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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는 물보다, 아니 말보다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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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알다시피 가계도란 핏줄의 계보이다. 그러나 좌우로 위아래로 복잡하게 가지를 치고 뻗어나가는 그 계보의 어느 층을 옆으로 뚝 잘라 떼어내 가만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전혀 피가 섞이지 않은 사람들을 거기서 발견하게 된다. 바로 형제의 아내(들)과 자매의 남편(들)이다. 그들은 그 가계의 핏줄과는 무관한 타인들이다. 부부란 혈연이 아니라 결혼으로 맺어진 사이인데,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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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알다시피 가계도란 핏줄의 계보이다. 그러나 좌우로 위아래로 복잡하게 가지를 치고 뻗어나가는 그 계보의 어느 층을 옆으로 뚝 잘라 떼어내 가만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전혀 피가 섞이지 않은 사람들을 거기서 발견하게 된다. 바로 형제의 아내()과 자매의 남편()이다. 그들은 그 가계의 핏줄과는 무관한 타인들이다. 부부란 혈연이 아니라 결혼으로 맺어진 사이인데, 그래서 이후 이어지는 핏줄의 근원이 되는 사람들인데, 그럼에도 이 둘 사이가 무촌이라는 사실은 참 역설적이다. 촌수가 없다는 것은 촌수를 따질 수 없다는, 즉 피가 조금도 섞이지 않은 타인이라는 의미이니, 비록 가계도에서는 서로 어깨를 맞대고 있는 가장 가까운 사이로 자리잡고 있을지라도 결국 부부란 서로에게 남인 것이다.

 

부부(또는 더 넓게 생각해서 연인 사이인 남녀) 사이에 펼쳐지는 삶의 온갖 드라마도 따지고 보면, 어쩌면 함께 피를 나누지 않았다는 이 기본적인 사실에서 비롯되는 것이 많을 터이다. 부부 또는 연인들에게는 같은 피를 나누었다는 데서 오는 미묘한 혈연적 유대감이나 감정의 완충 지대가 없기에, 서로를 사랑하는 애정의 깊이나 서로를 이해하려고 기울이는 노력의 넓이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지독한 환멸이나 감정적 폭발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김인숙이 『그 여자의 자서전』에서 주목했던 환멸의 대상들이 대체로 그러했는데, 그 소설집의 주인공들은 부부 관계나 연인 관계에서 상처와 상실과 갈등을 경험하면서 깊은 환멸감에 빠져든다.

 

그 깊고 어두운 환멸을 이제는 극복했겠지 기대하면서 나는 『안녕, 엘레나』를 펼쳐 들었다. 그런데 『그 여자의 자서전』 이후 4년 만에 펴낸 이 소설집에서 김인숙이 주목하고 있는 대상은 내 예상이나 기대와는 달리 뜻밖에도 부모와 자식, 그리고 형제 자매로 바뀌어 있었다. 물론 이야기들 속에 부부의 모습이 전혀 안 보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미 오래 전에 이혼했거나 사별했거나 하는 식으로 부부로서의 그들의 관계는 이미 지나간 과거사로서만 존재한다(혹시나 김인숙 작가의 실제 삶에 있어서도 그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검색해보니 과연 그렇다!). 이 작품집에서 작가는 그 공백을 부모-자식 관계, 그리고 형제자매 관계로 새롭게 채우고 있다. 우선 부모-자식 관계를 다룬 이야기들부터 살펴보자.

 

