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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지고지순하며, 아름답다, 라는 인식은 인간에게 뿌리 깊게 내린 고착된 생각이다. 사랑은 신성불가침의 성역이므로 누구도 막무가내로 대들며 사랑을 침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사랑은 없다’의 저자 '로라 키프니스'는 사랑이 인간세상에 누려온 전횡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얼마나 충격이 큰지 안전벨트를 단단히 조여매고 운행(독서)하기를 주의사항으로 들었다. 즉 지금까지 인간 내면을 지배 해 온 사랑을 송두리째 뿌리 뽑아서 판이하게 이식하겠다는 것이다. 그 반향의 첫 단계가 사랑은 '힘겨운 노동'이다. 마르크스와 베버, 프랑크푸르트학파인 마르쿠제, 빌헬름 라이히와 프로이트를 등장시켜 힘겨운 노동의 단서를 찾아내고 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소외된 노동의 가장 최신의 상태가 사랑이라는 개념을 정립하는데 인용되고, 종교적인 금욕주의를 내세워 노동윤리를 창시한 베버는 그 자신이 불륜의 주인공이 되어 고정된 윤리관에 순종을 저버린 경우임이 드러나 있다. 가족제도는 협소하고 획일적인 공간으로 인간을 집어 넣어버리는 잔인한 제도이다. 그 틀 안에 들어가기를 주저하면 사랑이 없는 사람으로 매도되어진다. 불륜은 윤리에 저항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온갖 사회적 시스템은 진압대를 앞세워 제압해버린다. 저자는 불륜 때문에 온갖 치욕스런 말이란 말을 모두 들어야 한다면, 그것은 가정을 이루고 사는 커플들의 세상이 고분고분 순종하는 시민을 기르는 훈련소가 되었다고 보고 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였다. 불륜은 부정한 죄로 다스려 졌다. 간통죄는 현재 거의 사장된 법이 되어 '성 결정'에 있어서 개인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성숙의 대가인지 저항의 대가인지는 구분이 어렵지만 간통은 죄로 다스리지 않는 쪽이다. 불륜의 등장은 일부일처제의 제도와 맞물려 파생한 그 배면이다. 일부일처제는 부계사회의 남성지배적인 제도였으며, 남성의 경제적, 제도적 지배가 강할수록 일부일처제는 존속의 기틀을 더 강하게 다져진다고 보고 있다. 인류사에 일부일처제(모노가미)처럼 인간을 속박한 제도가 있을까 싶다. 이 체제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가장 견고한 사회적 장치인데, 예의 '안됩니다' 투의 가정생활의 금기 사항을 적나라하게 밝혀주고 있는데, 부부(연인)의 사이에서 상대의 간섭에 관한 내용을 읽다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실상을 그대로 나열한 느낌 때문이다. 나 역시 아내로부터 듣는 지청구와 수많은 금기 때문에 집과 가정만 알고 살아야 한다. 물론 아내도 나(남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일들을 접고 살까! '미셀 푸고'가 '감시와 처벌' 등에서 밝힌 새로운 형태의 격리시설과 조직을 통하여 사회를 통제하고 있다고 하였지만, 가정생활 보다 더 격리되어 있는 사회시설이 없음을 간과했다고 한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그래서 저자는 '가정이라는 강제수용소'를 떠올렸나 보다. 저자가 "가정이라는 강제수용소", "불륜의 미학"등 여러 가지 자극적인 소재를 선택하면서도 전혀 불륜을 조장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사랑에 대한 -이성애든 동성애든-나름의 견해를 펼쳐 보이고 있다. 영화나 소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가, 철학자들의 사생활을 동원하여 저자가 관통하는 "사랑은 없다." 라는 발칙한 주장에 합류시키고 있다. 그러나 저자의 권유에 의해서 안전벨트를 단단히 조여 맺지만, 나는 힘을 들이거나 위험을 느끼지 않고 운행(독서)했다. 도발적이다, 폭발적이다 이런 느낌보다는 사랑의 재점검, 재확인으로 읽혀진다.
