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발장은 빅토르 위고가 쓴 유명한 소설이다. '장발장'의 원 제목은 '레미제라블'로 '비참한 사람들'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 책이 '장발장' 이라는 제목으로 더욱 더 잘 알려져 있다.나는 책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처음 끝가지 읽었던 동화책이 바로 장발장 이었다.비참한 사람들' 이라는 제목과 같이 장발장은 비참한 생활을 경험한 사람이었다. 이 '장발장의 이야기는 주인공인 장발장이 가난과 배고픔을 못 이겨 빵 한 조각을 훔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것으로 인해 19년간이나 감옥 생활을 하게 된다. 19년의 세월이 흘러 장발장은 석방되지만, 19년간의 감옥 생활과 사람들의 차가운 태도 때문에 그 자신도 마음이 굳어 버렸다. 그런 장발장은 미리엘 신부님의 친절에도 감사하지 못하고 촛대를 훔치는 배은망덕한 짓을 저지르고 만다. 하지만 미리엘 신부님의 깊은 사랑을 느끼고 장발장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게 된다. 훗날 장발장이 코제트를 비롯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미리엘 신부님에게 받은 사랑을 더 증폭시켜 전해주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이 책에는 조연이지만 전혀 조연 같지 않은 두 인물이 있다. 그들 중 내가 먼저 소개하고 싶은 사람은 미리엘 신부님이다. 미리엘 신부님은 장발장을 제 2의 인생을 살 수 있게 도와준 사람이다. 미리엘 신부님의 집에서 따듯한 대접을 받은 장발장은 은그릇을 훔쳐 달아난다. 얼마 가지 못해 다시 잡혀온 장발장. 그러나 미리엘 신부님은 도둑질을 한 장발장에게 화는 내지 않고 오히려 은촛대는 왜 가지고 가지 않았냐는 말을 건넨다. 장발장이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던 순간, 신부님의 그 말 한마디는 다시 한번 내 마음을 감동시켰다. "잊지 마시오. 내가 준 물건들을 당신이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한 일에 쓰겠다고 약속했던 것을." 이 책에서 가장 감명 깊은 구절이었다. 정말 이 부분을 읽고 받은 감동은 평생 가도 지워지지 않을 기억으로 내 마음 한 구석에 간직될 것이다. 미리엘 신부님의 사랑으로 이 책의 이야기는 언제까지나 사람들의 마음속에 간직될 것이다. 미리엘 신부님의 사랑으로 장발장은 감화되었고 장발장은 그 사랑을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또 그 주위 사람들은 결코 줄어들지 않는 그 사랑을 또 누군가에게 나누어주었을 것이다. 다음으로 소개하고 싶은 사람은 바로 코제트이다. 얼핏보면 코제트는 어쩌다 좋은 아저씨를 만나서 호강하는 아이 같다. 코제트를 장발장이 얼마나 착한가를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조금 더 코제트와 장발장의 관계를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물론 장발장이 코제트에게 잘해 주었던 것은 사살이다. 그러나 코제트가 과연 장발장에게 도움만 받는 인물일까? 난 오히려 코제트가 장발장에게 받은 것보다도 더 큰 것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가족이라는 큰 선물이 되 주었다. '장발장'에서 직접적인 제시는 없지만 주변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장발장은 무척이나 외로운 사람이었다. 19년간의 감옥살이도 물론 그렇지만 장발장이 마들렌이란 가명으로 시장자리에 있을 때조차 아무도 그의 정체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장발장은 친구가 없었다. 그런 장발장에게 코제트가 나타난 것이다. 코제트는 장발장에게 사랑이라는 귀중한 선물을 안겨 주었다. 오로지 단 한 명의 가족이기 때문에 장발장에게는 코제트가 더없이 소중한 존재였을 것이다. 그런 코제트가 결혼해야 할 만큼의 나이를 먹어 마리우스라는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 장발장은 마리우스를 좋게 보지만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결국 코제트를 위해서 사회운동을 벌이다가 죽을 뻔했던 마리우스를 구해 준다. 그런 장발장의 모습을 보며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진짜 사랑이라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한 신부님의 사랑이 여러 사람에게 퍼져나가 그 세상을 조금씩 따듯하게 만들었다. 우리도 각자 남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다면 소설 속에서 나타나는 사회보다 더더욱 빨리 따듯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난 믿는다. 사랑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마음으로 퍼져나가는 것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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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발장 하면 가난 탓에 빵을 훔쳐 19년의 감옥살이를 하다 출소하여 다시 은촛대를 훔쳤으나 주교의 용서를 받는 훈훈한 이야기.. 뭐 이 정도로 알고있다가 어느 님의 블로그에서 그것이 아님을 알게되어 정식으로 <레미제라블>을 접하게 되었다. 아니, 보통 알려진 이야기는 이 작품의 1/5에도 채 못미치는 분량이었군. 그 뒤에 무수한 이야기가 많거늘 다 잘려먹고 왜 앞부분만 유명한 거지?? 암튼.. 오늘 장발장의 새로운 면모를 보고 이것저것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씌여진 것이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어릴적 동화같이 접해오던 이야기라 이런 엄청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을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역시 고전은 아무 작품이나 될 수가 없다. 이 작품은 고전답게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나에게 던져주었으나, 특히 나는 거창할 것같지만 '도덕' 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학자 Kohlberg는 인간의 도덕성 발달 단계를
1단계: 처벌-복종 지향 단계 행동의 결과 처벌받게 되면 도덕적으로 나쁜 것이고, 처벌받지 않으면 그 행동을 옳은 것으로 판단하는 단계 2단계: 도구적 상대주의단계 어떤 행위가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거나 욕구를 만족시키는 수단이 되면 옳은 것으로 판단하는 단계 3단계: 착한 아이 지향 단계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행동이면 좋은 행동이라 여기는 단계 4단계: 법과 질서 지향 단계 법이나 의무 이행 등 사회질서에 순응여부가 좋은 행동 판단의 기준이 되는 단계 5단계: 사회적 계약의 단계 사회적으로 합의된 규칙이면 도덕적이라고 보는 단계 6단계: 보편적 원리 지향 단계 도덕성 판단여부가 법이나 사회적 규칙을 초월하여 자신이 선택한 도덕적 원리(양심이라고 봐도 무방)에 따라 판단하는 단계
로 나뉜다고 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1단계에서 6단계로 발달해가나 6단계까지 이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6단계에 이르는 사람은 성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 정도랜다.
