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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중에 한 다스(물론 이 말은 일본어이다 영어로는 알다시피 dozen)는 12개라고 알고 있기 마련이고 여태까지 이런 개념은 변하지 않는 진리에 이르게 되었다. 하지만 한 다스가 12개가 아니라 13개라고 하면 어떨까? 여기 <마녀의 한 다스>는 바로 이러한 개념들을 훌쩍 뛰어넘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즉 개념이 먼저냐 말이 먼저냐에 대한 이를테면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와 엇비슷한 이야기들로 넘처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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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한다스는 12를 의미한다. 그러나 마녀에게는? 12가 아니고 13을 뜻한다고 하는데...12와 13의 차이는 단지 숫자 1의 차이에 불과한 것일까?
제목에서 이야기 하듯이 이 책은 서로 다른 문화의 상대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저자는 [미식 견문록] 에 이어서 두번째로 만나는 요네하라 마리. 사실 난 미식 견문록을 읽으며 그녀의 입담에 큰 매력을 느꼈던것 같다. [마녀의 한다스]를 읽으면서도 역시 그녀의 풍부한 경험과 이야기속에 빠져드는 것을 보면..
"절대..절대..외치지만, 인간사에 절대라는 것은 절대로 없어" .....p 23
나의 지난 시간들을 생각해도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을 하게 된다. 난 결혼전에는 슬하에 많은 자녀를 둔 사람들이 그닥 좋아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에게는 절대 있을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사실 큰 아이를 낳았을때까지도 이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집에는 삼남매의 아이들이 약간은 시끄럽지만 사랑스럽게 잘 자라고 있으니...
이렇게 한 사람의 인생에도 절대라는 말은 있을수 없는데, 전 세계를 살펴보고 그 세계속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본다면 더욱 그럴것이다. 더구나 저자는 러시아어 통역사로 소련 붕괴이전부터 근래에 이르기까지 동유럽과 러시아를 오가며 절대적이면서도 상대적인 이야기들을 풀어놓고 있다. 한 나라의 문화를 알려주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언어와 음식이 대표적이지 않을까 싶다. 마마, 파파..처럼 전 세계가 거의 비슷한 음절로 소리를 내는 단어가 있는가하면, 비슷한 음절이 다른 나라에서는 차마 입에 담기 민망한 단어를 뜻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과자를 뜻하는 '까까'는 이탈리아에서 '똥'을 의미한다고 하니 아이의 입에 과자를 주면서 까까~~라고 말하는 엄마 아빠를 보면 이태리 사람들은 어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어디 그 뿐인가! 우리나라에서는 잔치때마다 빠지지 않는 머릿고기가 외국 사람들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불가일수도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 인기있는 시리즈인 '서바이벌'에서 중국인 여자를 탈락시키는데 동의한 참가자들은 한결같이 그녀가 닭의 머리를 먹었기 때문에..라는 이유를 든 것을 보면 알수 있다.
그러니 각나라마다의 고유한 문화를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거나 이해하지 않고 속단하는 것은 얼마나 이기적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저자는 일본인이기 때문에 중국이나 러시아, 그리고 잠깐 소개되고 있는 북한에 대해서도 일본인의 관점에서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상대성있는 융통성과 배려심을 가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그러나 중요한지를 말한다. 상대적....나에게는 잘생긴 미남으로 보이는 남자가 내 친구에게는 그저 그런 남자 중 한사람으로 느껴지는 엄청난 차이가 아닐까!
정말 중요하고 어려운 이야기를 언어와 음식 그리고 역사까지 가미하면서 즐겁게 풀어내는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나 또한 이 책 한권으로 지구촌 곳곳을 재미있게 훑어본 느낌이다. 다양한 경험에서 녹아지는 그녀의 글 속에서 오늘도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며 책 속에 빠진다~~풍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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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한 다스라고 하면 바로 '12'라는 숫자를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마녀의 한 다스라? 이건 무얼 말하는 것일까. 누구든 이 호기심으로 이 책의 첫 장을 펼치게 되지 않을까? 마녀의 세계에서는 한 다스가 '13'이라고 하는데 정말 신빙성이 있는 것인지는 장담을 못하겠다. 내가 마녀의 세계에 가 본적이 없으니 알 수가 있나. 그렇지만 저자가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거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아는 이들에게 말해 주어야겠다 싶어 머릿속에 각인시킨다.
