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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소개하는 ‘시인과 스님’은 평생 고향의 작은 시골분교에서 교사로 지내며 시를 썼던 김용택, 그리고 10대 후반에 출가하여 불교계의 개혁과 생명평화 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현장에서 활동했던 도법스님을 가리킨다. 두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삶을 교차하여 소개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로 농촌의 작은 시골분교에서 교사 생활을 했던 시인과 세상의 변화를 위해 현장에서 활동했던 스님의 활동 영역은 분명 상반죌 정도로 비교된다. 그러나 그들의 삶과 사회적 역할은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주고 있으며, 여전히 방향을 잃은 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하나의 표지판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아마도 편집자는 서로 다른 듯 보이면서도 비슷한 두 사람의 면모에 주목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시인은 평생 어머니의 함께 생활하면서, 글을 모르지만 농사를 지으면서 몸으로 체감했던 그 삶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고 고백한다. 스님은 어머니의 권유로 출가하고, 마지막 어머니의 죽음의 순간까지 종교인으로서 인연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지키고자 했다고 한다. 하지만 ‘육친(肉親)’의 인연은 결코 가벼이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동안 ‘삶과 죽음’의 문제로 괴로워했다고 고백한다. 어느 순간 개인의 깨달음보다 사회의 변화와 ‘인간다움’의 의미를 깊이 인식하고 그것을 위해 ‘불교 개혁’과 이어지는 ‘평화생명운동’에 투신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모든 것이 자본의 위세로 귀결되는 현실에 대해 우려하면서, 두 사람은 모두 공동체의 의미와 ‘더불어 살아가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도시로 집중되고 그로 인한 자본의 폐해가 만연한 작금의 현실에서 농사를 짓고 땀흘려 일하는 농촌의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지리산 자락에서 공동체를 일구며 많은 이들과 더불어 활동하고 있는 스님은 ‘생명과 평화의 본질은 연대’임을 확인하고 이를 위해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답하고 있다. 점점 열악해지고 있는 지구 환경을 지키기 위한 개인과 사회의 역할을 강조하는 시인의 말과 생명평화와 민족평화를 위해 ‘신뢰와 애정의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스님의 인식이 결코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삶과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서, 사람의 방향을 다시금 생각해보는 것도 분명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차니) * 개인 독서 카페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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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을 읽어가노라면, 생명의 세계가 참으로 무한하다는 것을 느끼게 돼요. 그리고 그 안에서 모든 존재가 평등한 가치와 신비로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도요. 이른바 장엄하다고 묘사되는 화엄의 세계란 산천과 초목이, 부처와 중생이, 이것과 저것이, 시간과 공간이, 유정과 무정이 모두 함께 어울려 출렁이는 생명의 큰 바다를 말해요. - 도법스님
부처란 ‘지금 여기’ 있는 것이지, 그 어떤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에요. 부처란 ‘지금 여기’ 항상 깨어 있는 자기 자신일 뿐이지, 그 밖의 다른 부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에요. 영겁에서 영겁 너머까지 펼쳐지는 참 사람의 삶은 바로 이런 깨달음에서 비롯되죠. - 도법스님
화엄, 우주 질서로서의
연기법: 연대와 평등
도법
스님의 생명평화 사상의 바탕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연기법과 화엄 사상이다.
