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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등정의 발자취란 인류가 이룩한 산봉우리들을
찾아가는 대장정이다. 처음 인간이 지구에 출현하여 진화를 시작한 이래 현대의 유전학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성취한 과학문명들을 하나 하나씩 찾아본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이 어떻게 진화해왔는가를 살펴보는 동시에 인간이 왜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인류의 역사는 수백만년이 걸린 생물학적 진화와 단지 1만년이 조금 넘는 시간속에 들어있는 문화의 역사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인간이 이룩한 문화를 찾아 나선다는 것은 인간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 [인간 등정의 발자취]는 1973년
영국 BBC방송에서 제작하여 전세계에 방영된 동명의 13부작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엮은 것이라고 한다. 저자인 제이콥 부로노우스키는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고 해설을 하였으며
책을 발간한 이듬해인 1974년 타계했다고 한다. 그는 책에서
분명 인류의 진화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 환경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변화시키는
유일한 존재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가 살펴보는 것은 단지 인간의 생물학적 진화에 국한되는 것만은 아니다. 인간만이 여러시대를 거치면서 생물학적 진화는 물론 문화적 진화를 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이 성취한 문화적 산봉우리의 연속을 ‘인간의 등정(The Ascent of Man)’이라 부르며, 인간 지성이 이룩한
과학문명의 봉우리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책에서 말하는 과학문명이란 자연과학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예술, 문학, 종교, 건축
등 인간이 이룩한 문화 전반에 걸쳐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인류의 진화사이자, 과학사 그리고 문명사이기도 하다.
저자는 인류의 발상지인 적도 아프리카에서
시작하여 문명의 발상지인 근동은 물론 유럽과 신대륙, 그리고 아시아 곳곳을 돌며 인간이 남긴 창조의
흔적과 인간 자신들의 지적 지평을 확장해간 순간순간을 찾아 나선다. 그 순간들은 때로는 파괴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때로는 혁명의 모습으로, 환희의 모습으로, 좌절의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그런 등정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음을 저자는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유목에서 촌락농업으로 전환되면서 등정의
거대한 일보를 내디딘 인간은 돌 연장의 발견이라는 한 봉우리를 거쳐 불이라는 도구로 물질의 보이지 않는 구조를 열어 젖히는 이론과학이 시작되는
단계로 나아갔다고 한다. 예술과 과학은 동물이 할 수 있는 영역 밖에 있다. 그것은 사유가 가능해야 이루어질 수 있는 인간 특유의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화적 진화란 본질적으로 상상력의 끊임없는 성장과 확대에 따른 결과라고 저자는 말한다.
‘인간의 등정에 있어 가장
힘찬 추진력은 자신의 기량에 대한 인간의 쾌감이다. 인간은 자신이 잘하는 일을 하고 싶어하며, 그 일을 잘한 다음에는 더 잘하려고 한다. 우리는 인간의 과학에서
그것을 본다.’(124쪽)
그러기에 수학의 발견은 인간의 사고가 역동적인 사유양식으로 전환되고 인간 등정에 있어 중대한 한 걸음이 되었다. 이어서 화학, 물리학, 천문학, 생물학 등 과학은 고비고비마다 인간의 등정에 각기 한 획을 그으면서 앞으로 나아가지만 결코 선한 얼굴로 나타나지
만은 않는다. 과학은 지식과 힘 사이에서 인간을 비틀거리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에 대한 믿음과 열정을 놓지 않는다.
