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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풍경은 상처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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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항상 마음을 설레게 만든다.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게도 만든다. 그런 그의 글이 최근 들어 변한 것 같다. 좀 더 유연해진 것 같다고나 할까? 한때 그의 초기작들을 찾아서 읽다가 그만 둔 적이 있다. 절판에다가, 중고서점에서도 마땅하게 맘에 드는 책이 없어서였다. 그러다 얼마 전 신작 산문집 [연필로 쓰기]를 읽고선 다시금 그의 초기작에 관심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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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항상 마음을 설레게 만든다.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게도 만든다. 그런 그의 글이 최근 들어 변한 것 같다. 좀 더 유연해진 것 같다고나 할까? 한때 그의 초기작들을 찾아서 읽다가 그만 둔 적이 있다. 절판에다가, 중고서점에서도 마땅하게 맘에 드는 책이 없어서였다. 그러다 얼마 전 신작 산문집 [연필로 쓰기]를 읽고선 다시금 그의 초기작에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찾은 책이 바로 이 책 [풍경과 상처]이다.

 

기행산문집이라는 이 책에는 24편의 산문이 실려 있다. 예전에 그의 다른 여행관련 산문집을 읽은 적이 있는지라 이 책은 그냥 흘려보낸 책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읽는 김훈의 초기 글, 기대를 안고 읽어나가지만 그리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분명 기행산문집이라 되어 있는데 내가 보고 싶은 풍경은 보이지 않고 유려한 문장들만이 머리를 어지럽게 만든다. 어쩔 수없이 또 다시 문장과 싸우며 그가 본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낼 수밖에 없다. 간혹 그의 글을 읽다보면 이처럼 힘이 들지만 묘하게도 중독성이 있는 것 같다. 최근에 그의 글이 변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런 과정을 필요로 하지 않고 그저 읽어나가는 대로 풍경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저자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언어에 실려서 빚어지는 새로운 풍경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풍경을 쓰는 것 일게다.

 

보길도와 담양의 소쇄원을 찾은 저자는 윤선도와 양산보가 조성한 정원에서 낙원을 찾는다. 정원은 바로 인공적으로 조성한 낙원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욕망을 사회경제적으로 정당화하고 정당화된 욕망을 제도화함으로써 낙원을 지향할 수도 있지만, 욕망의 뿌리를 제거함으로써 낙원을 지향할 수도 있다. 욕망을 제거하려는 길과 욕망을 완성하려는 길이 마음속에서 엇갈리면서 사람들의 꿈은 엎어지고 뒤벼지며, 사람들의 말은 끝없는 동어반복으로 중언부언을 거듭하고 있다.’(57쪽) 글을 읽으며 세연정이나 소쇄원의 풍경을 상상하면서 마음속으로 그려보려던 꿈은 이미 엎어지고 뒤벼졌다. 욕망을 다스리기 위해 낙원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꿈이 오히려 욕망의 제거 혹은 완성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면 그 낙원은 바로 욕망의 모순덩어리가 되는 것이 아닐런지.. 나 역시 동어반복으로 중언부언하고 있다.

 

사람들의 그런 욕망을 저자는 담양 수북의 대나무 숲에서도 발견한다. ‘한 그루의 대나무를 들여다보는 인간의 시선은 분열되어 있다. 대나무는 비어있고 단단하고 곧다. 인간의 꿈과 욕망, 그리고 세계를 마주 대하는 인간의 자세의 양극단은 악기와 무기다. 인간은 악기를 만들 수도 있고 무기를 만들 수도 있다. 인간의 시선이 대나무 속 빔에 가 닿았을 때 인간은 거기에 구멍을 뚫어 피리를 만든다. (...) 그러나 인간의 시선이 대나무의 단단함에 가 닿았을 때 인간은 한 쪽 끝을 예각으로 잘라내 죽창을 만든다.’(99쪽) 대나무의 빔과 단단함이 악기와 무기로 만들어져 인간의 꿈과 욕망을 나타낸다면, 대나무의 곧으면서도 유연한 모습과 뿌리의 질긴 생명력은 때로는 선망으로, 때로는 증오로 나타날 수도 있다. 대나무는 서로 얽혀있는 다른 나무들과 달리 곧게 솟아있지만 비나 눈을 머금으면 수양버들 뺨칠 정도로 늘어진다. 거의 90도 각도로 고개 숙이지만 햇빛과 바람이 들고나면 다시금 곧게 선다. 그리고 숲을 가로지르는 바람을 맞아 사각거리며 내는 소리는 마음마저 시원하게 만들어준다. 허나 집주위에 대나무 숲이 있다면 마당과 텃밭은 곧 대나무로 가득차고, 담은 대나무 뿌리에 밀려 조금씩 허물어진다. 더욱이 그 대나무들을 직접 가꾼 게 아니라면 그야말로 날벼락이다. 비가 오고 난 다음 쑥쑥 솟아오르는 대나무는 선망의 대상이지만 그 뿌리에 마음이 미친다면 미움의 대상으로 바뀐다. 이처럼 한 사물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은 분열될 수밖에 없기에 모든 풍경은 상처의 풍경이라고 저자는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득한 염전 벌판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다시 아득한 갯벌이 펼쳐지고, 바다는 그 갯벌이 끝나는 곳까지 물러가 있다. 수인선 협궤열차에서 내다보면 염전의 지평선과 그 너머 바다의 수평선이 이 세상너머의 또 다른 협궤철로처럼 좁은 폭의 평행선을 이루며 수인선을 따라온다.’(131-132쪽) 오이도 가는 길에 저자는 염전을 바라보며 시인 김종철을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다른 풍경이 떠오른다. 젊은 날 수인선 열차 안에서 바라본 소래포구 건너편의 염전은 막막함 그 자체였다. 지금은 공원도 생기고, 아파트도 지어졌지만 당시의 소래는 한적한 어촌 마을이었다. 둘러보아도 바다와 염전만이 눈에 들어왔고, 간혹 소금창고만이 흉물처럼 서있을 뿐이었다. 뜨거운 여름 햇살아래 염전을 가래질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무표정하기만 했다. 줄줄 흐르는 물방울은 땀이었는지, 눈물이었는지 기억에 없다.

 

한 편, 한 편의 산문을 읽어나갈 때마다, 그리고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어나갈 때마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예전에 좋아했던 김훈의 글이라는 느낌을 물씬 느낀다. 개정판을 내면서 저자는 ‘나는 이제 이런 문장을 쓰지 않는다’고 했지만, 오랜만에 읽어보는 그의 글에서 나는 나만의 추억에 잠겨 풍경 속에 들어있는 상처를 끄집어 내본다. 앞으로 저자가 쓰겠다는 삶의 일상성과 구체성을 추수하듯이 챙기는 그런 글도 좋지만, 언어를 물감처럼 주물러서 사유의 무늬를 그리려 했다는 그의 예전 글들은 나름대로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아직 읽어보지 못한 김훈의 글은 무엇이 있을까? 나는 또 다시 검색을 하고 있다.

k*****1 2019.08.01. 신고 공감 10 댓글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