붓다가
수행 끝에 깨달은 지혜의 핵심이 바로 연기법 (緣起法)인데, 도법 스님에 따르면 이 연기법의 세계관을 가장 멋지고 실감나게 드러낸 비유가 『화엄경』의 인드라망이다. 인드라망, 즉 제석천 궁전에 있는 투명한 구슬로 된 그물에는 우주
삼라만상의 영상이 찬란하게 투영될 뿐만 아니라 각 구슬은 서로 다른 구슬에 투영된다. 이 구슬은 저
구슬에, 저 구슬은 이 구슬에, 너의 구슬은 나의 구슬에, 나의 구슬은 너의 구슬에, 정신의 구슬은 물질의 구슬에, 물질의 구슬은 정신의 구슬에…… 이러한 연기의 진리를 부처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라고 말했는데, 이런 연기의 세계관에서 보면, 존재의 실상은 서로 뗄 수 없는 총체적인 관계 속에서 서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도법
스님은 이러한 연기의 진리를 분명히 깨달으면 우리의 삶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연기의 진리를 모를 때, 인간은 모든 존재를 분리해서 생각하고 항상 자기중심적인 삶, 아집과
독선의 삶을 살게 되지만, ‘더불어 평등하게 있다’는 연기의
실상을 알면 우리의 삶이 질적으로 변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법 스님이 말하는 ‘연기의 실상’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부처는 좋아하고 똥은 싫어한다. 그렇다 보니 부처를 못 만나 괴롭고 똥은 만나서 괴로워진다. 자기 생각과 말과 지식에 눈이 멀어 실상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상을
사실대로 보면 부처에 의지해 똥이 만들어지고 똥에 의지해 밥이 만들어지며 밥에 의지해 부처가 살아간다는 걸 알게 된다. 모두가 인드라망적 존재이므로 어느 하나 귀하고 고맙지 않은 것이 없다. 따라서
부처나 똥이나 밥이나 똑같이 귀하고 평등한 존재이고, 그렇기 때문에 존재의 실상을 직시하는 부처의 마음은
부처를 만나도, 똥을 만나도 평정을 유지할 수 있을 뿐더러 부처와 똥 사이의 벽도 사라진다.
인간의
본래 마음, 즉 존재의 실상은 보름달처럼 환하고 원만하다. 그러나
제아무리 밝은 보름달이라 해도 구름이 가득 끼면 산하와 대지를 온전히 비출 수 없다. 여기서 구름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탐(貪),·진(瞋),·치(癡)의 삼독(三毒)이다. 하지만 먹구름이 덮여 있더라도 보름달 자체의 밝음을 손상할 수는 없듯이, 삼독으로
인해 본래의 성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실상을 보기 위한 노력, 즉 수행이 필요하다.
마을이 희망이다: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그리고
이러한 연기적 세계관의 실천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 바로 공동체이다.
연기법의 진리에서 보면, 이 세계는 본래부터 공동체 사회이고 인간 역시 공동체적 존재이다. 도법
스님은 연기법의 진리를 개인적 삶의 차원과 사회적 삶의 차원에서 통일적으로 실천하고자 하는데, 이러한
방법으로 시작한 것이 바로 공동체 운동이다.
도법 스님은 실상사 주지로 있던 1997년에 실상사 농장을 만들고, 98년에 실상사 농장 3만 평을 실습지로 삼아 귀농학교를 열었다. 또 1999년에 불교 도농 공동체 운동본부를 거쳐 인드라망 생명공동체를 창립하고,
2001년에는 실상사에 중등 대안학교인 ‘작은학교’를
개교하고 사단법인 ‘한생명’을 설립했다.
인드라망 생명공동체의 활동은 크게 여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귀농운동, 생활협동조합, 우리옷살림, 대안교육, 생태자립지역공동체운동, 그리고 월간 『인드라망』발행이다. 생명평화 사상에 기초하여 유기농산물을
생산하고 생협을 통해 이를 도시에 판매하면서 도농공동체가 형성되었다. 또 귀농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을
위한 대안교육이 마련되면서 지역공동체가 구성되었다.
농촌을 살린다는 것은 마을만 살리는 것이 아니라
농업을 살린다는 뜻도 담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농업 인구는 약 7퍼센트
정도에 불과하다요. 농촌에 사람이 없는데 농촌에 미래가 있을리 만무하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21세기의 희망으로 말하는 ‘지속 가능한 성장 사회’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농촌이다. 생명이 근본이 되는 농업과 농촌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지속 가능한 사회는 한낱 이상에 불과할 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만물이 서로 의지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존재하는 것처럼, 농촌과 도시 역시 하나의 그물 속에 들어 있기 때문에 농촌 마을이 파탄 나면 도시도 파탄 나게 된다는 걸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따라서 도법 스님은 ‘마을’, 즉 인드라망 생명공동체야말로 지금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화두라고 말한다.
