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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회사 근처 허름한 라면집으로 때늦은 요기를 하러 갔는데, 인도사람으로 보이는 2명이 라면에 밥을 척척 말아서 신 김치까지 얹어서 맛있게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겨우 6명 앉을 수 있는 허름한 식당을 찾아온 것하며, 라면국물을 후루룩 마시는 것 등이 범상치 않았는데, 계산할 무렵, 인도 억양이 강한 한국말로 "치즈라면 두개하고 계란 한개 계산해주세요. 형! 형이면 동생 먹은 것도 계산해줘" 외양만 아니면 딱 한국인의 정서였습니다.
직장인 10년차로서 제가 요즘 준비하고 있는 건, 몇년 외국에 나가서 근무하는 것이었는데, 그걸 바랬던 것은 그 나라 문화와 사람에 대한 관심보다는, 한국을 떠난다는 홀가분함, 나와 다른 사람들이 사는 외국에서의 고즈넉한 생활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이방인으로서, 사회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는데, 이 책 '더 발칙한 한국학'을 보면서 많이 부끄러워졌습니다. 피를 나눈 나라는 아니지만, '외국인'이 아닌 '엑스팻'으로서, 한국에 대한 관심과 때론 애교섞인 질책을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서 인간에 대한 애정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1장부터 3장까지 나오는 에피소드들은, 다양한 상황에서 엑스팻들이 느꼈던 감상과 아쉬움을 나타내주고 있고, 4장은 스콧 버거슨의 약간은 무거운 에세이가 전개되고 있는데, 한장한장 넘길수록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외국인으로서 다른 나라의 사람들과 문화에 대해 개인적인 감상과 평을 하는 건, 그 속에 뭉쳐사는 그 나라 사람들보다는 쉬울 수도 있지만, 그런 생각을 여러권의 책으로 엮는다는 건, 또 그 결과물이 고개를 끄덕여 지게 되는건, 그 관찰이 외부인으로서 객관성을 담보한 동시에, 그 문화에 대해 충분히 주관적인 열정이 있어야 하기에 더 의미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한국사회에서도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사건에 대해 딱 반걸음 뒤에서 보고 느꼈던 생각들이 어쩌면 모든 담론을 포함하지 못할 수 있지만, 한쪽으로 편향되어서 내편, 네편 나뉘어 아웅다툼을 했던 우리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는 결과물이라고 생각됩니다.
한국학이라고 하기보다는 버거슨의 한국사랑이라는 제목이 더 어울리는 이 책. 앞으로 더 발칙해지고 싶다면 마음껏 그래도 된다는 말해주고 싶고, 저도 어느 나라에 가던지, 사람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따뜻한 엑스팻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금 사는 이곳에 대해 시야를 넓혀볼 수 있는 계기가 된 이 책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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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발칙한 한국학 / J. 스콧 버거슨 외 / 은행나무]
세계화 덕분에 국내에서도 외국인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게 되었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구성이 예전에는 미국, 캐나다, 유럽 등의 백인 위주였다면 최근에는 동남아, 중국, 일본 등 인근 지역의 외국인도 많다. 그들은 단순히 관광이나 업무 차 잠시 다녀가는 '순수외국인'과 소위 '엑스팻'으로 불리우는 외국인으로 구분할 수 있다. 엑스팻은 국내에 거주하며 일이든 여행이든 자유롭게 자신의 일을 하면서 사는 외국인들인데, '외국인'이 우리와 그들 사이에 벽을 만든 것이라면, '엑스팻'은 우리와 그들 사이에 다리를 만든 것과 같다. 그들은 어떤 형식으로든 한국 문화의 영향을 주고 받으며 자신의 삶을 만들어간다.