'13'이라는 숫자는 우리나라가 '4'를 멀리하는만큼 불길한 숫자로 다가온다. "13일의 금요일"에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날 문득 금요일인데 '13'일이 찍혀 있으면 왜인지 기분이 별로 안좋다. 지구촌이 세계화가 되면서 이웃나라는 물론이고 먼 나라의 일을 집 안에서 알 수 있는 세상에 살다보니 남일 같이 느껴지지 않나 보다.
한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에 대해서, 일본에서 살고 있는 일본인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면 요네하라 마리가 들려주는 문화인류학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장소에서 벌어지는 여러 인종들이 겪는 이야기는 그녀가 들려주기에 그래서 더 신선하게 다가온다. 간간이 통역일을 하면서 겪게 되는 일들을 들려주어 이제야 그녀의 글을 제대로 맛볼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즐겁기만 했는데 세계 곳곳을 방문하지 않고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지식을 독자들은 이렇게 편안하게 집 안에 앉아서 접할 수 있다는 행복도 함께 누려볼 수 있었다.
문화를 이야기함에 있어 '언어'는 결코 빼 놓을 수 없는 부분인가 보다. 그래서 저자와 함께 하는 지식여행은 그리 쉽지 않다. 그저 발길 닿는대로 따라가서 유명한 건축물 앞에서 사진이나 찍는 여행기가 아니기에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 모든 것을 오롯이 흡수하기엔 나의 지식이 너무 짧아 속이 상할 정도다. 아무리 화려하고 좋아도 일본인은 절대 타고 싶지 않을 차가 무엇인지 문제를 내도 둔해 빠진 나의 머릿속에서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 저자의 발걸음을 따라가기도 버거울 정도였다. 저자가 정답을 말해주지 않았다면 끝내 모르고 지나갔을텐데 다행히 뒤에 답을 말해주어 한참을 웃었더랬다. 나도 아무리 좋은 차라도 저 차는 안타고 싶다. 누구든 그러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니 아마 어떤 차인지 책을 읽지 않았다면 몹시 궁금할텐데 그렇다면 이 책을 읽어봐라. 나는 결코 저자처럼 쉽게 답을 말해주지 않을테니까.
요네하라 마리의 책은 지식만을 전하지 않는다. 삶도 함께 이야기 한다. 그녀의 글에는 살아 숨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하다가도 돌연 어떻게 이런 어려운 정보를 얻었나 싶게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그녀를 보고 있으니 저자와 독자사이의 간격이 더 멀어지는 것 같아 못내 서운하게 생각되지만 오히려 그녀의 글을 오랜 세월 계속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더 크게 느껴진다. 독자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들이 많이 남았을텐데, 맛깔나게 이야기하는 그녀의 유쾌한 여행에 계속 동참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 슬프다. 옆에서 들려주는 그녀의 이야기에 내가 버렸던 열정들이 다시 살아날 것 같은데 이렇게 책으로나마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 무척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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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한 다스라는 책의 제목을 보면서 문득 얼마 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마녀사냥에 대한 기사가 생각났다.
