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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만나서 나의 글과 삶은 바뀌었다 - J.M. 쿳시의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 피아노를 연주하다보면 가끔 불협화음이 절묘한 조화를 이룰 때가 있다. 성격과 가치관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의 만남처럼. 대개 마이너(♭)곡조의 음악이 그러하다. 이를테면 쇼팽과 리스트의 악보는 양 손의 화음이 일치하지 않음에도 좌우의 연주가 합쳐지면서 훌륭한 조화를 이룬다. 악보의 음표처럼 책의 활자도 그럴 수 있을까. 200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J.M 쿳시의 소설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민음사, 2009)는 활자도 악보 위의 음표처럼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한 독특하고 매력적인 소설이다.
일흔이 넘은 유명 작가 세뇨르는 출판사로부터 의뢰를 받아 정치․사회적 이슈에 관한 철학에세이를 쓰게된다. 에세이를 쓰던 중 세뇨르는 아파트의 세탁실에서 젊고 매력적인 여성 안야를 보고 매혹된다. 안야와 가까워지기 위해서 세뇨르는 자신의 에세이 작업을 도와줄 타이피스트로 그녀를 고용한다. 안야가 고용된 시점부터 소설은 3개의 층으로 나눠서 진행된다. 각 페이지의 제일 윗 칸에는 세뇨르가 작성하는 에세이가 진행되고 두 번째 칸에는 안야에게 매혹된 세뇨르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 칸에는 세뇨르를 바라보는 안야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따라서 이 소설을 읽기 위해서는 바흐의 칸타타를 연습하듯이 시선의 '분산'이 필요하다. 제일 위의 에세이만을 계속 읽어나가면, 우리는 사회와 삶을 바라보는 한 노작가의 명철하고 날카로운 글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두 번째 칸의 이야기는 젊은 안야를 바라보는 노작가의 욕망을 살필 수 있고, 마지막 이야기에서는 자신을 욕망하는 노작가를 바라보며 흔들리는 안야의 이야기와 만난다. 정치적이고 극단적이던 세뇨르의 글은 안야를 만나면서부터 개인적이고 섬세한 주제로 변경된다. 후반부로 갈수록 극단적인 정치적 발언을 하던 에세이는 사랑과 편지, 가족, 키스 같은 주제로 바뀐다. 이 소설을 통해서 우리는 세상을 서로 다르게 바라보는 두 사람의 줄다리기를 보는 재미와 함께 여인을 만남으로서 한 작가의 글과 삶이 바뀌어 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소설들은 한 개의 시점을 지니며 강렬한 몰입을 선사하지만 결국 하나의 입장을 대변하는 행위로 그치고 만다. 시점의 한계처럼 우리도 대체로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타인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당신은 어제와 조금씩 다른데, 나는 어제의 당신을 기억하며 얘기한다. 어긋남과 오해가 깊어지면 각기 다른 추억을 지닌 채로 멀어지지 않는가. 그 간극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마음을 챙기느라 탈진하고 늘 언어는 낭비된다.
그러므로 인간의 마음을 표현하는 문학의 언어는 언제나 과잉이거나 결핍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복잡한 칸타타를 연습할 때처럼 양 손을 따로 숙련시켜 합주할 시간은 삶에서 주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운명에 저항하기 위해서 쿳시는 음악의 대위법을 소설 속에 과감히 도입한다. 당신을 만나서 나의 글과 삶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쿳시는 각기 다른 두 사람의 시선과 한 사람의 글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코드를 가지고, 아름다운 활자를 '연주한다'. 쇼팽의 연습곡처럼, 좌우가 다른 코드로 진화하지만 하나의 완성을 향해 가는 활자들. 빗나가는 언어와 일치하지 않는 마음을 따라가다가 지친 이에게 쿳시의 '악보'를 권한다.
"기억하는 것도 없이 책상에 앉아 마음이 떠돌도록 하는 건 아니잖아요. 몇 가지 이야기를 해 봐요. 그러면 당신이 뼈와 살을 가진 더 인간적인 사람으로 다가올 거예요. 내가 이런 생각을 말하는 거 괜찮죠?" - 78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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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표지에 3층집이 그려져 있다. 다른 여타 책보다 유난히 세로가 긴 제목도 범상치 않은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는 그 내용이나 구성면어서도 범상치 않음을 첫 장부터 선사한다.