단순 소박한 삶, 해답은 사랑과 신뢰의 공동체
단순
소박한 삶이란 한마디로 잘 어울리는 삶이다. 자연과 잘 어울리는 삶,
이웃과 잘 어울리는 삶, 그리하여 아름답고 향기롭고 평화로운 삶. 도법 스님이 마을이라는 사랑과 신뢰의 생명공동체를 우리 시대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이유이다.
앞에서도 거론했듯 도법스님은 한국불교 개혁과 생명평화 운동의 상징적 인물이기에 한국 불교와 생명평화 사상을 이해하기에 이 책은 매우 유용하다. 그러나 평생에 걸쳐 인간다운 길을 모색하고 실천해온 한 도법 스님의 구도행을 통해 얻은 결론을 함께 하면서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를 공유하는 것만으로 매우 의미있다. 공동체성과 연대의 회복, 그리고 그 기저에 있는 ‘모든 실상이 연계되어 있으며 개개 사물이 다 평등하고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것의 중요성 말이다. 어둔 구름들에 가려졌던 밝은 보름달로서의 본래의 성품에 한 발 더 다가가게 된 듯하다.
[덧붙임] ‘시인과 스님, 삶을 말하다’라는 이 책의 제목과 ‘도법 스님과 김용택 시인이 말하고 정용선이
적다’라는 이 책의 부제만 봤을 때는 도법 스님과 김용택 스님의 대담을 인터뷰어가 기록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이 책은 홀수 챕터는 김용택 시인의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고, 짝수
챕터는 도법 스님의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에필로그로 두 분이 함께 대담한 내용을
짧게 실었다. 대담을 통해서 특정 주제에 대한 두 분의 의견을 알고 싶은 게 목적인 독자라면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는 구성이긴 하다. 사실 이 책이 리뷰를 도법 스님에 한정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그러나 두 저자의 본격적인 저작물은 읽기 전에 웜업의 성격으로 ‘평전’처럼 읽기에 좋을 책이다. 장담하건대 이 책을 읽는다면, 도법 스님의 저작들을 더 찾아보고 싶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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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 김용택, 스님 - 도법스님...그리고 작가... 시인과 스님이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하는 호기심에서 시작됨 책읽기는 종내는 너무도 큰 세상을 말씀하시는 듯하나 우리내 삶의 이야기를 하시는 것을 알았다.
대조적인 삶을 시간 순으로 엮어서 읽는 이는 시간을 따라 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시인도 만나고 고뇌하는 스님도 만나게 된다. 시인의 명성에 알맞게 청산유수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아주시니 너무도 재미있고 감사하다. 그리고 감동적이다. 따듯한 아랫목에 배깔고 엎드려서 군고구마를 한 입 베어물때 느껴지는 달콤함과 같다. 고향의 봄 노래에 나오는 동네에서 살았을 것 같은 시인이 지켜내고자 하는 것이 자신의 고향만이 아닌 우리들의 보금자리라는 시인 - 김용택, 스님 - 도법스님...그리고 작가... 시인과 스님이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하는 호기심에서 시작됨 책읽기는 종내는 너무도 큰 세상을 말씀하시는 듯하나 우리내 삶의 이야기를 하시는 것을 알았다.
대조적인 삶을 시간 순으로 엮어서 읽는 이는 시간을 따라 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시인도 만나고 고뇌하는 스님도 만나게 된다. 시인의 명성에 알맞게 청산유수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아주시니 너무도 재미있고 감사하다. 그리고 감동적이다. 따듯한 아랫목에 배깔고 엎드려서 군고구마를 한 입 베어물때 느껴지는 달콤함과 같다. 고향의 봄 노래에 나오는 동네에서 살았을 것 같은 시인이 지켜내고자 하는 것이 자신의 고향만이 아닌 우리들의 보금자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스님...시인보다 재미있지 않다. 재미로만 삶을 바라보지 않듯이 스님은 불교에 입적하고나서 겪게 되는 일련의 일들을 통해 세상속에서 같이 호흡하며 잔정한 의미에서 마음의 평화를 이루는 길을 말씀하신다. 종교적인 면이 담겨있어 저녁무렵의 사찰을 둘러보는 기분이 든다.
