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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니콜슨의 늑대는 송중기 씨의 늑대와 다르다(외국 배우는 씨를 안 붙여도 어색하지 않은데, 한국배우의 이름만 쓰면 존중의 의미가 없는 것 같아 어색하다). 어른과 소년으로 구분하는 게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살던 사람이 늑대본능을 지니면서 벌어지는 일들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성의 모습과 늑대인간의 모습 자체로 인간성을 회복하는 이야기로 주요소재가 같다는 것을 제외하면 다르게 보인다. 그런데, 다른 두 영화를 보고 공통적으로 남는 느낌은 깔끔하고 잔잔하다. 이 영화는 겨울밤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보면 이 느낌이 더하다. 출판사 편집장인 윌 랜든은 파티장에서 아무도 원하지 않는 동유럽지사의 일을 마무리 짓고 퇴사하도록 통고받는다. 평상시의 그였다면 그렇게 했을 테지만, 오너인 월든에게 과감하게 반기를 들며 오히려 자신의 위치를 확고하게 다진다. 이렇게 된 이유, 이 영화의 처음에 답이 있다. 조용한 버몬트 눈덮인 시골길을 홀로 달리는 차. 그 차 안에 있는 윌. 그런데, 무엇인가 들이받고 차에서 내려 늑대임을 확인하고 길 한 쪽으로 치우려고 끄는 순간 손을 물린다. 3분 남짓의 처음 장면이 이 영화를 말해준다. 보통의 늑대영화와는 달리 인간적인 영화라고. 엔리오 모리코네 음악이 주는 서정적 느낌이 그대로 전달된다. 의사로부터 안전함을 확인받았지만 지나치게 잘 들리는 귀, 세세한 냄새까지 맡는 코, 손에서 자라나는 털의 신체변화와 내내 행복한 기분, 자신의 성품이 아닌 늑대성향에 대해 고민하고, 속임수와 모략으로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후배 스튜어트에 대한 행동에는 분개한다. 자신에 대해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밤의 기억 때문에 이 생기면서 자신에 대해 통제하기 시작하고, 늑대연구가를 찾아가 부적 역할의 목걸이를 받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거리낌 없는 힘과 의심 없는 사랑을 지닐 수 있는 늑대본성을 받고 싶은 노년의 학자 이야기가. 월든 사장의 딸, 로라 월든과 만들어가는 사랑도 결말부분에 의미를 부여하는 중요한 이야기다. 16년 동안 함께 산 부인, 샬롯이 스튜어트와 바람난 것을 늑대의 예민한 후각으로 알아차리고, 로라를 보면서 “문명이 쇠하고 지구가 멸망해도 신의 뜻을 이해할 것 같다”며 사랑을 말하는 부분. 그리고, 늑대인 것을 알게 되면서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갈등하는 과정도 대사 몇 마디 속에 담겨있다. 조용한 탄탄함으로 가족사와 인간적 갈등을 보여준 미셸 파이퍼의 연기와 늑대의 속성은 자신에게 향하고 타인에게는 인간적인 잭 니콜슨의 섬세한 연기가 조화롭다. 잭 니콜슨이 나오기에 잔인하거나 섬뜩할 거라는 상상은 하지 않는 게 낫다. 그의 연기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보다 더 인간적이다. 중년의 그를 보고 있으면 젊을 때부터 한결같은 인상과 이미지로 참 다양한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면의 기질에 따라 늑대의 속성이 다르게 나타난 윌과 스튜어트. 그래서, 윌은 행복했고, 스튜어트는 불행했다. 그 윌을 보면서 늑대가 무섭게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만.^^ 음악 역시 긴박한 순간에 아름답고, 격투와 총성이 오가는 순간에도 지나친 위협감이 들지 않아 전반적으로 영화가 편안하다. 로라가 급하게 차를 몰고 집 앞에 도착한 장면에서 타악기나 관악으로 뿜는 음악이 아닌 조용한 선율이 흐르는 것처럼. 그래서, 마지막에는 두 늑대인간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았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도대체 인간이 하는 것 중에 진심인 것은 무엇일까? 동물(늑대)만도 못하지 않나? 이런 생각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