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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너희가 사는 세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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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자주 가는 사이트에 이런 질문이 올라왔다. "지금의 청년실업의 문제가 고졸만의 문제인가?". 88만원 세대라고 불리는 지금의 20대들의 심각한 현실과 고민들이 가득 묻어남과 동시에 현실에 대한 한탄과 절망감이 같이 묻어나는 질문이었다. 그 사이트의 이용자들이 주로 10대와 20대들이다 보니 대부분의 답변은 열심히 공부해서 취업하라는 소리 뿐이다. 그 질문을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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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자주 가는 사이트에 이런 질문이 올라왔다. "지금의 청년실업의 문제가 고졸만의 문제인가?". 88만원 세대라고 불리는 지금의 20대들의 심각한 현실과 고민들이 가득 묻어남과 동시에 현실에 대한 한탄과 절망감이 같이 묻어나는 질문이었다. 사이트의 이용자들이 주로 10대와 20대들이다 보니 대부분의 답변은 열심히 공부해서 취업하라는 소리 뿐이다. 질문을 올린 사람이 열심히 해서 지금의 문제에 직면했는지 정확히 수는 없지만, 과연 지금의 20대들이 지금의 기득권층이 되어버린 세대에 비해서 열심히 안하고 있다고 말할 있을까? 지독한 취업경쟁으로 인해서 대학생활의 낭만이라는 말은 추억이 된지 오래고, 스팩 쌓기가 대학생활의 목표가 되어 버린 지금의 20대들에게 말이다. 자신의 대학생활은 생각해보지 않고, 지금의 20대가 게으르고 패기도 없고 나태하다는 식의 막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지금의 기성세대이다.

 

 지금의 기성세대는 지독한 물신주의 속에서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어떻게든 많은 부와 권력을 얻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비도덕적인 방법이라도 상관하지 않으며 어떻게든 그들이 숭배하고 있는 것들을 차지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경쟁이라는 놈을 최고의 덕목으로 생각하게 된다. 경쟁에서 낙오한 사람들에게는 패배자라는 딱지와 함께 제기할 기회조차 없는 가혹한 사회를 만들어 버렸다. 아무리 안철수 교수가 실리콘 벨리는 실패의 요람이고, 우리 사회에서도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 설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외치고 다닌다고 해도 그런 가혹한 사회구조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과도한 탐욕으로 현실을 제대로 바로 있는 이성적 판단이 이미 마비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생명의 가치라는 것은 언제나 돈의 가치로 평가해버린다. 용산사태의 본질은 개발의 광풍에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생존권을 찾으려는 몸부림이다. 용산의 사람들이 치열할 밖에 없었고, 결연할 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그것이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물신주의의 숭배자들은 간단히 그들의 생명에 대한 가치와 정당한 요구를 묵살해 버린다. 때문이라는 마디로. 생각 같아서는 면전에다 대고 당신이라면 때문에 목숨 있겠냐고 묻고 싶으나, 분명 그럴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런 물신주의자들은 자신이 그럴 있으니까 남도 그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 과연 얼마나 자신이 원하는 물질적인 부와 권력을 얻었을까? 통계적으로 본다면 5% 정도는 될까? 이제는 있으나 마나 것이 되어 버린 "종부세"쯤은 있는 정도는 되어야 그들이 추구한 부를 얻었다고 있지 않을까? 그럼 나머지 95% 사람들은 뭐가 될까? 그들은 그렇게 치열하게 물신을 숭배하고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지 못하면서도 여전히 경쟁 속에서 아등바등 거리는 처량한 신세다. 사람들의 특징이라면 자신의 이득보다는 상위 5% 사람들을 위해서 움직이는 좀비들이랄까? 정부의 정책이나 제도에 대해서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을 배제하고 5% 사람들을 위해서 움직인다. 뇌는 없고 단지 본능에 충실한 좀비들. 그들은 자신의 본능이라는 것이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인지 모른다. 그들은 "노동자가 노예냐" 나의 질문에 "노예"라고 당당히 말씀하시는 나의 아버지 같은 그런 사람들이다. 자신이 노동자이면서도 노동의 가치나 의미를 전혀 모르는.

