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태인에 대한 상식... 편견이란 말이 옳겠다. 편견... 머리가 좋다. 장사 잘한다. 히틀러의 희생자다. 이스라엘은 착한 나라다... 등등의 편견을 부술수 있는 책이다. 그저 유태인 또한 수많은 민족들중에 하나일 뿐이다. 단지, 미국 제국주의의 앞잡이로서 미국의 중동지역 지역파트너로서의 추악함을 감추기 위함일뿐이며, 지금까지의 중동전쟁에서 이길수 있었던것(이스라엘의 생존 자체가)도 미국,영국등의 제국주의의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유태인이 잘나서가 아니란 소리다. 수많은 중동 전쟁도 (내가 구할수 있었던 텍스트를 보면) 아랍국가들이 너무 한심해서 당했다고 밖에 할수 없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자살 폭탄테러가 과거 윤봉길, 안중근의사의 행동과 전혀 다르지 않고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도 알게 될것이며, 시오니즘 국가인 이스라엘과 미국, 영국이 적어도 최소한 아랍국가들에게는 '악의 축'임을 달수 있다. 시오니즘이 어떤 사상인지도 정확히 알게 될 것이다. 시오니즘이 얼마나 엄청난 폭력과 고문,살인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을 학살했는지 왜 그들이 나찌의 동반자이며, 나찌즘을 계승 발전시킨 유일한 휴계자인지도 알수 있다. 저자는 시오니즘을 식민지 이데올로기이며 이스라엘 국가는 다수 유태인의 의지가 반영되지 않은 강압적인 기구일 뿐이라고 정의한다. 시오니즘은 팔레스타인인들의 땅을 제국주의가 했던것 그대로 체계적으로 강탈하고 인종주의에 기반한 차별을 법적으로 인정하며, 아랍세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위해 4대 군사강국을 유지해야 한다고 믿으며, 시오니즘이 홀로코스트를 도덕적으로 계승한다고 떠든다. 하지만 시오니즘은 나치즘, 파시즘과 그 맥락을 같이하며 제국주의의 이념을 따르는 하나의 적대적 이념일 뿐이다. 팔레스타인인을 학살하며, 나치즘과 같은 피의 순수성이라는 민족우월주의 극단성을 치닫는... 미친 이념일 뿐이다. (민족주의... 단일민족의 순수혈통... 이 나라 군부정권들이 잘 써먹던 것들이다. 초기 시오니스트들은 대영제국하에서 '경찰력'으로 자신들을 무장했다. 이승만도 자신의 지지기반인 친일 경찰력으로 정치적 기반을 유지했다. 웃기지 않는가? 잘 보면 군부 정권들이 시오니즘을 배낀 흔적들이 있다.) 시오니즘은 아주 독선적인 사상이다. 나치즘, 파시즘과 같이. 유태인과 시오니즘의 차이는 뿌리는 같지만 시오니스트들은 유태인보다 더 진화했다는... 일종의 인종내 우성학적 이론을 대입한 인종내 우월주의를 가진듯하다. (일종의 선지자 혈통 같은... 선지자 모세가 젖과 꿀이 흐르는 하나님이 약속한땅이라고 사기친 곳이 바로 팔레스타인인들이 살던 곳이다.선지자= 사기꾼이라는 공식도 성립한다.)시오니스트들은 자신들을 유태인 위에 군림할 '유일한 지배자 혈통'으로 생각한듯이 유태인의 존재가치를 자신들의 지배를 받는 일종의 이스라엘이라는 시오니즘 유토피아의 구성원,피지배자로서의 역할만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치의 유태인 학살을 방관, 묵인하며 나치즘, 파시즘과 연대 공유한 것이다.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선 뭐든 상관 없다는 태도...이건 그들이 골수 국가주의자 였다는 사실로 알수 있다. 시오니스트들은 자신들의 대아랍에 대한 증오심을 공유하던가 아닌가에 따라 이스라엘 건국에 소극적 유태인은 사라져도 무방하다고 생각했고 도움이 안되는 유태인은 학살속에 방치했다. 이 책은 분명히 말한다. 시오니즘은 절대로 선이 아니라고 우리가 알고 있는 이스라엘과 시오니즘은 그저 미국 제국주의의 이익을 대표하는 것일 뿐이라는... 그리고 그것을 얻기위해 버린 추악한 일들까지... 그리고 시오니즘의 창시자 테오들 헤르츨이 생각하는 시오니즘 국의 영토를 보면... 대일본제국의 대동아공영권을 보는 듯한 황당한 느낌이다. 그리고 그것이 미국의 대 중동정책과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것도 알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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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지금 시오니스트(Zionist)들의 가자(Gazah)지구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무자비한 침공이 또다시 시작되고 있다. 이 저술은 이러한 이스라엘의 잔혹성과 사악함을 그 역사적 배경과 피해자들의 증언, 언론과 저술들에서 고발된 실증을 기초로 상세히 기술(記述)하고 있다. 특히 이 지역에서 발생하는 이스라엘의 침략전쟁 대부분의 원인과 책임문제에 있어 미국을 비롯한 서방 및 이스라엘의 시선만을 반영한 왜곡된 상황으로 이해되고 있어 그 실상과 배경을 제3자적 시점의 균형 잡힌 관점으로 이해하는 것은 인류의 정의와 국제질서의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는데 중요한 기반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우선 오늘의 이스라엘을 이해하는데 있어 시오니즘(Zionism)과 시오니스트들의 출발배경과 사상, 행동양식은 분리하여 설명될 수 없는 핵심내용을 구성하고 있다. 