저자 요네하라 마리는 일본 태생으로 러시아어 동시통역가이자 에세이스트, 소설가로도 유명한 인물이다. 요네하라 마리의 책을 처음 접해서였는지, 아니면 제목이 뜻하는 의미가 궁금해서였는지는 모르겠다. 진작부터 꼭 만나보고 싶었던 저자와의 첫 대면때문이었을까... 인류가 이룩한 기술적, 사회 구조적인 가치는 어느 곳이든 다르기 마련이다. 또한 세계 어느 곳이든 각 나라만의 고유하고 독창적인 문화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지리적 환경이나 역사, 민족의 고유한 특징에 이르기까지 여러 다양한 이유들을 바탕으로 문화적 차이의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인데 한 집단의 생활습관은 세대에서 또다른 세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동안 그대로 공유되고, 전달됨에 따라 독창적인 행동양식으로 변모되어 특정한 지역마다 다양한 모습을 지니며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처음 해외여행을 했을 때의 느낌이 되살아나곤 했는데 우물 안 개구리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듯 싶다. 자신이 속해있는 문화권을 벗어나 전혀 다른 새로운 문화와 사람을 만나며 설레이는 감정을 갖게 된다는 것.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을 충분히 느껴본 사람은 알겠지만 오랫동안 나에게 익숙하고, 올바른 개념이라 믿고 살았던 관습에 대해 많은 것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그런 느낌과 마찬가지로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자신과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과 다른 문화를 대할 때 그 가치를 얼마만큼 인정해 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해 볼수 있었다. 때로는 핫이슈로 떠오르는 뉴스를 볼 때나, 유독 보수주의적인 경향을 띄고 있기 때문에, 혹은 비주류가 특이하게 보일 때, 아니면 군중심리에 이끌려.. 여러가지 상황으로 우리는 살아가면서 마녀사냥으로 비주류를 억압할 수 있는 입장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마녀의 한 다스라는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으로 하나의 집단에 확실한 주류로 속해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도 살짝만 범위를 벗어난다면 어느 한 순간 누구나 마녀가 될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묘한 기분을 가져다 주기도 했다.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봤을 때 자신과는 반대되는 문화적 차이를 어떻게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에 대해 저자는 끊임없이 고심하고 연구한 것처럼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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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한 다스> (2009, 요네하라 마리 지음, 마음산책 펴냄)라는 책을 받고 보니, 책의 작가인 요네하라 마리를 2006년에 나온 <프라하의 소녀시대> (2006, 요네하라 마리 지음, 마음산책 펴냄)에서 만났던 기억이 났다. 학교 다닐 때 따로 배워서 전혀 별개의 과목인 것처럼 여전히 인식되는 사회, 역사, 지리가 한 사람의 삶에서 융합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나 할까. 소련을 맹주로 한 공산주의 사회가 몰락하던 1960년대 초반, 당시 공산국가였던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도 프라하에서 소비에트 학교를 다닌 소녀 요네하라 마리는, 그리스인 리차, 루마니아의 유대인 아냐, 보스니아인 야스나 등의 소녀들과 펼쳐가는 개인적인 삶이 결국 민족과 국가의 역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깨달았던 기억이다.
<마녀의 한 다스>는 그렇게 '프라하의 소녀시대'를 거치고 일본에 와서 도쿄외국어대학 러시아어학과와 도쿄대학 대학원 러시아어, 러시아문학 석사 과정을 수료한 후 러시아어통역사로 일하면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과 문화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직업이 통역사인 만큼 다른 나라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다른 나라를 여행하면서 그 안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만나는 것을 통해, '이문화異文化)'에 대한 관찰과 성찰을 심도 있게 해 내고 있었다. 보편적으로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서 성장하고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달리, 저자는 아버지의 부임 때문에 프라하에 가서 학교를 다니다가 모스크바, 베이징, 광둥, 홍콩, 도쿄로 돌아오는 등 글로벌한 삶을 살면서 다양한 문화와 사상을 이미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좁고 국수주의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생각된다.
일반적으로 한 다스는 12개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마녀의 한 다스'는 13개라고 한다. 너무나도 익숙해서 진리처럼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것에도, 그에 반하는 것이 있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 '늘 당연하게 여기던 정의나 상식에 찬물을 끼얹어보고 싶'은 것, '긍정적인 가치와 부정적인 가치를 역전시켜보고 싶'은 것, 그런 저자의 의도는 이 책에서 충분히 구현되었다고 생각한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뺀 본문을 13개의 꼭지로 하여 '마녀의 한 다스'를 채워놓은 것처럼, 그 내용도 종교, 과거사, 국제 정세, 민족간의 갈등, 체제와 육아에까지 다양하고 넓다. 기본적으로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전진 배치하고, 그에 대한 생각을 저자의 직업인 통역 일과 연계하여 설명하면서, 결론 또는 대안을 내려주고 있으니, 한 꼭지 안에서 이런 흐름은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어서 읽는 재미가 난다. 너무 심각하지는 않게, 그러면서 충실하게.
