

왕소군의 자식들이 흉노 조정에서 출세했기 때문일까? 자신을 버린 고국에 대한 비원때문일까? 아니면 근래 중국인들이 흔히 지적하듯 형제 민족 간의 우호의 사자로서 임무를 죽는 날까지 다하기 위해서일까? 그게 아니었다. 그녀는 흉노 땅에서 자식을 낳고부터는 한나라의 궁녀나 미인으로서가 아니라 단지 세 아이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어머니는 어떤 모습의 여인보다 아름다운 것이다. 어머니의 정은 어떤 것보다 진한 것이다. 채문희가 자신에게 매달려 울부짖는 어린 자식들을 외면하고 귀한한 것과 달리, 왕소군은 어머니로서 충실하고자 했고 그런 여인으로 살기를 바랐을 뿐이다. 167쪽

 

가남풍은 교활하고 간사한 꾀가 많아서 저능아 태자를 배후에서 조종하였다. 무제로부터 태자에게 주어진 시험지를 받자, 다른 사람을 시켜 작성하게 하되 지나치게 훌륭한 답변은 피하고, 중요한 요점은 그런대로 답하여 과락은 면하면서 아슬아슬하게 합격점을 통과하도록 하였다. 178쪽

 

가황후의 사치와 음란인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처음에는 태의령 정거와 정을 통하더니, 노상에 잘생긴 소년이 보이면 잡아서 상자에 넣어 궁중으로 데려와 정을 통하고는 죽여 버리곤 했다. 간혹 아주 매력이 있고 썩 마음에 드는 소년이 있으면 희귀하고 값비싼 선물을 주어 돌려보냈다. 다시 부를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서진판 원조교제인 셈이다. … 이러한 탐닉적인 행위가 반드시 가황후에 한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서진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것이 바른 말이다. 최고 지식인들은 마약과 술에 찌들어 있었다. 최고 지식인들은 마약과 술에 찌들어 있었다. 죽림칠현이 바로 그들이다. 183-184쪽

 

5호 16국은 304년 10월 이웅과 유연이 각각 사천과 산서 일대에 성도왕과 한왕을 칭한 해부터 선비족 북위가 화북을 통일한 439년까지 135년간에 걸친 시기를 가리킨다. 201쪽

 

비수의 전쟁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부여되고 있다. 첫째 이 전쟁이 4000년 중국 역사를 양분할 수 있는 대사건이라는 것이고, 둘째 이 전쟁이 세계 인구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거대한 중화민족의 형성에 끼친 영향이 아주 크다는 점이다. 물론 논쟁이란 당연히 반대자가 있어야 성립되는 것이지만, 이 전쟁은 대사건도 아닐 뿐 아니라 중화민족 형성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비수의 전쟁이 일어난 해가 바로 서력 383년인데, 이 해를 중국 역사를 양분하는 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한 자는 홍콩과 대만에서 활약한 사학자 뇌해종이었다. 그의 시대구분론의 대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분기는 역사의 시초부터 383년 비수의 전쟁까지로 대체로 순수한 화하족이 문화를 창조 발전시킨 시기였다. 외래의 혈통과 문화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한 시기로 고전적 중국이라 칭할 수 있다. 제2분기는 383년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시기다. 북방의 호족이 누차 중국에 침입하고 인도의 불교가 중국 문화에 심각한 영향을 준 시기로, 중국인의 혈통과 중국 문화 상의 커다란 변화가 발생하였다. 제2분기의 중국은 당초의 순수한 한족이 주체가 된 고전 중국이 아니라 호족과 한족이 혼합되고 인도와 중국의 문화가 동화된 새로운 중국이었다. 208-209쪽

 

