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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이 전혀 다른 윤수와 윤철. 조용히 놀기를 좋아하는 윤수와 활동적으로 놀기를 좋아하는 윤철.
'나는 나' 다. 부모님이 원하는대로 살 수 없는. 부모님들은 이것저것 아이들에게 강요를 한다. 이거해라 저거해라. 하지만 하기싫으면 능률도 안오르고 더 하기 싫어지는 법인데.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 하지 못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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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원하는 모습으로 아이는 길러지기 쉽다.
이 책에서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용기를 내게 된다.
결국, 용기는 힘이 쎈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해야 할말을 할 줄 아는 것이라고 깨닫게 된다.
부모가 읽고
아이가 초등학교 4~6학년이 되면 아이에게 읽혀보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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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오며 아쉽거나 부족했던 것에 대한 반성과 함께 그러한 상황이나 결과가 되풀이 되지 않게 하려는 괜한 집착과도 같은 마음이 있어서 아이에게 요구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라는 자만의 마음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욕심으로 해서 힘겨워 하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기에 지금의 나를 되돌아 보게 된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각기 다른 성향의 차이를 느낄때면 반반씩의 섞임이 있으면 좋겠다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처럼 실제적으로 그러한 눈 뜨임을 보게 될 때마다 가르치고 지시하게 되는 것이다. 분명 윤수 아빠도 그러한 공감의 면이 있었기에 보다 당당하고 활기찬 아들의 모습을 요구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별의 구분이나 역할에 국한되어져 아이를 몰아대서는 안된다는 것을 미처 느끼지 못했기에 그러한 부모에게 자신의 입장과 역할에 대한 생각을 말할 수 없는 윤수. 그러한 주저함을 이해하기 보다는 못나고 부족하다고 채근하게 된다면 서로간의 관계는 전혀 헤아릴 수 없는 지경으로까지 이를 수도 있는데...., 다행히 자신의 생각을 조심스레 전달하게 되는 윤수의 행동은 얼마나 대견스러운지 모른다.
그런 생각과 주장을 이야기할 수 있다라는 것만으로도 한편으로는 뿌듯해하시지 않았을런지, 여태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부분에 대한 인식을 하고 그러함으로 또 다른 기대와 만족을 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되었다고 보아도 될테니까...... 스스로를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그러한 과정을 지켜봐 주는 부모의 역할과 자리를 생각해 보게 된다.
정석의 삶이란 것이 무엇일지, 어떠한 관계의 유지를 위해 어떤 노력과 성찰을 해야 하는 것인지 마음 먹은대로 되어질 수 없는 것들이 너무도 많은 세상이지만 보다 새롭게 만족하며 일궈갈 수 있는 삶을 위해 아이를 이해하고 솔선수범하는 부모가 되어야 할 것이라는 것에는 변화가 없다는 것을 염두에 다시금 두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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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서평을 무슨말로 시작해야할까? 불행한 한 여자의 삶이라고 하기에 그녀의 삶은 보통 여자들의 그것과 너무 닮아있다. 진정한 자아를 찾은 여자의 삶...이 표현도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너무 구태의연하고, 동조하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 한꺼번에 긍정해버리는듯한 느낌이 강하다. 불행했지만 행복해지려 노력한 여자...그래,이 말이 가장 근접해보인다.