젊어서 원양어선을 탔던 아버지는 아내와 이혼하면서 사춘기에 접어드는 중학생 딸을 떠맡아 홀로 키우고 대학까지 졸업시킨 후 지병으로 세상을 뜬다(「안녕, 엘레나」). 낚시를 좋아하던 아버지를 따라 낚시터에 갔다가 사고를 당한 어머니가 회복하지 못하고 결국 죽음을 맞게 되는데, 그녀의 임종을 앞두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어머니의 비밀-갓난아기 시절의 그를 그녀가 죽이려 했다는 것-을 이야기해준다. 그러나 아들은 그걸 믿지 않고 오히려 어머니의 죽음 이후 급격하게 늙어가는 아버지를 담요로 질식시켜 죽이는데, 그 담요 속에서 그가 보게 되는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자기 얼굴을 닮은 아기 시체이다(「숨-악몽」). 열여섯 살 어린 딸이 덜컥 임신을 해서 낳은 딸을 몰래 키우기 위해 어머니는 집 바깥을 떠돌던 무능한 아버지와 이혼하고 머나먼 땅 브라질로 떠난다. 이후 16년 동안 그녀는 딸이나 남편에게 연락 한 번 하지 않고 그 낯선 땅에서 딸아이가 낳은 딸, 즉 손녀를 자신의 딸로 키우다가 죽는다(「조동옥, 파비안느」). 아내와 딸아이를 미국으로 유학 보낸 기러기 아빠인 그는 여객기 조종사인데, 어느 날 모르는 여인에게서 날아든 엽서 한 장을 받고 호기심에 그녀가 초대하는 미지의 모임에 참석하게 된다. 그는 그 과정에서 오래 잊고 있었던 공군사관학교 시절 한 동기생의 비행기 실종 사고를 떠올리게 되고 그 사고로 인해 사랑하는 이를 잃게 된 그의 약혼녀가 이 모임에 관련되어 있음을 알게 되지만, 결국 자기가 그 모임에 참석하게 된 진짜 이유는 떨어져 살고 있는 딸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음을 깨닫는다(「현기증」). 열두 번째 임신으로 낳은 막내딸은 아비 없이 태어난 유복자인데 잘 자라서 결혼하고 이제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그 막내딸이 교통사고로 스무 살 난 제 딸아이를 잃고 슬픔에 빠져 한 달 넘도록 소식이 없다가 마침내 늙은 노모네 집을 찾아와 죽은 듯이 잠만 잔다. 그런 사정을 자식들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이제 귀신이 다 된 아흔 살 늙은 노모는 이미 알아차리고 깊이 잠든 막내딸을 가여워하며 바라본다(「산너머 남촌에는」).

 

간략하게 뼈대만 간추렸지만 우리는 이 모든 이야기들에 나오는 부부 관계가 사별이나 이혼 또는 긴 별거로 이미 사라졌거나 희미해진 관계이며, 그 공백을 부모-자식의 관계가 채우고 있음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관계의 조합은 아버지와 딸,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 어머니와 아들 등 가능한 조합이 모두 망라되어 있으며, 그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에 있어서도 자식이 부모를 바라보는 상향의 시선과 부모가 자식을 바라보는 하향의 시선을 모두 보여주고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상향의 시선에서는 불운하고 불행한 삶을 살다가 죽은 아버지나 어머니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압도적이고 하향의 시선에서는 고난을 겪고 있는 자식들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압도적이다. 부모-자식 관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증오와 갈등과 좌절과 오해가 마침내 이해와 용서로 이어지는 이러한 연민과 사랑의 감정은 형제자매 사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이란성 쌍둥이로 태어났으나 순하고 착한 오빠와는 달리 욕심 많고 억척스럽게 자라나 이제 남부럽지 않게 잘 살고 있는 여동생이 곤경에 처한 가난한 오빠를 도와주는 마음에는 어렸을 때 오빠에게 못되게 굴었던 것에 대해 뒤늦게 용서를 구하는 마음과 더불어 오빠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자리잡고 있다(「어느 찬란한 오후」). 또한 원양어선을 탔던 아버지가 자랑 삼아 말하곤 했던, 이국 땅에서 이국 여인과 관계해 낳았다는 엘레나의 이야기를 떠올리고는, 그 나라로 여행가는 친구에게 자신의 자매인 엘레나를 찾아달라고 부탁하는 나의 마음이란 그게 아무리 술김에 농담처럼 한 말이라 해도, 거기에는 같은 피를 나눈 혈육에 대한 본능적인 사랑의 마음이 담겨 있다(「안녕, 엘레나」). 그리고 아비 없이 태어난 열살 넘게 터울이 지는 어린 막내여동생을 평생 마치 늙은 아비처럼 보살피고 챙겨준 나이 많은 오라비들의 마음이란 것도 그런 연민과 사랑일 터이다(「산너머 남촌에는」).