엑스팻, 그들은 왜 이곳까지 와서 한국인과 어울려 살고 있는가. 그들은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또 그들이 생각하는 한국의 문제점은 무엇이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저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친구들(그들 모두 엑스팻)의 글과 인터뷰를 인용하며 그 답을 구하고 우리에게 전해준다. 한 울타리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의 단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문제점을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외부인의 시선으로 내부를 들여다 봐야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한국사람들과는 다른 시각으로 한국의 문화와 현재 한국이 당면한 문제점들을 들여다보고 그들만의 시각으로 분석한다
또 이 책에는 한국에서 이방인(외국인)이 살아가기의 어려움이 잘 묘사되어 있다. 이방인이 원주민과 동화하며 살아가기가 어렵고, 어설프고 서럽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이방인에 대한 낯설음과 편견 때문이다. 우리도 그렇고 그들도 그렇고, 대한민국 국민의 외국인 편견을 인정한다. 외국인과 관련된 몇몇 사건으로(폭행, 마약, 문란한 성 등) 우리는 외국인에게 혐오감을 느끼며(제노포피아-외국인 혐오), 모든 책임이 그들에게 있다고 몰아 부치기도 한다(외국인 희생양 만들기)
그들은 이러한 편견이 부당하다고 느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머물고, 한국을 자신의 평생 고향으로 여기고, 자신의 삶을 투자하려 한다. 그것은 한국이 외국인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고(국가의 성숙), 한국이 현대 사회로 성공을 거두었다는 얘기다. 그들은 한국이 그만큼 매력 있는 나라라고 얘기한다.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노력하며 적응하는 그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낯설음과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서 주변과 조화를 이루고 소통을 해야하는데, 한국은 그런 능력이 부족하다. 계층과 계급, 세대와 지역의 소통은 단절되고, 모든 것이 발전과 경쟁 구도 안에서 조화를 무시한 채 막무가내로 달려가고, 줄서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문제들이 점점 나아질 거라고 긍정한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그들도 한국문화에 기여를 하고 문제 해결에 보탬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그들은 아무런 이해관계 없는 입장에서 볼 수 있고 문제를 객관적으로 '정의'할 수 있다. 한쪽에서만 바라보면 왜곡이 일어나게 된다. 이 책은 그런 시각의 균형 을 지니라고 우리에게 얘기를 한다.
이 책의 첫부분에서, 그들은 한국인의 이해 못할 습성들을 장황하게 꼬집는다. 그 장황함 속에 눈살 찌푸려지는 그들이 추악한 모습도 있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이 책의 점수를 낮게 매겼다. 그러나 추악한 외국인은 한국에 와서 생활하는 외국인 중 일부라는 생각과 뒷부분으로 갈수록 그들의 진지한 한국살이를 보면서 점수를 더 주게 되었다. 그들은 한국인이 아니지만 한국의 일부분으로 살고 있다
한번도 내가 한국인이라고 느껴본 적은 없지만 나는 진심으로 한국의 일부분이라고 느낀다. - 케빈 브라운(호주)
한국에 거주하는 수많은 외국인들. 그들이 바라본 우리들의 모습이 비록 창피한 모습일 지라도, 우리는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고, 겸손해야 한다. 그것은 곧 우리가 미쳐 깨닫지 못했던 우리들이 현재를 살아가는 모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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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적인 표제를 달고 2007년 봄에 출간된 스콧 버거슨의 전작 ‘대한민국 사용후기’는 애국심이라는 미명하에 도발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 이 땅의 젊은이들로 하여금 저자 자신이 간만에 얻어낸 안정된 직장에서 내쫓김을 당하게 만들었다. 모종의 역설과 아이러니로 충만한 그의 전작을 한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충정의 젊은이들이 오독하여 저자에게 테러를 감행했다는 소식을 들은 나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 어쩌다가 이 부덕하고 저질스러운 수준으로까지 떨어졌을까 슬펐지만, 사실 그들의 행동이 그들 자신만의 탓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그들을 그 이상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한 스콧 버거슨이 새 책으로 우리에게 다시 나타났다. 몇 달 전부터 그의 신작을 기대 속에 기다려온 나는 그 형태와 내용에 많은 궁금증을 가졌다. 