‘과학이 인간을 비인간화하고
수치화 할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거짓말이다. 비극적일
정도로 거짓말이다. (아우슈비츠의 참상) 그것은 가스로 행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만 때문에 일어났다. 그것은 도그마에
의한 것이며 무지에 의해 일어난 것이다. 인간이 현실적으로 시험해보지도 않고서 절대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믿을 때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 인간이 신의 지식을 갖고자 할 때 이런 짓을 하는 것이다.’(416쪽) 그럼에도 인간의 등정은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그것은 모든 인간, 모든 문명이 스스로 하겠다고 작정한 책임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업(業)에
대한 개인적 헌신, 지적 헌신, 감정적 헌신이 하나로 작용해서
인간의 등정을 이루어 온 것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인간의 문명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과학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가 없다. 문명이란 우리 인간이 진화해오면서 이룩한 발전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달리 생물학적 진화와 동시에 문화적진화를 해왔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런 과학의 기초위에 예술, 종교 등 우리의 문화
전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문명3부작]이나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생물학적 진화에 초점을 맞춘 문명사라면, 저자의 이 책은 문화적
진화에 방점을 찍은 문명사이자 과학사라는 느낌이 든 것은 그래서였을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인류문명을 이렇게 요약했다. ‘약 135억년 전, 빅뱅이 일어나 물질과
에너지,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게 되었으며, 우주의 이런 근본적
특징을 다루는 이야기를 물리학이라 부른다. 그로부터 30만년
후, 물질과 에너지는 원자라는 복잡한 구조를 형성하기 시작했고, 원자가
모여서 분자가 되었다. 이런 원자, 분자 그리고 그 상호작용에
관한 이야기를 우리는 화학이라 부른다. 약 38억년 전, 지구라는 행성에 모종의 분자들이 결합하여 크고 복잡한 생물들을 탄생시켰다. 그
이야기를 생물학이라 부른다. 약 7만년 전, 호모사피엔스 종에 속하는 생명체가 좀 더 정교한 구조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른바
문화가 출현한 것이다. 그 후 인류문화가 발전해 온 과정을 역사라 부른다. 이런 역사의 진로를 결정한 것은 세 개의 혁명이었다. 7만년 전에
일어난 인지혁명은 역사의 시작을 알렸고, 12000년 전에 발생한 농업혁명은 역사의 진전속도를 빠르게
했고, 500년 전의 과학혁명은 역사의 종말을 불러올 지도 모르고, 사피엔스
종이 뭔가 완전히 다른 것을 시작하게 될지도 모르게 만들었다.’고.
거기에 저자는 인간의 상상력이 가져올
다음 등정이 무엇일지를 묻고 있다. ‘인간의 등정은 항상 저울대 위에서 흔들리고 있다. 인간이 다음 계단을
향해 발을 들어 올릴 때 다음 단계에서 정말로 발을 내려 놓을 수 있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면
우리 앞에는 무엇이 있는가? 결국 우리가 물리학이나 생물학에서 배워온 모든 것을 모아서 우리가 어디서
왔는가를 이해하는 것, 즉 인간이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향하여 나아갈 일이 남아 있다.’(487쪽)
세상을 보는 눈, 역사를 보는 눈에는 여러 시각이 있을 수 있다. 인류문명의 역사를 보는 눈 또한 마찬가지이다. 어떻게 바라보든지 각자의 자유이나, 그러나 보편 타당한 시각을 가지고서 문명사를 바라볼 때, 미래의 역사는 한층 성숙해지고, 인간의 등정 역시 앞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제이콥 브로노우스키가 보여주는 인간 등정의 발자취는 과연 ‘우리 인간이란 무엇인가’와 함께 미래의 역사를 규정할 인간의 다음 등정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끔 만들기 충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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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의 <에덴의 용>을 읽으며 브로노우스키란 이름과 그의 저서 <인간 등정의 발자취>를 알게 됐다. <에덴의 용>에서 인간의 지적 진화를 설명하는 중 간간히 언급된 <인간 등정의 발자취>는 인류 진화의 역사를 군더더기 없이 설명하고 있을 것이란 기대를 품게했다. 인류와 문명의 발달과정을 다룬 여느 책과는 다른 관점을 만날 수 있으리란 생각으로 <인간 등정의 발자취>를 펼쳤다. 인류의 기원과 발전을 다룬 대부분의 서적이 특정 가설을 제기하고(축, 제도, 가축화. 작물화, 지리적 이점 등) 그 가설을 증명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과 달리 <인간 등정의 발자취>는 인간의 문명에 큰 영향을 끼친 굵직한 사건을 중심으로 인류의 성장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각 단락 간의 개연성이 부족해보일 수도 있으나 '인류 문화의 발전'이라는 큰 틀에서 본다면 쉽게 납득할 수 있는 구성이다. 주관적인 부분이겠지만 어렵다고 생각하는 주제를 쉽게 풀어쓰는 책을 만나면 작가에 대한 경의를 품게 되고 그 책을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게 된다. <총균쇠>,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코스모스>와 같은 인문도서가 이런 범주에 포함된다고 여겼는데 여기에 <인간 등정의 발자취>를 추가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을 읽다보니 <총균쇠>, <사피엔스> 등 널리 알려진 인류 문명의 발자취를 다룬 책들이 브로노우스키의 인간 등정의 발자취를 참고했으리란 것을 확신할 수 있었고 학문이란 것이 지식이 쌓여 한 발 한 발 전진하는 과정의 연속이란 생각이 들었다. 조만간 BBC에서 같은 제목으로 방영된 프로그램을 찾아 감상해야 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