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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한나 아렌트 탄생 100년을 기념하여 학자들이 모였다. 그리고 다양한 생각을 나누고, 한 권의 책이 탄생했다. 여러 시각으로 접근한 한나 아렌트 연구들. 읽는 동안 구체적인 텍스트의 내용보다, 한 사람을 향한 많은 열정들이 더 마음에 닿았다. 많은 사람들이 한나 아렌트에게 가지는 관심과 애정. 덕분에 그녀가 궁금해졌다. 한나 아렌트를 알게 된 것은 유대인이었던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를 내놓으며 유대인의 편에 서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유명했기때문이다. 그 유명세 덕에 그녀의 이름과 한 권의 책을 귀동냥으로 들었을 뿐, 한나 아렌트가 정치철학자였다는 사실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그녀가 다양한 시각으로 '소외'되고 있음을 느꼈다. 유대인이지만 유대인 편에 서지 않았기에 유대인으로부터 소외되었고, 정치철학자였으나 베버처럼 직접 정치를 하며 생각을 펼칠 수 없었기에 정치에서 소외되었고, 여성이지만 여성 노동력에 대하여 남성적인 사고를 한다는 비판으로 페미니스트로부터 소외당했다. 비전공자의 지성으로 꼼꼼히 텍스트를 읽기가 쉽지 않아 완독을 하지 못하였음에도, 그녀의 '소외'가 보여 안쓰러웠다. 시간이 지나도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계속 읽히는 것을 두고 그것은 시간이 지나 계속해서 다른 해석이 가능하기때문이라는 말을 해주신 분이 계셨다. 한 학자를 두고 이렇게 다양한 시각의 접근이 가능한 것도 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문득, 한 사람의 사상을 이해하려는 연구들. 그것은 그녀가 난해한 학문을 연구한 학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렵고도 수고스러운 일인가. 어려운 책을 앞에 두고 다소 시시하지만 꽤 근사한 영감을 얻은 것 같아 기분 좋은 독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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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은 한나 아렌트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이를 기념하여 한나아렌트학회의 회원들이 '한나 아렌트와 세계사랑'이라는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논문들을 한데 엮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학술논문이라고 주눅 들 필요는 없다. 그저 아렌트 정치철학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 교양서로 보면 된다. 아직까지 아렌트의 정치철학을 통해서 국내 정치 맥락에서 일어난 갖가지 사건들을 구체적으로 분석한 글을 본 적이 없는 터라 아렌트 정치이론의 분석적 적용이나 토착적 전환은 미비하다고 보면 된다. 국내 전공자들의 수준도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다. 단지 '세계사랑'이나 '악의 평범성'과 같은 몇 가지 편리한 핵심개념을 언급하며 양념을 치는 인상비평과 추상적인 개념 설명에만 국한된 담론이 판을 치는 형편이다.
김선욱은 아렌트의 보편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이성적 보편성과 '실천적 보편성'을 구분하고, 아렌트가 거부하고 비판하는 것은 플라톤의 보편주의이지 실천적 차원의 보편성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아렌트의 플라톤 비판을 가리켜 '철인왕 콤플렉스' 비판이라고 부른다.
"철인왕 콤플렉스는 철학자 또는 이론가가 이성적 사유를 통해 사회규율의 윈리를 발견하고 이를 중심으로 사회를 재구성함으로써 사회 내의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려는 태도를 지칭한다. 이러한 태도는 실천철학의 영역에 속한 정치철학자, 정치사상가들이 쉽게 빠질 수 있는 것이다."(17쪽)
플라톤은 진리와 억견의 대립, 철학과 정치의 대립, 영원불변하는 것에 대한 관심과 불멸하는 명예에 대한 관심의 대립을 통해서 억견, 정치, 명예를 무력하게 만들려고 했다. 아렌트는 플라톤의 이러한 기획이 '진리의 폭정'이며 이는 정치를 살리는 길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를 말살하는 폭력이라고 보았다. 관청용어와 같은 상투어나 관용어 그리고 '최종 해결책'과 같은 우회적인 표현에 근거한 '암호화된 언어'가 아니면 말을 하지 못했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악의 평범성이 말과 사유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악의 평범성은 말(일상어)의 능력과 사유의 능력을 박탈당한 결과이다. 나치의 암호화된 언어는 현실에 대한 사람들의 감각을 마비시켰다.
아렌트는 자유로서의 탄생과 통제불가능한 운명을 대립시킨다. 아렌트의 탄생은 사실적 탄생, 정치적 탄생, 이론적 탄생으로 구분할 수 있다. 활동적 삶의 세 가지 형태인 노동(생물학적 조건을 충족시키는 삶), 작업(인위적인 세계를 구성하는 활동), 행위(공동생활을 가능케하는 정치활동)는 탄생에 뿌리를 둔다. 정신활동의 세 가지 형태인 사유, 의지, 판단은 제3의 탄생과 연관된다.
서유경은 아렌트의 정치윤리학과 레비나스의 타자윤리학을 비교한다. 그리고 레비나스의 타자윤리학이 상대적으로 실천성 문제를 결여하고 있어 도덕적 환원주의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