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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스토리, 하지만 자연스러운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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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책 정리를 하다가 오래전 졸업 앨범을 뒤적여 본 적이 있다.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친구들의 이름은 생소하게 느껴지는데, 별명들은 뚜렷하게 기억났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 땐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그 땐, 친한 사이일수록 별명을 부르거나 가벼운 욕을 섞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되던 시절이었다. 이름을 부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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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책 정리를 하다가 오래전 졸업 앨범을 뒤적여 본 적이 있다.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친구들의 이름은 생소하게 느껴지는데, 별명들은 뚜렷하게 기억났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 땐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그 땐, 친한 사이일수록 별명을 부르거나 가벼운 욕을 섞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되던 시절이었다. 이름을 부르는 것은 왠지 정색을 하고 격식을 차리는 느낌이어서 아무래도 서먹서먹하고 어색했다.


그런데 친구들의 별명을 떠올리다 보니, 별명들이 참 많기도 하다. 가볍게는 이름을 변형시킨 별명에서부터, 모습이 닮았다는 이유로 연예인이나 동물 이름을 붙인 경우, 또는 성격이나 습관 또는 말투에서 연유된 경우도 있고 특별한 사건에서 별명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그 별명 중에는 듣기에 괜찮은 것도 가끔 있지만, 대체로 남자들 사이에서 부르는 별명이란 '말대가리'나 '똥파리'와 같이 남들 듣기에 참 민망하고 험악한 것들이 많다.


하지만 학창시절 가장 '센' 별명들은 대개 우리를 지도하던 선생님들에게 붙여졌다. 예컨대,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에는 '미친 개', '몸부림', '변태'라는 별명을 가진 세 선생님이 계셨는데, 물론 그 별명들은 특히 그 선생님들이 우리들에게 체벌을 많이 가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다른 학교에도 똑같은 별명을 가진 선생님들이 계셨다는 것. 따지고 보면 우리 세대는 다니던 학교에 상관없이 비슷한 별명을 가진 선생님들로부터 쉴 새 없이 맞으면서 자란 셈이 아닌가.


중 고등학교 때를 돌이켜 보면(나와 내 친구들만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들은 참 많이도 맞으면서 자랐다. 그 때는 맞는 이유도 참으로 다양했다. 동급생과 싸우거나, 숙제를 하지 않아서 또는 지각을 해서 맞은 것이야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실로 어이가 없는 이유로 맞은 경우도 참 많았다. 나는 수업 시간에, 다른 과목도 아니고 그 수업에 관련된 참고서를 봤다고 불려나가 얻어맞은 씁쓸한 기억도 갖고 있다. 나는 그저 수업 내용을 찾아보고 싶어서 그런 건데, 그 선생님이 왜 나를 때렸는지는 아직도 궁금하다. 


그래서 그런 건가. 솔직히 말해서 나는 학창 시절 선생님들에게서 특별한 존경심 같은 것을 연상해내지 못한다. 물론 아직까지도 뵙고 싶을 정도로 기억나는 훌륭한 분들도 전혀 없진 않지만, 나에게 있어 선생님이라는 분들은 대체로 '학생들은 때려야 말을 듣는다고 생각하는', 그리고 교육에 있어서도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성의 없는 '직업인' 정도로 여겨지는 것이다. 어쩌면 촌지가 난무하던 시절에 없는 집 아이가 갖기 마련인, 자기보다 커다란 피해의식을 아직도 갖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스승과 제자 간의 - 스승은 단지 지식 뿐아니라 인생의 길을 깨우쳐주고 제자는 평생 따르고 존경하는 - 아름답고 훈훈한 관계는 아득히 오래 전, 우리의 아버지나 삼촌들의 세대에 이미 멸실된 것으로 생각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본 영화 한 편이 내가 가진 부정적인 편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그 영화는 올해 개봉된 <킹콩을 들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TV 프로그램에서 이 영화의 소개를 잠깐 본 이후로 너무 뻔한 스토리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영화는 '성장' 영화가 아닌가. 나는 청소년의 '성장'이 주제가 되는 소설이나 영화는 한결같이 내용이 뻔하고, 그래서 유치하고 재미없을 것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다. 다만, 우연히 <국가대표>라는 스포츠 영화를 보고서 오래도록 여운이 남았기 때문에, 다른 스포츠 영화를 찾다가 이 영화는 어떨까 하는 생각에 보았을 뿐이다.


