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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서와의 만남 부처님과의 만남, 불광출판사의 책을 처음 접한 것이 정호스님의 <수행자는 청소부입니다>였다. 어렵지 않을까? 했던 생각과는 달리 아주 편안하게 그리고 가끔 웃어가면서 읽을 수 있어서 불교서적이라고 해서 스님이 쓰신 책이라고 해서 가까이 하기 어려운 건 아니구나, 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종교가 불교는 아니지만 산사의 한적한 절을 떠올리면 대나무숲과 석탑과 비질이 된 흙마당 스님의 합장 등이 떠올라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다녀오고 싶다, 라는 생각이 가끔 드는 걸 보면 마음 속에 조금은 불교라는 종교를 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수행자는 청소부입니다>라는 겸손한 제목의 책을 읽고 난 후, 또 기회가 되면 불광출판사의 다른 책도 좀 펼쳐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행복을 창조하는 기도>는 <수행자는 청소부입니다>보다는 좀 더 불교적(?)인 어휘가 많이 등장해서 술술 편하게 읽혀지는 책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느낌은 좋았다. 책 읽으면서 마음을 좀 정리정돈도 하고 부처님의 말씀 앞에 좀 다소곳한 인간으로 거듭나고 싶은 마음도 생기고 ^^ 해서 좋았다.
기도...하면 교회를 떠올리게 되는데...그리고 창조, 라는 말에서도 왠지 불교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은 아닐텐데 라는 생각도 해 보면서.
광덕 스님 반야사상의 정수.
반야사상 <반야경전을 근본으로 사물의 실상을 파악하고자 하는 대승불교 사상>이라고 네이버가 알려주었다 ^^
내친김에 ~ 들어본 적 있는 반야심경, 도 찾아본다.
반야심경(般若心經)은 대반야바라밀다경의 요점을 간략하게 설명한 짧은 경전으로, 당나라 삼장법사인 현장(玄裝)이 번역한 것이다. 260자로 되어 있다. 대반야바라밀다심경(大般若波羅蜜多心經)ㆍ마하반야 바라밀다 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経)ㆍ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波羅蜜多心經)이라고도 한다.
우리 증조할머니가 새벽마다 합장하시고 나무관세음보살이라고 하신 후에 반야심경을 읊으시는 소리를 매일 아침 들으며 자랐다. 그것을 기도의 의미로 받아들였었다. 우리 잘되라고 기도하시는 거구나. 자손들의 행복을 만들어주시고픈 기도였을 것이다.
뇌출혈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은사이신 광덕 스님의 사상에 대해 새롭게 눈뜨게 되었고 기도수행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수행방법이라고 일러주셨던 광덕스님의 말씀을 실천하신 혜담스님이 은사이신 광덕스님의 말씀들을 엮은 책이라고 한다. 그래서 생사의 갈림길에서 만난 기도, 라는 소제목이 나온다. 은사님이 제자를 살리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맨 뒤쪽에 부록처럼 덧붙여져 있는 기도문의 내용들이 인상적이었다.
행복을 창조하는 축원문이라는 제목 아래 가내길상 발원문을 비롯하여 문병 쾌차 발원문, 사업번창 발언문 등이 있다.
지금 보기에 좀 어렵기는 하지만 ~~ ^^ 큰 일을 앞두었거나 마음 졸이는 일이 생기면 나도 모르게 이 책을 펼쳐서 경건한 마음으로 발원문을 읽게 될 것 같기도 하다.
좋은 책,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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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불어 마음이 스산해 진 탓인지..... 나도 모르게 평소에는 안 읽어보던 책을 한 번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생뚱하게 도전한 불교서적 <행복을 창조하는 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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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수행법은 상식적으로는 두가지가 있다. 중고등학교 윤리교과서에서 가르치는 대로 하면 경전을 바탕으로한 교리적 수행과 간화선이라 불리는 선수행 두가지가 있다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행해지는 수행법에는 한가지가 더 있다. 기도수행이다. 기도수행이란 경전을 읽는 것도 아니고 참선을 하는 것도 아니고 염불을 하는 것으로 성불이 된다고 하는 방법이다. 이게 뭔가 이아해 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종교를 두가지로 나눌 때 나 이외에 존재자에게 의지하는 것 타력종교가 있고 나 자신에게 의지하는 자력종교가 있다고 배웠을 것이다. 불교는 대표적인 자력종교이다. 불교에선 신에 대한 신앙이 없다. 인간, 즉 나에 대한 신앙이 있을 뿐이다. 부처님을 모시고 절을 하는 것은 부처님이 보여준 불법을 모시는 것이고 불법은 내 안에 있는 나의 본성 즉 불성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신을 믿는 것 그리고 무엇을 이루어달라고 비는 것은 불교에서 원칙적으로 말이 안된다. 그러나 그렇다면 백일기도 천일기도라며 치성을 드리는 것은 무엇인가? 실제 절의 수입은 거의 무엇을 이뤄달라는 대가성 보시이다. 그래서 염불을 못하면 중은 굶어죽어야 한다. 기도수행에서 기도는 다른 종교에서 남의 힘을 빌리려고 비는 바로 그것이다. 그러면 내 안의 불성을 보는 것 즉 견성하는 것과 기도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이책에선 기도는 믿음의 고백으로 우선 정의한다. 부처님을 믿는 것 즉 불법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부수적으로 염불을 하면서 정신집중을 하고 잡념을 없애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믿는 것이 불법 즉 내 안에 불성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라면 수행법으로서 교리적으로 이상은 없다. 그러나 이책에서 말하는 바는 부처님 보살님의 힘을 빌리는 타력을 빌리는 형태로서 기도를 말한다는 것이 거부감이 든다. 그리고 이책의 기본적인 입장은 치성을 드리는 신도들의 입장과 마찬가지이다. 기도에 대한 기본 전제에 동의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책의 전제에서 동의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책을 평가할 입장은 아니다. 내용적인 측면을 떠나서 이책을 평가한다면 어떻할까? 이책은 스님들이 포교용으로 쓴 책자들, 평신도들이 읽기 위한 내용으로 생활적인 법문형식으로 쓰인 책들과 비슷한 문체로 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읽기는 쉽다. 내용도 불교신도라면 괜찮은 내용이다. 그러나 불교신도가 아니라면 그리 권할만한 책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