처음에 표지를 제대로 보지 않았는데 다 읽고나서 보니 표지의 그림을 보면 이 책의 흐름을 조금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그림이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J.M. 쿳시의 작품인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는 책의 표지에 그림의 3층건물처럼 이 책의 내용도 3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흔히들 서로다른 이들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서술하는 기법의 소설들은 종종 접해봤지만, 이 책처럼 한 페이지에 저마다 다른 이야기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지는 책은 처음 접해본다.
3가지로 분류가 되는데 맨 윗부분은 55개의 주제에 대해 주인공 세뇨르의 에세이를 담아났다.
중간부분은 늙은 작가 세뇨르의 독백으로 채워져 있고, 맨 아래에는 세뇨르의 타이피스트로 고용된 젊고 매력적인 동양인 안야가 노작가 세뇨르에 대한 느낌과 그의 에세이에 대한 생각과 감정들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세뇨르의 에세이는 작가인 J.M. 쿳시가 말하고자하는 생각이자 국가관이나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세뇨르의 에세이를 통해 풀어 놓는다.
일흔이 넘은 작가 세뇨르는 시드니에 거주하고 있다. "강력한 의견들"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집필할 것을 제안 받은 세뇨르는 아파트 세탁실에서 우연히 만난 젊고 매력적인 동양인 여성 안야를 타이피스트로 고용하게 된다. 정치적인 문제나 글에 전혀 관심이 없고 타이피스트로서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안냐를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게 된다. 처음엔 별로 였으나 세뇨르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면서 연민 이상의 감정을 갖게 된 안냐와 그녀의 애인. 그리고 그녀를 좋아하는 세뇨르의 평범하지 않은 이들의 삼각관계...
피아노 3중주처럼 같은 내용이면서도 다른 느낌의 이야기들을 조화롭게 연결시킨 작가의 실험정신을 높이 산다. 왠지 이런 기법이 조만간 자주 인용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기존의 소설들처럼 순서대로 읽어가는게 좋은지아니면 3가지 이야기를 개별로 보고 한작품씩 순차적으로 읽어야하나하는 고민을 안겨준다. 또 거기에다 3가지 이야기 중에서 어떤 이야기를 먼저 읽어야하는지에 대한 또 다른 숙제를 낸다.
처음에는기존의 소설을 읽는 방식처럼 3단락의 이야기를 한페이지씩 전부 다 읽어 내려갔지만 이내 포기하고
세뇨르의 이야기를 읽고나서 안야의 이이기를 읽고 마지막으로 에세이를 읽었다.
사람마다 각자 읽고 싶은 순서대로 읽을터라서 읽는 순서의 경우의 수가 많아질 듯...
이렇듯 어찌보면 삼류소설이 될 수도 있을법한 평범한 소재를 J.M. 쿳시만의 독특한 기법을 활용해 평범하지 않은 소설이 탄생된 것 같다. 간만에 접해본 제3국 작가의 소설인데다 독특한 전개기법이 읽는 동안즐겁게 만들었다. 이 책의 스타일을 처음 접해본 사람들 대부분이 어떤 순서로 읽어야할지 고민할 것 같다. 먼저 읽어본 사람으로서 한마디 해 주자면 그냥 방식이나 순서 없이 본인이 읽고 싶은 순서대로 읽으라는 정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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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만난 사람들의 모두 이 책의 판형에 놀랐을 것이다. 그리고 책을 넘기며 또 한 번 놀랐을 것이다. 책엔 세 부분으로 나눠진 세 가지의 이야기가 있었다. 하나는 소설 속에 등장한 노작가 세뇨르 C의 입장에서, 또 하나는 세뇨르 C의 글을 타이핑해주는 안야의 입장에서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타이핑의 내용, 즉 세뇨르 C가 쓴 글이다. 이 책을 과연 어떻게 읽어야 하나 잠깐 생각했다. 결국 한 권의 책을 세 번 읽게 되었다.