 

부부 관계(또는 연인 관계)에서 그들의 사이를 벌려 놓았던 환멸의 감정과는 달리 부모-자식 관계 그리고 형제자매 사이를 물들이고 있는 이러한 연민과 사랑은 해묵은 증오와 오해를 풀어주고, 오래 전 실수나 과오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또 그걸 쉽게 용서해주도록 함으로써 결국은 그들이 서로 물리적으로 또는 심리적으로 이전보다 더 가깝게 다가서도록 만들어준다. 또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까지도 마침내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데, 다른 어떤 관계에서보다 특히 어머니와 딸 사이에서 그러하다.

 

구성, 문장, 주제의 그 어느 면에서도 흠잡을 데가 거의 없는 빼어난 작품인 「조동옥, 파비안느」를 보자. 여주인공의 어머니 조동옥은 남편과 이혼한 후 열여섯 살 난 딸을 버리고 브라질로 떠나서 그곳에서 파비안느라는 새 이름으로 살아가는데, 죽는 날까지 한번도 한국의 딸에게 연락을 해오지 않았으니 얼핏 봐서는 참으로 비정한 어머니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속내는 너무나 다르다. 어머니 파비안느가 죽고 나서 그녀의 열여섯 살 딸이 보내온 편지를 받아보게 되는, 이제 서른 두 살이 된 한국의 딸은 자신이 애써 외면하려 했고 또 간과하려고 했던 진실을 목도하고는 어머니의 마음을 비로소 이해한다. 어머니는 16년 전, 철없이 덜컥 임신한 어린 딸이 낳은 핏덩이, 즉 손녀를 기르기 위해 딸을 버리고 낯선 나라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때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낯선 땅에서 손녀를 자신의 딸인 양 키우면서 어머니는 또 얼마나 딸을 그리워했을까. 외적에게 딸을 빼앗기고 통입골수(痛入骨髓)’의 한을 안고 죽어간 고려시대 수령옹주의 묘비명을 읽으면서, 딸은 뒤늦게 어머니의 그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껴안는다. 그리하여 상처를 파묻듯, 기억을 봉인하듯, 한번도 안아보지 못한 자신의 딸이 이국에서 보내온 편지를 땅에 묻어주는데, 그것은 자신의 죄를 은폐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속죄에 더 가까운 몸짓일 터이다.

 

그날 박물관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편지를 땅에 묻었다. 어느날 흙에 묻힌 참빗을 발견했던, 옛날 살던 동네의 공터는 이제 주택단지가 되었다. 노란 불빛이 따듯하게 번져나오는 그곳의 집들에는 어미가 살 것이고 딸이 살 것이고, 그 딸의 머리에는 오래전 그녀의 머리에서 어머니가 참빗으로 긁어냈던 이 같은 것도 살 것이다. 그리하여 땅에 묻히는 것들은 구태의연한 대로, 얼마나 많을 것인가. 오래전 그녀에게 흙을 파는 버릇이 있었을 때 그녀가 발견한 것들은, 볼펜심이나 담배꽁초나 망치머리 따위였다. 천년이나 이천년이 흘러 세월의 묵은 힘으로 비로소 그 존재의 의미가 생기지 않는다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 그 쓸모없는 것들 옆에 그녀는 편지를 묻는다. 천년이 흐른 뒤, 누군가가 그 편지를 발견한다면, 그녀가 수령옹주의 묘지를 해독하기 위해 글자 한자 한자를 쪼아냈던 것처럼, 그 묵은 글자들을 해독하기 위해 밤을 새울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편지의 여백에 한 문장을 덧붙인다.

나의 아기야.

그러고는 미진하여, 다시 한 문장.

痛入骨髓, 통입골수.

아마 바로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중앙박물관 금석문실에서 본 것이 다시 그녀의 눈앞에 나타났다. 사람들의 줄에 밀리느라 한 걸음 뒤로 물러선 자리에서 바라보았던 것, 그것은 전시실의 유리에 비친 아이를 안은 어미의 모습이었다. 전시실 안의 수없이 많은 사람들 중 아이를 안은 여인이 없으라는 법은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전시실을 두리번거렸다. 정말 아이를 안은 여인이 있었다. 양쪽 팔에 아이를 하나씩 안고, 도도하지도 연약하지도 천박하지도 않게 웃고 있는 그 여인은, 그 씩씩한 팔을 흔들며 사람들을 지나 유리 안으로 걸어들어가고 있었다. 생의 마지막 십육년 동안을 개잡년으로 보냈으나, 누구도 그를 개잡년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바로 그녀의 어머니, 조동옥, 파비안느였다. (117~119, 「조동옥, 파비안느」)

 

딸의 시선이 뒤늦게 잡아낸 이 숭고한 어머니의 모습은 너무나 감동적인 것이어서 비록 그것이 그녀의 기억 속에서 불러낸 환각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거기에 깃든 크나큰 사랑과 서럽도록 아픈 연민의 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이 소설집에서, 같은 피를 나눈 혈육 사이에 흐르는 사랑과 연민을 자신이 낳은 딸과 그 딸이 낳은 딸을 양쪽 팔에 하나씩 안고 있는 저 어머니의 모습보다 더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없다.