일부일처제에 대한 가벼운 시비(?)를 건 '아내가 결혼했다.' 라는 소설과 영화를 보고 '무슨 말 같잖은 이야기야'라고 욕을 뱉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접하고 나면 느낌이 다를 것이다. 아니 수긍 한 사람도 더 깊은 사랑의 실체를 알 것이다. 독서는 다양한 매력을 주는 것임을 느끼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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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교 모임에 나가거나 가장 듣기 싫은 질문 두 가지가 있다. 1. [독신남녀에게] 왜 결혼 안하세요? 2. [아이 없는 부부에게] 왜 아직 아이 안 가져요? 멀쩡한 사람이라면 이성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전제. 그것은 모두가 지켜야 하는 사회적 규준이므로, 안 지키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라는 결론. 그런 논리로 잘 모르는 사람에게 당연하다는 듯한 얼굴로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과 마주치면 그저 생각나는 건 알코올 뿐. (답하면? 그 자리에서 나의 손을 부여잡고 밤새 울어라도 줄 작정인가?) "사랑은 없다"는 딱히 할 말이 없을 때 낯선 이에게 저 흉악한 질문들을 던지는 사람들이 부디 읽어주었으면 하는 책이다. 저자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결혼과 가정으로 이어져 사회유지와 통제, 억압의 기제로 사용되는 사랑의 제도화에 반론을 제기해보자는 거다. 사회학적 이론들을 바탕으로 어떻게 사랑이 "노동"이 되어버렸는지, 가정이 강제수용소가 되어버렸는지에 대한 논지를 전개해 나간다. 그리고 자유를 빼앗긴 가정생활, 복종을 요구하는 일부일처제 아래서 그래도 사랑을 찾는 용감한 사람들이 접어드는 길이 불륜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불륜의 미학"이라는 과감한 제목을 붙이긴 했지만, 결국 사람들이 왜 불륜에 끌리는지,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그 길도 어떻게 파국을 맞게 되는지에 대한 고찰이다. 읽어 보면 일부일처제의 부정이나 불륜의 미화가 목적이라기 보다, 저자가 마지막에 말하듯 "사랑이라는 개념에 대해 장난삼아 제멋대로 상상해 보는 것"뿐이다. 마지막 장도 긍정적으로 "행복을 찾아서" 아닌가. 일부일처제가 당연한 것인지, 결혼과 가정이라는 제도가 과연 사랑을 영속시킬 수 있는 것인지, 이런 도발적인 질문들과 마주하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가 어떤 주장을 하느냐보다, 그에 대해 내가 어떤 답을 주느냐가 더 의미 있다. 서문에 밝히듯, 논쟁을 위한 글이므로 사회적 관습이나 통용되는 윤리에 그리 제약받지 않고 거침없이 써내려간다. (너무 거침없이 써내려가서 글이 중구난방이 되어버릴 때도 많지만) 논지 자체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만, 아무래도 사회학적 이론들을 끌어들이는 부분이 있다 보니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책 무게는 가볍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으니, 옮긴이의 글과 책 소개를 먼저 보고 나서 읽는 것도 좋을 듯. 부부와 아이가 있는 가정, 편부모 가정, 부부만 있는 가정, 독신 가정. 모두 삶의 형태다. 결혼 제도가 잘 맞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주위에는 싱글인데 행복하다고 당당하게 이야기 못하는 독신들, 사회적으로 성공했는데도 단지 결혼을 못해 위축되는 독신들, 아이 없이 결혼생활을 유지하기로 했지만 그 결정을 숨기는 부부들이 있다. 결혼도 가정도 결국 인간이 만든 제도이니, 그것을 수용할지 말지는 개인의 선택에 맡기면 될 텐데. 사회는 끊임없이 거기에 대해 판단을 내리고 행동을 통제하려 든다. 이 책을 읽다 보니 그런 부분에서 가슴 답답했던 부분들이 좀 풀리는 느낌이었다. 만만하게 하루 만에 읽을 만한 책은 아니지만, 다양한 관점에 접한다는 측면에서는 추천할 만하다. 논쟁이란 게 "나의 의견을 상대방이 수용할 때까지 큰소리로 되풀이 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만 염두에 두고 읽는다면, 머릿속에서 꽤 재미있는 토론도 가능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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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무인도에 불시착하여 혼자 살아가도 있던 주인공 척 놀랜드에게 어느날 윌슨 회사의 배구공이 떠 내려와 그는 배구공에게 윌슨이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윌슨을 친구삼아 무인도에서 외로움을 이기며 지내는 장면이 나온다. 인간은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살을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존재이기에 인간일 것이다. 이렇게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살아야만 하기 때문에 평생을 같이 하고자 우리는 결혼을 하게된다. 그러나 애초의 의도와는 다르게 결혼이라는 것이 항상 즐거운 것만도 아니고 외로움을 싹 날려주는 만능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될 때 우리는 적잖이 놀라게된다. 이러는 사이에 서로를 사랑하고 사랑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결혼 생활은 서서히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부분이 연인들은 사랑을 통해 결혼에 골인하는데 결혼이라는 제도가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탐구와 그렇게 지고지순의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사랑'이라는 개념에 관한 부분이다. 저자는 맑시즘을 통해 결혼이라는 제도를 해석한다. 결혼을 통해 저항적이던 개인은 사회 제도에 서서히 순응하게 되고 가정을 통해 만들어진 아이들은 자본주의 체제 유지를 위해 필요한 산업상비군이 된다. 그리고 그들은 부모들처럼 개인으로 존재하고 있을 때는 저항하고 사회에 대한 개혁을 요구하지만 결혼을 통해 제도 개혁보다는 자신의 가정에만 관심을 가지고 그렇게 살아간다. 