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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중간첩]에 던지는 몇 가지 시선들
"영화 [이중간첩]에 던지는 몇 가지 시선들" 내용보기
1)이데올로기의 신념이 사랑 앞에 좌절되다? [고수부지의 개자식들]을 비롯하여 [공공의 적]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던 영화아카데미 14기 출신의 김현정은 이제 갓 서른을 넘기지 않은 신인 감독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느낄만한 세대는 당연히 아니었고, 이는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단적으로 나타난다. "결국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점이 이데올로
"영화 [이중간첩]에 던지는 몇 가지 시선들" 내용보기
1)이데올로기의 신념이 사랑 앞에 좌절되다? [고수부지의 개자식들]을 비롯하여 [공공의 적]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던 영화아카데미 14기 출신의 김현정은 이제 갓 서른을 넘기지 않은 신인 감독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느낄만한 세대는 당연히 아니었고, 이는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단적으로 나타난다. "결국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점이 이데올로기라기보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좌절을 겪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회주의나 이념 같은 것은 그런 인물을 보여주기 위한 세팅 같은 거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감독이 말하는 신념이 이데올로기와 별개의 것으로 치부할 수 있냐는 것이다. 알겠지만, 림병호는 윤수미에 의해 자신이 죽지 않게 된 것을 알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이 죽으라면 죽는 거야.” 결국 그의 신념은 당의 이념을 뿌리로 두고 나온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당으로부터의 불신과 그에 따른 불복종은 결국 도망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언젠가 죽게 될 수 있음을 이미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림병호를 안기부에까지 끌어들이며 신임을 주었던 백승철도 서울이 내려다보이는 남산타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었다. "네가 살고 싶어 내려왔다면 도와줄테지만,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널 쏘게 될 테니깐." 결국 북한의 당이나 백승철로 상징되는 안기부는 림병호의 신념만큼이나 신뢰를 주었다기보다, 필요에 의해 얼마든지 버릴 수도 혹은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러한 모든 시대적 상황과 이데올로기를 감독은 한낱 세팅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은 영화를 보면서 더욱 이해할 없게(이해할 수 없게 만드는)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남한에서 나고 자라났다는 배경과 함께 아버지의 숙청을 계기로 신념이 당에 의해 얼마든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일찍이 깨우쳤던 윤수미가 아버지라 할 수 있을만큼 따랐던 송경만의 체포를 통해 남아있던 림병호만은 죽지 않기를 바라는 인간애로 해석된다. 윤수미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림병호를 사랑해서 도망친 것으로 보는 것이 전부라면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림병호가 윤수미를 사랑하기 때문에 제3국으로 도망쳤다기 보다 백승철(천호진)이 [유학생 간첩단 조작사건]을 통해 림병호를 송경식과 함께 밀어넣어 자신의 자리를 더욱 튼튼히 하고자 하던 계획을 림병호가 알아차렸기 때문에 처음 만났을 때는 멀리 했던 독일 기자에게 안전한 제3국행의 보장과 함께 거래를 했던 것이라고 파악되기 때문이다. 2) 림병호의 죽음- “2라는 철저한 대립 앞에 제 3이란 없다.” 결말은 허망하다. 아니, 관객들에게조차 예측되어 있을 만큼(오히려 그것이 관객의 짐을 덜어주는 안심으로 작용하는지도) 제3국의 독일 기자와의 거래를 통해 또 다른 3국행으로서 윤수미와 함께 살게 되지만, 결국 흑인의 암살범에 의해 피살되고 만다. 평론가 정성일은 북한을 남한영화가 잉여존재로서 바라본다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모든 남한 영화들이 이미 그 자체로 매끈하고 완결된 세상이기 때문에, 북한의 그 어떤 대상도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침투한 테러리스트이건, 우연히 마주친 되는 북한병사이건, 의도적으로 귀순한 위장간첩이건 마찬가지로 그들 모두 남한에 그만큼 비어 있는 구멍을 채우기 위해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들어올 수 없기 때문에 결국은 다시 질서를 찾기 위해서 과잉 하는 이 대상은 결국 삭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성일은 또 영화가 림병호를 마지막에 기어이 죽이고서야 끝을 내지만, 아무도 누가 죽였는지 모른다는 것이고, 이 모른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귀순의도를 제대로 캐묻지도 않으면서 남한에 들여놓고도, 나중에는 아무도 모르게 죽이는, 그 모름이 결국 관객으로 하여금 무능력한 구경꾼으로 남게 한다고 말이다. 결국 모든 진실은 알 수 없는 채로 남겨지고, 잘못은 누구의 탓인지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죄의식을 가질 필요도 더더군다나 없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평론가 이상용은 두 국가로부터 버려진 자에게 자유란 없다라는 전제를 두었다. [수미와 함께 남미의 한 도시에서 숨어사는 림병호. 그에게는 최후의 킬러가 배달된다. 그를 남측에서 보낸 것인지, 북측에서 보낸 것인지는 전혀 설명되지 않은 채 말이다. 이 침묵의 의미는 무섭다. 열려 있는 결말의 구조는 그의 죽음을 남측과 북측 모두가 원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이중간첩>이 취할 수 있는 최상의 입장이기도 하다. ] 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40년도 더 오래전에 나온 최인훈의 [광장]처럼 두 체제의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제3국행에서 자살하고 마는 것과 같은 해석이라 생각된다. 이렇게 되어버리면, 영화는 정성일의 말처럼 관객들이 림병호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지에 대한 공간은 없게 되는 것이다. 3)분단을 넘어서 영화 [이중간첩]은 3년 만에 돌아온 한석규의 재기작으로서의 대중적인 기대만큼이나 별로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그것은 영화 [쉬리]와 [공동경비구역]의 흥행과는 비교할 때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제3자의 개입이나 도피가 결국 죽음으로밖에 설명이 안 되는 최인훈의 광장식 네러티브만이 아니더라도, 21C를 넘어가는 탈근대시대에 더 이상 1980년대로 잡고 이데올로기적 대립에 희생당하는 개인이라는 서사구도가 관객들로부터 관심을 얻어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쉬리에서 비록 북한을 공격적으로 그려내고 있지만, 리방희와 유승원의 애증관계가 더 크게 부각되었다는 점 그리고 공동경비구역의 삼엄한 공간을 남북한 경비병의 형제애의 상상적 공간으로 바꾸어내었다는 점이 시대의 흐름에 반영하고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의 대중적 흥행을 논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직도 최인훈의 광장이후 김원일의 장마로서 계속되던 분단문학에 대한 다양한 대안이나 제시가 없다는 점이 서른 살을 갓 넘긴 젊은 시나리오 작가인 김현정 감독에게는 과거로의 소급으로밖에 이어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후 나오게 될(나와야 될) 분단의 영화에 대해서 만큼은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요원해지는 것은 아무래도 지금의 남한은 아직까지도 송두율교수처럼 경계인에 대한 배타적 처리만큼이나 그만큼의 다양한 정보를 접하지 못하는 한국의 사회 때문일 것이다.
y****n 2004.04.1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