너무나도 익숙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스테레오타입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한번쯤 다르게 생각하는 방식을 익히는 것도 좋지 않을까~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문화인류학'이라는 책 설명에 십분 공감하며 책을 덮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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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하라 마리의 에세이. 제목이 독특한데, <마녀의 한다스>는 12가 아니고 13이라고 한다. 다른 관점으로 보면, 다른 역사문화적 맥락에서 보면 당연한 사실도 전혀 당연하지 않다. 이렇게 이번 책에는 주로 문화 상대주의 관점을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목차도 독특하다. '000의 00인' 하는 식으로 세계 각 지역에 있는 각각 다른 민족에 속한 사람들의 입장과 생각을 보여준다. 카자흐스탄에서 영화 <카사블랑카>는 조롱을 받았다. 나치 독일로부터 유럽 해방시키자고 외치는 주인공들이 프랑스 식민지인 모로코에서는 지배자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부조리함을 유럽, 미국, 일본에서는 모른다. 영화에 열광할뿐. 요네하라 마리는 그런 상대의 입장에서 보지 못하는, 상대의 아픔에 감정이입하지 못하는 무신경함을 조롱한다.
같은 아시아인인 카자흐스탄인들은 구미인의 이런 무신경함을 금방 알아챘는데, 일본에서는 전후 이 영화가 개봉된 이래 명화로서 명예를 얻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탈아입구, 상승지향이 강한 일본인의 사고회로는 완전히 명예 맥인이 되었나 보다. 내가 앞서 신경이 쓰인다고 한 것은 일부 일본인에게 보이는 바로 이 '무신경함'이다. - 114 쪽에서 인용
같은 저자의 다른 책인 <유머의 공식>에 자세히 나와 있지만, 이 책에서도 러시아 유머를 꽤 소개해준다. 그 중 저자가 '줌 인에서 줌 아웃'이라 이름붙인 유머 공식을 기억하고 싶어 기록한다.
한순간 한순간 바짝 뒤를 쫓아가다가 갑자기 휙 길게 잡는다. 그러면 순간적으로 지금까지의 일이 우스워지는 것이다. - 178쪽에서 인용
대상과의 거리를 코앞에서 한순간에 휙 늘이는 방법은, 갑자기 대상에서 멀어짐으로써 당사자도 상대방도 아닌 제3자의 눈으로 바라보려는 시도다. 바로 그 낙차로 인해 웃음이 생기는 것이다, -180쪽에서 인용 그외 일본 속담인 '게는 게 껍질에 맞추어 구멍을 판다'를 러시아 속담인 '제 머리 높이보다 높게 뒤지 못하는 녀석'과 비교하는 등 이 책 안에는 다앙한 문화 상대주의적 시각과 사고를 보여주는 글이 있다. 마리 여사의 글쓰기의 장점을 잘 보여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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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이는 친구들과 소풍을 떠났다가 숲 속에서 길을 잃었다....
초콜릿으로 된 성을 찾았고, 초콜릿에 환장하는 곰이는 미친듯이 성을 핥아먹기 시작한다.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코가 툭 튀어나왔고 음흉한 미소를 띈 마녀할머니가 곰이를 바라보더니 묻는다.
"너 때문에 내 집이 망가졌잖아! 어떻게 변상할거야?"
"아.. 저... 저는... 그냥... 길을 잃은데다가 배가 고파서...."
"그래? 그렇다면 내가 낸 문제에 답을 하면 널 놓아줄 것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난 널... 흐흐흐흐 잡아먹을테다~! 살도 통통한게 아주 맛있겠군!"
"(엉엉 울면서) 엉엉.. 어서 문제를 주세요... 제발 잡아먹지 말고 살려주세요!!!"
"한 다스는 몇 개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이렇게 쉬운 문제가 있냐는 듯 코웃음 치며) 당연히 12개요!!!!"
그 후... 곰이의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기서 왜?라고 질문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래 왜? 12개 맞지 않은가?