두분다 칼라사진보다는 흑백사진이 더 어울린다. 그분들의 삶의 이야기가 그런듯하다. 흑백만이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 흑백사진이 아니라....그 밝고 어두움의 정도에서 느껴지는 감동과 무게를 고스란히 독자인 내가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두분을 흑백사진과 같다고 말하고 싶다. 저물어가는 한해의 ㅣ끝자락에서 세상을 조용히 바라보고 싶다면 이책을 읽어보라. 세상의 재미나고 따뜻하고 의미있는 그리고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 예시답안이 있으니 말이다.
인터뷰는 석달동안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 이야기가 이 속에 담겨있다. 다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사진을 통해 느끼면 되고 너무 크게 너무 위대한 삶을 살라는 것이 아닌 조금더 세상을 넓게 보라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시인과 스님이 나에게 가르쳐주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것을 알게 된다.
스님...시인보다 재미있지 않다. 재미로만 삶을 바라보지 않듯이 스님은 불교에 입적하고나서 겪게 되는 일련의 일들을 통해 세상속에서 같이 호흡하며 잔정한 의미에서 마음의 평화를 이루는 길을 말씀하신다. 종교적인 면이 담겨있어 저녁무렵의 사찰을 둘러보는 기분이 든다.
두분다 칼라사진보다는 흑백사진이 더 어울린다. 그분들의 삶의 이야기가 그런듯하다. 흑백만이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 흑백사진이 아니라....그 밝고 어두움의 정도에서 느껴지는 감동과 무게를 고스란히 독자인 내가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두분을 흑백사진과 같다고 말하고 싶다. 저물어가는 한해의 ㅣ끝자락에서 세상을 조용히 바라보고 싶다면 이책을 읽어보라. 세상의 재미나고 따뜻하고 의미있는 그리고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 예시답안이 있으니 말이다.
인터뷰는 석달동안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 이야기가 이 속에 담겨있다. 다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사진을 통해 느끼면 되고 너무 크게 너무 위대한 삶을 살라는 것이 아닌 조금더 세상을 넓게 보라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시인과 스님이 나에게 가르쳐주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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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스님의 삶을 말하는 책이라니 제목부터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는 불교서적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관심이 갔고, 두번째는 시인이 말하는 삶에 대해서는 읽어 본 적이 흐렸기 때문이다. 김용택시인과 도법시인이 번갈아가면 자신의 인생을 말하고 사상을 말하는 이 책은 생각했던 것 만큼이나 의미깊은 책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겪은 삶을 통해 그들의 삶의 깨우침과 과정을 보여주는데, 행복, 존재, 실상, 사랑, 비폭력 평화주의, 소박한 삶... 등을 전하고 있다. 나와는 분명 다른 곳에서 살았고, 내가 살던 시대적 배경이랑은 조금 거리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삶 속에서는 누구보다 진실하고 진지한 철학이 담겨 있고, 그것은 내가 알고자하고 깨우치고자하는 것과 많은 곳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김용택시인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글은 나를 한번 뒤돌아보게 했고, 아마도 이 주제는 모두가 한번쯤은 생각하고 돌아보게 하는 주제인 것 같다. 스스로 어머니에 대해 많은 교육을 받았다고 느끼는 부분에서는 큰 자원이셨다. 