후한 말부터 부패와 무능에다 싸움박질만 하던 한족 정권의 종말은 예상보다 더 비참했다. 오호족이 일제히 궐기한 후, 서진의 호아제 회제는 백관사서 3만명과 함께 적진 평양으로 끌려가 호족 군주 앞에 꿇어 앉아 술시중을 들어야만 했으니 중국 역사상 이보다 더 비참한 일이 없었다. 311년에 발생한 이 치욕의 난리를 영가의 상란이라 부르지만 이후 한족 사대부 중에 10에 7-8이 죽장망혜로 강남으로 도망가서 겨우 세운 왕조가 바로 동진이었다. 218쪽

 

회수는 중국을 남북 두 부분으로 나누는 경계선이다. 지금도 중국 정부 예산에는 회수 이남 공공기관의 동계 난방비가 책정되지 않는다. 여행할 때에는 단단한 준비가 필요하다. 옛날부터 “장간이 이빨이라면 회수는 입술과 가아서 이곳을 지키지 못하면 소위 순망치한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말이 있다. 229쪽

 

t****b 2013.03.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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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시대의 빛과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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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이 쓴 중국판 문화유산 답사기라 할수있다. 저자가 배낭을 메고 잊혀진 왕조의 현장이나, 사건의 현장, 잡초속에 파묻혀 있는 분묘를 찾아 답사여행을 하고 그 시대가 남긴 기억과 생각들을 적어 놓았다.   총 3권으로 되어 있으며 1권은 삼국시대, 오호십육국시대를 그렸다.   옥수수밭 속에 버려진 육조고도라 지칭되는 '업도'이야기 제갈량이 농사를 지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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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이 쓴 중국판 문화유산 답사기라 할수있다.

저자가 배낭을 메고 잊혀진 왕조의 현장이나, 사건의 현장,

잡초속에 파묻혀 있는 분묘를 찾아 답사여행을 하고

그 시대가 남긴 기억과 생각들을 적어 놓았다.

 

총 3권으로 되어 있으며

1권은 삼국시대, 오호십육국시대를 그렸다.

 

옥수수밭 속에 버려진 육조고도라 지칭되는 '업도'이야기

제갈량이 농사를 지었다는 삼고초려의 현장 양번의 '융중' 이야기

칠종칠금으로 유명한 맹획의 후예들이 살고있는 구름의남쪽땅 '운남' 기행

미국 디즈니에서 만든 만화영화 '뮬란'의 주인공 목란이 나서 성장한

하나라의 수도 통만성 등

 

중국역사에 숨어있던 고도들을 찾아

그 역사적 배경과 현재의 모습이 사진과 더불어 실려있다.

고도(古都)를 찾아 읽는 역사서라 해도 무방할것 같다.

k*****1 2009.03.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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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시대의 빛과 그늘]저자의 시선이 느껴지는 역사기행문
"[영웅시대의 빛과 그늘]저자의 시선이 느껴지는 역사기행문" 내용보기
서울대 동양사학과 박한제 교수의 역사 기행문이다. 이 필자의 전공인 위진남북조 수당사에 맞추어 저술된 3권의 시리즈 물 중 1권으로 위진남북조 시기, 그 중 북조의 5호 16국시기의 유적을 주로 조명하고 있다.   사실 중국 역사를 보면, 중국 고유의 민족인 화족이 세운 왕조보다 그외 이민족이 세운 왕조가 더 많고, 더 긴 시간동안 중국 영토를 다스렸다. 그런데 우리는, 화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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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동양사학과 박한제 교수의 역사 기행문이다. 이 필자의 전공인 위진남북조 수당사에 맞추어 저술된 3권의 시리즈 물 중 1권으로 위진남북조 시기, 그 중 북조의 5호 16국시기의 유적을 주로 조명하고 있다.

 

사실 중국 역사를 보면, 중국 고유의 민족인 화족이 세운 왕조보다 그외 이민족이 세운 왕조가 더 많고, 더 긴 시간동안 중국 영토를 다스렸다. 그런데 우리는, 화족도 아니고 변방 동이족인 우리는, 왜 정통 중국인의 왕조 위주로 배우는 걸까? 그리고 왜 우리나라 중국사학자들은 중국인들보다 더 중화사관에서 중국사를 서술하는 것일까? 이와 같은 의문을 가져 본 적이 있는 독자에게 이 책을 강추한다.

