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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바람이 무섭다고 했던가. 하긴, 흔히 쓰는 저 말에는, 당자가 토로할 경우 대개, '좀 쑥스럽긴 하지만, 무섭기는 고사하고, 낯설긴 하나 이미 청춘의 쥬스가 말라 버린 몸에 한 병 게토레이와도 같이 찾아와 준 이 설렘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란 고백적 의미가 아주아주 짙게 배어 있다. 그 발화상황이 남이 손가락질할 경우라면, 뭐 그저 고려장지내야 마땅하니 씹어대러 혹은 '까러' 가자는 것 이상이 아니겠고.
그래서, 그래서, 무섭다는 늦바람은 사실 무서운 게 아니라, 외려 첫사람보다도 감미로운 법이며, 그 감미로움이란, 참 형용의 모순(contradictio in adjecta)이긴 하나, 스노우 샤벳(걍 이렇게 쓰자)의 풋풋한 달콤함이 아니라, 폭 곰삭은 진국이 우러날만한, 뭐 그런 감미로움이다. 아 왜 선우용녀 할매가 세바쿠에 나와서 그러지 않던가. "(슈퍼쥬니어 시원을 가리키며) 저쪽은 이쁘긴 한데, 맛이 부족할 거 같애. 그런데 이쪽은...." 이 명대사에서 그 '이쪽'이 누구였는지는 내가 지금 까먹어서 유감이나(연예인이 아니라 모 중년탤런트의 남편이었는데 하여간 다른 쪽하고 비교될 외모의 인사는 아니었다), 하여간 박미선이나 방청객이나 참 뒤로 넘어가기 충분할 만큼, 최소한 이 망측한 세태를 압축으로 표현하는 금언이란 평가를 받을 만큼 골까는 한마디였음은 분명하다.
늦바람은 첫사랑보다 우월하다. 첫사랑이란 예컨대 투르게니예프의 그 오래된 단편에 나오듯, 그저 공연한 마음의 평지풍파와 아무 짝에도 못쓸 육체적 건강 손실만 초래할, 연상의 여인 지나이다를 향한 절망의 손짓눈짓에 불과1)할 뿐이다. 첫사랑이란 시큼하기만 한 레몬과도 같아서, 그 이름이나(레몬이란 이름은 얼마나 달콤한가. '지나이다'도 마찬가지. 나는 아직도 저 음절만 청취하면 똥털이 곤두서는 것 같다) 생긴 것만 이쁠 뿐이지, 그 맛은 두번 다시 내키지 않는 떫음 그 자체이다. 첫사랑에서 가장 높이 평가할 것은 그 '첫사랑'이란 소리울림 외에 아무것도 없2)다. 반면 늦바람은 어떤가? 늦바람은 진정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노땅만이 맛볼 수 있고 꼰대만을 위해 존재하는, 순도 백퍼의 테일러메이드 실버상품이다. 첫사랑은 상대도 까다롭고 종내 가망도 없고 그 세팅도 번거롭기 그지없으나(애들한테 물어보면 단지 귀찮다는 이유만으로 차라리 동성을 찾는다고도 한다!), 늦바람은 몸빼바지, 츄리닝에 쓰레빠 바람도 아무 관계없고 그 배경이 심지어 황량한 몽골로의 묻지마관광이라고 해도 하등의 지장 없는(아니 더 제격인) 것. 이러니 어찌 둘의 우열을 논할 수가 있겠는가. 후자의 명찰꼬라지가 다만 다소 ㅈ같아서 일시의 착시만 우발할 뿐, 첨부터 발상이 무리수인 미스매치였을 뿐이다.