바로 시오니즘만이 오늘에도 반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팔레스타인과 인접 국가들에 대한 침공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오니즘은 19세기말부터 시작된 유럽 내 유태인들의 그네들이 말하는 고대의 예루살렘,‘약속의 땅’이라 부르는 오늘의 팔레스타인 거주지역에 유태인 국가를 건설하려는‘유태민족주의’운동을 지칭한다. 이러한 세계에 뿔뿔이 흩어져 있던 유태인의 염원이 공식적으로 천명된 것은 이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승전국인 영국이 팔레스타인을 식민지배하면서 이루어진 결과로서 당시 이 지역에는 팔레스타인 아랍인 64만4천명과 유태인 5만6천명이 거주하는 평화로운 지역이었다. 즉, 전체인구의 10%도 안 되는 유태인은 아랍인에 흡수되어 팔레스타인의 소수민족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이 벨포어 선언은 ‘헤르츨’, ‘야보틴스키’등 급진적 시오니스트들의 극단적 배외주의(排外主義)정책을 가속화시키는데 불을 당기게 하였다. 즉, 이들 시오니스트들은 재빠르게 대영제국 팔레스타인 식민정부에 기생하여‘유대식민 방어국’을 만들어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을 탄압하는 경찰력의 지원 등 적극적 아부에 이르며, 절대 다수인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의 토지 약탈과 억압에 총력을 기울인다. 또한 유럽의 유태인 우수인재를 적극적으로 이주시키는 정책을 병행하여 1931년에는 1917년 팔레스타인 유태인수의 3배에 이르는 17만 4천 명으로 극적인 인구증가를 이루며, 1947년에는 다시 3배가 넘는 60만 명의 유태인이 거주하기에 이른다. 1924년 시오니즘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강철벽』에서 ‘야보틴스키’는 “원주민들(팔레스타인 아랍인)이 우리의 식민지화를 방해할 가능성을 행정적으로 또 물리적으로 차단해야 할 것이다. 원주민들이 무엇을 원하는 가는 중요치 않다. 무력은 관대함을 필요치 않는다. 무력을 통해 강한 힘을 보여줘야 한다.”고 쇼비니즘(Chauvinism)에 뿌리를 둔 극단적인 식민주의 이데올로기를 천명한다. 결국 팔레스타인 사회를 사회문화적으로 파괴하고 팔레스타인인을 그들의 땅에서 몰아내는 것이 시오니스트들의 궁극의 목표임을 명확히 하였다.
영국점령의 팔레스타인 식민정부를 장악한 시오니스트들은 그야말로 극악한 강탈과 폭력으로 점철된다. 이에 영국왕립위원회는 “시오니스트들의 팔레스타인 이민 즉각 중단, 아랍인 소유의 토지를 시오니스트에게 양도하는 행위의 중지 및 금지, 팔레스타인 주도 민주정부 수립”이라는 ‘필 보고서’를 발표하지만 시오니스트들에게 이러한 완곡한 권유는 이미 재고(再考)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오히려 당시 지배계층인 러시아, 헝가리 등 동유럽, 독일의 반(反)유태주의자들과 영합하여 유럽 내 유태인들의 제거를 호소하고 지원하여 유태인 혐오 인종주의자들의 힘에 기생하는 기형성과 타락상을 보이기도 한다. 급기야 시오니스트들의 비열성은 파시즘, 나치즘과 협력하고 유럽의 유태인 희생이라는, 유태인을 박해하는 지배계급의 환심을 사려고 반유태주의를 적극 호소하기에 이른다. 즉, 나치와의 협력을 통해 유태인의 대학살을 종용하여 팔레스타인에서의 유태민족국가 건설을 보다 선명하게 부각시키기에 이른다. 유럽 내 반유태주의를 유포하고, 유태인을 내몰고, 위험을 피해 도망친 유태인을 위한 피난처 마련에 적극 반대하였으며, 심지어는 영국 등지에 망명하는 유태인들을 받아주지 말 것을 극단적으로 요청하는 등 시오니스트들은 극단적인 도덕적 타락의 양상을 보였다. 시오니스트들은 단지 젊고, 뛰어난 우수인재들만을 선별적으로 받아들이는 이주 정책을 고수했다. 1940년 『쾨니히 보고서』의 “우리는 갈릴리 지역의 아랍주민들을 제거하기 위해 테러와 암살, 협박, 토지강탈, 사회적 서비스의 중단 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우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여기서 노예로 사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들 모두를 죽여야 한다.”에 이르는 광신적 민족주의로 무장한 시오니스트들은 1948년5월 국제연합으로부터 분할된 팔레스타인의 한 부분을 ‘이스라엘국’으로 승인받기에 이른다. 1931년 팔레스타인 국토의 2%도 안 되는 토지를 소유하던 시오니스트들은 불과 15년 만에 팔레스타인 마을파괴, 대량학살, 테러와 암살, 협박, 강탈을 통하여 절반에 이르는 토지를 보유한다. 이후 1949년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의 대(大)살육전이 감행되고 단 6개월 만에 475개 마을 중 385개 마을이 파괴되고, 95만 명의 팔레스타인 아랍인이 13만 8천명만 살아남는 세계역사상 가장 처참한 만행이 저질러졌다. 