 

 그럼 지금의 기성세대에 비해서 20대나 10대가 달라질까? 별차이는 없어 보인다. 우석훈 교수는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면서 지금의 기성세대와는 다른 20대들을 많이 만나봐서 그런지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라는 책을 썼지만, 나는 쉽게 그런 사람들을 발견할 수가 없다. 전부 패배의식에 쩔어서 어떻게든 좋은 학벌만을 추종하고, 높은 연봉을 향해서 맹목적인 경쟁 중인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현식 인식 또한 기성세대와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글의 처음에 언급한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나는 기성세대의 책임론을 거론했다. Mb 딴나라당 그리고 기성세대를 쓰레기라고 규정하고, 지금의 20대는 사회에 처음으로 진출하기 때문에 사회적 자본을 비롯한 정치적 힘이 없어서 착취당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나는 20대들에게 깨어있음을 강조했고, 연대를 통해서 정치력을 키우라고 주문했다. 기본적으로 많이 공감하는 우석훈 박사와 박노자 교수의 글들의 안에서 제대로 현실을 보라는 뜻에서 과격하게 썼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제대로 이해하면서 공감하는 사람도 있었고, 문체를 문제 삼는 사람도 있었고, 정면으로 반박하는 사람도 있었다. 문체나 어투를 문제 삼는 사람은 전반적인 글의 내용에 동의를 표했다. 물고 늘어지는 내가 귀찮아서 였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런데 반박이라고 하는 수준이 말꼬리 잡기나 하면서 자신도 정치를 꿈꾼다고 말하는 꼬라지는 정말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주주자본주의가 중심이 기업은 기술개발을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이상 발전하지 못한다는 글에 없이 현대의 과학기술의 발전이 과거에 비해서 더했으면 했지 덜하지는 않다는 답변을 보면서, 나는 글의 문맥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의 수준으로 정치를 꿈꾸는 용감함에 그저 박수를 보낼 뿐이다. 그가 박수의 의미를 알아 챌지는 모르겠다.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도 미숙한 존재인데, 나보다 미숙한 존재가 있다고 한들 내가 뭐라고 것인가. 단지 나의 조롱과도 같은 박수의 의미는 화가 나서, 같은 놈을 밟아 버릴 있는 사람이 되라는 뜻이라는 것을.

 

 나는 같은 인간 밟아 벌리고 잘난 있는 10대나 20대들을 좋아한다. 지킬 것이 많은 인간들과 달리 내가 지켜야 것은 없기 때문에. 같은 인간 밟아 버리고 제대로 세상을 비판하고 바꾸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으로 나는 행복하겠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받아온 교육과 부모들이 보여주는 모습으로 인해서 그대로 그들은 부모들의 물신주의를 답습하기 때문이다.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자신과 닮은 자녀를 보면서 깜짝 놀라서 자신을 반성해야 되는데 기성세대와 좀비들은 오히려 좋아한다. 자신들이 이루지 못한 것을 자녀들은 이뤄주기 바라는 욕망을 오히려 자식들에게 투영까지 한다. 그래서 10대나 20대들은 기성세대와 다를 수가 없어 보인다.

 

 그럼 이대로 살아야 할까? 그럼 현실은 각박해지고 절망적이지 않은가? 이제라도 어떻게 변화해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해야 우리가 변할 있을까? 어떻게 하면 기성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물신주의를 뛰어 넘어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거나 만들 있는 생각과 힘이 생길까? 이미 온갖 고정관념과 편견 그리고 이데올로기로 찌들어 있는 기성세대가 변한다는 것은 죽기보다 어려운 일일 것이고, 아직 지식과 정보를 쉽게 습득하고, 기성세대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없는 10대와 20대들을 변화시키는 것이 쉽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깨어나야 하지 않을까? 제대로 현실을 인식하고 무엇인 잘못된 것인지를 바로 인식할 있게 만들어야 한다. 우석훈 박사의 "생태요괴전" 그런 현실을 다양한 요괴들의 은유나 메타포를 활용해서 쉽고 재미있게 펼쳐 보인다.