그 무섭다는 늦바람은 사실 '그런것도있다'는 걸 충분히 알기에 전혀 무섭지 않으니, 진짜 무섭다는 건 대체 이런 징후를 뭘로 규정해야 할지 그 변변한 용어마련조차 쉽지 않은 그런 현상을 두고나 그리 일러야 한다. 예를 들면, 어렸을 적부터 만날 봐 오던 옆집 여자애가 갑자기 공주로 보이기 시작할 때 같은, '애가 갑자기 왜 이러지?'의 쇼크가 물밀듯 밀려오는 그런 감정의 격동 같은 것. 이런 예는, 아는 닥터에게 컨설팅을 청하거나, 심지어 인류의 병증을 날카로운 예지, 직관으로 의학전문가보다 먼저 캐취하는 지표식물과도 같은 문학가(이 이야기는 다음에 길게 하자)의 어떤 작품을 숙독, 정독해도 답이 나오질 않는, 진정 막막하고 당혹스러워 갈피를 못 잡는 그런 마음의 쿵쾅거림, '죽음에 이르는 병(키에르케고르의 표현을 빌리면)' 인 거시다....
있긴 있었는데 그게 머시냐,... 바로 운수불길하게도 좀 많이 거슬러 올라가야 만날 수 있었던, '돈키호테'였던 것! 여기보면 과연 노망한 노인네가 푸줏간집 딸을 둘시네아 공주로 모시며 그녀의 챔피언이 되겠다고 맹세질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후에 펼쳐지는 활극이야 거론할 필요없고, 좌우간 고작 찾아낸 '전거'가 이따위였다니! 이건 첫사랑도 늦바람도 그 어느 설렘도 아닌, 그저 발광의 서막에 불과했다는 말인가! 부르르....
나에게 있어 뤼팽은 이제 첫사랑이자 늦바람의 대상이다. 그런 말은 개념성립이 불가능한 언어도단이라고 누가 지적한다면, 나는 차라리 '노망'이라는 치욕의 주홍글씨를 낯판대기에 새길지언정, 이 기쁨, 이 설렘을 삭감, 부인하는 부정직,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싶지는 않다. 아무리 창피하고 남우세스러워도 내가 좋으면 그만인 것이고, 나만의 기쁨에다 다른 누구의 힘과 손을 빌려 불순한 과대포장을 할 이유 없다. 좋은 건 그저 좋기에 좋은 것이고, 타인의 기준이란 그것이 아무리 sophisticated하고 respect-deserving하며 기타 조르지오알마니크리스찬디올남창한테총마자죽은지아니베르사체쿵따리샤바라틱하다 한들 나의 충만한 순정의 희열에 차라리 발 한 자리 들여놓을 데 없는 것이다.
소설에 대해 설을 풀어보려 했으나 이런 걸작에 대곤 그 한마디 한마디가 부질없는 스포일링이 될 뿐이라 짧게만 언급하겠다. 만약 나보고 '몽테크리스토 백작'과 '레미제라블'을 두고 연대순으로 배열하라면 아마 사전 지식 없이도 답을 맞힐 수 있을 것이다. 둘다 낭만주의의 대표 주자이긴 하나 아무래도 후자가 더 근대적이고 더 세련된 느낌이 오기 때문이다(스케일이나 주제의식은 일단 제외하고 스타일만 볼 때에도 그렇단 거다). 헌데, 만약 아무 상식 없이 느낌만으로 판단하라면, '다빈치코드'와 이 작품을 두고 과연 올바른 순서로 나이를 매길 수 있을까? 혹 네 작품을 나란히 놓자면, 나는 아마 '다빈치..'를 가장 늙은 경로석에 배치할 것이다. 그 작품은 그만큼 시대를 퇴보한 삼류 통속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반면 이 작품은 그 넷 중 가장 싱싱하고 잘 다듬어진 팽팽하고 단단한 단백질 충만의 새내기라고 해도 될 것 같다. 그 플롯의 정교함이나, 다 알고 짐짓 저질러주는 삐끗파격의 기교, 어느 면으로 봐도 가장 모던한 시대의 총아의 외관이라서 그렇다. 나는 내가 과연 익히 알던 그 뤼팽을 읽고 있는 것이 맞는지 몇 번이나 표지를 들추었을 정도였다. 말미에 실린 <암염소가죽...>은 좀 뜬금없다. 역자 성 선생은 동시대 평론가의 언급을 빌려 작품을 칭찬하시나 내 보기엔 좀 아니다 싶었다.
1) 그런 표현이 투르게니예프 원작에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내가 지어낸 말임. 2)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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