웨스트뱅크와 가자지구는 1948년 UN의 이스라엘 정부 승인이후에 무력 침공하여 점령하는 일종의 무력점령지이다. 1948년 이래 이스라엘은 미국 제국주의의 첨병으로서 그리고 중동지역의 패주로서의 지위를 위해 끊임없이 인접국을 침략해 국경을 확장하고 점령지역을 늘려왔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빈번한 팔레스타인 지역의 공격과 인접국에 대한 도발의 궁극적 지향점은 이집트의 나일강에서 이라크의 유프라테스강에 이르는 중동지역을 차지하여 유태민족주의 패권(覇權)국가를 건설하는데 있다. 이는 다시 말해 레바논과 요르단 전체, 시리아일부, 이집트 일부, 이라크의 절반까지 국경선을 확장하는 것이다. 1956년 10월 이집트와의 전쟁에서 1982년 레바논 침공, 시리아, 요르단에 가해지는 지속적인 국지전 등은 『모세 샤렛트의 일기』서와 같이 도발을 위해 테러와 공격 등을 조작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석유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가자지구를 지배할 필요가 생겼다.” 그러면 즉시 침공하였으며, 점령하여 지배하였다. 레바논에 팔레스타인 난민을 몰살할 필요가 있다고 결정되면 즉시 대공습과 침략으로 이행에 옮겼다. 1982년 사브라와 샤틸라 대학살은 50만 명의 인구를 5만 명으로 즉시 줄였다. 오늘의 이스라엘이 지배하는 영토(점령지)안에는 250만 명의 팔레스타인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중 16세 이상의 팔레스타인 남성 모두는 인생에 한두 번 체포나 구금상태로 조사를 받고 있으며, 이 조사란 것은 지구상 현존하는 가장 극악한 고문을 수반하는 것이다. 전기고문, 물고문, 구타와 같은 고문은 기본적으로 수행되는 것이며, 지면에 옮기는 것이 불가할 정도의 참혹한 고문이 자행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아랍인에게 적용하는 ‘비상방위규칙’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인은 사법재판을 받을 수 없으며, 점령지 군부대장의 자의적 재량에 의하여 처벌할 수 있게 되어있다. “무단 구금, 가옥파괴, 농장,마을 폐쇄 등 팔레스타인인을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음을 의미하며, 과일을 심거나 토마토, 가지 등을 심으려면 사전에 이스라엘군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식수용 또는 관개용 우물을 파는 것도 금지되고, 주택 수리도 임의로 하면 처벌된다.”이렇듯 팔레스타인인의 기본인권은 철저하게 부정되어있는 지구상 유례가 없는 잔인함의 극한이랄 수 있는 폭압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부패한 소수자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아랍국(사우디, 쿠웨이트, 이집트, 요르단...)들을 분열시키는 일은 전쟁의 엄호 속에서 일상적으로 진행될 것이다.”라는 시오니스트 ‘오데르 이논’의 선언처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 아랍인들에게 이스라엘군에 대한 공포를 심어주기 위해 상시적으로 침공은 자행될 것이다. 인종과 종교라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자유와 정당한 재판 따위는 이미 도달 할 수 없는 사치이며, 가장 기본적인 인권조차 법적으로 부정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철의 정책, 피의 순수성 독트린은 제거되어야 할 것이다. 이 저술은 이처럼 오늘의 이스라엘을 구성하는 세계유일의 비민주적이고 맹신적 애국주의를 기초로 하고 있는 유태민족주의 신성국가에 대한 적나라한 분석서이다. 종교는 항상 그 사악함과 이기적 극단주의를 기초로 한다. 자신의 땅에서 자유롭게 살 수 없는 팔레스타인 아랍인들과 서구제국주의와 재앙적 자본주의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중동지역에 평화가 이 세기에 도래 할지 회의를 불러일으킨다.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요르단 등 중동지역에 대한 왜곡되었던 관점을 바로잡는데 이 저술은 커다란 기여를 한다. 중동지역의 역학관계와 근세사를 이해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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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레스타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면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자살 폭탄 테러를 자행하는 나라" 혹은 미국식으로 "피에 굶주린 테러리스트" 또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역사적 관계를 아는 사람은 그래도 "땅을 잃고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불쌍한 나라" 쯤으로 이야기를 할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게 저지린 만행을 안다면 절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6일'전쟁과 같은 환상은 가지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을 이루는 핵심은 시온이즘이다. 