정답은 틀렸다. 13개이다.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이 진실로 진실이라고 믿는가?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이 세상의 기준이 된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중국 사람들은 4자를 싫어하고 8자를 엄청 좋아한다.
서양에서는 13을 불길한 숫자라고 생각하고 7을 엄청 사랑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60억 인구가 살고 있다.
기후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르고, 피부색도 다른 사람들이 60명도 아니고 60억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끼리끼리 뭉쳐 살면서 그 땅에 맞는 환경, 그들의 생각에 맞는 생활습관을 길러왔다.
아프리카 어떤 부족에서는 아름다움을 위해 목에 기다란 관을 끼워 목을 늘리고, 중국에서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위해 전족이라는 고통을 여성에게 안겨주고, 이슬람 국가인 어느 나라에서는 여성은 아름다움과는 상관없이 남편 이외의 사람에게는 눈 빼고 모든 것을 가려야하는 그런 생활 방식을 가진 나라도 있다.
어느 것이 진정 아름다운 것이며, 옳은 것인가?
그 판단은 누가 하는 것이며, 그 것을 진정으로 맞다고 할 수 있는가?
요네하라 마리 여사.
그녀는 지금 이 세상에 없지만, 그녀의 많은 책들은 세상에 남아있다.
그녀의 유쾌하고 중립적인 가치관이 책을 읽는 내내 나를 즐겁게 했고, 나의 생각하는 방법을 고쳐주었다.
늘 내 중심이고, 내가 하는 말이 맞는 것이고, 남은 틀리다고 생각했던 나를 나와 다른 사람이 틀린게 아니라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러시아어 통역사인 직업이 그녀에게 이런 평등한 문화인류학적 사상을 심어 주었을까? 아니면 그녀 자체가 원래 그렇게 공평한 사람이었을까?
일본 작가라면 읽어보지도 않고 싫어하는 내게, 그녀의 모든 책을 다 읽어야겠다는 의지를 심어주었다.
그녀가 살아생전에 그녀를 알지 못했고, 만나보지 못했다는게 천추의 한으로 남는다.
50년에 태어나 06년에 난소암으로 하늘나라로 간 그녀와 52년에 태어나 08년에 폐암으로 하늘나라로 간 역시 유쾌하고 엉뚱한 생각으로 날 늘 재미나게 해주셨던 우리엄마는 친구가 되었을까?
그래서인지 더 애착이 간다.
재미나기도 하지만 따끔하게 꼬집는 그녀의 책 내용을 조금 살펴보자.
93쪽
더구나 식욕과 배설 욕구 모두 생리현상이지만, 비교해보면 전자의 '인풋'에는 신분이나 계급차, 개인차가 현저한데 반해, 후자인 '아웃풋'에는 기본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 "미스 유니버스도, 총리도, 박사도, 영부인도 똥오줌이 배에 차지 않도록 할 수는 없는 일. 냄새나는데 뚜껑을 덮을 수는 있어도 품위 있는 척, 잘난 척하는 우리 인간도 엄연히 냄새나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게 좋겠다."
146쪽
어느 언어라도 다른 나라 말로 번역된 정보는 그 언어가 짊어진 정보량의 수백 분의 일, 아니 수천 분의 일도 안 된다. 즉 한 언어를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정보량은 전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어느 언어든 그 언어 특유의 발상법이랄까, 세계관을 내포하고 있다.
147쪽
정말 해결할 마음이 있다면 외세는 일제히 손을 떼야 한다. 폭격기로 폭격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구 유고 내 모든 민족의 말로 쓰인 전단을 하늘에서 뿌리는 게 어떨까. 전단에는 이렇게 쓰는 게 좋겠다. "부디 원도 한도 없이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서로 싸워주세요. 그 뒤에 남을 빈 땅에 대해서는 염려 마시고요. 유럽에는 영토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나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164쪽
"어느 나라든 미각은 그 나라의 지역적 풍토나 기후 같은 자연 조건, 역사 등에 바탕을 두고, 오랜 생활습관의 일부인 식생활로부터 생겨난 거야. 어떤 민족이 맛있다고 늘 즐기는 요리를 맛없다며 일방적으로 단정하는 건 진짜 오만불손한 말이야. 듣기 거북하다고."