부와 명성을 지닌 작가 세뇨르 C는 우연하게 세탁실에서 같은 아파트에 사는 미모의 여인 안야를 보고 한 눈에 반하게 된다. 그는 안야에게 자신이 쓰고자 하는 글에 대해 계획을 말하고 타이핑 해달라고 제안한다. 안야는 이를 수락하고 그의 집에 방문한다. 세뇨르 C는 그녀와 함께 사는 남자에 대해, 그녀의 과거에 대해 궁금해한다. 사실, 세뇨르 C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안야도 그의 마음을 모르지는 않았다. 사랑은 숨길 수 없는 재채기와 같다고 하지 않던가.
세뇨르 C의 집에 방문하면서 안야는 그에 대해 알게 된다. 그가 살아온 삶에 대해, 다른 남자들과 다르게 자신을 존중해주는 진심으로 인해, 그를 존경하고 그의 글을 좋아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세뇨르 C의 집에서 돌아온 후 함께 사는 앨런에게 그가 쓰는 글에 대해 이야기하는 과정은 무척 흥미롭다. 안야와 앨런이 나누는 대화는 언제부턴가 토론이 되고, 앨런은 안야가 세뇨르 C를 닮아가고 있음을 불쾌해 한다.
세뇨르 C가 쓴 55편의 에세이는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국가의 기원’에 대한 글로 시작하는데, 활자만 읽고 있는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고, 소설책이 맞나 투덜거림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경제, 정치, 제도에 대한 31편에 이어 등장한 21편은 개인적인 생각을 담은 사적인 글은 달랐다. 그의 글은 점점 부드럽고 쉽게 변화하고 있었다. 그것은 안야와의 대화 때문이었다. 안야의 의견을 세뇨르 C가 글에 반영하고 있었다. 처음 세뇨르 C와 안야가 만났을 때 둘은 나이, 자란 환경, 사고 방식등 모든 면에서 서로 많이 달랐고, 서로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나 진심은 통하는 법이었다. 소설적인 면에서 둘의 우정과 사랑은 아름다웠다.
독특한 표지만큼 내용도 독특했다. 소설인 동시에 소설이 아니었고, 실험적인 소설이라 흥미로웠다. 여느 책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이 책은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를 듯 하다. 일흔이 넘은 노작가가 들려주는 삶과 죽음, 사랑에 대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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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권 최고의 작가 중 한사람 J.M.쿳시 생소하고 놀랍다. 200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남아프리카 최고의 문학상과 영국의 세계적인 문학상인 부커 상을 2회 수상한 최고의 작가라 수식어가 붙어 뭔가 사전 지식 없이 처음 접한 나로서는 그의 작품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가 조금 부담스러웠다. 소설인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하게 아하하하~!! 서술형식이 복잡하다. 에세이가 3가지 형식으로 전개되고 솔직히 너무 독특한 형식으로 한 페이지에 3가지형식 모두 서술되어 약간의 혼란이 있었다. 무엇을 읽고 소화해야 되는지 술술 읽히지 않아 짜증났다. 그래서 잘 읽히는 안야(2)와 앨런부분(3)을 먼저 조금씩 앞서 읽어주고 나서 묵직한 인간사회를 꿰뚫어 보는 통찰이 담긴 부분(1)을 뒤에 읽으며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긴장하며 읽었다. 이런 이유에서 책이 완전 길쭉(모양)하다. 단순히 길쭉한 책의 느낌이 다 읽고 나니 뭔가 격이 높은 그런 이미지로 바뀌는 생각이 드는 건 작가의 본질을 꿰뚫는 문제의식과 통찰이 압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깐 영양가가 있었다. 읽는 내내 국가의 기원, 아나키즘, 민주주의, 마키아벨리 등등 실제 현대의 국제정세를 반영한 작가만의 개성 넘치고 열린 생각들을 만나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특히 그동안 간과했던 ‘문제의식’을 키우는 인식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인권이라던 지 사회와 권력 다양한 인간문화를 재조명하는 작가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해박함과 깊이 있는 의견들에 집중하며 세상이 기존보다(읽기 전) 조금 더 넓고 다양하게 다가오는 듯하다. 새로운 서술형식도 색달랐고 안야 관련 소설부분도 뒤로 갈수록 따듯한 여운이 남아서 인상 깊었다. 사회의 메커니즘과 인간의 자유내지 동물의 권리, 무저항주의, 의도적인 익명성, 내면으로의 이민이라는 길 등 신랄하게 직시하는 지적 통찰이 돋보이는 짬짜면 같이 새로운 형식의 도발적인 J.M.쿳시작가 멋있네!!! 인상 깊은 구절/p-247 "나는 당신과 같이 갈 수는 없어요. 그것은 규칙 위반이에요. 