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누군가가 내게 물었다. “시집은 읽지 않나요?” 나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는 계속해서 이렇게 대답하고 싶었다. “시집을 왜 읽지 않겠어요. 더욱 많은 시집을 읽고 싶어요. 그렇게 시인의 손끝을 혓바닥을 마음을 영혼을 훔치는 일은 힘겹지만 언제나 가치가 있는 일이라구요.”
고백하자면 애초에 내가 쓰고 싶었던 것은 소설나부랑이(?)가 아니었다. 나는 시를 쓰고 싶었다. 교련복을 입은 채 단정하고 엄혹하기 이를데없는 스포츠머리의 내가 김지하의 시집 『애린』이나 신동엽의 시 「산문시(散文詩)1」을 열심히 읽은 것은 그래서였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도 내 꿈은 역시 시인이었다. 훌륭한 시를 쓰지는 못하더라도 난 시를 쓰고 싶었고, 그것을 일용할 양식으로 삼아 삶을 영위하고 싶었다.
하지만 스물다섯 나는 시쓰기를 포기했다.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시는 영혼이 맑은 사람이 써야 해. 사랑은 내 영혼을 거두어갔어. 이제 내게 진실은 없어. 시는 진실로서 진실을 말하는 작업이야. 영혼이 깨끗하지 못한 사람은 시를 쓸 자격이 없어. 나는 이제 거짓으로 진실을 말하는 쪽에 서겠어. 소설을 쓸 거야. 그게 내 영혼에 부담이 되지 않고 좋아.” 나는 영혼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청아하고 담백한 곡조를 뽑아내는 대신, 천일을 이야기해도 마르지 않는 허구의 우물물을 길어 올리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비록 시쓰기를 포기했을 지언정 시읽기까지 그만 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오디오와 컴퓨터, 전화기와 스텐드, 휴지에 리모콘, 몇 개의 필기도구와 작은 사전, 메모노트와 빈 컵까지 빼곡히 들어찬 책상의 한 켠에는 언제나 시집이 올려져 있다.
아, 그러니까 이윤학의 『꽃 막대기와 꽃뱀과 소녀와』는 가장 최근에 내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시집이다.
가끔 머리가 멍해질 때마다 두통약을 삼키는 기분으로 몇 편씩 훑어 보고는 했는데, 글의 서두에서 밝힌 바와 같은 느닷없는 질문을 받고는 에라이, 하고 몽땅 읽어버렸다. 그렇다고해서 시집의 뒤에 실린 해설 같은 서평을 쓰기는 어렵고, 일단 처음이니 간단하게(라고 말하려다 보니까 간단하게 말하지 않아도 간단하다) 내가 시집을 읽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 좋겠다.
나는 먼저 내키는대로 시집에 실린 시들 중 몇 편을 무작위로 읽는다. 일종의 대면식이다. 그리고 보통 차례보다 앞서 나오는 작가의 말(매우 짧고 흥미롭다. 가끔은 본편의 시들보다 훨씬 훌륭해 보이기도 한다.)을 읽는다. 그 다음에는 순서대로 시를 읽기 시작하는데 이때 맘에 드는 시가 발견되면 차례에 실린 제목에 표시를 해둔다. 보통 조그마한 V자 표시를 하는데, 마음에 드는 시일수록 V자 표시의 갯수는 늘어난다. 이번 시집에 실린 작품들 중 내가 가장 많은 V자 표시를 한 시는 아래와 같다.
칸나
숭례초등학교 정문 쪽 담 밑에는
오늘도 세 그루 칸나가
그을음 없는 불을 밝히고 있다.
며칠씩 장맛비 내리고
칸나 불은 붉고 끝이 뾰족해
이 세상에서 처음 만나는
새싹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장맛비 내리기 전에
몇 달 동안,
할머니 한 분이 앉아 있었다.
광목 잡곡 자루들
골목길에 늘어놓고 앉아 있었다.
됫박에 소복이 잡곡을 담아놓고
담에 뒷머리를 붙이고 앉아 있었다.
성큼성큼 비둘기들 다가와서
광목 잡곡 자루를 축내고 있었다.
하현달 모양 모자 차양
꾹 눌러쓴 할머니 한 분
담에 뒷머리를 붙이고 앉아 있었다.
세상 좋은 공기 혼자 다 잡숫고 있었다.
앞에 놓인 잡곡들 다 뿌려진
드넓은 들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입 벌린 채 깊은 잠 들어 있었다.
세 그루 칸나꽃이
세상에 나오기 바로
며칠 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이와는 별도로 맘에 드는 표현들이 나타나면 따로 밑줄을 그어 놓는다.
‘담장 높이 피어난 개나라/거기 담이 있음을/새삼 확인시켜준다.’(「개나리」중) ‘제방 위 코스모스들/수백 개 머리핀 꽂고/바람개비 웃음 웃고 있다.//아, 따뜻하기도 해라.’(「하천 길」중) ‘덤프트럭 바퀴에 뭉개져/핏물 흥건한 담요를 깐/고양이 몸뚱이.’(「악몽」중)
이것으로 내 한 권의 시읽기는 끝이 난다. 물론 여기서 좀더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보통 시집의 경우 1부, 2부 하는 식으로 수편의 시들을 묶고는 하는데 이렇게 같은 소속을 가진 시들의 특징을 잡아내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이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하겠다면 몇 편의 시를 읊고 또 읊어서 그 가락을 체험하고 체득하여 기억의 한켠에 저장시켜 놓는 것도 시를 읽는 매우 기특한 자세이다. 책의 뒤편에 실린 <해설>을 읽는 것은 이렇게 모든 시읽기를 끝마치고도 성이 차지 않거나 시간이 허위허위 남아 돈다면 그때 해볼만한 독서 행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