그렇다면 스토리는? 역시 예측한 대로 아주 단순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제목이나 주연을 맡은 이범수의 이미지에서 막연히 연상되는 것처럼 밝고 코믹할 것이라는 예측은 빗나갔다. 이야기는 오히려 진지하고 묵직하다는 느낌에 더 가깝다. '88 올림픽 역도 동메달리스트인 이지봉(이범수 분). 그는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역도부를 신설할 계획을 갖고 있던 시골 어느 여중에 부임한다. 그런데 이지봉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역도'라는 비인기 종목을 아이들에게 가르칠 의욕이 없다. 하지만 순박한 아이들이 없는 형편 때문에 겪는 어려움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학교의 지원을 받아 역도부를 이끌게 된다. 그의 헌신적인 지도아래 아이들이 잘 성장하고, 각종 대회에 참가하면서 겪는 우여곡절이 영화의 소재다. 그리고 그 또래들 중에서 가장 재능이 있었던 영자(조안 분)는 국가 대표로 올림픽에 참가하게 된다는 이야기.





그런데 이 영화는 참 잘 만들어졌다. 보는 내내 마음속이 훈훈했고 한편으론 아련했으며, 결국엔 감동적이었다. 주인공들이 열악한 환경, 그리고 그들을 시기하는 사람들과 배타적인 환경 아래서 꿋꿋하게 성공을 향해 나아간다는, 지극히 평범하고 교과서적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짙은 여운을 갖게 되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무척 이례적이다. 그 이유를 들자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은 이 이야기가 우리나라의 어느 곳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었다는, 소재의 무게부터 먼저 언급하고 싶다.


이 영화의 직접적인 모티브는 2000년 전국 체전에서 네 명이 3관왕에 오르고, 총 15개의 금메달 중 14개의 금메달과 1개의 은메달을 휩쓸었던 무명의 어느 시골 여자 고등학교 역도부. 그들은 역도봉이 없어서 대나무를 쓰고, 매트리스가 없어 흙 바닥에서 훈련을 했다고 하는데, 그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파란'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그들 뒤에 헌신적인 세 스승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세 분 중 주인공 이지봉 역에 해당하는 분은 故 정인영 선생으로, 그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전병관을 발굴하기도 했으며 실제로 영화 속 이야기처럼 아이들을 가르치고 먹이면서 아버지처럼 성심으로 지도했다고. 아쉽게도 그는 전국체전이 끝나고 1년 뒤, 49세라는 젊은 나이에 과로로 별세했다고 한다.


하지만 감동적인 실화를 소재로 하여 영화를 만든다고 모든 영화가 감동을 주지는 못하는 법이다. 감동의 전제는 공감이다. 아무리 소재가 좋다고 해도, 그것이 재미를 위해 심하게 과장 또는 왜곡되거나, 실패한 캐스팅으로 어색하게 표현된다면 관객이 공감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자명하다. 이 영화의 감동의 원천은 어떻게 보면 '뻔'한 소재를 더 '뻔'하게 가공함으로써, 자연스러운 공감을 이끌어 내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 있다. 요즘 영화들이 각종 향신료와 조미료를 첨가하여 감각적 자극에 호소하는 경향을 생각하면, 이 영화에서 아이들이 겪는 고난이나 성공의 기복은 ‘영화’치고는 무척 덤덤하다고도 할 수 있을 수준인데, 그렇기 때문에 더욱 돋보이는 자연스러움을 얻어 낼 수 있었다고 본다. 거기에 주연을 맡은 이범수와 조안의 연기 뿐아니라 조연들의 연기도 자연스러웠다. 웃음을 이끌어 내기 위해 동원된 '감초' 역들도 딱 부자연스럽지 않을 한계까지만 '오버'했다.


그런 자연스러움은 영화를 보는 이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만드는 힘을 갖는다. 영화의 템포가 느긋하고 반전이 적으며 다큐멘터리처럼 객관적으로 보여도, 영화를 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급격한 감정이입과 몰입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나 역시 영화를 보는 도중에 언제부턴가 나의 시선보다는 역도부 소녀들의 시선으로 영화를 보고 있음을 의식했다.  나는 어린 시절의 내가 되어 있었다. 환경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게 씩씩하게 노력하는 해맑고 순박한 아이들의 웃는 모습을 볼 때면 나도 함께 웃고 있었고, 그들이 대회에서 바벨을 잡을 때는 내 손바닥에도 땀이 났다. 이지봉 선생에게서 모략을 써서 아이들을 빼앗아 지도하게 된 심성환을 볼 때는 나도 몹시 분개했다. 