당신과 같이 갈 수는 없지만 문 앞까지 당신의 손을 잡아 줄게요. 문 앞에서 당신은 내 손을 놓고 당신이 용감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주려고 나를 향해 웃겠죠. 그리고 배를 타든 아니면 당신이 해야 하는 무엇이든 하겠죠. 문 앞까지 당신의 손을 잡아 줄게요. 자랑스럽게 그렇게 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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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프로그램 중 롤러코스터라는 개그 프로그램이 있다. 시청률 1%넘기기가 어렵다는 케이블 방송임에도 꽤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나 은근히 인기있는 방송, 혹은 대놓고 인기 있는 방송이 되고 있는 이 프로그램의 간판 코너는 바로 남녀탐구생활이라는 코너이다. 같은 상황에 처한 남자와 여자의 다른 사고방식과 대처방법에 대해 비교하는 이 코너의 시작을 알리는 말은 참으로 간략하고도 함축적이기까지 하게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보여주는데 그 문장은 바로 '남자, 여자 몰라요. 여자, 남자 몰라요."이다. ![]() 독특한 구성의 새로운 소설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라는 제목을 가진 한권의 책. 이 책을 조금 시간이 흐른 뒤에 떠올리게 된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아마도 '특이하다'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는 정말 특이하다. 무엇이 특이한고 하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로 이 소설의 구성적인 면이다.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는 독일의 어느 출판사에서 '강력한 의견들'이라는 제목의 원고를 청탁받은 노년의 한 작가가 그의 글을 타이핑해주는 아름다운 29의 필리핀 여인 안야와의 원고 작업기간 동안 벌어진 일들을 적어내려간 이야기이다. 또 안야 역시 노년기의 작가와 함께 타이핑일을 하며 겪었던 본인의 심경을 적어내려간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글에는 세뇨르 C라 불리우는 노년의 작가가 쓴 '강력한 의견들'의 원고도 포함되어있다. 한권의 책에 강력한 의견들이라는 원고와 세뇨르 C의 안야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안야의 세뇨르 C와 그의 연인 엘런에 대한 이야기가 모두 들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각 페이지들은 3단의 구성으로 상단에는 세뇨르 C의 원고인 '강력한 의견들'이 들어가고, 그 아래에는 안야와 세뇨르 C의 이야기들이 각각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혼란스러운 소설. 원래 책을 읽을때 옮긴이의 말을 먼저 읽지 않는 편이지만, 이 책을 처음 만났을때 이 소설만이 가지고 있던 이 독특한 구성에 잠시 어찌할바를 모르다가 책을 옮긴이는 도대체 이 책을 어찌 읽었을까 하는 궁금증으로 옮긴이의 말을 읽었었다. 옮긴이의 말을 또 다시 옮겨보자면, 책을 읽을때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고 한다. 각각의 단에 속하는 세뇨르 C의 강력한 의견들과 안야의 이야기, 그리고 세뇨르 C의 이야기를 하나씩 따로 읽던지 혹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읽은 후 강력한 의견들을 읽던지 혹은 모든 이야기를 한번에 한 페이지로 읽던지 말이다. 나의 선택은 이것들중 두번째였다. 안야와 세뇨르 C의 일기를 읽고 난 후 세뇨르 C의 원고인 강력한 의견들을 읽으며 하단의 일기들을 다시 한번 상기해보는 것이다. ![]() 강력한 의견들을 부드러운 의견들로 이끄러낸 안야와 세뇨르 C의 변화 세뇨르 C와 안야는 원고를 쓰고 타이핑을 하는 과정을 통해 그리고 그 중간에 완성물로 모습을 드러내는 강력한 의견들의 원고를 통해 서로를 조금씩 이해해간다. 첫 만남에서 서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외관적으로 보이는 서로의 피상적인 모습에만 관심을 기울였던 이 두 사람은 세뇨르 C가 쓰는 원고를 통해 안야가 그의 생각을 읽고, 안야의 의견을 통해 세뇨르 C가 안야를 이해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것에 더해 안야의 생각과 세뇨르 C의 교감은 세뇨르 C가 쓰고 있는 강력한 의견들의 원고 전반에 조금씩의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청탁받은 원고를 쓰는 일을 다시 타이핑하는 수동적인 일에 정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매개로 하여 전혀 다른 세대와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상대와 교감하는 것이 '강력한 의견들'이라는 원고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 운수 좋은 날 처럼 반어적인 어느 운 나쁜해의 일기 세뇨르 C의 강력한 의견들은 안야의 도움으로 완성된다. 