206쪽
"부모가 너무 많은 배려를 하면 아이들 스스로 미아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고 노력할 여지를 박탈해버리게 된다. 집시 부모는 아예 그런 배려를 하지 않으니 오히려 아이들의 능력이 커지느 ㄴ것이다. 미아를 만들지 않으려면 이 방법이 확실하다."라고 니키친 씨는 마무리했다.
267쪽
'깨진 접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 접시를 본이이 깨버렸다면 얼마나 후회스럽고 자책에 괴로울까. 그런데 신은 그 접시를 깨는 불행을 내가 대신하도록 했다. 그러니 신경 쓸 것 없으며,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다.'라는 논리가 성립된 거죠. 이 논리에 납득, 아니 적어도 익숙해지기란 어려울지 몰라요. 그런데 이런 발상법이 있다는 것 자체가 어쩐지 재미있지 않아요? 정말 생각하기 나름이에요. 소중히 여기는 접시를 남이 깼는데도 '아, 내가 깨지 않아서 다행이야'라고 생각하고, 깬 쪽은 깬 대로 '아, 상대방의 불행을 내가 대신해주었다.'라고 생각하죠. 서로가 좋게 좋게 생각하는 거죠.
편집에 관해서는 따로 할 말이 없다.
다른 일본인이 지은 책에 대비하면 번역도 매끄럽게, 문법도 틀린 곳이 없이 매우 잘했다.
정말 여러모로 마음에 드는 책이다.
단지, 101쪽 아래에서 4번째줄 "한일합방"이라는 말을 "일제침략"으로 바꿔줬으면 좋겠다.
이제 나는, [헨리 페트로스키], [데이비드 보더니스] 이후로 [요네하라 마리]의 왕팬이 되련다. ㅋㅋ
마리 여사의 재치와 유머, 완전 사랑스럽다.
강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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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문화와 제대로 섞이지 못하는 문화에 미래는 없다. 그것은 계속해서 근친교배를 통하여 혈통을 이어가는 경우 결국 혈통의 유지조차 힘들어지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과도 일맥상통한다. (심지어 동물계에서도 순종의 경우 믹스종에 비해 건강 상으로는 더욱 약하지 않은가) 요네하라 마리 여사의 <마녀의 한 다스>는 어쩌면 문화의 믹스야말로 건강한 미래의 문화를 위한 기본 조건임을 은근하게 설파하는 책일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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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다스라고 하면 얼마일까? 대개의 사람들은 12개를 말하겠지만, 러시아의 마법사들에게 한다스는 13개이다. 세상에서 당연하게 상식으로 받아지고 있다고 우리가 믿는 것들은, 사실 우리 주변의 국소적인 상실일지 모른다. 저자 요네하라 마리는 이런 얘기를 유머와 실수담을 듬뿍 섞어서, 우리가 무지에 대해 절대 창피함을 느끼거나 분노하지 않도록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동시통역사로서 세계 곳곳을 누비벼 일어나는 실수담만 묶어놓은 것 같은 유쾌한 책이다. 하지만 가벼우면서도, 무시할 수 없는 아픈 현실들에 대해서도 집어내고 있어 읽고나면 세상이 여러모로 다시 보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에피소드는 어째서 세계 각국엔 하반신과 관련된 비슷한 어휘가 많을 것인가에 대한 풍부하고 다채로운 예시이다. 오랫동안 저자 역시 자신의 관심사가 아닌지에 대해 의심해왔지만, 사실 하반신과 관련된 단어는 어느 나라가 풍부하게 포함하고 있고, 길지 않아 겹칠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조금은 미심쩍은 결론을 이끌어낸다.