 

 10대들의 겨냥해서 쓰여진 책이라서 그런지 어려운 이야기들은 전혀 없다. 아니 20 이상도 읽어야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정도다. 오히려 사람이 경제학자인가라는 의문이 정도로 영화에 대한 박식함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현상과 문학작품이나 철학저작물에 대해서 박식함을 뽐내면서 자신이 10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펼쳐 보이는 것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올 뿐이다. 다만 요괴들과 현실을 같은 선상에 놓음으로써 지금의 현실을 너무 우울하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물론 나는 이런 우울한 분위기 좋아한다. 그게 바로 현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지만,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현실과 다른 사실을 접했을 가장 먼저 하는 행위가 부인이나 외면인 것처럼 책이 조금은 외면 받을까 하는 기우에서 그런 생각이 든다.

h*******k 2010.01.09.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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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들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요괴들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용보기
우석훈의 글은 시원시원하다.   어느 누구의 말처럼, 좋아하는 작가가 쓴 글은 비판하기 쉽지 않다고.. 다 맞다 맞다 하게 된다고.. 그래서 이 책을 비판하기 쉽지 않다는 말에 나 또한 공감한다.   '생태경제학' 시리즈 중 첫번재 책으로 중, 고등학생들을 위해 쓰여진 책이다. 중,고생이 읽기에는 조금 어렵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에게 딱 맞는 책이라 판단되어 주변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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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글은 시원시원하다.

 

어느 누구의 말처럼,

좋아하는 작가가 쓴 글은 비판하기 쉽지 않다고..

다 맞다 맞다 하게 된다고..

그래서 이 책을 비판하기 쉽지 않다는 말에 나 또한 공감한다.

 

'생태경제학' 시리즈 중 첫번재 책으로 중, 고등학생들을 위해 쓰여진 책이다.

중,고생이 읽기에는 조금 어렵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에게 딱 맞는 책이라 판단되어 주변 친구들에게 적극 추천했다. 

 

세계의 메이저급 귀신들과 생태요괴들, 억지로 짜집기된 과장한 면이

있긴 하지만, 그의 상상력이란..비유란...혀를 내두르게 한다. ^^

 

생산자 혹은 자본을 상징하는 드라큘라, 흡혈귀에 비유되는 거대기업

노동자 혹은 소비자를 상징하는 좀비

인간중심주의와 생태중심주의가 아닌 기술이 우리를 구원해 줄 것이다 라는

기술중심주의의 프랑켄슈타인 이야기....

이렇게도 비유가 가능하구나~~놀라움이다.

정신없이 읽어 내려간다.

자본주의(시장경제체제)의 흐름을 전체적으로 꿰뚫으며 비유를 통해

연결하는 능력이란..과히 대단하다 함이다.

 

 

돌아온 혼돈의 시대, 요괴들의 세계로 생태는 망가질 대로 망가지고 있다.

지구온난화와 슈퍼태풍, 사막화와 해양사막화 등등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자본주의 혹은 그보다 더한 생산장치가 나타난다 해도 우리들이 원하는 만큼의 소비를 지구라는 생태계가 견뎌내기엔 이미 그 한계를 넘은 상태라는 것을...

 

요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제교육은 상상을 초월하게 한다. 상식과 아름다움, 창조적 사유를 배워야 할 시기에 '돈의 아름다움'에 대해 집중적으로 배운 어린이가 나중에 어른이 되어 개발요괴가 될 가능성이 크다. 문학이나 예술 혹은 인권이나 생태와 같은 '돈 되지 않는 이야기들'에 대해서 나중에라도 관심을 갖게 될 가능성이 그다지 높지 않으며, 학원에서 밤 12시까지 공부하면서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암기기계로 자라날 가능성이 높다.

생태교육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당장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성과를 느끼지

못함에서 철처히 무시되고 있는 생태교육...

정작 필요한 교육의 절실함을 그들은 모른다.

 

-----

 

세계화로 미화된 자본의 치밀함과 강력함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걸까?

자본이라는 힘에 우리의 힘이 철처히 무너지는 걸 경험한 이후,

일어나 대응하기란 쉽지 않다.

 

정신없이 쳇바퀴 돌듯 살아가느라 생각하는 것도 쉽지 않은 요즘 무엇을 할 수 있을까....암담함이 밀려온다.

 

세상 사람들이 서로를 위하여, 서로 나누며, 행복을 주체 못하는 이상적인 세상을 꿈꾸는 것이 그렇게 잘못된 걸까?

왜 자본은 현실은 이를 용납하지 못하는 걸까?

그들만의 리그에 왜 이리 많은 구경꾼을 세우며 불가능한 꿈을 한없이

꾸게 만드는 걸까?

왜 우린 똑똑한 현명한 소비자가 될 수 없는 걸까?

 

행복한 세상을 여는 세상의 열쇠가 교육 이라는 믿음을 저버릴까봐 두렵다.

 

이 혼돈스런 요괴들의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은

교육에, 배움에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말아줘

무기력해지지 말아줘..

나에게 진심으로 부탁한다.