하지만 세뇨르 C의 원고는 거기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다. 안야가 붙인 이름대로라면 '부드러운 의견들'이라는 또 다른 원고가 완성된 것이다. 세뇨르 C와 안야의 교감은 세뇨르 C를 세월과 사람들 사이의 고립에서 꺼내고 세뇨르 C의 강력한 의견들을 부드러운 의견들로 바꾸어 놓은 영향을 끼친다. 안야 역시 세뇨르 C와의 관계에서 편협하고 좁은 시각으로 세상을 보던 자신을 버리고 조금 더 능동적이고 자유로운 시각을 가진 새로운 안야로 변화하게 한다. 안정되고 확실했던 엘런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새로운 자신을 위해 과거를 과거에 묻은 안야, 그녀와 세뇨르 C의 관계는 짧은 포옹으로 끝이 난 듯 보이지만, 안야의 마음은 세뇨르 C의 내면에 머물고, 세뇨르 C는 안야를 통해 새로운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기회를 얻게 된다. 안야와 세뇨르 C의 만남은 세뇨르 C에게는 자신을 버리고 안야에게는 엘런을 버려야했던 그들만의 위험을 감수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 안에서 그들은 새로운 상대를 바라보는 눈과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는 변화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 그 이상의 관계로 서로를 변화하게 하는 교감의 힘. 무언가를 버려야했던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는 그래서 가장 아름다웠던 그들만의 어느 아름다운 해의 일기로 기억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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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쿡시는 노벨상 및 영국의 부커상을 2회 수상한 작가이며 아주 독특한 이력을 가진 작가이다. 대위법적 소설이라...우선 대위법이란 생소함에 먼저 익숙해져야 했다. 국가의 기원으로 시작하는 에세이는 조류독감,지적 설계,좌익과 우익의 관계, 음악,고전,외국어...등 정치,문화, 예술을 비롯한 사회적 이슈 등의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는 데,
또한 일흔이 넘은 노 작가가 자신의 소설을 타이피리스트하는 젊은 여인 엔야에게 느끼는 감정의 표현 또한 담담하다. 젊은 연인들의 불같은 사랑보다는 감정이 배재된 듯한 담백함이 느껴지지만 여운이 강하게 남아 자시금 읽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조금은 난해하지만 읽을 수록 독특함이 느껴지는 이야기는 많은 여운을 남겨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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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시간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고, 빨리 읽고 싶은 마음에 비해서 읽는 속도가 참 안 났던 책이다. 한권을 읽으면서 마치 세권을 읽는 듯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특이한 구성에 처음엔 웃음이 나고 당황했지만 점점 익숙해졌다. 책의 모든 페이지는 세단원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첫 단락에는 에세이가, 두 번째 단락에는 그 에세이를 쓴 남자의 이야기가, 세 번째 단락에는 타이핑을 해주는 여자의 시선으로 된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걸 어떤 순서대로 읽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첫 단락에 있는 에세이를 몇 장 읽다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남자의 이야기를 읽다가, 다시 또 처음으로 돌아가 여자의 이야기를 마저 읽곤 했다. 그러다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면 밑에 있는 두 단락을 쭉 읽어가다가 다시 돌아와 에세이를 읽곤 했다. 아 복잡하다. 밑에 있는 두 남녀의 이야기가 위에 있는 에세이와 연관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있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없다. 특이하고 어렵고 재미있고 많은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아니 에세이다. 아니 소설도 에세이도 아닌 두 가지를 합해 놓은 책이다.