 

부모-자식 관계 그리고 형제자매 사이를 물들이고 있는 이러한 연민과 사랑의 감정이란 합리적인 이성(理性)이 아니라 맹목적인 피에 속하는 것이어서 별로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들을 소통시키는 것은 말이 아니라 피다. 아버지는 실수를 했어도 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서 있고(「안녕, 엘레나」), 아들은 과묵한 아버지가 입을 열어 말해준 어머니의 비밀을 믿지 않는다(「숨-악몽」). 사는 게 힘들어서 오늘이 자신의 생일인 줄도 모르는 쌍둥이 오빠에게 생일 턱을 내고 집으로 돌아오던 여동생은 뒤늦게 오빠에게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 전화를 걸지만 그게 너무 낯간지러워 엉뚱한 말을 떠올린다(「어느 찬란한 오후」). 그리고 자식들이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어도 늙은 노모는 막내딸에게 닥친 불행이 무엇인지 직감한다(「산너머 남촌에는」).

 

말이 없이 이루어지는 이러한 소통은 때로는 불안과 증오, 오해와 불신을 야기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이 부모-자식 관계나 형제자매 사이의 파탄으로까지 이어지는 법은 없다. 결국에 가서는 용서하고 이해하게 된다. 그러니 피는 물보다 진한 것이 진실이라면 또한 피는 말보다 강하다는 이 작품집의 전언 역시 진실일 것이다.

 

같은 피를 나눈 부모나 자식 그리고 형제자매는 모두 내 존재의 일부이기에,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란 결국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작가 김인숙의 내성(內省)의 시간은 이 소설집에서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겠다. 『그 여자의 자서전』의 주인공들이 부부 관계 또는 연인 관계에서 발생한 환멸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욕망을 향했던 것과는 달리, 부모-자식 관계 그리고 형제자매 사이로서 피를 공유하고 있는 『안녕, 엘레나』의 주인공들은 자신이 태어난 곳, 즉 존재를 깊숙이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보다 더 깊숙이 들어가 있는데도 그 시선은 더 이상 어둡거나 무겁지 않아서 음울함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깊은 우물이라서 들여다보면 그 속은 어둑하고 선뜩한데도, 그 표면에 마치 햇빛을 가득 담고 있는 것처럼 환하게 아롱거리고 있는 우물물이 우리 눈에 선명하게 와 닿아서 왠지 가슴이 따스해지는 느낌이랄까. 아니 우물물에 일렁이는 그 빛이란 우물 바깥에서 들어온 햇빛이 아니라 깊은 우물 바닥에서 스스로 오랜 내성(內省)의 결과로 빚어낸 성숙한 존재의 빛일 터이다. 그래서 그 우물물을 두레박으로 길어 올려 마시는 동안 나는 내내 가슴에 짜릿하게 스며드는 그 차가우면서 그윽한 맛이 느껴지는 물맛에 도취됐고 그 맑으면서도 깊은 우물물에 아롱거리는 섬세한 윤슬에 눈이 부셨다.

 

이 놀라운 성취는, 손쉬운 지름길에 대한 유혹을 던져버리고 또다시 자신의 내면을 치열하게 성찰한 지난 몇 년간의 작가적 성실함의 결과일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집 『안녕, 엘레나』는 이제 작가로서 원숙한 경지에 이른 김인숙이 스스로에게 건네는 따뜻하고 자랑스런 인사로도 느껴진다. 좋은 작품을 알아보는 독자들이라면 누구나 들을 수 있는 그녀의 이 당당한 인사에 나는 뭐라고 답해야 옳을 것인가. 나는 일개독자일 뿐이어서 그저 장황한, 다만 장황하기만 한 이 독후감을 쓰는 것으로 그 인사를 대신하고 있을 뿐인데, 그래도 이것이 작별 인사가 아니라 새로운 만남을 기약하는 인사이니 그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녀의 다음 작품집을 기대한다.