그리고 대단하신 분이시라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부모로써의 교육은 당연하다 하겠지만, 나는 실제로 부모에게서 사랑은 받았다는 사람은 많이 봤지만, 자식 스스로 부모에게서 교육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 보물 중에 보물같은 삶이고 다른 무언가로 느끼기 때문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로 너무 소중하지만, 교육은 사랑과 스스로의 삶이 본보기가 되어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도법스님의 글을 보면서 나 또한 연기법에 대해 알고 싶다. 스님이 말씀하신 깨달음을 깨우치고 전체에 이르는 모든것의 존재성을 알고 싶었다. 삶을 살면서 벽에 부딪칠때, 느끼는 그 답답함에서 조금은 해방되고 싶었기 때문이고, 좀 더 사물의 관계에 대해 깨닫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래의 글을 보면, 연대와 평등! 말씀하신 티끌하나에 온 우주가 담겨있다"는 글의 뜻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어떤 곳에서 우주가 나를 도와준다는 말이 있는데, 그때는 긍정적인 말, 동기부여의 말로 인식했다. 그러나 이 글을 도법스님의 글을 읽고 실체론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시인과 스님의 만남으로 나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켰지만, 주옥같은 글을 보면서 나는 궁금증에서 깨달음으로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특별한 만남 만큼이나 특별한 책이었다.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있다. (128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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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시인과 도법스님께서 말씀하시고 정용선님이 기록한 이 책은 시인과 스님께서 하고 싶은 말씀을 허심탄회하게 풀어놓은 책이다. 최근 들어 나는 <종교>에 대한 생각을 깊이 있게 하고 있던 중이었다. 어딘가에 마음 붙이지 못하는 내가 무언가에 위안을 받고 마음이 안정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종교가 없지만 어릴 적부터 산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 절 보다는 쉽게 눈에 보이는 교회에 더 친근했었다. 이 책은 종교적인 복음전도가 목적은 아니기에 종교의 선택과는 상관이 없으나 마음을 평안하게 해 준 스님이 참 감사했다. 또, 표지의 흔들린 사진 속에서도 김용택 시인의 편안함을 읽을 수 있듯 어렵지 않게 마음을 차분하게 해 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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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빼어난 스승이라 불러도 좋을 도법 스님과 김용택 시인의 필담과 대담을 묶은 [시인과 스님, 삶을 말하다]는 쉽게 읽고서, 어렵게 덮어야 하는 이상한 책이다. '뭐 다 좋은 이야기이긴 한데... 그래서?'라고 '인상비평' 한 줄로 다 읽은 책을 덮어버릴 찰나, 왠지 모를 울림이 가슴에 남아 책을 덮던 손을 멈춘다. 쉬 책을 손에서 놓질 못하고, 그리고 계속 읇조린다.'그런데... 그런데...' 그리곤 다시 책 여기 저기를 뒤적이기 시작한다.
이 책은 두 분의 삶을 시간의 질서에 따라 서술해 나간다. 그것은 두 분의 철학이나 사상의 근저를 추상적 이론의 구조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삶의 궤적 속에서 도출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시인의 삶과 스님의 삶은 출발부터 달랐다. 두 분의 삶을 가른 출생의 조건은 한 분을 시인으로, 또 한 분은 스님으로 키웠다. 여기서 '키웠다'는 것은 두 스승의 독자적 위대성이 아니라 역사의 자식, 세상의 자식으로서의 두 분의 사회적 존재성을 부각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시인 김용택의 삶과 도법 스님의 삶은 출발부터 지금의 도정까지 겹치는 부분이 없어 보인다. 시인 김용택은 저 푸른 초원 위에 뛰어 노는 사슴을 노래하는 그런 뜬구름 잡는 시인이 아니다. 그렇다고 시인은 '전사'의 김남주와 같이 역사의 현장, 가치와 가치, 욕망과 욕망이 충돌하는 시대의 접점에서 처절한 혁명투사의 삶을 살지도 않았다. 