책속에 나오는 에세이는 사실 좀 어려웠다. 정치나 사상이나 또는 문학에 대해서 작가의 생각인지, 책속에 나오는 가상의 인물의 생각인지 구분이 명확하지 않지만, 이해하지 못해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도 많았다. 그래서 책 읽는 속도가 더 느렸던 것도 있다. 자꾸만 연결되지 못하고 툭툭 끊어지는 느낌을 받은 이유도 나의 부족한 점이라 생각한다. 책속에 나오는 에세이처럼 이렇게 어떤 한 가지를 심도 있게 생각해보지 않은 나의 미숙함, 명확하게 사상을 구분지어 이해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기까지 하면서 읽었다. 하지만 그만큼 생각도 많이 했다. 관심 갖지 못했던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예를 들면 고전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의 책을 다시 한 번 찾아 읽어보리라 마음먹었다.
설명이 너무 장황했나. 하여튼 이 책을 읽어본 사람은 소설도 에세이도 아니라는 말에 공감할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그의 다른 책을 추천받았었다. 비슷한 시기에 한 작가의 책을 두 권 읽을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고 이 책“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를 먼저 읽었는데, 추천받은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고도를 기다리며”도 얼른 읽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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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방식을 독자가 선택해야만 하는 독특한 구성의 대위법적 소설! 쉬는 날이면 <세바퀴>라는 예능 프로그램의 재방송을 즐겨 본다. 중년 여성들의 힘을 모여주는 신개념 토크쇼라는 의미에서 주목을 받고 있지만, 나에게는 '세대의 어우러짐'이 독특하게 다가온다. 요즘 음악 프로나 기타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출연진들이 '그들만의 무대'라고 할 만큼 세대의 단절이 두드러져 보인다. 그러나 <세바퀴>는 웬만해서는 한 자리에 모이기 힘든 노련한 선배들과 풋풋한 신인들이 어우려져 서로에게 호응을 보내며 만들어내는 세대 공감이 재미를 준다. 요즘은 문화의 차이보다 세대의 차이를 더 극복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나의 시각에서는 그야말로 신선하고 훈훈한 신개념 토크쇼로 보인다.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는 좀처럼 공감하기 어려운 세대 차이를 지닌 두 남녀가 주인공이다. 독일의 일흔두 살 노작가인 세뇨르 C와 스물 아홉의 매력적인 필리핀 여성 안야가 주인공이다. 소통과 공감 지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먼 거리의 삶에 자리에서 살아가던 두 사람이 어느 날, 아파트의 세탁실에서 우연하게 만나면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일흔두 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 여성의 매력에 한 눈에 빠져버린 노작가는 그녀를 설득해 자신의 타이피스트로 고용한다. 덕분에 안냐는 세료르 C가 집필하는 에세이의 첫 독자가 되면서, (의도하지 않은) 서로의 소통이 시작된다.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른 이 두 남녀는 그렇게 소통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데, 나의 눈에 가장 놀라운 변화는 바로 노작가 세료르 C의 변화이다. 책에 등장하는 에세이는 노작가 세료르 C의 변화를 보여주는 장치의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그의 '강력한 의견들'이 점차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세료르 C가 집필하는 에세이는 작가의 철학을 잘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그 철학에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가끔 친구들이 부모님과 갈등을 빚을 때면, 나는 오래도록 그런 방식으로 살아오신 부모님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이라고 말해주곤 했다. 