c*****t 2013.09.19. 신고 공감 4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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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엘레나/김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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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고 겹핍으로 빚어진 아픔과의 만남..작가의 소설은 처음 접한다. 낯설음의 방황처럼 그녀의 깊이에 다가가지 못하는 것처럼 소설속으로 깊게 파고 들지를 못하며 읽어 나갔다. 하지만 한두편의 단편을 읽다보니 '아하..' 하고 그녀를 만나는 것처럼 그녀의 소설에 좀더 깊게 잠수해 들어갈 수 있었다.멋진 표지그림을 보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난간에 홀로 앉아 있는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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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고 겹핍으로 빚어진 아픔과의 만남..


작가의 소설은 처음 접한다. 낯설음의 방황처럼 그녀의 깊이에 다가가지 못하는 것처럼 소설속으로 깊게 파고 들지를 못하며 읽어 나갔다. 하지만 한두편의 단편을 읽다보니 '아하..' 하고 그녀를 만나는 것처럼 그녀의 소설에 좀더 깊게 잠수해 들어갈 수 있었다.멋진 표지그림을 보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난간에 홀로 앉아 있는 여인의 외로움처럼 그녀의 소설속에서 상실과 아픔을 읽어야만 했다. 

안녕,엘레나... 젊은시절 원양어선을 탔던 아버지는 자신이 뱃일을 나간동안 자신이 보낸 돈을 모두 날린 어머니에게 구타를 일삼다 둘은 이혼을 하게 된다.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 소망은 직업도 없이 삶을 살아가던 어느날 해외여행을 간다는 친구에게 마침 그곳에 젊은 시절 아버지가 말씀하시던 이복동생을 찾아 달라고 한다. 동생의 이름은 엘레나. 친구는 사진이 설명도 없이 엘레나라는 이름의 사람이나 동물이 사진을 계속 보내오지만 확실하게 동생이라고 할 만한 사람을 찾지 못한다. 하지만 그 모든 사진들을 아버지의 영정사진 옆에 붙여 놓고 보게 된다. 비로소 아버지를 아빠라 부르며 진실된 아버지와 자신으로 만나는 그녀, 어느날 아버지가 정한 통금인 시간에 오분 늦었다며 나무라던 그 '오분'을 헤아려 보는 소망.

숨-악몽...아버지는 어린시절에 엄마를 만나 뜻하지 않게 쌍둥이 아들을 갖게 되지만 형님을 따라 미국에 이민을 보낸다. 하지만 군대도 다녀오지 않았고 결혼도 안한 그들은 쌍둥이를 형님의 호적에 올린다. 그 후로도 그들은 계속되게 아이들을 낳고 아버지는 늦은 군생활을 하게 되며 군생활 동안 익힌 솜씨로 배전을 하는 직업을 얻게 된다. 그런 어느날 우연한 사고를 당하게 되지만 사고보상금 보다는 근무를 계속 하는 것을 원해 내근직으로 배정받아 근무를 하게 된다. 그런 아버지는 자신이 물고기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낚시에 집착을 하다가 아내와 함께 낚시를 갔다가 축대에서 떨어진 아내는 중상을 입어 급기야 죽고 만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집을 팔려고 내놔도 오랜시간 팔리지 않고 무료한 삶을 사는 아버지를 주인공은 자신의 손으로 아버지의 숨을 끊고 만다. 

어느 찬란한 오후...일년중 가장 아름다운 날에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인 병숙과 승욱, 병숙은 제법 살림도 늘려가고 부유하게 살지만 승욱은 치킨집을 어렵게 꾸려가고 살고 있다, 그들에게는 병희라는 여동생이 있지만 쌍둥이인 병숙과 승욱보다는 승욱과 병희가 더 닮았다. 병희는 대학을 나와 직업은 있으나 결혼을 하지 않고 승욱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들은 보며 병희와 승욱이 쌍둥이이고 자신은 완전한 한 몸으로 태어났더라면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배달을 나갔다가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삶이 더 힘들어진 승욱을 보며 자신의 지난 삶과 그들의 삶을 되집어 보던 그녀는 그날이 자신들의 생일이라는 것을 문득 떠올리고는 승욱에게 '생일 축하해.' 하며 자신에게 말하듯 그에게 전화를 한다. 그 말을 내뱉고 나서야 심하게 통증이 오던 발바닥의 아픔이 가라앉는 것을 느끼는 그녀, 이 작품은 왠지 '운수 좋은 날' 을 연상케 하는 작품이었다.