 

 

 

 

 

 

 

 

 

 



YES마니아 : 로얄 m****5 2010.05.2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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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와 좀비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드라큘라와 좀비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내용보기
<생태요괴전>은 우석훈의 '생태 경제학 시리즈' 중 첫 번째 책으로 10대 독자를 주요 타깃으로 한 '쉽게 보는' 생태 경제학 쯤 되겠다. 시리즈 두번째 책 <생태 페다고지>는 10대를 가르치는 선생들을 위한 생태 경제학이니, <생태 페다고지>를 읽기 전에 <생태요괴전>을 읽는 센스를 발휘해주는 것이 좋겠다.   저자가 밝힌대로 <생태요괴전>과 <생태 페다고지>는 쌍둥이
"드라큘라와 좀비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내용보기

<생태요괴전>은 우석훈의 '생태 경제학 시리즈' 중 첫 번째 책으로 10대 독자를 주요 타깃으로 한 '쉽게 보는' 생태 경제학 쯤 되겠다. 시리즈 두번째 책 <생태 페다고지>는 10대를 가르치는 선생들을 위한 생태 경제학이니, <생태 페다고지>를 읽기 전에 <생태요괴전>을 읽는 센스를 발휘해주는 것이 좋겠다.

 

저자가 밝힌대로 <생태요괴전>과 <생태 페다고지>는 쌍둥이 격이니 말이다. 기왕 시작한 거 생활인을 대상으로 한 3권 <디버블링-신빈곤시대의 정치경제학>, 국제적인 지평에서 생태외교와 헤게모니의 관계를 설명한 4권까지 읽는다면 '생태'를 카테고리로 정치, 경제, 교육, 문화, 환경, 국제문제에 이르는 방대한 영역을 훑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아직 4권은 출간되지 않았다.

 

 

개발요괴 전성시대

 

뭐니뭐니해도 이 <생태경제학 시리즈>는 '명랑주의'를 삶의 신조로 삼고 있는 자칭 'C급 경제학자' 우석훈 교수의 재기발랄함이 돋보이는 책이다. <생태요괴전>은 드라큘라, 좀비, 프랑켄슈타인을 비롯한 온갖 요괴와 귀신들을 자본주의 '묻지마 개발'이 불러온 재난에 비유하며 생태경제 복원을 역설한다.

 

맑스는 <공산당 선언> 첫 번째 문장에서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아다니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라고 썼다. 이를 <생태요괴전>의 문법대로 바꾸면 이렇게 될 것이다. "하나의 유령이 세계를 떠돌아다니고 있다. 개발요괴라는 유령이."

 

드라큘라나 좀비같은 요괴들이 주로 밤에 활동하는 반면 개발 요괴는 낮과 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우회적으로 인간의 삶 구석구석에 파고들어 영혼을 잠식한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사회가 만들어 낸 '생태적 교란'은 지구 환경 파괴의 재앙이 되어 인간의 생존을 위협한다. 

 

 

여러분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자본주의 혹은 그보다 더한 생산장치가 나타난다 해도 우리들이 원하는 만큼의 소비를 지구라는 생태계가 견뎌내기엔 이미 그 한계를 넘은 상태라는 점이다. 그리고 제발이지, 높은 빌딩을 보며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이 악마같은 미학과 감성을 벗어나는 것이, 요괴의 세계에서 공존할 수 있는 첫번째 길이라는 점이다. (p132)

 


퇴마의 출발점은

 

피를 빨아야 생존하는 드라큘라 백작을 자본가에 빗댄다면, 과시적 소비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살아있는 시체인 좀비에 비유할 수 있다. 국가가 강력해지거나, 소비자가 현명해진다면 드라큘라를 제압할 수 있겠지만 둘 다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흔히 드라큘라 백작보다 더한 놈들이 권력을 차지하고 국가를 경영하는 경우가 있으니, 국가를 통해 자본을 통제하는 것은 그야말로 큰 귀신으로 작은 귀신 잡겠다는 발상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이 방법이 요원하지 않다면 소비자가 현명해지는 방법은 어떠한가. 강남현상, 부동산 투기, 금융 투기, 명품 품귀 현상 등 합리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과시적 소비 행태(좀비현상)의 만연은 자본주의 경제의 생태적 전환을 근본적으로 가로막는다.

