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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는데 우리는 역사가 청하는 대화를 거부하거나 못 들은체 하고 살고 있다.
조선의 역사는 더욱 그러하다. 잘 안다는 핑계로, 그러나 사실은 전혀 모르는, 남들이 주입해준 날조된 사실을 역사로 알고 있다.
나는 조선이, 조선의 왕들이 싫었다. 그런데 왜 싫어하게 되었을까?
그들은 한결같이 나약하고 꿈도 없고 침략을 받으면 도망치고 충신은 내치고 간신배는 곁에 두고 내 걸 빼앗겨도 항의하나 변변히 못하고. 그래서 싫어했다.
그런데 그것이 사실인가? 정말인가?
영조와 정조는 조선후기의 기둥이 되는 왕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시대를 장희빈과 숙종 당파싸움 뒤주세자 왕비들이 꾸미는 끝없는 모략과 암투,싸움하나도 정정당당히 못하고 뒤에서 수작이나 부리는 시대로만 알고 있다.
배유안선생님의--- <초정리편지>이후 다른 눈으로 보는 정조와 정후겸이 반가웠다. 영문도 모른체 자신의 과거를 부끄럽게 여기는 이 땅의 아이들에게 제대로된 자긍심을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다르게 보기를 제시해주시는 선생님의 책에 감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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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운을 불행으로 바꿔 살았던 어리석은 자였다.
나는 졌다. 그에게도, 내 인생에도 졌다. - 본문에서
* 창경궁에서 두 소년이 막대를 가지고 놀고 있다. 한 아이는 사도세자의 아들 훗날 정조라 불리우게 될 세손 이산이고, 한 아이는 양민의 아들이었으나 화완옹주의 양자가 되어 세상의 권력을 손에 쥐게 되는 정후겸이었다. <창경궁 동무>는 바로 상대를 끌어내려야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는 극한 처지로 마주하게 되는 정조와 정후겸의 이야기다.
하나도 가지지 못한 사람이 그 하나를 바라는 마음과 아홉개를 가진 사람이 마지막 그 하나를 채우려는 마음 중 어떤 것이 더 강한 열망일까?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하나도 가지지 못한 자는 가져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 하나를 갖기 위해 걸어야 할 것도 이용할 것도 없지만, 아홉 개를 가진 자는 마지막 그 하나를 가져 완벽함을 채우기 위해 본인이 가진 아홉 개를 모두 걸어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양민의 아들로 태어난 정후겸은 원하는 대로 맘껏 공부할 수 있는 양반댁에 머무르게 된다. 인생에 그만한 행운이 더 없을 것 같이 행복해 한다. 그러나 화완옹주의 양자가 되고, 궁에서도 살아가게 되면서 그는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된다. 그가 끝내 가질 수 없는 것까지도.
역사 속 이야기를 다시 재해석 하고 쓰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이미 이야기의 줄거리와 결과를 알고 있기 때문에, 이미 알고 있는 그 무엇 외에 이야기를 끌어가는 그 하나 를 더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하나를 역사와 사람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한다. 역사 속에 단 몇 줄 때로는 단 한 줄의 기록 안에서 그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의 생각과 사랑과 우정, 인생을 건져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에 대한 따뜻하면서도 신선한 그 생각과 시선이 잘쓴 역사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나는 역사를 그리 좋아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역사나 세계사의 성적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줄줄이 나열되는 연도와 이름들 그리고 유물이나 지형들이 지금의 나와는 무관하게 느껴질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접하게 된 문학 속의 역사는 내가 배운 그런 역사들과는 사뭇 달랐다. 이야기 속 역사는 지금의 나처럼 살아 움직이며 사랑하고 슬퍼하고 아파하고 어쩔 수 없이 죽어간 사람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걸 알고 난 후 역사는 숫자나 이름의 나열이 아니었다. 그건 수없이 반복되었음에도 여전히 다시 반복되는 안타깝고 어리석은 인간들의 삶의 기록이었다. 어른이 되어서 역사 동화를 읽을 때면 어릴 때 누가 나한테 이런 책 좀 읽혀주었으면 얼마나 재미있게 역사 공부를 했을까 하는 아쉬움이었다. 그래서 고학년 아이들에게는 이런 역사 동화를 자주 권하게 된다. 이런 역사를 배경으로 한 동화들을 통해 그 시대의 사랑과 삶과 사회의 문화와 생활을 느낄 수 있다면 역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도 더 재미있게 더 관심을 가지고 역사를 이해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이런 역사 이야기가 좋은 것은 수 백년 수 천년 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역사 속 인물들의 삶과 사랑과 죽음과 성공과 실패를 통해서 지금의 나의 삶과 사랑과 성공과 실패를 되돌아 보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자신이 가진 행복을 불행으로 바꿔 살고 있지는 않은지 <창경궁 동무>이야기가 내게 묻는다. - 다락방 허뭄
추신: 역사동화를 쓰는 작가들 중에는 <아, 호동 왕자><마지막 왕자>를 쓴 강숙인의 이야기들을 좋아했는데 배유안 씨의 <초정리 편지>를 읽고는 단박에 그녀 역시 좋아하게 되었다. 이번에 나온 <창경궁 동무>도 나름 기대를 했는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재미난 이야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