영화 속 악역 심성환은 내 마음 속에 존재하는 부정적인 교사의 이미지를 대표한다고도 할 수 있는데, 그냥 '연출된' 영화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실제 내가 자라온 교육 현실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지기까지 했다. 반면에, 이지봉 선생과 같은 분이 영화속이 아니라 실제 우리 주위에 살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 것은, 내가 선생님들에 대해 갖고 있었던 그릇된 편견을 상당히 완화시킬 수 있었던, 이 영화를 보고 얻은 커다란 소득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 우리 사회에도 찾아보면 훌륭한 선생님들도 얼마든지 많을 것이다.


얼마 전 뉴스에서 수업시간에 떠드는 학생들에게 체벌을 했다는 이유로 교사가 불구속 기소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체벌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던 우리 세대로서는 황당한 일이다. 이런 것을 보면 요즘엔 세상이 바뀌어도 아주 많이 바뀐 것 같다. 물론 충분히 많이 맞고 자란 우리 세대로서는 체벌을 찬성할 이유가 없지만, 그래도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건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왠지 씁쓸하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낡은 것이 새것보다 좋은 경우도 많은 것이다.

w*****3 2009.12.11.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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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콩을 들다] 작지만 큰 진심의 힘!
"[킹콩을 들다] 작지만 큰 진심의 힘!" 내용보기
- 킹콩을 들다 │ 박건용 감독 │ 이범수, 조안 │ 드라마 │ 한국 '트랜스 포머'라는 초강력 로봇 바람이 스크린을 완전히 점령한 7월 초, 황량한 개봉 예정작에 이름을 올린 두 편의 영화가 있었다. 그 영화 중 한 편이 바로 역도를 소재로 한 감동 드라마 『킹콩을 들다』다. 헐리웃 블록버스터의 거센 돌풍에 대부분의 영화들이 몸을 사리던 시기이기에 이 작은 영화의 도전은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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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킹콩을 들다 │ 박건용 감독 │ 이범수, 조안 │ 드라마 │ 한국


'트랜스 포머'라는 초강력 로봇 바람이 스크린을 완전히 점령한 7월 초, 황량한 개봉 예정작에 이름을 올린 두 편의 영화가 있었다. 그 영화 중 한 편이 바로 역도를 소재로 한 감동 드라마 『킹콩을 들다』다. 헐리웃 블록버스터의 거센 돌풍에 대부분의 영화들이 몸을 사리던 시기이기에 이 작은 영화의 도전은 용감하다기 보다는 다소 무모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결과는 성공이었다. 화려한 CG들의 향연에 싫증난 관객이라는 틈새 시장을 정확히 노린 마케팅이 유효했고, 볼거리보다 따듯한 진심이 만들어낸 가슴 찡한 감동이 관객의 마음을 붙잡았다.

솔직히 영화 개봉 전까진 영화의 존재조차도 몰랐다. 예전처럼 영화 관련 기사나 상영 예정작을 챙겨보지 못한 것도 있지만, 역도라는 다소 독특하면서도 난해한 스포츠를 소재로 했다는 점 외에는 언론의 주목을 받을 만한 스타 감독이나 배우 하나 없는 영화 자체의 소박함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개봉일을 확정하고 2008 베이징 올림픽 역도 금메달리스트인 장미란ㆍ사재혁 선수를 앞세운 본격적인 홍보에 돌입하며 따듯한 감동에 초점을 맞추면서 영화에 대한 관심도도 올라가기 시작했다. 

역도는 올림픽이 아니면 보기 힘든 대표적인 비인기 스포츠다. 그러나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장미란 선수가 금메달과 세계 신기록을 동시에 기록하면서 온국민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영화 『킹콩을 들다』는 그때의 관심과 국내 최초로 역도를 소재로 한 영화라는 점이 어우러져 눈길을 끈다. 게다가 가녀린 체구의 조안이 역도 선수로 분했단다. 조안과 역도라, 선뜻 떠오르지 않던 모습이 몇 컷의 영화 스틸 사진을 통해 공개되었고, 사진 속 사뭇 진지한 그녀의 모습을 보니 영화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래서 개봉날 영화관을 찾았다.


