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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흥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다.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이라는 이름에서 신뢰를 느꼈고, 삼국사기는 학창 시절부터 자주 들은 고전이니 나름 친숙한 책이기에 선택을 하였다. 특히 만화로 되어 있으니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런 인연으로 만난 책을 읽으면서 무엇을 느꼈는지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내가 삼국사기를 처음 읽는다는 것에 놀랐다. 삼국사기라는 책이 있다는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 들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역사 책이 아닌가? 또한 학창 시절에는 열심히 암기하기도 했다. '삼국사기는 김부식, 삼국유사는 일연' 이것은 대한민국에서 중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면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이기도 하다.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 나는 삼국사기 원본을 읽지 않았다. 책 이름과 저자는 귀에 익도록 들었고, 내용을 단편적으로 접하기는 했겠지만, 완독을 한 적은 없었던 것이다. 삼국유사는 최소한 다섯 번 읽은 듯하다. 이어령 박사의 '한국과 한국인' 시리즈에서 원본과 해설을 함께 읽었고, 이병도 교수의 감수한 원전을 구입해서 읽었으며, 그 밖에도 이런저런 판본을 읽은 듯하다. 그러나 삼국사기는 한 번도 읽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교재 연구, 친숙함, 편견 때문인 듯하다.
삼국유사에는 신라의 향가 25수가 실려있다. 향가는 국문학적으로 중요한 장르이고, 「제망매가」와 「서동요」 등이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그것을 가르치려면 작품 배경도 설명을 해야 하고, 작품 배경을 알려면 삼국유사의 그 대목을 읽어야 한다. 또한 삼국시대의 무수한 설화들의 출전이 대부분 삼국유사에 실려 있다. 굳이 역사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도, 삼국유사는 국어 교과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삼국사기는 삼국유사에 비해 흥미도가 떨어지고,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굳이 삼국사기를 읽을 것이 아니라 교과서나 참고서를 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삼국사기를 읽지 않은 더 큰 이유는 저자인 김부식이 사대주의자이고, 삼국사기 역시 사대주의적인 관점에서 서술되었다는 점이다. 정말 그렇게 서술되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으면서 막연히 그런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개인적으로 역사적인 관점에서는 김부식보다는 서경 천도를 주장한 묘청에게 호감이 가고, 문학적인 관점에서는 김부식보다 정지상이 더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삼국유사는 제목만 들어도 친밀감을 느끼면서도 삼국사기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들었던 것이다.
둘째, 삼국사기에 대해서 무지했음을 깨달았다. 김부식은 나름으로 역사관을 지니고 있었다. 중국의 자치통감을 모범으로 해서 삼국사기를 지으면서도 우리 실정에 맞게 구성하였다. 한편 중국 역사를 비판하기도 했다. 당 태종은 자신이 직접 친정을 했음에도 안시성에서 패전을 하면서 고구려 군을 두려워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의 어느 역사서에도 그것을 기록하지 않았고, 이에 대해 김부식은 다음과 같이 비판을 했다고 한다.
"비록 결국에는 스스로 빠져나갔지만 두려워함이 그러하였는데, 『신당서』와 『구당서』는 물론 사마 광의 『자치통』에서도 이것을 말하지 않은 것은, 자기 나라를 위해서 (역사를) 숨긴 것이 아니겠는가? (이 책 57쪽)"
즉, 김부식은 나름 역사에 대한 관점을 지니고, 중국의 사서에 대해서 시비를 가렸던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그가 사대주의자인 것은 분명하나 약소국인 고려의 처지를 생각하면 이해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었다. 하기는 조선 시대 내내 명나라와 청나라에 사대주의로 일관했고, 20세기인 지금도 미국의 주군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광화문 등의 집회에서는 성조기도 부족해서 이스라엘기도 흔드는 사람도 있으니 김부식만 비판할 일은 아닌 듯하다.