 

오호십육국과 같은 시기 유럽에서는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유럽 중세 역사가 시작된다. 그런데 이른바 '문명'사회였던 한과 로마라는 양 고대 제국의 지배에 대항해서 유라시아 대룩 동서에서 일어났던 민족이동에 대해 서양과 달리 중국측의 평가는 부정적이다. 오호의 중국 이동후, 그들이 한족과 융합했기에 수, 당의 중국 통일이 실현되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중국 영토가 성립되어 '현재 중국 강역을 중국사의 범위로 삼아야 한다'로 귀결되는 모택동의 교시에 따른 중국 역사학의 황당한 현재 역사 왜곡 논리도 나오는 것인데 말이다. 모순이다. 중국의 역사왜곡의 근원을 알고 싶은 독자에게도 강추한다.

 

흔히 여행사의 중국패키지에 있는 유명한 한족 왕조의 유적 중심이 아니어서 처음 보는 사진이 많다. 또 저자의 학설인 '호한체제론(胡漢體制論)'이란 시선에 입각해서 재정리한 기행문이어서 신선하고 독특한 부분이 많다. 무엇보다 이 책이 읽기 재미있는 것이, 바로 저자의 그 시선이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지만, 그래도 즐거운 상상을 해 본다. 전진의 왕 부견이 비수의 전쟁에서 이겨 동진을 몰아내고 중국 통일을 했다면, 그 이후의 중국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말이다.)