유디트 그녀는 보육원 출신이다. 그녀는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 아빠는 엄마를 방탕한 여자라며 습관처럼 폭행을 가했고, 그런 엄마는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존재로 어린 유디트의 마음에 자리잡았다. 엄마에 대한 썩은내나는 소문들이 싫었고, 동네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이 그녀의 작은 등에 빼곡히 박힐때면 끊임없이 흔들리는 자아와 대면해야만 했다. 보육원 출신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자 그녀는 학교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고, 운동도 곧잘하는 모범생이었다. 하지만 엄마에 대한 기억때문인지 그녀는 성(性)에 있어서만은 남달리 소극적이고, 폐쇄적인 성향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그녀에게 젠틀한 느낌으로 다가온 남자가 있었고, 그녀는 그의 아기를 가지게 되었다. 그들은 결혼을 했고, 사회적 명성에만 혈안이 된 남편은 그녀의 존재를 자신의 소유물쯤으로 취급하기 시작했으며,결국 그녀 자아 전체의 주인으로 군림하고자 하였다. 그녀는 바람둥이 남편의 성(性)적 노예가 되었고, 첫째 아이를 출산한 후에 몇번의 낙태를 하기에 이른다. 그녀는 남편으로부터 해방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탈출을 시도하였고,결국 이혼에 성공했다. 그 과정중에 그녀는 착취당한 여성들의 마음을 치유하고자 강연회를 기획하고, 강사가 되어, 스스로를 치유함은 물론, 자신과 똑같이 남편의 폭력과 무자비성에 스스로를 내맡긴 가엾은 여성들과 함께 호흡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더이상 새로운 결혼을 꿈꾸지 않는다. 그렇다고 새로운 남녀 관계 자체를 기쁨으로 받아들이지 않는것은 아니다. 3명의 남자친구를 두었고, 그들과 공평히, 그리고 진정으로 자유롭게... 정신적,육체적 사랑을 유지해나가고 있다. 결혼과 연애라는것이 주는 상대에 대한 속박과 소유욕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희망하는 그녀의 오랜 염원을 그들 세명의 애인도 받아들였기에 가능한 일인것이다.
나는 꼬박 이틀을 이 책과 함께 보냈다. 초반 무자비한 남편의 폭력과 정욕앞에서 그녀가 힘없이 허물어져버렸을때, 참고 참고 또 참다가... 나는 책을 덮어버리고 말았다. 가슴이 갑갑하고, 그녀가 한없이 미우면서도 동시에 그녀가 불쌍해서...여하튼 복잡미묘한 감정들 앞에서 나는 휴식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오늘 슬그머니 책을 다시 손에 잡았다. 용기를 내어, 그녀가 두발로 꼿꼿이 일어서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사실 그러지 않고는 잠을 못이룰것 같아 나 스스로를 등떠밀어버린것이다. 그녀는 일어섰다. 남편이 보란듯이, 세상의 고정관념들을 비웃어주기라도 하듯이...그렇게 멀고도 긴 17년이라는 암흑에 종지부를 찍어버린것이다. 그녀에게 이혼은 무엇일까? 아니, 우리 여자들에게 이혼이란 무엇일까? 막연히 금전적인 부분에 손실을 입는 것이나 감정적인 상처 같은것일까? 만약 남편이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라면, 여성의 자기 실현에 반기를 드는 사람이라면, 남자의 그림자밑에서 집안일만 하며 한평생 누구의 부인으로 불려야한다고 생각한다면...그런 남편과 이혼하는것은 독립이요, 해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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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부모 밑에 태어난 쌍둥이인데 성격이 다른 아이들을 가끔 봅니다. 하물며 형제끼리도 성격이 반드시 같을 수는 없겠지요. 이 동화는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읽게 해주는 동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 부모들이 그 부모에게 받은 교육방식과 주변 환경대로 요즘 아이들을 그대로 따르게 하는 것은 사회가 너무 많이 변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사람으로서 해야 할 기본 도리를 무시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이 동화 속의 아빠는 아들에게 자신의 과거 힘들었던 점을 보완하기 위해 자신처럼 힘들게 살지 않게 하려고 아들에게 강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아빠도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강하게 키우려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지만 그것이 얼마나 아들에게 상처가 되고 힘든 일인지 알게 되어 다행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부모로부터의 강요된 꿈보다는, 스스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 무엇을 위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을 수 있도록 그 과정을 제시해주는 몫이 우리 사회의 어른에게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하고 싶은 꿈을 갖게 하고 그것을 위해 조금씩 물러서서 울타리가 되어 포기하지 않게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몫인 것 같습니다.
[인상깊은구절] 아빠, 윤수예요. 아빠, 죄송해요. 아빠가 좋아하는 아들이 못 되어서요. 하지만 나는 극기체험이나 등산 같은 것이 너무 싫어요. 아빠 뜻대로 따라가고 싶어도 잘 할 수가 없어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니까요. 등산은 제발, 제발 안 갔으면 좋겠어요. 이번 여름 방학에는 애니메이션 학원에 다니고 싶어요. 부탁이에요, 아빠 아빠, 아빠 뜻대로 하고 싶지만, 나도 정말 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아빠, 나는 그냥 나예요! 아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