하지만 시인은 가난해서 평화롭고, 단촐해서 아름다운 단아한 농촌마을공동체의 따뜻한 울타리 속에서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행복의 근저를 들여다보면서 자랐다. 그것을 시인은 '마을정신'이라 이름 붙이고, 세상을 구원할 새로운 원리로 제시한다. 도법 스님은 지옥보다 더한 살육의 현장에서 나서 자라고 그리고 출가했다. 출가로부터 스님을 사로잡은 화두는 죽음과 고통이었는가 보다. 죽음이란 화두를 잡고 구도하고 정진하는 도법스님의 수행과정은 철저히 내면적이고 어쩌면 비인간, 탈인간적이기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도법의 발걸음은 토굴이나 골방이 아니라 인간 삶의 현장을 향했다. 그는 세속을 등진 선문답이나 고행이 가져온 고통의 끝에서 다시 세상의 진상을 확인하길 원하는 그런 선승이 되지 못했다. 철저히 현실적 삶, 현실적 존재조건 속에서 뭇 생명의 구원을 추구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다르지만 아름다운 두분의 삶이, 그리고 생각의 끝이 어긋난듯 교차하고, 갈린 듯 머주치며 결국은 왠지 서로 합일할 것 같다. 시인은 '마을'에서 구원의 빛을 찾았고, 스님은 또 뭇생명의 공동운명체에서 세상의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았다. 그 순간 시인은 스님이 되고, 스님은 또한 시인이 되었다. 인간공동체-마을이라는 진흙탕속에서 연꽃을 피우기를 갈구하는 두 분의 구도는 시적 세계의 극이 바로 극락이고, 구도의 완성태는 곧 시적 세계를 구현하는 것이라는 큰 깨달음에 도달했다. 시적 세계의 극치는 극락과 다르지 않고 극락 또한 시적 아름다움의 구현체가 아니겠는가! 이 책의 기획자가 두 분의 필담을 통해 모색하고자 제시한 과제는 ‘시대진단’과 ‘대안 모색’이란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시대의 길'과 '제대로 된 삶'을 얻기 위한 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지평에서의 인식을 두 필자에게 요구하는 듯 보이고, 이 과제에 대한 두 분의 화답은 단순 명료하다. 스님은 말한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철학, 종교, 윤리, 가치, 논리를 버리고 ‘존재의 실상’에 따라 사는 것이란다. 그런데 문제는 어찌 내 같은 필부가 그와 같은 '존재의 실상'을 깨달을 수 있단말인가!
시인은 말한다. 마을 정신이야말로 인류가 함께 아름다운 삶을 이룰 수 있게 한다고. 하지만 그 마을 정신이 뭔지 진짜 마을에 살고 있는 난 아직 잘 모르겠다.
시인과 스님은 끝내 손에 잡히는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두 분은 구체적 사회구성원리나 정치철학을 제시하는 사상가가 아니라 차라리 사상가가 탐구의 과정에서 기반해야 될 가치의 지평을 여는 구도자로 남는다. 그래서 갑자기 묘연해진다. 누구나 세상을 진단하고, 나름의 처방을 제시한. 사실 왜 아닌가, 왜 안돼는가를 묻지 않는다면 누구나 그냥 쉽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 기독교의 사랑이, 불교의 자비가 무엇이고, 평등과 박애, 자유와 민주주의가 어떻게 쟁취되고 작동해 왔는가. 그리고 모든 답은 정답이고, 그렇기 때문에 또 모든 답은 오답이 아니던가? 그래서 모든 근본주의와 환원론은 공허하고 구체적 현실을 지배하는 것은 저 끈적거리고 비린내나는 권력과 금력, 지배와 욕망의 쌍곡선이 그려내는 기기묘묘한 유령의 그림자가 아니든가. 그래도 나는 책을 덮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도법스님과 시인 김용택이 꿈꾸는 세상은 멀리 있지 않다고. 비록 '존재의 실상'과 그에 기반한 '마을정신'을 직시할 지혜가 없을지라도 나의 내면의 욕망을 직시할 수 있는 지혜만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욕망을 객관화하고 너의 욕망과 나의 욕망을 지긋한 눈으로 직시할 수 있다면, 그러면 다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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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아무생각없이 편안하게 책을 읽는 듯 합니다.~ 나이 많으신분들이 경험을 토대로 옛이야기를 해주시면 나이 어린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을 알아가듯 눈이 초롱초롱해져 경청하며 흥미롭게 이야를 듣지여~ 책을 읽는 내내 어린사람이 되어 정말 재미있게 읽으며 듣고 또 듣고를 반복하며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시인과 스님의 삶..~~~두분의 공통적인 특징은 그냥 물흘러가는대로 그냥 놔두며 사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항상 욕심때문에 무엇가를 붙잡고 마음 졸이며 사는데...두분 글을 읽고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을 깨닫은 후 제 마음이 한결 편안해짐을 느꼈습니다.~