m******n 2009.03.24. 신고 공감 0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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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히 옛시절을 그리워할 뿐이니
"쓸쓸히 옛시절을 그리워할 뿐이니" 내용보기
흔히 일치일란(一治一亂)이라는 문구를 사용하여 역사를 말하기도 한다. 맹자에 나온다는 이말은 아마도 한번 크게 다스려지면 한번은 크게 어지러워진다는 뭐 반복 순환의 이야기가 되겠고, 역사란 것도 이합집산과 합종연횡, 회자정리와 거자필반을 거듭 반복하는 인생사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뜻이라고 내 멋대로 짐작해본다. 결국 개개의 인생사들이 모여 역사를 이루는 것일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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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일치일란(一治一亂)이라는 문구를 사용하여 역사를 말하기도 한다. 맹자에 나온다는 이말은 아마도 한번 크게 다스려지면 한번은 크게 어지러워진다는 뭐 반복 순환의 이야기가 되겠고, 역사란 것도 이합집산과 합종연횡, 회자정리와 거자필반을 거듭 반복하는 인생사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뜻이라고 내 멋대로 짐작해본다. 결국 개개의 인생사들이 모여 역사를 이루는 것일진대, 반복무상한 것이 인생사이며 곧 역사가 아니던가? 중국 고대 하은주시대가 일치(一治)라면 주나라 말기 춘주전국시대는 일란(一亂)이 되겠다, 진한(秦漢)과 대당(大唐)은 일치의 시대가 되겠고 삼국 위진남북조와 오대십국은 일란이 되겠다. 어지러운 시대라도 춘추전국시대는 문화와 사상이 만개한 이른바 백화만발 백가쟁명의 시절이니 오늘날에도 동주 열국지라는 책으로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삼국지 못지않게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중국 고사성어의 대부분이 여기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어지러운 시기라도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일란은 일치를 위한 준비와 충전의 전단계로 해석하는 것이 올바른 역사관일 것이다. 조조를 일러 치세의 능신이요 난세의 효웅이라 했듯이, 물론 시대가 영웅을 만들어 내겠지만 새 시대를 여는 것 또한 그 영웅이리라. 저자는 이른바 다섯종족 오랑캐(흉노, 선비, 저, 강, 갈족)가 중원을 섭렵한 이시대가 중국역사에서 폄하되고 소외된데 대하여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역사는 언제나 승리자의 편에서 기술되고 왜곡되기 마련이다. 오호를 비롯한 중국 주변민족들이 - 고구려와 발해를 포함하여 - 모두 그들의 문자를 가지고 있어 기록을 남겼다면 오늘날 중국역사해석은 엄청나게 달라졌을 것이라는 저자에 말에 십분 공감한다. 조조가 아방궁에 버금가는 궁전을 세웠으며, 화려 찬란하기가 당시 중국에서 으뜸이었다는 업도가 오늘날에는 한낱 옥수수밭으로 변해버려 흙먼지만 풀풀 날리고 있다니...아! 진실로 상전벽해란 말이 옛시인의 허사만은 아니로고! 그 옛날 빛나던 영광과 번영의 도성이 이제는 아무런 흔적도 자취도 없이 먼지가 바람에 날려가듯, 그렇게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는 것은 삼국지 애독자의 한사람인 나로서도 실로 가슴아픈 일이다.. '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 云云하는 두보의 시 '春望'과 '옛 궁궐터에는 보리만이 무성하고 벼와 기장도 기름졌구나...'하는 맥수지탄(麥秀之嘆)의 고사가 떠올라 허허로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인생도 무상하고 역사도 무상하다. 다만 먼지묻은 서책을 뒤적이며 쓸쓸히 옛 시절을 그리워할 뿐이니...
e*****h 2005.09.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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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시대의 그늘을 보는 통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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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에서 5호16국 시대에 이르는 짧지 않은 기간동안 명멸했던 나라들의 간단하지 않은 역사가 고스란히 들어있는 유적을 교수는 30여회에 걸쳐 발로 찾아다녔다 하니 삼국지를 한번 읽는 것보다는 역사적 진실에 좀더 다가갈 수 있다 하겠다. 아다시피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들은 어딘가 범상치 않은 사람들 뿐이다. 민중은 말 그대로 民衆 일뿐, 영웅의 뒤를 따라 어지러운 세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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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에서 5호16국 시대에 이르는 짧지 않은 기간동안 명멸했던 나라들의 간단하지 않은 역사가 고스란히 들어있는 유적을 교수는 30여회에 걸쳐 발로 찾아다녔다 하니 삼국지를 한번 읽는 것보다는 역사적 진실에 좀더 다가갈 수 있다 하겠다. 아다시피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들은 어딘가 범상치 않은 사람들 뿐이다. 민중은 말 그대로 民衆 일뿐, 영웅의 뒤를 따라 어지러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가련한 무리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유난히도 인구가 희소했던 그 시대에 반대로 '영웅' 이라 불리던 사람들은 '과잉' 이라 칭할 수 있을만큼 많았으니, 그 누구도 당시 백성들의 생활에 대해서는 지나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영웅시대의 빛과 그늘' 이라고 칭한 책의 부제가 과연 걸맞을까, 내 생각에는 '빛' 이란 단어는 제외해야 할 것 같다. 책에는 난세를 살아가는 민중의 고달픔을 이해하려고 애쓴 노력이 역력하다. 이 책의 미덕은 이런 데에 있다. 제갈량이 남만을 정벌하는 과정에서 보여주었다는 칠종칠금의 눈부신 책략보다는, '남만' 이라는 다소 경멸스런 이름이 붙어있는 토착부족민들의 전쟁으로부터 오는 고달픔이 미국의 소위 '대 테러 전쟁' 으로 고통 받았던 아프간의 난민들의 애닯음과 유사함을 찾아내는 시각 말이다. 교수가 환하게 빛을 비추어준 영웅도 우리 잘 알고 있는 보편적인 영웅이 아니다. 교수는 원대한 이상을 가지고 목표를 뚜렷이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에는 좌절을 겪고서 몰락해간 부견이나 혁련발발 같은 이민족 출신 황제들이 중화주의적 관점에서 배제되고 있는 현실을 매우 안타까워하며 때로는 역사가가 맡고 있는 역할을 넘어 감정적인 추모의 정까지 보이고 있다. 동시대에 일어난 게르만 족의 대이동에 필적하는 북쪽 새외 부족들의 중원 진출이 결국 고여서 썩어버린 중국이라는 공간에 새로운 힘을 주었음을 책을 통해서 알 수 있을 것이다, 삼국시대와 오호 십육국 시대는 오랑캐들이 난리를 일으킨 그런 시대가 아니라 중국 역사상 가장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시대였음도 아울러 깨달을 수 있다.