촉망받는 선수이자 유력한 금메달 후보인 역도 선수 이지봉은 올림픽 경기에서 바벨을 든 채 한순간 중심을 잃어 쓰러지고, 바깥으로 팔이 꺾이는 부상을 입는다. 끔찍한 고통과 함께 금메달을 향한 그의 꿈은 물거품이 된다. 경기를 중계하던 방송은 '이지봉 선수 아쉽게 동메달에 그쳐'라는 짤막한 문장으로만 경기를 마무리하고, 방송과 국민들의 관심은 곧 금메달을 향한 다른 경기에 집중된다. 어느 누구도 금메달을 따지 못한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수술이 끝난 팔에 붕대를 감고서 다음 경기 일정을 되뇌던 그에게 담당 의사는 팔의 부상보다 심장 질환이 심각하다며 앞으로 선수 생활을 계속하기 힘들다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내린다.


뜻하지 않게 선수 생활을 은퇴한 그에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역도 이외에 아무 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자신의 모습에 좌절하며 여러 곳을 전전하던 그는 스승의 배려로 어느 시골 여자 중학교의 역도 코치로 부임한다. 그러나 실패로 인한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그에게 역도는 여전히 고통스러운 기억을 되살려줄 뿐이다. 역도를 하겠다며 찾아오는 아이들을 떼어내며 거리감을 두지만 아이들의 순수한 열정에 그도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그리고 진심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보살핀다. 각자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있는 그들은 그렇게 역도를 통해 하나가 되고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상처를 감싸 안으며 성장해 나간다. 

그러나 함께 하는 행복한 순간도 잠시, 그들 앞에 또다른 시련이 찾아온다. 지도 코치가 바뀌고, 훈련중 인격적 모욕을 당하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희노애락을 함께 했던 역도부원과의 이별까지 한꺼번에 그들을 덮친다. 세상의 편견과 오해, 통하지 않는 진심이 분하고 억울하지만 소녀들은 자신의 꿈을 건 역도가 있기에, 자신들에게 역도를 가르치고 사랑으로 보듬어주던 스승이 있기에 서로를 격려하며 이를 악문다. 그리고 스승에게 보답하고자 울음을 참으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한다. 울면서 바벨을 들어올리던 소녀들의 모습이,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제자를 걱정하던 스승의 진심이 스크린을 타고 오롯이 전해져 관객들의 마음도 함께 울린다.



솔직히 『킹콩을 들다』는 다소 뻔한 스토리에 빤한 감동을 담은 영화다. 스포츠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대개 그렇듯 『킹콩을 들다』 또한 어려운 환경의 주인공들이 스포츠를 통해 성취감과 삶의 희망을 갖게 되고,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악역들의 활약에 힘입어 곤경에 처하지만 그런 시련들을 이겨내고 마침내 성공에 이르면서 감동을 전해주는 예측 가능한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큰 줄기를 채워주는 에피소드들 또한 고만고만하다. 하지만 영화는 오히려 감동 스토리의 익숙한 얼개를 역도라는 생소한 스포츠와 적절히 조합하고 중간중간 코믹한 요소를 첨가해 소소한 재미를 이끈다.

재미와 감동, 웃음을 맛깔스럽게 버무리며 제법 산뜻하게 이야기를 이어가던 영화는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달라진다. 악역이 등장해 뻔뻔스런 악행을 저지르며 인물들 간의 갈등이 깊어지는가 싶더니 조금은 억지스러운 상황을 연출하며 급격히 신파적인 면모를 띤다. 절정 부분에서는 이제까지의 감정이 극에 달하면서 진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지만, 동시에 관객들에게 감동을 강요하는 듯한 전개는 조금 아쉬웠다. 초반의 발랄함을 후반부까지 이어가며 자연스럽게 감동을 전할 수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강한 감동도 좋지만 너무 대놓고 '울어봐!'라고 하니 조금 김이 빠진다. (뒤에 언급하겠지만 그 '억지스러운 상황'이 실화에 모티브를 둔 설정이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마음을 움직이는 건 제자를 생각하는 스승의 진심어린 마음 때문이었다. 이 코치는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면서도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며 대했고, 자신의 쓰라린 경험을 바탕삼아 무리한 성적 향상보다는 부상을 피하며 오래 운동을 할 수 있게 아이들을 지도했다. 좋아하거나 가리는 음식이나 징크스 등 선수들의 작은 부분까지 세심하게 살피고 신경쓰는가 하면, 그들의 꿈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기꺼이 내놓는 조력자를 자청했다. 이런 계산하지 않은 스승의 순수한 '진심'이 뻔한 스토리를 이기고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더불어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전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실화와 주인공의 이야기가 사진과 글로 짤막하게 소개된다. 지금은 영화의 인기를 증명하듯 많은 기사들이 나와서 모르는 분들이 별로 없겠지만, 역도를 소재로 한 스포츠 영화이며 이범수와 조안이 출연한다는 것 외엔 아무런 정보도 없이 개봉 당일 영화관을 찾았던 내게 영화 마지막의 실화 코멘트는 그야말로 깜짝 반전이었다.