책속에 도법 스님과 김용택 시인님 얼굴이 읽는 중간중간...나오는데...~~이 사진속 모습들이.. 더더욱 친근감을 주어 정말 내게 이야기하는듯 착각을 이르키네요~ 어떤 사람에 대해 겉모습만 보고 참 부럽다고 생각했는데...스님의 말씀을 듣고 다들 평범하며 ... 노력과 인내 자제력으로...이루어지는걸 알고난후 ....나도 할 수 있구나라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부처는 특별하고 거룩한 최고의 존재이며 완성된 존재라고 가르치고 본받으라고 하는데.. 부 맥란 속에 그려진 부처는 똥도 누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고 밥도 먹지 않는 신비한 존재로 다가와요 밥도 먹고 똥도 누는 부처의 실상은 쏙 빠지는 거예요~이말 정말 맞는 말인듯.~ 저 또한 똥싸는 부처는 상상도 못했으니깐여~
시인님 말씀중 근심과 걱정은 나이가 들수록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어지고 커지는 것같아요 나는 근심이 해결될 것같 같으면 열심히 노랙해서 해결해요 하지만 안 될 것 같으면 빨리 잊고 포기하죠 해결도 안 될 일을 뭐하러 고민하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이자 그리고 그것을 전화위복의계기로 삼자하는 식이에요 집안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우리 어머니가 늘 그래요 한달이 크면 한달이 작고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다고요 달이 차면 기울고 기운 달은 또 차오르죠~ 살아감에 있어 참 좋은 말인듯해여~ 이 말을 토대로 사는거에 대해 너무 힘들게만 생각않하고..~ 좀 그냥 두어야겠어요..~ 정말 고민을 한다해서 해결되고 하는건 없는듯해여~ 가만 생각해보니 시간이 해결해주는 일들이 참 많은 듯 합니다. 여유를 가지며 기다려보는 미덕을 배워봐야 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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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법 스님은 귀농학교, 대안학교 등 여러가지 사업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지리산에 댐을 만드려고 하는 걸 반대 운동을 벌여 우리에게 '환경 운동가 '로 널리 알려지며 한국불교 개혁의 상징적 인물이자 수행과 실천이 안팎으로 일치해 불교계 안팎으로 두터운 신망을 받아온 스님은 이야기 한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에 대해 '생명본연의질서'를 바로 인식하고 그 질서에 따라 삶을 가꾸어가야 자아와 사회가 완성됨을 피력하며 '생명평화'를 화두로 5년 동안 탁발을 떠나 2만 8000리를 걸으며 8만여 명의 사람을 만났다. 스님의 길은 한마디로 순례길이다. 수행 끝에 생명 평화라는 화두를 얻은 도법 스님은 2004년 지리산에서 시작해 최근까지 5년간 전국 모든 땅을 밟으며 대중과 함께 하는 '생명평화 탁발순례'를 진행했다. 스님은 현재 진행하고 있는 ‘대안운동’을 비롯한 무수한 실천보다는 출가수행자로서 가장 절박한 과제는 바로 승단의 변화라고 본다. 오늘날 한국불교, 특히 출가수행자와 조계종단이 자기와의 싸움을 정직하고 용기 있게 벌여야만 불교가 세상에 희망을 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책에는 도법 스님이 화엄사상을 득도하는 과정도 담고 있다. 1965년 금산사에서 출가한 후 2년째 되던해에 스님은 큰 화두를 붙잡게 되는데 그것은 '죽음'이라는 문제였다. 왜 살아야 하는가, 왜 태어났는가,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회의가 들면서부터이다. 죽음을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존재의 한계를 깨달음을 얻기 위해 이때부터 10년 이상 스님은 철저하게 이 화두를 붙잡고 수행정진에 몰두한다.