[인상깊은구절]
운남은 오랫동안 중원과는 격절된 곳이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부족한 것을 별로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외부와 접촉하려 하지 않았다. 외부 세력이 그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을 뿐이다. 제갈량의 이른바 '남중' 정벌이란 것도 삼국시대판 '부시의 대 아프간 작전' 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단 말인가?
k****i 2003.05.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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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들의 이야기와 함께 하는 중국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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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에 관심이 많은 나 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여행을 가지 못하는 나에게는 이런 책이 나오는 것이 참으로 행운이다. 이책의 저자 박한제교수는 30여차례나 중국 답사를 해왔다고 한다. 중국역사 학자이자 중국 여행 전문가가 아닐수 없다. 이 책은 중국 기행문이자 많은 중국 역사 이야기를 해준다. 주로 위진남북조시대의 인물들에게 포커스를 집중시키고 있고 그중에서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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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에 관심이 많은 나 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여행을 가지 못하는 나에게는 이런 책이 나오는 것이 참으로 행운이다. 이책의 저자 박한제교수는 30여차례나 중국 답사를 해왔다고 한다. 중국역사 학자이자 중국 여행 전문가가 아닐수 없다. 이 책은 중국 기행문이자 많은 중국 역사 이야기를 해준다. 주로 위진남북조시대의 인물들에게 포커스를 집중시키고 있고 그중에서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들의 이야기를 박한제 교수만의 관점으로 재조명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비수전투에 90만대군을 잃은 전진의 황제 부견, 역사는 승리자의 것이라고 그는 패자로서 영영 기억에 남아 있지만, 박한제교수는 그의 인간적인 면를 보여줌으로서 새롭게 보여 주고 있다. 이책을 읽기전 나의 부견에 대한 이미지는 한낱 망국의 왕 일 뿐이었으나 이책을 읽으며 부견에게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역사는 다양한 관점에서 볼줄 알아야 시야가 넓어지는것 같다.
s*******9 2004.04.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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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수집에 그쳐버린 대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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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자에게 있어 가장 가혹한 의무가 되는 것은 그가 거의 모든 학문에 있어서 만능일 것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박한제 교수께서 그저 기행문을 써보고자 했으면 모르되.. 그가 책 안에서 밝힌대로 그 시대에 관한 개설서를 목표로 했다면 이렇게 쓰면 안되는 일이었다.(물론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안에는 무수히 많은 자료가 등장한다. 세설신어를 필두로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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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자에게 있어 가장 가혹한 의무가 되는 것은 그가 거의 모든 학문에 있어서 만능일 것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박한제 교수께서 그저 기행문을 써보고자 했으면 모르되.. 그가 책 안에서 밝힌대로 그 시대에 관한 개설서를 목표로 했다면 이렇게 쓰면 안되는 일이었다.(물론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안에는 무수히 많은 자료가 등장한다. 세설신어를 필두로 각종의 역사서 중국의 많은 역사가들이 이야기한 것들... 그리고 동양사학자로서 많은 교류를 통한 직접 경험들... 그러나 그 안에서 시대를 읽는 눈부신 통찰을 찾기는 정말 힘들다. 솔직히 그가 다루는 자료는 대학자의 지위에 합당할 만하나... 그의 역사에 대한 해석이나 정치, 외교에 대한 해석력은 그저 시골 촌로에 불과한 듯하다. 한국의 학자들의 한계일까? 시대를 읽을땐 그 시대의 사회 문화 정치의 틀 안에서 읽어야 한다는 최소한의 룰마저 스스로 자주 범해버리는 우를... 대학자라고 해서 용서하기에는 너무나 서글프다...
c***2 2003.07.1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