특히 영화 속에서 다소 억지스럽다고 생각했던 설정이 실화의 내용을 가져와 구성된 내용이라니,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것이 현실이라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하긴, 연일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의 현실로 미루어 볼 때 이 정도의 사건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웃긴 건 실화임을 알고 난 후에 처음의 거부감이 한층 옅어졌다는 것이다. 아무리 극적이라도 실제 일어난 일이라 함부로 딴지를 걸기도 힘든, 그게 실화의 힘인가 보다.


『킹콩을 들다』의 바탕이 된 실화는, 2000년 전국체전에서 총 15개의 금메달 중 14개의 금메달과 1개의 은메달을 휩쓸며 화제를 모았던 시골의 한 여자 고등학교 역도부의 이야기다. 그들의 놀라운 성과 뒤에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선수들을 자식처럼 먹이고 가르쳤던 코치 세 명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그 중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역도 금메달리스트인 전병관 선수를 발굴하신 분이기도 한 故 정인영 코치는 49세의 젊은 나이에 과로로 인한 뇌출혈로 근무 중에 안타깝게 순직하셨단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왼쪽의 공간에는 감동 실화의 주인공인 역도부의 사진과 그것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킹콩을 들다』 속 모습들이 번갈아가며 나온다. 그 사진들을 보고 있자니 절로 코끝이 시큰해졌다. 약삭빠른 이 시대에 진심을 다해 아이들을 가르치고 보살피는 스승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이 세상은 살아갈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영화보다 더 진한 감동을 남겨주는 엔딩 크레딧이었다. 


무엇보다 이범수와 조안을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가 좋았다. 영화 첫장면에서 근육질의 몸매를 자랑하며 역기를 번쩍 들어올리는 이범수의 모습은 조금 의외였지만 무척 잘 어울렸다. 진짜 역도 선수의 포스가 느껴질 만큼. 초반의 코믹한 이미지에서 탈피해 다양한 배역으로 꾸준히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가는 배우 이범수는 이 영화에서도 코믹함 보다는 진중한 인간적 면모를 보이는데 치중한다. 그리고 선수로서는 불운했지만 스승으로서는 행복했던 이지봉 코치를 그만의 색깔로 표현해 낸다.

이건 여담인데, 영화를 보다 보면 볼록한 그의 배에 자꾸 시선이 꽂히게 된다. 초반 선수 시절의 탄탄한 몸매가 은퇴 후 갈피를 잃은 그의 삶처럼 무너진 걸 보여주려는 듯하다. 하지만 자체 뱃살의 자연스런 처짐을 보여주었던 『거북이 달린다』의 김윤석과 달리 이범수의 나온 배는 너무 동그래서 무언가를 넣었다는 게 티가 날 정도로 조금 어색했다. 살짝 임신부 분위기가 나기도 하고. 약간 주변으로 퍼져주었더라면 더 자연스러웠을 텐데. 그나저나 배에 무얼 넣었던 걸까.. ;)