그러니 차라리 우리가 맞춰드리는 것이 더 편하다고. 그런데 일흔두 살의 노작가에 나타나는 변화가 흥미롭다. 삶의 가치와 기준이 되는 개인의 철학은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이 노인은 '작가'가 아닌가. 작가가 가진 자신만의 색깔과 사상은 어떤 '고집'과도 같은데, 한참 어린 젊은 여성의 충고로 인해 그의 글에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나는 것이다. 세료르 C가 보여주는 안냐에 대한 '존중'과 안냐가 노작가에게 보내는 '존경'과 '연민'은 서로에 대한 피상적인 판단을 넘어 서로를 한 인격체로 받아들이는 '사랑'으로 다가간다. 마치 <레옹>이라는 영화에서 보여준 킬러 레옹과 어린 소녀 마틸다의 사랑을 보는 기분이라고 할까. 그러나 한 가지 이 책은 읽기가 쉽지 않은 책이다! 어떤 방식으로 읽을 것인지 독자가 선택을 해야만 한다. 책에 등장하는 세료르 C를 대하듯, 이 책의 작가와 소통하는 방식을 우리가 찾아야 한다. '바흐의 음악처럼 읽히는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쿳시의 대위법적 소설'이라는 설명이 말해주듯이, 이 책은 3개의 서로 다른 멜로디가 동시에 연주된다. (대위법이란 독립성이 강한 둘 이상의 멜로디를 동시에 결합하는 작곡기법이라고 한다.) 그러나 음악은 서로 다른 멜로디를 동시에 들으며 '하모니'를 감상할 수 있겠지만, 서로 다른 목소리가 동시에 울리는 책을 읽는 것은 상당히 곤혹스러웠다. 작가의 에세이와 세료느 C, 안냐의 목소리가 페이지마다 삼단으로 구성된 책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우선 3개의 목소리를 구분해서 이해하고 난 후에, 다시 그 조합을 생각해야 했다. 상당한 수준의 독서 내공을 지닌 독자라면, 해박한 지식과 강력한 의견을 가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의 실험적인 소설에서 '하모니'를 감상할 수 있는 수준에 도전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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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황금비의 직사각형을 탈피한 책의 길이부터 관습을 깨는 창의성이 돋보인다.한 페이지에 주인공이 쓴 에세이와 소설(그가 쓴 안야에 대한 생각,안야가 그에 대해 쓴 생각)을 세 칸으로 구분해서 싣고 있어서 에세이와 소설의 혼합이라는 형식 또한 독창적이다.그래서 이 책은 파격성이 강한 실험적인 책이다.실험적인 것은 창조성의 또 다른 말이라서 호기심을 자극한다.
두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느낌이다.처음엔 어떻게 읽어야 할지 당황했다.한쪽의 에세이를 읽고 다시 소설을 읽었다.그리고 다시 옆 페이지의 에세이와 소설을 읽었다.그러다보니 소설이 몰입이 안 되고 자꾸 단절되는 느낌이 들었다.에세이도 헷갈렸다.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소설의 흐름을 끊지 않고 읽기 위한 방법을 찾아 읽게 되었다.먼저 에세이 한 편을 다 읽고나서 소설을 에세이 한 편이 끝나는 부분까지 읽었다.이렇게 하니 집중이 아주 잘 됐다.
안야와 그의 애인 앨런은 최상층에 산다.전업작가인 일흔두살의 세뇨르.C는 1층에 산다.늙은작가는 세탁실에서 안야를 처음 본 순간 반해버린다.그래서 그녀를 자신의 원고를 타이핑해 주는 조수로 쓴다. 앨런은 세뇨르가 그녀를 고용한 것은 그녀를 좋아하기 때문이라며 늙은 작가를 질투 한다.남자의 예리한 본능이다.그녀자신도 못 느낀 것을 애인이 먼저 알아 본다.그것이 그들의 관계를 삐걱거리게 만든다.세뇨르는 안야의 눈을 통해서 세상을 배운다.안야는 세뇨르를 통해서 삶의 진솔함을 배운다.
늙은작가가 첫눈에 반한 사랑을 하는 반면,안야는 존경이 사랑으로 변하는 서서히 알아가는 사랑에 눈 뜬다.전혀 티내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은은한 세뇨르의 안야에 대한 사랑과 혼자사는 노인에 대한 안야의 연민은 그것이 사랑인지 독자가 깨닫는데 오래 걸린다.특히 안야가 현실적인 결단을 내리기때문에 사랑인지 더욱 불확실한 잔잔한 사랑으로 남는다.