내가 가장 부끄러웠던 것은 삼국사기의 저자가 김부식 한 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참고와 관구직의 10명(참고 8명 : 최산보, 이온문, 허홍재, 서안정, 박동계, 이황중, 최우보, 김영온 / 관구 2명 : 정습명, 김충효)이 함께 참여했고, 그 사실이 삼국사기에도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참고직은 삼국사기 편찬에 직접 참여한 사람들이고, 관구직은 행정 일을 맡은 사람들이라고 하니 예산이나 발간 등을 보조한 듯하다. 참고직에 참여한 사람들은 직급은 비록 정9품 정도의 하급 관리나 모두 과거에 급제한 사람들로 후에 장관급에 오른 인물도 있다고 한다. 삼국사기를 편찬할 당시 김부식의 나이가 71세였다고 하니 당시로서는 상당한 고령이다. 아마 편찬에 참가한 사람들의 시각도 상당히 반영되었으리라고 본다. 그런데 나는 왜 삼국사기를 김부식이 개인 저작 정도로 생각했을까? 아마도 삼국유사가 일연 스님이 홀로 쓴 저작이니, 삼국사기도 그랬으리라고 짐작한 듯하다.
이 책의 저자는 김부식이 신라의 왕호인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 등을 기록한 것은 우리 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었다고 보았다. 만약에 사대주의적인 관점에서 그런 명칭을 촌스럽게 여겼다면, 모두 왕으로 기록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라 고유의 왕호를 옮긴 것은 우리 것에 대한 사랑의 마음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였다.
셋째, 기대했던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학창 시절에 배울 때는 삼국사기는 정사, 삼국유사는 야사로 배웠다. 삼국지에 비유한다면 삼국사기는 진수의 『삼국지』, 삼국유사는 나관중의 『연의 삼국지』라고 할까. 진수의 삼국지가 정사라고 해도 흥미 면에서는 나관중의 삼국지를 따를 수 없듯이, 삼국사기가 삼국유사의 재미를 따를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굳이 삼국사기를 읽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삼국사기에도 온달과 평강공주 설화,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비극이 깃든 자명고 설화 등 삼국유사 못지않게 흥미진진했다.
넷째, 사대주의 및 신라 치중 서술은 역시 어쩔 수 없는 한계였다. 약소국이었던 고려의 입장에서 사대주의적인 서술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제목이 삼국사기이지만 고구려, 백제, 가야, 후백제, 후고구려, 발해를 합친 것보다 신라의 분량이 더 많은 것은 삼국사기의 약점인 듯하다. 또한 이 책을 편찬하기 위해서 많은 사서를 참고했다면서 광개토대왕 비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도 아쉬웠다. 고구려가 멸망한 뒤 그 뒤를 이은 발해까지 멸망한 상황에서 김부식을 비롯한 삼국사기 편자들의 관심은 고려의 영역인 한반도에만 관심을 두고, 아마도 만주 땅은 우리 영역으로 생각하지 않은 듯하다.
다섯째, 저자(아마도 이 시리즈의 편찬진)의 객관적인 시선이 마음에 들었다. 저자는 무조건 삼국사기를 옹호하거나 매도하지 않고, 후세 학자들의 여러 견해도 소개하고 있다. 또한 현대의 관점에서 당시의 역사를 재해석하기도 했다.
일례로 온달의 전사에 대해서 평민 출신으로 부마가 된 온달은 공을 세움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려 했다고 해석했다. 부마가 된 뒤에는 사냥 대회에서 월등한 실력을 보임으로써 주위의 인정을 받았고, 한강 유역의 출정 역시 그런 연장선에서 불리한 전선에 직접 뛰어들었고 끝내 전사했다는 것이다. 단순히 삼국사기의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후세 학자들의 여러 견해와 나름의 현대적인 해석이 있으니 쉽게 이해가 되면서 몰입할 수 있었다.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이 시리즈의 편자들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문 고전에 대한 상식을 넓혀주기 위하여 기획한 것 같다. 그러나 나의 생각으로는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라도 이 책의 내용을 완벽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하다. 초등학생은 좀 어려울지 모르지만 그래도 찬찬히 읽으면 이해가 갈 것이다. 전 국민의 필독서가 아닌가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