무엇보다 내겐, 늘어진 티셔츠와 추리닝을 입고 껑충한 단발 머리에 화장기를 걷어낸 얼굴도 모자라 버짐 분장까지 해가며 완벽하게 시골 소녀로 분한 조안의 연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가녀린 몸으로 기운차게 바벨을 들어올리는 모습 또한 진짜 역도 선수가 못지 않았다. 그녀의 연기를 볼 기회가 별로 없었기에 스치듯 잠깐 봤던 드라마 『토지』에서의 옹골찬 귀녀 연기 밖에 떠오르지 않았는데, 영화 『킹콩을 들다』에서 보여준 성숙하고 안정적인 연기를 통해 그녀를 다시 보게 되었다. 앞으로 기대를 갖고 쭈욱 지켜봐도 좋을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조안과 함께 역도 선수의 꿈을 키우는 역도부 소녀들 역을 맡은 조연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다. 꿈을 향한 소녀들의 땀과 열정을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해 함께 구슬땀을 흘리며 영화를 채워준 그들의 연기가 있었기에 이 영화가 한층 빛을 발할 수 있지 않나 싶다. 또한 중학교 교장과 교감 역으로 등장한 박준금과 우현은 극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준다. 특히 악역인 고등학교 코치를 맡은 배우는(이름을 모르겠다)는 기대 이상의 밉살스런 연기를 선보이며 관객들로 하여금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드는 위력을 과시한다.


영화 첫 장면에서 역기를 놓치며 팔에 부상을 입고 괴로워하는 이지봉 선수의 모습은 지난 2008 베이징 올림픽 역도 경기에서 안타까운 장면을 연출했던 이배영 선수를 연상시켰다. 다리에 쥐가 나 연속 실패를 하면서도 끝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마지막 기회마저 실패하여 넘어지면서도 끝까지 바벨에서 손을 놓지 않았던 이배영 선수의 눈물이 이지봉 선수를 통해 되살아나 안타까움이 더해졌다.

불운의 부상으로 은퇴한 이지봉의 짧은 선수 시절 장면을 통해 영화는 우리의 잘못된 태도를 그대로 보여준다. 기다리던 금메달이 아닌 동메달이라는 이유로 짧은 자막 한 줄로 그의 소식을 대체해 버리는 방송국의 태도는, 그들이 그 자리에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땀을 힐렸는지에 대해서는 눈길도 주지 않으면서 오직 금!금!금!을 외치며 메달의 색깔에만 집착하며 승자에게만 환호하는 우리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메달 색깔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낼 수 있는 날이 언제쯤 올지, 오기는 올런지 여전히 궁금해진다.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는 시골 소녀들이 세상에 당당히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녀들을 믿어주고 격려해주는 스승이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킹콩을 들다』는 제자들을 향한 이 코치의 진심을 통해 이 시대의 진정한 스승에 대해, 우리에게는 과연 그런 스승이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준다. 또한 영화는 비인기 스포츠인 역도를 소재로 택함으로써 지금도 열악한 환경에서도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선수들을 알리고 그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표현한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적당히 웃기고 적당히 신파적이며 또한 적당히 감동적인 중간 정도의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각종 영화 사이트에 쏟아지는 반응들이 너무 폭발적이라 조금은 어리둥절하긴 하다. 만점에 가까운 별점을 보며 솔직히 이 정도까지 극찬을 받을 영화는 아니던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하지만 영화든 책이든 각자의 취향과 상황에 따라 그 감동의 크기도 다른 법이니 여기에 대해 더이상 왈가왈부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각자 감정에 충실하면 그뿐이니까.

그럼에도 이런 착한 영화가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다. 그만큼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따듯한 진심과 감동이 관객들에게 진하게 파고들었다는 뜻일 테니 말이다. 화려한 볼거리로 무장한 큰 영화에 맞서며 훈훈한 입소문으로 관객들을 스크린으로 끌어모으는 작은 영화의 힘은 또한 무척 고무적이다. 이런 작은 영화의 선전에 힘입어 관객들이 보다 다양한 영화를 즐길 수 있길 바라본다. 








 
t****9 2010.06.1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영화] 킹콩을 들다 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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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킹콩을 들다, 2009 감독 : 박건용 출연 : 이범수, 조안 등 등급 : 전체 관람가 작성 : 2009.12.06. “인생은 무겁구나. 지독할 정도로,” -즉흥 감상-   한때나마 감상문을 쓰기 위해서랍시고 영화표를 꼭꼭 챙겨두는 편이었는데, 근례에 들어서 한번 그 뭉치를 잃어버리고 난 다음부터는 그런 집착에서 해방된 기분입니다. 아무튼, 차 시간이 끊겨 다음날
"[영화] 킹콩을 들다 를 보고" 내용보기

제목 : 킹콩을 들다, 2009

감독 : 박건용

출연 : 이범수, 조안 등

등급 : 전체 관람가

작성 : 2009.12.06.