육십 평생을 고스란히 진메 마을 어머니 곁에서, 초등학교 평교사로 아이들과 지낸 자칭 '촌놈' 교사라 일컫지만 시인으로 고향을 지키며 살아온 김용택님의 이야기도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뿌리를 잃고 부유하는 현대인들의 원형이 자신이 나고 자란 공동체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음을 피부로 새삼 체험하며, 절망스럽고 아픈 농촌의 현실 속에서 자연과 공동체가 던져주는 희망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잘 먹고 잘살자는 일념으로 개발의 논리가 횡행하고, 우리의 본향인 농촌과 농민들을 희생양으로 으로 삼는 오늘에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낸다. 그래서 시인은 진메 마을까지 들이닥친 개발이라는 커다란 괴물앞에서도 낮은 목소리로 지켜야할 '고향'에 관해 노래한다. 거칠고, 파괴적이고, 무자비한 현실 앞에서, 부드럽고, 평화로운 이야기를 선사해주고 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원초적인 질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스님은 절집 인생 30년을 지나는 과정에서 보고, 듣고, 느껴온 모든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 안에는 인간과 자연, 생명에 대한 사랑과 공동체 복원에 대한 염원이 담겨있으며 또한 김용택이라는 서정적인 섬진강변의 시인이 생명사상을 체득하는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 두분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 온 두 사람이지만 인간과 자연, 생명에 대한 사랑과 공동체 복원에 대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 지향점은 같은것이 아니겠는가라고 생각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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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같은 수줍은 표정에 말간 웃음. 조용조용한 말소리와 상대방 말에 대응하는 고즈넉한 대꾸. “도법은 아름다운 사람이야” 라고 한 어느 도반스님의 말씀대로 스님은 마음의 고운 결을 지니고 있는 듯 하다. 스님은 거대한 바위 같은 무게로 우뚝 다가선다. 동그란 안경 속에 천진하게 웃는 눈을 보며 나는 곧 무장해제 되어버렸다. 시인은 말씀을 아주 잘했다. 그 흥미진진한 유년시절의 악동행각을 들으며 배를 쥐고 뒹굴었고 어머니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이것저것 묻고 배우던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이 따뜻해지고 환해지는 걸 느꼈다.
저자 정용선이 시인과 스님을 만났을 때 느낀 표현이다. 김용택 시인과 도법스님, 그들이 말하는 삶이란 무엇일가?
참으로 많은 현인들이 그 답을 제시했다. 하지만 정말 내 삶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5초간 입을 다물게 하는 과제. 그 삶에 대해 시인과 스님이 속내를 털어놓았다.
표면적으로 도법 스님과 김용택 시인은 속세와 분리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두 분은 책상머리가 아닌 치열한 인간계의 삶을 통해 세상의 연결성을 찾았다.
<시인과 스님, 삶을 말하다>(도법·김용택, 메디치미디어)는 스님이 화엄사상을 득도하는 과정, 그리고 서정적인 섬진강변의 시인이 생명사상을 체득하는 얘기를 우리의 추억 속에서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김용택 시인과 도법 스님이 육성으로 들려주는 문학적·사상적 자서전이다. 자신을 낳아준 자연, 길러준 어머니, 가르친 아이들을 닮고 싶어하는 시인과 부처를 따라 살며 부처가 되겠다는 신념으로 살아온 스님의 이야기다.
또, 이 책에는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문학세계 원천이 들어있고,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원적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60여년간 정진해온 도법 스님의 사유가 담겨있다.
‘시인과 스님, 삶을 말하다’는 모두 여덟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마당부터 홀수 마당은 김용택 시인의 이야기이고, 둘째 마당부터 짝수 마당은 도법 스님의 말씀이다. 에필로그는 시인과 스님이 ‘대안을 향하여’라는 테마로 대담을 한다. 두 분의 이야기는 먼 이야기가 아닌 우리 현실 속에 늘 만나는 이야기라 낯설지 않다.
시인과 스님이 걸어온 삶의 궤적은 서로 달랐지만 그 지향점은 같다. 바로 모든 생명을 존중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다. 또 성과주의와 간판에 집착하는 우리교육이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은 중간 중간 시인과 스님의 표정을 담아 마치 옆자리에서 이야기하는 느낌을 주고 있다. 글이 아닌 사진 속에서 숙연해지고 장난스러운 마음을 들게 한다. 책을 읽고 나서도 오랫동안 그 감정을 맛볼 수 있어 삽화의 위력을 다시 한 번 느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