그외 '조동옥,파비안느.' '그날' '현기증' '산너머 남촌에는' 이라는 작품들도 비슷하게 상실이나 겹필 또는 부재의 아픔이 베어있다.주인공들은 상실이나 결핍된 그 순간에서 더이상 헤어나오려 하지 않는 것처럼 머물러 있다. 벗어나려 노력했다면 아픔은 어떻게 되었을까?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듯한 아픔에서 벗어나 좀더 밝은 햇살속으로 나오려 노력했다면 하는 질문을 하게 만드는 작품들은 결코 쉬운 작품들이 아닌듯 하다. 작품들을 읽으며 몇 번이고 그녀의 사진을 들여다 보고 또 들여다봤다. 그녀의 어디에서 이런 무거운 작품들이 나왔을까. 그녀를 이해하려면 그녀의 다른 작품들을 더 읽어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괜찮은 작품을 만나것 같다.

y******2 2009.12.20.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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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엘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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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실린 작품 7편의 작품들 중 미리 접했던 것이 3편이니 이미 절반은 만난셈. 거기다 단편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편. 그러나 그녀의 이 작품집은 이미 계산하고 쓴 것처럼 하나로 연결되어있는듯한 느낌.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살살 만져주기도 하고 긁어내기도 하는 그녀의 필체가 이유인것도 같고 사람에 대한 무심한 듯한 애정을 가진 작가의 기본적인 성향 때문인가?   어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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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실린 작품 7편의 작품들 중 미리 접했던 것이 3편이니 이미 절반은 만난셈.

거기다 단편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편.

그러나 그녀의 이 작품집은 이미 계산하고 쓴 것처럼 하나로 연결되어있는듯한 느낌.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살살 만져주기도 하고 긁어내기도 하는 그녀의 필체가 이유인것도 같고 사람에 대한 무심한 듯한 애정을 가진 작가의 기본적인 성향 때문인가?

 

어쨋든 처음의 계획은 미리 읽었던 작품을 미리 읽고 새로운 작품을 나중에 읽을 생각이었지만 막상 발표시기를 확인하고나니 먼저 발표된 작품부터 읽어야 하는 혼선..

그러다 그냥 처음부터 읽기 시작(단순함은 세계 최고가 아닐까...)

 

원양어선을 타는 아버지와 그 아버지가 만들어낸 의붓 동생들 찾는 다는 '안녕, 엘레나' 병역기피를 했던 아버지를 둔 아이가 나오는 '숨', 쌍둥이 오빠의 모든 것을 가져가버렸다고 자위했지만 정작 무엇을 가졌는지 공허한 여자가 나오는 '어느 찬란한 오후' 자신을 버리고 브라질로 따나버린 후 죽은 후에야 연락을 하는 엄마를 가진 복없는 여성이 나오는 '조동욱, 파비안느', 기러기아빠가의 헛헛함이 그려진 '현기증' 그리고 열두명의 아이를 낳았고 아 아이들로 인해 치료받고 상처받았던 노인이 등장하는 '산너머 남촌에는'까지...

 

제목만을 보면 산들바람이 불어오고 따스한 햇살이 비추는 듯 싶기도 하고

한없이 쓸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한줄로 정의 아닌 정리를 하고 나니 참으로 안됐다 싶기도 하다.

막 살아도 뭐 그러려니 하고 이해해줘야 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이 나이에 조금 알것 같기도 하다.

힘들다...힘들어 죽겠다...하는 이들은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한번 세게 욕을 뱉어 버리는 것으로 마음에 담아 두었던 그 무거운 무언가를 잠시라도 내려놓을 수 있다는것을...

그래서 싫다...싫다..하는 그 무엇이 정말 치가 떨리고 당장 내다버릴 것도 아니며 죽이고 싶게 미운 그 누군가도 막상 찬찬히 돌아보면 그리 딱히 나쁜 기억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헛웃음이 나오게 된다는걸.