이 작품보다 전에 나온 '미녀냐?추녀냐?'에 비해 좀 더 유해진 느낌으로 쉽게 읽을 수 있는 괜찮은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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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당연하다고 여겨지던 것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근거가 전혀 없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판명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인류학의 사회진화론이 그랬다. '문화의 우열이 존재하기 때문에 더 진보한 서구 열강이 아직 문명화가 덜 된 대륙의 원주민들을 지배할 수 있다' 라는 논리를 뒷받침하는데 사용된 사회진화론은 전 세계 인들이 한데 뒤섞여 살고 있는 오늘날의 글로벌 사회에서 더이상 통용되지 않는 이론이 되었다. 진작에 폐기됐던 문화진화론 대신 인류학의 다른 가치가 21세기 들어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바로 문화상대주의다. 지역 마다 주어진 환경과 위치, 각자가 가진 역사적 사건 등과 같은 조건에 의해 발생한 각 지역 고유의 문화는 모두 어떤 우열이 없는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렇기때문에 자문화 뿐만 아니라 모든 문화를 존중하고 인정해야 한다는 문화 상대주의는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세계시민이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기본 소양 중 하나가 됐다. [마녀의 한 다스]는 이런 인류학의 문화 상대주의를 잘 보여준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 다스는 보통 12개다. 그러나 마녀에게 한 다스는 13개라고 한다. 기독교 문화에서 13은 불길한 숫자, 마녀의 숫자다. 반대로 12는 좋은 숫자에 속한다. 13은 12를 홀리는 악마의 숫자에 해당하는 말인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나 일본 같은 동양권 문화에서 13은 오히려 좋은 숫자에 해당한다. 중국에선 음력 3월 13일이면 13세 소년, 소녀가 옷을 차려 입고 보살에게 참배하는 '13참배'라는 행사가 열린다. 그날은 절에서 13가지 과자를 팔아 복을 빌기도 한다. 한 가지 더 저자가 소개한 문화 상대주의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왕자가 혼자 일본에 왔다 눈에 홀딱 반한 차가 있었다. 호화로고 화려했으며 기품있고 위엄도 있는, 그가 지금까지 찾아다닌 차 중 가장 이상적인 차였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공짜로 줘도 결코 이 차로 출근도, 여행도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 차는 과연 무엇일까? 정답은 영구차다. 이 이야기는 사우디아리바에서는 일본이나 한국처럼 영구차로 시신을 모시는 문화가 없기 때문에 생긴 유머다. 책은 이런 사우디아라비아 왕자의 이야기처럼 전혀 낯선 문화와 도시에 떨어진 이방인의 시선을 쫓아가는 식의 전개를 이루고 있다. 이스탄불의 일본인, 마닐라의 스위스인, 로마의 중국인, 모스크바의 베트남인 같은 외부인의 시선을 전해주는 일화는 '누구나 마녀가 될 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엮으로 타인과 상대방의 문화를 존중하고 인정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만든다. 중세 시대에 마녀로 몰릴 사람들 대부분은 사실 마녀가 아니었다. 악마를 추종하지도 않았고 신비로운 힘을 갖지도 못했다. 당시 유럽에는 이 마을 저 마을 떠돌아 다니는 집시들이 많았는데 그들이 주로 마녀로 몰렸다. 마을 사람들은 외부인으로부터 자신들의 마을과 공동체를 지킨다는 명목 아래 집시를 마녀로 몰아 죽인 것이다. 그들의 사고방식에 집시들의 문화는 더럽고 사악한, 끔찍한 저주를 부르는 악마들의 문화, 절대 가까이 해서는 안 되는 문화였던 것이다. 결국 집시들 대부분이 유럽 곳곳, 어느 곳에나 존재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채, 죽음을 맞이한 자들이었다. 주류사회에 편입되지 못한 '마이너리티'였다는 이유만으로 죽은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주변에서 이 마녀들을 볼 수 있다. 대림동의 조선족, 안산의 외국인 노동자, 서울역 주변의 노숙인들... 모두가 이 시대로 워프한 새로운 마녀들이다. 이들을 마녀로 몰아 불구덩이 속에 쳐 넣을 수도, 아니면 그들 역시 마녀가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생각으로 존중하고 인격적으로 대해 주류 사회에 들어오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또 모른다. 그들을 마녀로 단죄하는 우리들이야말로 사회를 실제로 좌지우지 하는 권력층들에게 그들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마녀가 아닐지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