며칠 전 전해진 그의 신작 ‘더 발칙한 한국학’을 펼치자마자 나는 그 책의 구성과 모양새에서 버거슨이 일종의 화해의 제스처로 이 책을 준비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저자는 변함없는 그윽한 시선과 따뜻한 가슴(그러나 더 이상 ‘뜨거운’ 가슴이 아님은 이 책이 이별의 선물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으로 ‘한국 땅 위에서 펼쳐진 이방인들의 변주곡’을 엮어내었고, 그중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우리 시대 꿈의 몰락에 대한 분석과 사유의 글인 ‘종로의 이방인’으로 장식했다. 지난해 봄과 여름, 전 국민을 큰 혼란 속에 빠뜨린 정치적인 퇴행과 우리 시대 꿈의 변질과 몰락을 주변인으로서 관망만 한 나는 버거슨의 글을 통해, 내가 느낀 혼란의 원인이 무엇인지, 내가 신문기사와 방송과 인터넷 보도 사이에서 주관 없이 흔들린 이유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저자가 전작에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아주 근사한 일이라고들 하지만, 10년 동안 한국에 살면서 알게 된 것은 증오가 더욱 충실하고 변함없는 애인이라는 사실이다”이라고 말한 것을 상기해보자. 사실 증오란 사랑의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사랑한 적이 없는 대상을 오랜 시간 증오한다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것이고 사랑했던 것을 증오한다는 것은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지 않기 위한 논리와 해석을 미처 마련하지 못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차선책이라는 것을 우리는 염두에 두고 그의 글 행간 하나하나를 읽어나가야 할 것이다.
4개의 장으로 구성된 ‘더 발칙한 한국학’은 버거슨의 다양한 국적의 엑스팻(국외자) 친구들이 한국을 배경으로 벌이는 각양각색의 모험과 구애(求愛)의 기록인 ‘1장 : 엑스팻들이 들려주는 각양각색의 단막극’에서 축제의 흥을 돋는다. 이 땅의 언어와 문화에 낯선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질투심 강하고 소유욕도 센” 한국 여자들에게 겪은 고충 아닌 고충을, 극도로 자유로운 외국 여자로서 “틀에 박힌 생각을 거부할 줄 알고 지적인데다 재미있고 [...] 함께 세계를 보고 싶어하는” 한국 남자를 끝내 만나지 못해 한국을 방문한 티베트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됐다는 미국인 엑스팻의 넉살 좋은 연애담을 우리는 모두 남의 얘기가 아닌 우리의 얘기로 듣는다.
스무살의 나이가 되기도 전에 자기의 인생 목표를 특정 전문직으로 한정해버리고, 대학 3학년생이 결혼 상대를 정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교제와 모임에서 발길을 돌린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꿈이 없는 이야기를 동정 어린 눈으로 바라다보는 것도 이방인들이다. 버거슨과의 장문의 인터뷰 형식으로 짜여진 ‘2장 : 파란만장 엑스팻들과의 솔직한 인생 담화’에서 미국인 유제인은 한국의 대학 신입생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기에서 어떤 공부를 하고 싶습니까?” 하고 묻자 학생들은 아주 세부적으로 답변을 했다. 그리고 졸업 후에는 어떤 공부를 할 거라고 이야기했다. 심지어 어디서 일하고 싶은지도. 이미 모든 게 계획되어 있었다. 그 어린 나이에! 그들은 “자, 이제 스무 살이니까 바깥세상이 어떤지 봐야겠어. 이곳에서 내 존재는 어떤 의미인지도 알아보고”라고 하지 않는다. 대신 “이게 내가 해야 하는 일이야. 이것이 내 직업이고 내가 얻어야 할 것들이야”라고 하지. 맙소사. 나는 그 아이들이 너무나 안쓰러웠다. ‘더 발칙한 한국학’ 3장은 요하네스 쇤에어, 브렌든 브라운, 존 던바, 켈리 맥클러스키의 장문의 기고로 구성되어 있다. ‘엑스팻들이 한국에 남긴 독특한 발자취’라는 부제를 단 3장은 1장과 2장에 비해 재미는 덜하지만 엑스팻들의 열정만큼은 오히려 더 뜨겁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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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고르다 보면 그 책의 내용과 상관없는 겉표지 마케팅 용어에 가끔 오도되는 경우가 있다. 실제 내용보다 훨씬 부풀려지고 포장된 내용에 속을 때가 있는 것이다.그러나, 이 책은 제 4장에서 ‘발칙함’을 유감없이 드러낸다.1,2,3장에서 숨겨왔던 발칙함이 4장에서 만개하는 것이다. 전편의 발칙한 한국학을 읽어보지 않은 나로서는 그것이 ‘더’ 발칙한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4장의 얘기는 일단 나중으로 미뤄두고 유쾌한 느낌의 1장부터 3장까지 들춰보자.여기에 등장하는 엑스팻(expats)들의 면면에서 느껴지는 가장 큰 느낌은 길게 부언할 필요도 없이 간단하게 '부럽다'이다. 한국의 치열한 경쟁 틈바구니에서 난 언제나 내 인생에 대해서 자유롭고 진지하게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그 고민의 시간도 지속적이지 못했고 깊이 또한 갖추어지지 못했다. 