“인생은 무겁구나. 지독할 정도로,”

-즉흥 감상-



  한때나마 감상문을 쓰기 위해서랍시고 영화표를 꼭꼭 챙겨두는 편이었는데, 근례에 들어서 한번 그 뭉치를 잃어버리고 난 다음부터는 그런 집착에서 해방된 기분입니다. 아무튼, 차 시간이 끊겨 다음날의 첫 차를 기다리면서 친구들과 함께 만나보게 되었던 영화라는 것으로, 소개의 시간을 조금 가져볼까 하는군요.



  작품은 몸을 풀며 자신의 경기에 준비와 각오를 다지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과 함께 88서울올림픽 역도경기장으로 시작의 문을 열게 됩니다. 하지만 금메달을 눈앞에 두고 그만 부상과 함께 동메달에 머무르게 되었음을 알리게 되는군요.

  그렇게 팔꿈치가 부러졌으며 심장에까지 문제가 발생해버렸음을 알게 되어 꿈을 접어야 했던 시절은 잠시, 20년이 흐른 시점에서 허리에 심한 통증이 있지만 베이징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는 한 여인이 있었다는 것으로 본론으로의 문이 열리게 됩니다. 그리고는 출국 전으로 오랜 친구가 건네주는 가방속의 물건들을 통해 지난 시절을 회상하게 되는데요. 10여 년 전으로 새롭게 문을 여는 이야기는 앞서 여는 화면에서 부상을 당했던 남자가 학교의 역도선생님으로 들어오게 되었음을 말하게 됩니다. 하지만, 선생님 본인의 의지는 고사하고 환영받지 못하는 새로운 체육부의 개설에 지역사람들은 이내 관심을 잃게 되었다는 것은 잠시, 그런 학교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인정받지 못하는 소녀들의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데요. 결국, 그런 선생님과 소녀들이 의기투합하게 되는 이야기에 이어, 그들의 행진에 기적의 드라마가 펼쳐지게 되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와~ 이거 실화라면 그저 멋진데? 장미란 선수 말고도 역도의 기대주가 있었단 말이야?’ 했었는데요. 감기록을 위해 작품에 대한 정보를 찾아봐서는 역도와 관련된 몇몇 사건들을 종합 정리하여 감동어린 드라마도 재탄생 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으흠. 사실 이번 작품을 마주함에 있어 개인적으로는 영화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 Transformers: Revenge Of The Fallen, 2009’을 더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 힘들 때가 바로 이런 대다수의 의견에 따라야 할 때였는데요. 비록 나름 감동의 시간을 가져볼 수도 있었다지만, 그리고 아무리 한국의 영화가 발전하는 중이라지만, 그 순간 보고 싶은 것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에서만큼은 그리 유쾌한 만남이 아니었습니다.



  아무튼, 제 기록을 읽어주시는 분들은 이런 ‘스포츠 영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는 불굴의 의지를 그려나가는 이야기가 많아서 참으로 교훈적이시라구요? 유쾌 상쾌 통쾌에 코믹을 양념으로 한 감동어린 이야기가 많아서 좋으시다구요? 현직 일선에서 뛰고 계신 분들이 속으로 뭐라고 할지 걱정이시라구요? 으흠. 개인적으로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 한 작품에 대해 ‘아직도 말하기 좀 그렇다’의 입장을 가지신 분들을 간혹 술자리 같은 곳에서 만나는 일이 있었다보니, 문제의 ‘재구성’에 대해서만큼은 조심스러운 입장을 가지고 있는데요. 그래도 잊혀져버리는 것 보다는 계속해서 화재의 대상이 되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냐고 적어보는 바입니다.



  아무튼, 작품 내에서도 묘사가 되었지만 다른 운동 종목과는 달리 큰 관심을 받지 못하던, 아아. 물론 장미란 선수 덕분에 대서특필하게 되었다는 것은 일단 넘기구요. 아무튼, 그런 운동 종목에 대한 관심에 불을 집혀주는 작품이 아니었을까 한다는 것으로, 이번 기록은 여기서 마쳐볼까 합니다.



  며칠 밤으로 비가 내렸던 흔적이 보이는 것이, 아니면 12월이라는 것인지 갑자기 추워진 기분인데요. 다들! 건강 잘 챙기시는 겁니닷!! 오늘 하루도 뜨겁게 !!!

 

 

TEXT No. 1091
 
n*****g 2009.12.0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