사랑이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육체 관계는 구체화된 사랑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구체화된 사랑은 육체 관계를 통해 증폭되고 최고의 만족을 주게 된다. 그리고 이런 구체화된 사랑은 사랑이라는 존재를 절대화시킨다. 추상화된 사랑속에서는 육체 관계가 끼어 들 자리가 없고 이러한 추상화된 사랑은 인간의 의식을 증폭시킬 수 없어 사랑을 절대화하지 못한다. 그러나 문제는 구체화된 사랑을 통한 육체적, 정신적 만족은 절대불변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고 이제 구체화된 사랑을 만들어 주었던 육체 관계는 의무적이고 더욱 지루해져만 간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이러한 의무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자는 불륜을 제시하고 있다. 즉 결혼 전 활동적이고 적극적이며 탐구적이던 구체화된 사랑의 초창기에서 느끼던 즐거움을 불륜이라는 것을 통해 다시 한번 더 만끽하자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지루했던 삶에 활기를 불어넣자는 것이다. 결국 제도화된 관계속에서 개인의 리비도를 최대한 분출시켜 제도로부터 해방된 인간, 이러한 인간을 통해 만족된 삶을 살아가자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 책이 제시한 불륜이라는 대안은 우리사회에 많은 논란을 일으킬 것이다. 저자의 대안이 옳든 옳지 않든 저자의 말걸기에 한 번 귀를 귀울여 볼 만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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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사랑]이라는 너무나 흔하지만 누구도 함부로 단정지을 수 없는 어려운 소재를 가벼운 듯 하면서도 날카로운 터치로 글을 이어나갔다. 물론 번역작품이라 작가의 의도가 그대로 전달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글을 읽는 내내 뭔가 일침을 가하는 작가의 냉소적인 모습이 보였다.
- 사랑스럽다는 상태는 겁먹은 노동자들과 다루기 쉬운 유권자들의 상태와 눈에 띌 만큼 비슷합니다. - 본문 중에서
사랑이라는 게 정말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의문에 대한 대답을 찾기란 역시 어렵다. 그저 [사랑은 없다] 라는 강력한 제목에 끌려 글을 읽었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하는 것들이 도대체 어떤 것들일까 새삼 내 안의 사랑을 되짚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
- 사랑에 대한 저술은 방대합니다. 인생을 조언하는 책들은 망설이고 있는 욕망을 치유할 만병통치약으로 '고된 노동'을 팔아먹고 다닙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같은 질문을 되풀이해서 묻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사랑이 뭡니까?" 어떤 대답도 충분하지 않은 듯 합니다. - 본문 중에서
사랑이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답을 찾기 전에 "사랑이 정말 뭘까요?"에 대한 답을 찾아야겠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고 믿고 있는 사랑이 과연 어떤걸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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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아직도 그런 뜨뜨미지근한 것을 믿는 사람이 있나?" - 영화'타짜'中
개인이 스스로 선택한 사랑이 거꾸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기 시작한다. 욕망은 시들고 낯선 혐오감이 고개를 들 쯤에 '합창교향곡'을 배경으로 새로운 사랑의 대상이 화려하게 등장한다. 다시금 들끓는 욕망은 시간을 뒤틀어버리고 새로운 대상에 대한 집착은 불안을 동반한다. 이쯤에서 정신을 차려보자. "더 진행시킬 용의가 있는가?" 그저 하룻밤의 일탈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가정을 버리고 불륜을 선택할 수 있는가를 묻고 있는거다. 당신이 그럴 수 없다고 대답한다면 다시. "가정이라는 수용소로, 칸칸이 막혀 있는 공간으로, '성숙'이라는 느린 죽음으로 돌아가고 싶은가?" "..................."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대답이 없군요. 인생에서 가장 비참한 순간입니다."
이런 책을 두고 당돌한 책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사랑'이라는 지배이념을 어떻게든 링 위로 불러내려고 갖은 야유와 비난을 퍼부어대고 있다. 전투적인 논쟁언변 뒤에는 정연한 철학적 논리까지 마련되어 있다. '불륜'이란 단어는 가공할 사회공학의 성과에 힙입어 듣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도록 조작되었지만 이 책에서는 '사랑'이라는 속임수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 매우 쓸모있게 사용되고 있다.
50%를 넘는 이혼율, 발생건수에 힘입어 독자적인 범죄 카테고리로 분류되는 가정폭력 등은 결혼 생활에 대한 불만이 넘쳐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고 이는 일부일처제의 폐단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토론을 벌일 수 없기 때문이므로 생트집이라도 잡아야겠다는 것이 저자의 의도다. (이 책에서는 결혼, 커플, 일부일처제, 가정, 사랑 모두 한가지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저자는 커플들의 언어가 갖고 있는 현실성으로 '금지 사항'을 드는데 대부분이 비난, 명령. 징벌들의 목록으로 이 책에서 11페이지나 할애하고 있다. 사랑이 얼마나 엄격한 착취와 통제수단으로써 기능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생각해 볼 만한 질문.
"만약에 한 개인이 자신을 노예로 선출해서 자신의 자유를 포기한다면, 이것은 진정한 정치적인 자유인가?"
발칙당돌한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