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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박 여행을 떠나기 전 가벼운 책을 골랐다. 여행지에서 읽는 책이 얼마나 행복한지 잘 알기에 짐이 늘어나도 책 한권의 욕심은 내려놓기 쉽지 않다. 그래서 이번엔 몸도 마음도 가볍게 시집을 잡았다. 허은실 작가님의 언어에 대한 센스는 이미 익히 알고 있기에 망설임 없이 구매한 시집이었다. 맑고 청명하던 파란 가을 하늘 아래서 하룻밤 묵었던 게스트 하우스의 테라스에서 아들이 뛰어노는 풍경에 이제 이 분홍빛 시집이 녹아내려 있다. 싯구들이 너무나 좋아서 한참을 같은 페이지를 쓰다듬었던 기억도 함께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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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 서럽기를. 허은실 시인은 사는 일에, 또 살아온 일에 대해 하고픈 말이 꽤 많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때그때 다하지 못하고 애써 꾹꾹 눌러 참아왔던 모양이다. 그래서 아쉽고 속상하고 시렸지만 돌이켜보면 또 참아내길 잘했다고 틈틈 자위하는 모양이다. 덕분에 항아리 속 엄지손톱만큼의 곰팡이도 피지 않고 힘 있게 잘도 묵어가는 장처럼 시인의 시들은 특유의 깊은 맛을 가진 듯하다. 말을 하는 것보다 말을 참았을 때 더하고 더할 사람들의 귀 기울임, 그 휘어지는 몸의 힘을 믿었던 이유가 아니려나. 사람으로 인해 힘들었으나 그럼에도 사람만이 사람을 구원할 것이라는 정공법을 믿는 선한 의지의 소유자가 시인인 까닭이 아니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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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시집에 대해 전혀 모른다. 그래서 구입했다. 무모하다라고 말할지언정 내가 틀렸다고는 못하겠다. 난 이런적이 많다. 시골내려가는 영등포 기차역에서 우연히 샀던 책이 내마음에 영원히 기억되던 일도 있었으니 나에게 책이란 그냥 얻어걸리던지 추천받았던지 그 당시에 나에게 울림을 줬다면 세상 그 어느 책보다 소중했다. 이 시집은 제목이 압권이다. 굳이 읽어봐야하나 생각이 들 정도다. 참으로 기막힌 작명이다. 최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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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제 사전투표를 했다. 선거 자료를 한 달 넘게 지켜봤는데 그렇다고 해서 선택이 쉬운 건 아니다. 함량미달의 것들을 선택하고 그다음에 나아가길 또 바라고. 그러려면 나도 정치의 주체로 좀 더 열심히 발언하며 살아야 하고 말이다. 이제 더이상 나를 빛낼 어둠들을 찾아서는 안 되겠구나, 그러면 이 사회가 희망이 없을 것 같아서 말이다. 그저 밝은 쪽으로 한 발 더 나아감. 그 의미를 곱씹는다. 광장을 제라늄 화분 가득한 공원으로 바꾸는 일, 그 일을 경계하면서. 그리고 끝내 그 광장이 공원이 되는 날을 기다리면서 . -제7회 전국지방동시선거
광장이 공원으로 바뀌어도
흩어지면 죽는다 흔들려도 우린 죽는다 흘러간 노래가 공원의 나무들을 흔들어도 농부의 아들 계산원의 딸들 각자의 저녁에 골몰하여 흩어진다 광장이 공원으로 바뀌어도 구호 소리 높아도 공원이 아직 광장이 일때 광장은 염천보다 뜨거웠다. 나는 그 광장이 공원으로 바뀌어
-허은실, 시집<나는 잠깐 설웁다>, 문학동네(2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