시온이즘으로 무장한 이스라엘 지도층이 꿈꾸는 세상은 그들만의 인종이 남아 나일강 유역에서 유프라테스 강유역까지 지배하는 것이다. 그 외의 인종 즉 팔레스타인은 철저한 인종청소의 대상이다. 솔직히 팔레스타인의 자폭테러에 대해서 처음에는 부정적이었다. 비폭력운동으로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의 도시를 없애기 위해서 몇일간의 폭격으로 가한 후 무장 병력을 이용하여 집집마다 수색을 하며 남자, 여자 ,아이 할 것 없이 무차별 살인을 한 후 불도저를 이용하여 그대로 묻어버렸다는 사실과 팔레스타인 남자의 생식기를 자르고 여자의 내장을 끄집에 내면서 더 이상 인구가 늘어나는 것을 막으려함과 동시에 공포에 질리게 하여 이스라엘 지역에서 팔레스타인을 몰아내려고 했다는 사실 그리고 데이르 야신 학살, 두에이마 학살, 가자 학살, 키비야 학살, 카프르 콰심 학살 등 이루 말할 수 없은 학살이 자행되고 있는 현실, 아이를 죽이이게 위해서 몽둥이로 아이의 머리를 깨는 도저히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 벌리는 이들에게 비폭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오직 무장 투쟁외에는 팔레스타인들에게는 살아남는 길이 없는 것만 같다. 비폭력이라든가 불매운동 등은 현실을 모르는 몽상가의 머리에서나 나올 법한 해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독일에 의해 그렇게 학살을 당한 민족이 어떻게 저렇게 할 수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아이러니한 사실은 소수의 유태인들 즉 시온이스트를 죽이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이스라엘은 유태인의 학살을 저지르는 독일을 도왔다는 것이다. 600만명의 유태인 학살을 인정하고 돕는 댓가로 자신들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에 대한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은 정말 기가막힌다. 시오니스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영국과 프랑스가 유태인 망명을 돕는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반대를 했는데 그 이유는 유태인들이 정착촌으로 오기를 바라는 것도 있지만 열등한 다른 유태인들이 죽어 없어지기를 바랐다는 사실은 더욱 충격적이다. 시온이스트들은 철저한 인종주의로 사상을 무장한 사람들이라 자신의 민족에게 조차도 이것을 강요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최소한 종교와 민족으로 이루어진 나라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이스라엘은 허상이었다. 이스라엘이 식민지 정책과 팔레스타인을 학대하기 위해서 벌이는 고문은 가히 엽기적이라 할 것이다. 일본이 우리나라 독립투사들에게 했던 것보다, 박정희가 민주투사들에게 했던 고문보다 더욱 가혹했다. 단지 행정처분으로 사람을 감금할 수 있으며 감금 중에 벌인 고문으로 받은 자백이 바로 법정에 받아들여지도록 하는 사법구조는 국가인지 사조직인지 구별이 안될 정도이다. 또한 아버지가 딸을 강간하게 하는 것이라든가, 가족이 보는 앞에서 딸의 질에 나무 막대기를 넣는 고문은 저것이 과연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이다. 또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밀월에 대한 것도 알게되었다. 결국 미국의 중동 패권 욕구와 이스라엘의 자국 건설이 가지는 공동의 목표가 엄청난 학살과 만행이 자행되도록 유도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것같기도 했다. 한반도 주변 나라들과 미국의 이해관계로 인해 우리민족이 당하게 될 고통을 예견하게 되는 것같고, 그것을 막을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우울해지기도 했다. 이 책을 보기 전에는 이스라엘을 그렇게 미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가진 잔혹성과 그 야만성을 알아가는 순간 시온이즘이 가지는 그 폭력성에 지독한 협오를 느끼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곳에 태어난 것이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최소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군사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