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 그것은 내 어릴 적 이야기를 차곡차곡 저장해 둔 압축파일입니다.... 매해 연말이면 반복되는 앙케트 조사... 내가 다녔던 시골의 작은 교회에선 그것이 최고의 성탄절 행사였습니다. 이름, 나이, 좋아하는 책, 색상, 음식, 꽃....내가 좋아하는 꽃은 라일락이고 좋아하는 색상은 보라색, 좋아하는 음식은 자장면, 좋아하는 사람은 아버지, 좋아하는 책 김형석 교수의 돌과 속삭인 인생노으트... 라고 썼습니다. 사실 저는 라일락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내 기억 속에 없었고 다만 장식용일 뿐이었습니다. 이듬해 봄 식목일에 상상 속의 라일락 나무를 한 그루 예배당 한 모퉁이에 심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들러 물을 주었지요 마음의 나무는 무럭무럭 자라 내 작은 키를 훌쩍 넘어 버렸습니다. 내 아픔과 기쁨을 라일락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라일락은 봄이면 아름다운 보라색 꽃을 활짝 드러내 웃어 보였습니다. 라일락은 나무도 아니요, 꽃이 아니라 내 어릴 적 꿈의 창고였습니다.
후일 알았지만 라일락은 꽃의 모양새보다는 향기가 아름다운 꽃이었습니다. 고향을 떠나오던 날 나는 아무도 몰래 라일락 나무를 부둥켜 않았습니다. 내 아픔과 내 슬픔과 내 설렘, 내 어릴 적 모든 것을 간직하고 있는 라일락....내가 다시 올 때까지 넌 죽지말고 잘 커야 해 알았지 약속.... 동화 속의 한 장면처럼 어설픈 약속을 하였습니다. 흐르는 몇 방울의 눈물을 훔치고 있을 때 라일락도 수줍게 많은 낙엽들로 내 얼굴과 내 작은 몸뚱이를 안아주었습니다. 많이 세월이 지난 후 내 마음의 라일락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나... 라일락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곳에 새로운 예배당 부속 건물이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라일락이 사라지자 내 마음의 고향도 사라지고 내 안에 존재하였던 어릴 적 이야기를 담아 두었던 압축 파일도 사라져 버렸지요 "아침고요 산책길" 더러워지는 마음을 깊은 산 속 옹달샘 물로 깨끗하게 씻어 주고 있습니다. 내 마음의 고향을 찾아 여행을 떠나게 해 주고 싶은 책입니다. 어릴 적 태양이 바다에서 떠오른다는 사실을 모른 채 산림이 사방으로 둘러싸인 산골에서 자랐습니다. 하늘을 가릴 만큼의 높은 산을 넘어보는 것이 제 작은 소원이었고 저 산 너머에 대 도시가 있다는 사실에 흥분된 가슴을 가라앉히며 언젠가는 이 산골을 떠나 대도시로 나가겠다는 결심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도심생활을 하면서 내 안에 꿈틀거리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도심생활에 대한 권태기랄까 막연히 그 옛날 시골의 삶을 그리워하는 상사병 같은 거였습니다.
언젠가는 산골에 들어가 살겠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생겨나곤 합니다. 어쩌면 평생 이루지 못할 마음의 에덴동산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 만들어 놓으신 에덴동산을 상실해 가고 있기에,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이 분명함을 깨닫습니다. "아침고요 산책길"은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에덴을 깨워 주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에덴에 흘렀던 비손, 기혼, 힛데겔, 유브라데.... 메말라 버린 내 영혼이 갈급해 하지는 않았던가? 묵상케 하는 책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에덴에 흘렀던 강들은 지금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강들은 다시 한줄기의 강으로 내 안에서 흐르고 있습니다. 바로 성령의 임재 하심입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7:37-39)
마이클 야코넬리는 그의 책 ''''''''뒤엉킨 영성''''''''에서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영적 성장은 더 많은 모임과 더 많은 성경공부와 더 많은 기도회에 참석하면서 더 빨리 달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활동하는 속도를 늦출 때 영적 성장이 이루어진다. 달리면서 예수님을 만날 수는 없다. 믿음의 길을 계속 가려면 브레이크를 밟고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멈추어야 한다. 기독교는 우리와 함께 속도를 높이기 위해 예수님을 초청하는 것이 아니라 휴식처에 앉아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다" 참으로 옳은 말입니다. 바쁘지 않음이 불안한 현대를 살아가면서 바쁨이 곧 성장이요 발전이라고 생각하였기에 정작 내 안에 있는 강줄기의 메마름도 까맣게 있어버리는 시간을 살고 있었나 봅니다. 요한계시록 말씀에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계2:5) 고 권면 하고 있음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아 왔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라" (히2:1)
내 작은 영혼은 흘러 흘러 어디까지 떠내려 옴도 기억치 못하면서 바쁨을 사랑하고 바쁨의 철학에 속고 있는 내 모습이 한심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아침고요의 산책길.... 그것은 나로 하여금 새로움의 회개를 하게 하였습니다. 새로움의 회개는 바쁨에 관함이요 내 안에 말라 버린 강줄기에 관함 이었습니다. 강물이 말랐으니 당연 내 안에 아름다움의 라일락도 시들어 죽어 버렸던 것입니다. 내 마음은 하나님의 물댄 동산임에도 나는 그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온갖 바쁨의 쓰레기들로 내 안의 정원은 타락해 갔던 것입니다. 아 내 안에 잠들어 버린 라일락이여..... 시들어 죽기까지 하였지만 난 성공의 무지개를 좇아 내 육체를 병들에 하였도다. 아 내 안에 말라 버린 강줄기들이여. 이제 물을 흘려야 할지니 그 물줄기는 주의 보내신 성령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바쁨의 삶에선 그 어떤 영적인 것도 찾을 수 없음을 깨달았도다. 아 내 안에 잠들어 버린 라일락이여 이제 향기를 말할지어다....아 내 안에 말라버린 강줄기여 이제 생수의 물을 흘릴지라... 라일락, 그것은 외모의 모양이 자랑스러움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적 향기의 아름다운 꽃입니다.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 라일락 향기 그것은 그리스도의 향기였습니다.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 강줄기는 성령의 내주 하심이었습니다.
[인상깊은구절] 나무는 하늘로 하늘로 가고 싶다. 끝없는 자유를 향해
나무는 하늘로 하늘로 가고 싶다.
냇물은 바다로 바다로 가고 싶다. 끝없는 자유를 향해
냇물은 바다로 바다로 가고 싶다.
멈출 수 없는 갈망 안으로 안으로 간직한 채 바위는 꼼짝 않고 그 자리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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