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 실록에 왕의 가족에 대한 보충설명이 추가된 정도의 내용이다 원래 역사에 관심이 많아 역사관련서적을 꾸준히 읽는 편인데 이 책은 저자자신의 책인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과 가람에서 나온 조선의 왕을 기본으로한 내용에 왕의 가족에 대한 내용이 추가된것이다 내용면에서 그다지 새로운 것은 못느꼈다 그리고 한가지 얘기하고 싶은것은 정조가 서출로서 왕이 되었다는 내용인데 이것은 저자의 관점인것 같다 사실 정조는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적장자이다(그의 위로 형이 있었으나 아주 어려서 죽었으므로 정조가 사도세자의 적장자이다)그러나 사도세자가 노론과 소론의 파워게임에 희생자가 되어 폐서인되어 뒤주에 갇혀 죽게되는 과정에서 혜경궁 홍씨와 그 자손들도 모두 폐서인되어 궁에서 쫓겨나게된다.그리고 당시 세손이었던 정조는 유일한 왕위계승자였으므로 그를 보호하기 위해 어려서죽은 영조의 장자인 효장세자(사도세자의 이복형으로 10세의 나이에 병으로 죽었다.)의 양자로 입적시켰다. 사도세자의 사후 얼마 지나지않아 혜경궁 홍씨와 자손들은 복권되어 다시 궁에 들어오게 되지만 정조와 혜경궁은 법적으로는 모자지간이 아닌 숙모와 조카지간이 되었다. 그러므로 정조는 사도세자의 적장자로서가 아니라 이미 죽은 효장세자의 양자로서 왕위에 오른것이 된다.그리고 효장세자 역시 적자가 아닌 후궁에서 난 왕자이다. 이런 관계로 저자인 박영규씨는 태생이 아닌 법적인 면에서 볼때 정조가 서자출신 왕이라는 생각을 갖게된것 같다. 그외 다른 내용에서는 그다지 논란이 될만한 것은 없다고 본다. 아직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을 읽지 않았다면 읽어볼만한 책이지만 이미 읽었다면 별로 재미를 못 느낄 책이다. |
| 한권으로 보는 조선왕조 실록이 공전의 히트를 치고난 후 탄력받아서(?)그 책에 대한 추가적인 해설판 격으로 낸 책이 아닌가 싶다. (사실 난 한권으로 보는 조선왕조 실록이 왜 그리 많이 팔렸는지 잘 이해를 못하는 사람이지만..) 어쨌든 이 책은 한권으로 보는 조선왕조 실록보다도 훨씬더 실망스러운 책이었다. 그 책에도 나오는 왕비와 왕자들 이야기, 일부외척들에 대한 이야기들만 부풀려서 쓴 책이다. 이런류의 책들이 많이 팔리면서 일반대중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높여주었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요인이 분명 있겠지만 이 책이나 한권으로보는 조선왕조 실록 등의 책은 지나치게 왕조사 위주로만 서술을 했기 때문에 그것이 역사의 전부인양 오인할 소지가 있고 역사를 흥미로만 접근할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텔레비전 사극과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삼국시대야 사료 자체가 부족해서 어쩔 수없다 하더라도 조선시대는 왕조사 이외에도 생활사 등을 서술한 사료가 풍부하지 않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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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조선왕실의 문화와 역사를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전반적이기는 하지만 대략적인 정도라서 어느 정도 조선 역사에 대한 지식이 있는 독자라면 별달리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없을 듯 싶다. 마치 이미 알고 있는 단어들을 집대성해 놓은 단어장 정도로 여기면 될 듯 하다. 꽤나 잘 정리되고 나름대로 골고루 갖추고 있기는 하지만 절대로 사전이라고는 할 수 없는 단어장이다. 그리고 본 독자의 기준에서는 꽤나 치명적이라고 할 만한 오류들도 있다. 가령, 정조가 서출이라던가 영조의 자녀가 2남 7녀라던가 서출로서 왕위를 이은 최초의 왕이 광해군이라던가 하는 부분들이 그렇다. 정조는 적출이며 영조의 자녀는 2남 9녀이고 서출로서 최초의 왕이 된 이는 선조라 해야 옳을 것이다. 약간 벗어난 얘기긴 하지만 좀 더 따지고 든다면 단종이나 연산군도 서출에 포함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에서 본 독자가 발견한 오류 중 제일 치명적인 것은 정조를 서출이라고 한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을 처음 읽고 깜짝 놀라서 출판사에 전화까지 했었다. -_- 처음에는 저자분께서 실수하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계속해서 정조가 서출이라는 부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저자분께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적으신 모양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정조를 두고 사도세자의 정빈인 혜경궁 홍씨의 소생이라고도 하시고 서출이라고도 하시니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혜경궁 홍씨가 비록 왕비가 되지 못하고 남편이 세자로 죽음으로써 빈으로 밀려났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후궁이 된다던가 하는 일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아실 텐데 말이다. -_- 정조는 형이 있기는 했지만 그가 태어나기 전에 죽었으므로 그는 장자로 태어났다 할 수 있으므로 적장자라고도 볼 수 있다.
저자분의 조선왕의 묘호에 대한 견해는 본 독자와 비슷해서 흥미로웠다. 그러나 상궁나인들과 노닥거리는 것만이 세자의 즐거움이었을 것이라는 등의 구절은 무척이나 거슬렸다. 역사에 대해서, 그 중에서도 왕실에 대해서 다룬 책인만큼, 왕실 위주의 관점을 가지고 임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왕과 왕세자가 절대적인 특권을 누린만큼 의무도 그에 비례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 같다는 인상이 들어서 무척 언짢았다. 본 독자는, 지금껏 몇몇 역사서를 탐독해 봤는데 언제나 이와 비슷한 감상을 느꼈었다. 어떻게 된 것이, 역사서가 왕을 비롯한 기득권 미화에만 점점 그 비중을 실어간다는 느낌이 드는 건지... 본 독자만의 착각이길 바라지만... 이런 식이라면 진정한 미래지향의 지침이 돼야 할 역사가 오히려 과거로의 퇴행을 유도하는 격이 되지 않을까... [인상깊은구절] 처음에는 묘호에 종을 붙였다가 후대에 조로 변경하는 것이 일종의 관습이었다. 그ㅓ니 조선의 역사가 더 흘렀다면 철종도 철조로 변경되지 않았을까? |
| 왕실이라면 흔히 왕 중심의 역사를 떠올린다. 하지만 방계의 혈족과 외척이 엄연히 존재했다. 생각보다는 여성의 힘이 막강했다. 외척이 정사의 참여가 금지된조선의 왕실에서 여성은 다른 남성을 통해 권력을 행사할 수 박에 없었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조선의 지배층이 이었기에 조선의 문화의 많은 면을 주도햇다. 남성들만의 역사가 아니었다. 한편으론 아내를 구박한 숙종이나 며느리를 내쫓은 세종도 가족이라는 울타리전에 한 권력자의 모습을 볼 뿐이다. 숙종이 장희빈을 중전으로 세운 것도 인현왕후를 총애하고 않고의 문제가 아니라 서인 숙청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세종도 소현왕후를 내치진 않았는데,,,.... 권력이란 비정하다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