언제나 난 바쁜사람이었고 다음 단계를 나아가지 못해 안달난 사람처럼 굴었다. 난 그들이 한국에 얼만큼의 애정이 있느냐란 문제엔 애초에 관심이 없다. 오히려 타인의 입장에서 한국의 모자란 면은 더 잘 보이게 마련 아닌가. 나도 길거리에 나가면 이해할 수 없는 같은 한국인의 모습에 화를 낼 때가 많은데 말이다. 그러나, 그들의 자유로운 삶은 닮고 싶었다. 그런 자유로운 이들에게 한국의 모습이 칭찬 일색이라면 과연 우리가 그것을 믿겠는가? 스스로의 모습에 자신이 없어하면서도 누가 그것을 지적하면 발끈하는 것이 우리네 습성이다. 한국학을 연구하는 학자도 별로 없다는 자조섞인 얘기도 곱씹게 된다. 이제 발칙함의 정수 4장을 살펴보자. 난 먼저 이런 민감함 부분에 가감없이 자기의 생각을 써내려간 스콧 버거슨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그 내용 상의 논란 여지는 차치하고 말이다. 지난해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웠던 촛불 시위는 저자에게도 많은 생각을 주었던것 같다. 그는 오래전부터 종로에 거주한 종로구민이었다.그래서, 그는 동네 주민으로서도 당연히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시위 과정에 발생한 반민주적인 행태들에 대해서도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게 된가 보다. 하지만, 시위 과정에 발생한 몇 건의 불미스런 일들이 그 시위의 본질을 규정하는 우를 범해선 안될 것이다.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개인적 경험이고 그 경험을 확대해서 일반화하는 것은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시위가 과격함으로 번지고 정치구호화 하는 일련의 과정들에서 민주주의의 기본을 뭉개는 듯한 행태의 비판은 겸허하게 받아들이자. 한국은 아직은 민주주의가 성숙한 나라도 아닐 뿐더러 국민의 세세한 소리가 반영될 수 있는 통로 또한 미비한 나라긴 하지만 진정한 민주주의는 깨어있는 개개인에게서 나온다. 80년대의 방식을 답습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각성없는 에너지 분출은 파시즘의 또 다른 형태 그 이상도 아니다. 그의 말마따나 무자비한 경쟁과 충동적인 소비가 추동하는 한국… 그의 비판의 칼날에 본능적인 거부반응을 보이면서도 한층 더 발칙함을 요구하는 것은 한국 주류(主流)문화의 변질에 대한 외부인의 훈수마저도 절실 하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 의식’으로 엑스팻과 한국민을 선긋기하는 이분논리도 엷어져 갈 것이다. 저자도 담배를 최근에 끊었다고 한다. 나도 <담배끊은 검피>를 블로그 제목으로 올렸다. 좀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담배를 끊은 동기도 같은 것 같다. 그렇다면, 그에게 하나 요구해보자. "한국사회에 더 발칙하게 끼얹어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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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J.스콧 버거슨, 혹은 한국이름으로 왕백수라고 한단다.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그가 이 책이 나오기 한참 전에 썻다는 [발칙한 한국학]이나 [대한민국 사용후기]는 들어본 기억이 있다. 그는 자신들을 엑스팻 이라고 불러달라고 말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외국인 이라는 말은 우리와 그들 사이의 불필요한 구별을 만드는 어휘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일이나 모험을 위해 다른곳으로 이주해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는 사람으로써 대해 달라고 한다. 자신들은 한국에 와서 이땅의 이상하고 독특한 매력에 사로잡혀 떠나지 못하고, 혹은 떠났다가도 다시 돌아오지만 결코 이곳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사람들이기 때문 이라고 한다. 그는 들어가는 글에서 또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한국 TV 프로그램중 외국인을 끌어들인 것이 2개 있다고 한다.‘미녀들의 수다’와‘신비한 TV 서프라이즈’가 그것이다. 그런데 그 프로들은 성적대상으로서 가장 매력적인 젊은 외국인 여성이나, 얼빠진 광대처럼 구는 외국인 남자들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그는 이것이 한국이 할 수 있는 최선인가? 한국이 세계를 반기는 방법인가? 하고 묻고 있다. 단순히 물 건너온 아름다운 몸만 부각시키는 것 보다 아름다운 마음과 사랑스런 사람들을 다루는게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 한단다. 처음에 한국에 온 외국인은 대부분 원어민 영어강사를 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인들에게 있어 원어민 강사들은 새로운 미군으로 취급 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국익을 위해 어쩔수 없이 용납하는 필요악으로서 미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그저그런 미군 말이다. 