 

둘다 어렵긴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희망은 좀비쪽에 거는 것이 낳겠다. 소비자, 즉 대중의 각성과 변화가 없고서야 자본을 통제하는 것도,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것도 불가능할테니 말이다. 우석훈은 그렇다고 '자발적 가난'을 내세울 생각은 없다면서 '넓게 생각하고 좁게 살기'를 퇴마의 비법으로 제시한다. 큰 아파트, 큰 건물, 대형 승용차만을 탐닉하는 '넓게 살기'에서 마을을 만들고 자연, 사람들과 공존하는 '좁게 살기'로 삶의 방식을 바꾸자는 것이다.

 

<생태요괴전>이 10대를 위한 책이니 만큼 우석훈은 <88만원 세대> 이후의 세대들인 지금의 10대들이 봉착하게 될 '손가락이 오그라들정도로 두려운' 미래를 걱정한다. 한국 사회에서 약자는 너무너무 힘들어지고 경제 전체의 효율성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으며, 그럴수록 생태계를 더 심하게 파괴하면서 어떻게든 '삽질'이라도 하려고 하지만, 이 삽질이 우리를 구원해주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p224)에 봉착한 것이다.

 

그러나 두려움을 떨칠수 있다면 개발요괴들과 그 동맹자들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지금의 10대들은 '생태적 자산'에 대한 이해 관계가 더 직접적이기 때문에 희망이 있다고 본다.(p227) '넓게 생각하고 좁게 살기'의 가치관은 어려서부터의 교육과 훈련을 통해 충분히 체득할 수 있다. 여기서부터가 '퇴마전'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또한 이것이 제2권 <생태 페다고지>를 펼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x******0 2012.03.3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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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들이 판치는 생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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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요괴전.참 신선한 제목이라 시작을 했지만 내용은 참 무겁다. 볼 수록 가슴이 답답하다.일단 내용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논지를 펼쳐가는 프레임은 신선하다.이나라, 이 세상의 반 생태적 행태의 양상을 프랑켄슈타인을 비롯, 좀비, 트라큐라까지 익숙한요괴의 특징과 시대적 배경에 빚대어 이야기를 한 점에서 명랑 우석훈의 파워를 느끼게 한다.서문에서 밝혔듯이, 청소년들에게
"요괴들이 판치는 생태 전쟁" 내용보기

생태 요괴전.

참 신선한 제목이라 시작을 했지만 내용은 참 무겁다. 볼 수록 가슴이 답답하다.
일단 내용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논지를 펼쳐가는 프레임은 신선하다.

이나라, 이 세상의 반 생태적 행태의 양상을 프랑켄슈타인을 비롯, 좀비, 트라큐라까지 익숙한
요괴의 특징과 시대적 배경에 빚대어 이야기를 한 점에서 명랑 우석훈의 파워를 느끼게 한다.

서문에서 밝혔듯이,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알기쉽게 생태 이슈를 전달할지를 참으로 오랜시간
고민을 한 흔적이 보였다.

어쨌든 책에서 언급된 생태요괴 중 단연 으뜸은 개발요괴인데, 개발요괴가 판치고 돌아다니는
맹렬한 질주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장치가 전혀 마련되어있지 않고, 시민단체와 야당도 함께
놀아나고 있는 모습을 개탄하며, 청년 퇴마사가 나타나서 공멸로 치닫는 '개발 요괴의 가일찬
패달질'을 무찔러주기를 종용한다.

소개된 생태경제학이란 부분, 반생태적 무역의 결과가 어디까지 인간을 사지로 몰아갈지에 대한
우려는 최근 평평한 세상을 찬양하는 자들에 대한 반격으로 언급되기 시작한 시각인데, 기업에
몸담고 '돈'에 모든 것을 팔아버린 세상에서 어느 수준까지 회귀할 수 있을 지에 대해 우려와
답답함만이 커진다.

우석훈은 지금의 십대들이 커서 무엇이 되던 간에
"당신들의 친구이자 동료인 십대 중 일부는 자신의 선택으로 농부가 될 것이다. 친구로서 그들의
눈에 피눈물이 나지 않도록 아주 약간만 노력하는 것을 잊지 말아주었으면 한다."며 거창한 바램이
아닌 작은 실천을 부탁한다.

그러면서 "이것이 바로 개발요괴 시대에 행해질 퇴마전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강조하며
"녹색 페인트 통을 들고 설치는 국토 파괴자들과 벌일 퇴마전의 첫장"을 이 작은 약속으로 시작
하자고 권유한다.

s******4 2011.10.0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