장발장은 6단계(보편적 원리 지향 단계)에 이른 사람인가보다. 그는 자기에게 은촛대를 준 주교를 가슴깊이 아로새긴채 양심을 속이지 않고 살려고 애를 쓴다. 정말 그의 노력은 눈물겹다. 그는 공장을 새워서 번 돈으로 여러 가난한 사람을 아낌없이 돕고 여러사람의 칭송을 받으며 시장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를 장발장으로 의심하고 항상 감시하던 자베르의 존재를 알고 있었음에도 마차에 깔려 죽을 위기에 쳐한 노인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던지고 괴력을 발휘해 노인을 구해냈다(자베르는 장발장은 아주 힘이 셋다면서 마차를 들 수 있는 괴력을 가진이는 장발장밖에 없음을 암시하였음에도). 또, 다른 노인이 장발장이라는 누명을 쓰고 재판에 회부됨을 알고 자신이 바로 장발장임을 밝힌다. 마지막으로 프랑스 혁명 당시 혁명군에 잡히게된 정부군 자베르를 살려주기도 한다. 끈질기게 자기를 괴롭혀 왔던 그를 없앨 수 있는 기회였음에도 불구하고.
한편, 자베르는 경찰로 지독스럽게도 장발장을 좇는 인물이다. 장발장이 시장으로 자신의 시의 부흥을 위해 애쓰고 있는 동안 집요한 감시로 그의 정체(?)를 밝혀냈으며, 감옥에 투옥되었다 탈옥하여 코제트와 조용히 사는 것을 찾아낸 것도 그였다. 한편으로 그는 경찰로서 혁명당시 정부군의 편에선 충직한 관리였다. 그 외 사사로운 사건을 처리할 때에는 인정을 봐 준다거나 정황을 참착하는 것은 용납하는 법이 없는 인물이다. 한치의 예외도 없이 법이나 규칙을 충직히 지켰던 다만 법률의 노예라 할 수 있는 그는 Kohlberg이론의 4단계(법과 질서 지향단계)에 해당하는 사람이 아닐까.
장발장을 둘러싼 기타 이웃 사람들은 1단계 내지 2단계의 도덕성 발달 단계에 있는 것 같다. 장발장을 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전과자라는 것 때문에 그를 외면하는데 이는 어떤 행위의 동기는 생각하지 않고 행위의 결과 상을 받았는지 혹은 벌을 받았는지를 통해서만 판단하는 1단계 (처벌-복종 지향단계)에 해당한다. 또, 그가 전과자임을 알고 멀리하다가 그가 사실은 자신의 생명의 은인임을 알았을 때야 그를 받아들이는 모습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옳다고 생각하는 2단계(도구적 상대주의 단계)에 해당하는 모습이 아닐까.(여기에 대해서는 나의 논리적 허점을 찌르는 반대의견이 충분히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
아무튼, 이 소설은 내가 종전에 읽었던 소설인 <죄와 벌>과 비슷한 메시지를 내게 던져주는 것 같다. <죄와 벌>을 읽으면서는 인간이 법이라는 것을 정해 사람들의 행동을 죄로 정하고 그에 맞는 벌을 내리고 있지만, 그것이 절대적이지 않으며 허점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작품을 통해서도 그 비숫한 생각이 들었다. 즉, 교리, 법률같은 사회적 틀이 완전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아마, Kohlberg는 그것을 간파하고 도덕성 발달의 가장 높은 단계를 단순히 법과 규칙을 좇는 상태를 넘어선 개인의 양심 및 보편적 원리를 좇는 상태로 규정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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