들어가는 글을 읽는 동안 나보다 한국을 더 잘 알고, 더 사랑한다는 이 이방인들에 대한 호기심이 책을 계속해서 읽게 만들었다. 저자는 이 책이‘나’와‘너’로 사는 것이 아닌‘함께’사는 세상을 향한 다리의 역할을 하면서 한국인에게 다시 한번 따뜻한 손을 내밀고 있다고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어느 순간 불편해진 심기를 감출 수가 없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문화충격이랄까, 저자가 책을 쓴 목적이 무엇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아마, 나 또한 이 땅의 기성세대로서 고정관념에 얽매여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불편해진 심기는 어느 순간, 나의 옹졸함을 비웃으며 그들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우리네들을 탓하다가 결국 책 읽기를 마친 순간은 다시 불편한 심기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들 엑스팻들이 들려주는 각양각색의 단막극을 읽으면서, 이 나라 공교육의 무너진 현장 속에서 소위 원어민 강사라는 사교육의 한 축을 담당했던 그네들의 일상과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물론 이 땅에 살고 있는, 이 땅을 나보다 더 사랑한다는 모든 외국인, 아니 엑스팻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그들의 단막극을 읽으면서, 그들이 원어민 강사자리에 목을 메는 – 아마, 달리 할것이 없었으리라는 생각이 안드는 것은 아니지만 - 의도를 의심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결코 유쾌하지 않은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수가 없었다. 그들이, 너무나 배타적인, 이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그럴 수 밖에 없었으리라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일탈적인 그들이 결코 다수가 아니라는 생각이 안드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을 읽고서 저자가 얘기했던 내민 손을 선뜻 받아 들이고 싶은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나마 이 땅에 독특한 발자취를 남긴 엑스팻 들에 대한 글이나, 그들의 인생담화가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그들의 생활과 문화가 우리와 접목되어 비로소 서로 손을 잡았다는 것을 생각케 해준 것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살사문화를 처음 이 땅에 들여와 라틴 아메리카 문화와 교류가 가능케 해준 것이나, 잘 모르지만 펑크음악이 성행할수 있었던 것은 이들의 공이라고 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저자가 겪은 북한여행, 북한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로웠으며, 이 땅에서 북한아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그들의 모습엔 진심으로 고개가 숙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책 말미에 있는 저자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또 다시 불편해진 마음을 감출수가 없다. 나보다 한국을 더 잘 안다고 하니까 딱히 할말은 없지만서도, 두가지 생각이 마음을 헤집고 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한국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 같기도 하고, - 더군다나 그것이 현대사라면 우리들도 각자의 주관에 따라 논쟁할 수밖에 없는 문제인데 - 혹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진실을 얘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그 어떤 것 이라고 해도 책을 읽는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내가 국수주의자라서 일까? 아니면 편협해서 일까? 책을 읽고 느끼는 것은 읽는 사람마다 다를수 밖에 없다. 저자는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지만 독자는 그 글을 읽고 공감하기도 하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나에게 불편한 책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불편하다는 것은 아니다. 각기 읽고서 판단하는 것은 읽는 사람의 몫이기 때문이다. 나를 불편하게 한 책이지만 한번쯤 읽어 볼만한 책 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 땅에서 태어나 계속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너무나 익숙해서 잘 모르지만, 낯선 곳에서 온 사람들은 우리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무엇인가 불편하고, 이상한 것을 느낄 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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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썼다 지웠다 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언지 제대로 정리도 되지 않는다. 오늘은 일주일 정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상태에서 포항까지 결혼식을 다녀왔다. 피곤이 극에 달해 있어 몸은 휴식을 재촉하지만, 잠이 오질 않는다. 그래서 이렇게 책을 읽은 감상이나 몇 자 적어보려 하는 것인데 정신이 계속 산만하다.