 

어쩌면 서로 너무 사랑하는 가족의 사진은 광고에서 연출된 그 무엇일뿐.

우리의 삶도 그리 달콤하지만은 않지만 그럭저럭 살아내고 울기도 웃기도 하니까.

그리고보면 저자는 세상에 사는 사람을 그리고 그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들을 가장 잘 들여다보고 더 잘들리게 만드는 마법을 아니 성실성을 가진듯 하다.

 

 

s*****0 2009.11.0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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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엘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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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름도 엘레난데, 딸 이름도 엘레나라고 붙였어.그 나라가 그래.제 엄마 이름도 붙이고,제 할머니 이름도 붙이고,그래서 여기저기 엘레나야.뭐 어쩌겠어. 내가 거두지 못할 새끼면 이름도 지 마음대로 인거지. - p24.p25    유일하게 아버지만이 남자였다. 그러나 소에게도 엘레나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는 아버지는 ,그 자신에게도 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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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이름도 엘레난데, 딸 이름도 엘레나라고 붙였어.그 나라가 그래.제 엄마 이름도 붙이고,제 할머니 이름도 붙이고,그래서

여기저기 엘레나야.뭐 어쩌겠어. 내가 거두지 못할 새끼면 이름도 지 마음대로 인거지. - p24.p25

 

 유일하게 아버지만이 남자였다. 그러나 소에게도 엘레나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는 아버지는 ,그 자신에게도 그와 같은 이름

을 붙여주었을지 모를 일이다. 농담을 안다고 생각하는 아버지였으니깐 말이다.

안녕.아빠....... -p32

 

 

  김인숙 작가님의 글은 처음이다. 개인적으로 꼭 읽어야 할 이유가 아니었다면 난 언제 김인숙 작가님의 글을 만날수 있을을까? 기회가 닿았다면 읽었을까? <소현>이라는 책도 읽고 싶은데... <안녕,엘레나>이 책에는 일곱편의 단편이 담겨있다. 예전에는 이런 형식의 단편을 참 좋아했는데 요즘은 질긴 고무줄 처럼 짱짱하게 긴 장편이 더 끌린다.하지만 <안녕,엘레나>를 통해 김인숙 작가님의 단편을 만나게 된걸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또 새로운 우물을 만난 기분 이랄까. 김인숙 작가님의 그 깊은 우물 안에서는 또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퍼서 올릴수 있을까? 그 우물에 두레박이 견뎌낼지.그 노끈이 견뎌낼지는 모르겠다.

 

 

 그녀의 글은 누군가의 깊은 상처를 아무말 없이 조용히 차가운 알코올을 쏟아 상처를 씻어내고 그 위에 하얀 거즈를 올려 상처를 조인다. 누군가의 그 상처가 자의로 그런것이던, 타인이 그랬던 것이든 상관없이 그저 상처를 아물기를,그 상처입은 자의 영혼의 치유를 기다린다.

그녀가 그리는 가정은 무언가가 불안전 하다. <안녕,엘레나>에서는 원양어선을 타던 폭력적인 아버지로 인해, 어머니와 이혼했고 그런 아버지와 소통없이 살아가는 딸.<어느 찬란한 오후>에서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던 쌍둥이 오빠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것만 같은 여동생 사이에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산 그녀.<파일럿>에서는 직업으로 인해 항상 공중에서 보내다가 지상으로 내려왔을때 그의 가족은 저 멀리 있고, 그 공허함을 느끼는 중년의 남성 등. 그녀의 글에는 자신으로 인해 타인으로 인해 불안정한 가족의 이야기를 서슴없이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그녀만에 독특한 인물 해석을 글에서 느낄수가 있는데,이런면에서 현실감과 더불어 그들이 타인과 소통을 얼마나 원하고 있지만 말하지 못하는지 알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곧 그들이 만든 혹은 만들어진 그 갇힌 그 곳에서 빠져 나온다.그들 자신이 느끼면서 헤어나오는 그 글속에서 나는 글을 읽는 내내 불안 하고 답답했던 마음을 녹여주는 동시에 내 자신 또한 그곳에서 나올수 있다는것을 깨닫는다.

 

결국,나도 또 한명의 엘레나 일지도 모른다.

난 엘레나 NO, 몇 일까?

 

 

e**********1 2010.12.3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