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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과 제국 (Peoples and Empires)
안토니 파그덴 지음
한은경 옮김
을유문화사 출판
저자 안토니 파그덴은 오랜 기간 케임브리지 역사 교수로서 킹스 칼리지 펠로로 재직했으며 하버드 대학의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존스홉킨스 대학 역사학 교수이다. 《신세계의 유럽충돌》, 《유럽의 생각》, 《전세계의 지배자》 등을 집필했다.
역사를 안다는 것은 끊임없는 사고의 연속이라 생각한다. 역사서에서 얻은 정보를 통해 퍼즐을 맞춰 나가는 과정이며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는 구간에 대해 추론하고 대입해보는 과정을 거쳐 유구한 인류의 발자취를 추적한다. 아쉽게도 내가 가진 역사적 흐름은 빈약하기 이를데 없음을 알고, 나의 지적한계와 제한된 시간으로 인해 공부를 더한다고 큰 발전이 없으리란 것도 알지만 지금보다는 더 알고 싶고 짧은 기간이라 할지라도 보다 선명한 역사를 알고 싶기 때문에 역사서를 다시 잡을 수 밖에 없다.
《민족과 제국》은 그리스 문명을 시작으로 약 3천 년이라는 시간 제국이라 칭해졌거나 제국이라 부를만한 팽창을 보인 국가를 대상으로 한다. 그리스 문명은 열악한 이동수단과 무기로 전쟁에 승리하며 자신들의 세력을 넓히고 문화를 전파했다. 환경에 종속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지중해 건너까지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스를 이어 등장한 로마는 현대인의 입장으로 생각해도 진정한 제국이라 평가받는다. 아프리카, 유럽, 서아시아를 아우르는 광대한 면적과 이를 다스리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통치제도는 로마가 오랜시간 '제국'의 위상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된다. 군주제와 공화정을 거쳐 다시 군주제로 회귀하는 등 다양한 정치적 변모는 시대적 불안정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나 현대정치제도의 초석이 된다는 점에서 그리스 문화와 함께 높은 가치를 지닌다.
로마 제국이 저물고 유럽 대륙의 암흑기라 칭해지는 중세가 10세기 가량 지속된다. 15세기 후반부터 대항해시대가 열리고 신대륙의 발견과 새로운 문물의 도입은 유럽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초기 대항해 시대를 이끈 스페인과 포르투칼에게 신대륙의 발견은 각종 수탈을 통한 막대한 부의 축적을 의미했기에 많은 귀족과 상인이 동참하게 된다. 스페인과 포르투칼에 이어 영국, 네델란드, 프랑스가 대항해시대에 합류했고 수탈과 식민지화를 통해 지배범위를 넓혀갔다. 지배권이나 자원을 두고 이권국 간의 분쟁이 전쟁으로 번지는 경우도 있었으나 결국은 사이좋게(?) 수탈을 자행하며 전지구적으로 서유럽 세력은 팽창해 나간다. 신앙의 전파와 신의 의지를 빌미로 자신들의 약탈 행위를 정당화하였으며, 유색인종을 노예로 삼아 노동력까지 착취한 행위조차 신의 이름으로 선을 베푸는 행위라 간주했다. 20세기 초까지 유럽 열강들의 세력팽창은 주도적인 국가만 달라졌을뿐 지속되었다. 중국과 인도까지 유럽열강과 신흥열강(미국, 일본)에 의해 수탈받는 상황에 놓인다. 20세기 중반기를 거치며 제국이라 일컬어지던 국가는 통제권을 상실하거나 약화되었으며 현대로 오면서 대부분 사라졌다. 그러나 21세기에도 강대국과 약소국은 분명히 구분되며 제국의 흐름은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민족과 제국》을 읽으며 주도적 역사를 써내려간 제국의 흥망성쇠를 엿본다. 전쟁을 통해 승리한 자에게 영광을 몰아주는 경향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며 강대국에 의한 역사의 전개 또한 유사하다. 지배와 피지배의 대상, 수단, 방법은 변했으나 현대 사회도 약육강식의 원리에 지배되고 있다. 특히 강대국에 둘러싸여 눈치밥을 먹고 살아야하는 한국의 입장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지배와 피지배를 목격할 수 있다. '역사는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처럼 수천년 전의 역사적 사건은 시대를 넘어 껍데기만 바뀐 채로 현대까지 이어졌으며 다른 형태로 외관만 바뀌어 미래로 이어지리라 생각한다. 역사의 흐름을 살펴본 것 외에 또다른 수확이 있다면 이 책을 통해 '라스 카사스'라는 인물을 접한 것이다. 유럽이 전 지구적으로 팽창해나가던 16세기, 스페인과 포르투칼은 선두주자였으며 서쪽 대양으로 진출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코르테스나 피사로는 갖은 방법으로 학살과 착취를 자행했다. 이 와중에 라스 카사스는 스페인 국왕에게 인디언의 인권을 말하고 탄압을 중단해주길 건의한 종교인이다. 당시 유럽을 떠나 아메리카로 진출한 소수의 유럽인들이 이권에 취해 하느님을 팔아 자신들의 착취나 탄압(원주민과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을 정당화하고 세를 불리는데 혈안이 돼있을 때, 인권은 인디언을 포함한 모든 인간에게 있고 존중해야함을 주장한 라스 카사스는 기억할 가치가 있는 이름이다. 노예무역에서도 라스 카사스와 같은 인물이 등장해 박애정신을 보이기도 한다. 서구 열강이 세력을 팽창해 다른 대륙과 인종에 학살을 자행하고 착취를 정당화하는데 신의 이름을 빌려주고 응원해준 것이 종교(신앙)인데...피지배자의 인권과 평화를 주장한 사람들 또한 종교인이 많고 이들도 신의 뜻을 빌어썼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현재 읽고 있는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어 책을 읽어나가는데 도움을 받았으며 서양 문명과 세계구도를 이해하고 정리하는 데도 보탬이 된 책이다. 세계사적 흐름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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