이야기하고 싶었던 책은 J. 스콧 버거슨이 쓴 <더 발칙한 한국학>(은행나무)이다. 일전에 독서 카페의 한 회원이 쓴 <대한민국 사용후기>의 서평을 읽고 ‘외국인의 시선에서 평가한 한국인의 모습’이 진정 우리들의 모습은 아닐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자신의 모습은 스스로 평가하기가 어렵다고 하지 않는가.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는 한국, 한국인을 위해 장문의 사용후기를 남긴 저자의 용기와 냉정한 평가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들고 나온 것이다.
그는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의 정의부터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가 생각하는 적절한 용어는 ‘엑스팻’이다. 네이버에는 ‘국외로 추방당한 사람’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소개되는데, 그 말뜻은 절대로 믿지 말아달라고 이야기한다. 엑스팻의 뜻은 ‘일이나 모험을 위해 다른 곳으로 이주해 자유롭게 삶을 영위하는 사람’을 뜻하기 때문이다. 예전 같으면(1980년대까지만 해도) 느낌이 잘 통하지 않았을 단어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뀐 지금 딱 어울리는 말이란 생각이 든다. 세계화의 거센 파고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땅에서 각기 다른 목적을 갖고 살아가는 외국인이 참 많아졌다.
그렇다면 엑스팻들은 이 책에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책을 읽고 가장 놀란 점은 상상 이상으로 한국에서 많은 고민과 활동 들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직업군으로 보자면 영어 강사 자격으로 온 이들의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그들은 ‘자유롭게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라는 엑스팻의 뜻에서 추측할 수 있듯 일 이외에 많은 부분에서 한국의 사회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일종의 호기심일 수도 있고, 자신의 취미와 연관된 부분일 수도 있으며, 자유로운 여행일 수도 있다. 그들은 짧은 시간 한국에 거주했지만, 누구보다 한국을 알기 위해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한국을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생각들을 솔직 담백하게 풀어놓고 있다. 한국에서 겪었던 자신의 이야기 혹은 다른 외국인들이 경험한 바를 다양하게 소개한다. 엑스팻들의 내면을 스콧 버거슨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꼬치꼬치 캐묻기도 한다. ‘자유롭게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란 엑스팻의 의미처럼 그들의 삶은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그리고 의외로 사회 정치적인 문제들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이들도 종종 있었다. 웬만한 한국인들보다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그 모습을 보며 여전히 입시지옥, 취업지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우리의 10대, 20대 시절과는 확연히 다른 사고와 경험을 하고 있음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외로운 솔로들이 한국 여성에 대해 가졌던 불순한 의도를 아무 거리낌 없이 이야기할 때는 불쾌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솔직한 감정을 그대로 이야기해주어 고맙기도 했지만, 한국 여성에 대해서든 제 나라 여성에 대한 생각이든 그런 이야기들은 쉽게 오해를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의견이 100% 정확하다는 생각은 솔직히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생활방식과 사고를 지켜보며 한국인이 깨우쳐야 할 나르시시즘은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고 공존의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사고가 아닌가 생각된다.