대학교수가 정치,경제,사회,문화 강의를 하면서 중간에 학생들이 졸지 않도록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편 들려 주는 기분이다.그래서 스토리는 에세이의 지루함을 없애주는 역할을 한다.에세이는 잡학사전과 같다.그의 정치,경제,사회,문화,세계관,가치관,국가관,종교관,철학관,애정관등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음악에서 대위법이란 둘 이상의 독립된 선율이나 성부를 통시에 결합시켜 일종의 대화 상태를 구축하는 걸 의미하는데,이 소설에서는 에세이와 소설을 동시에 싣고 있음으로해서 바흐의 음악과 같은 대위법적 소설의 진수를 맛 볼 수 있다.메타픽션의 장치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늙은 작가에 대한 안야의 연민이 독자의 가슴에 저려오는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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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특이한 구성의 책이다,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 한 페이지에 세 가지 이야기가 진행되는 구성... 맨 윗부분은 쉰다섯 개의 주제에 관한 주인공 세뇨르 C의 에세이로 이루어져 있다. 중간 부분은 세뇨르 C의 독백으로, 그가 타이피스트로 고용한 젊고 매력적인 여성 안야를 대하면서 느끼는 감정과 함께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노작가의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은 안야의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녀가 세뇨르 C와 그의 에세이를 대하면서 느끼는 생각과 감정들로 되어있다.
이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 같다. 첫 번째 부터 차레로 읽을 것인지, 두 번째 이야기를 먼저 읽을 것인지, 그 도 아니면 세 번째 이야기를 먼저 읽을 것인지... ㅎㅎ 그 모두도 아니고 그냥 페이지를 자연스럽게 읽으며 이야기를 연결해 나가든지... 나는 두 번째 세뇨르 C의 이야기를 먼저 읽었다. 그리고 안야의 이야기, 마지막으로 첫 번째 이야기인 세뇨르 C의 수필 순을.. 그래서 이 책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를 모두 세 번 읽었다.
아파크 세탁실에서 어느날 우연히 마주친 젊고 매력적인 안야를 자신의 타이피스트로 고용한다. 살아온 환경이나 생각이 판이하게 다른 두 사람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대화하고 사랑(?)을 키워간다.
안야의 남자친구 앨런은 안야와 노 작가를 살짝 의심하며 세뇨르 C의 재산을 가로채려고 한다. 세뇨르 C와 일 하면서 그에 대한 연민이 서서히 사랑으로 변하면서 안야는 결국 앨런과 헤어져 시드니를 떠난다. 책이 출간되고 우편으로 그 책을 받은 안야는 세뇨르 C에게 편지를 쓴다. 좀 더 가벼운 이야기를 쓸것을 권하는...
셔뇨르 C의 이야기나 안야의 이야기는 여느 연애소설을 읽듯이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물론 노 작가의 삶, 죽음, 그 후 등... 잠시 생각해야 할 부분들도 있었지만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하고 결정하고 나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일흔이 넘은 노 작가가 독일의 한 출판사로부터 집필을 의뢰 받는다. 그는 세계가 당면한 문제들을 환기시킬 목적으로 국가의 기원, 민주주의, 알카에다, 조시 부시, 토니 블레어, 테러리즘 등 정치적 이슈들과 문학, 예술, 종교 등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철학적 이야기들에 관한 에세이를 쓰기 시작한다. 요즘 이슈화 된 이야기들이 많아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J.M. 쿳시는 두 차례의 부커 상과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으로 스웨덴 한림원으로부터 “지적인 힘과 균형적 스타일, 역사적 비전과 윤리적 통찰력을 독특한 방식으로 통합시킨” 독창적인 작가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독특한 이력만큼이나 2007년에 발표한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는 쿳시의 작품 중에서도 실험적인 소설에 속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 처럼 독특한 구성으로 이 소설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이유로 책을 세 번읽은 경우는 처음이라 나에게도 특별한 책으로 기억 될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