by 꽃다지, 2009년 11월 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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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쓴 발칙한 한국이야기이다. 그는 이방인이다. 그것도 한곳에 머무르는 것이아니라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는 이방인. 그는 그 삶을 즐긴다. 특히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특별한 외국인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특히 그는 이책에서 영원한 이방인으로 외국인이라는 용어보다 엑스팻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어지길 원하는데 엑스팻이란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부르는 말로, 한국의 독특한 매력에 사로잡혀 떠나지 못하고, 혹은 떠났다가도 다시 되돌아오는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만큼 한국과 한국인을 사랑하고 아끼는 이들이 한국에 자리잡고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는 단순히 외국인이 한국에 대한 느낌을 이야기하는 글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이방인이 본 우리의 이야기는 언제나 신선하고 그리고 새로운 시각으로 우리를 바라보게 만든다. 신선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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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발칙한 한국학>이라니, 한국에 살면서도 나는 한국에 대해서 제대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뭐 온갖 이슈에 대해서는 환호하기도, 열광하기도, 분노하기도 하지만, 한국학이라니 왠지 거창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외국인 저자에게 보여진 한국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책에 관심이 갔던 건 제목보다 저자의 낯선 저자의 이름 때문이었다. 책장을 스르르 넘겨 보니, 저자는 이 '외국인'이라는 단어 몹시 피하고 있다. 외국인은 '우리'와 '그들' 사이의 불필요한 구분을 만드는 어휘이기 때문에 '엑스펫'이라는 단어를 선호한단다. 왠지 한국에 애정을 두고 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 같아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엑스펫을 만나본 적이 없기에 이 단어가 생소하기만하다. 그들이 엑스펫이건 외국인이건 겉모습으로는 판단할 수 없기에, 그들 앞에서는 꼼짝없이 얼어버리는 나이기 때문이다. 한번에 입에 짝 붙지는 않는 단어지만, 그래도 엣스펫이라는 단어를 염두해 두고, 책 읽기를 시작했다. 책을 읽고 나면 생각이 좀 달라지겠지 하는 기대를 안고 말이다.
처음에는 아주 소프트하고 유머러스한 이야기 보따리를 술술 풀어내어 연신 얼굴에 미소를 짓게, 아니 큭큭 웃음까지 나오게 하더니, 뒤에는 '한국은 이런 나라야.' 하며 뒷통수를 쿵 친다. 그러더니 제발 한국말 하세요, 네? 하고 앙증맞게 끝을 맺었다.
하아.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기분이 아주 씁쓸했다. 외국인이 아닌 엑스펫이라고, 그런 사람이 한국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라고 하니, 좀처럼 쉽게 '그건 그게 아니잖아?'라고 대들(?) 수가 없다. 일상의 문화 이야기에서는 그래그래 넘어가더니, 정치적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에선 도끼눈을 하고 글자를 쬐려 보는 나를 발견하니, 그래, 나는 한국 땅에서만 살고 있는 한국인인가 보다하는 생각이 가득하다. 어찌 되었던 새로운 시각을 발견하고, 내가 살고 있는 '한국'에 대한 의미를 찾아보는 계기를 마련해 줬다는 점에서 이 책에 감사한다. 한번쯤 읽어 보아도 좋은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