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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웬만큼 자라면 우리사회가 경쟁위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요즘 아이들은 유치원서부터 학원을 다니느라 바쁘니 우리 세대보다 더 빨리 알게 될 것이다. 어느덧 우리는 경쟁이 꼭 필요하고,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고 있다. 심지어 인간은 천성적으로 경쟁심이 강한 동물이라는 믿음도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사회학자들은 ‘사회를 유지하려는 행동은 경험에서 나오는 것으로, 학습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우리사회의 경쟁은 학습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진보적인 개념의 하나인 다윈의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은, 어느 하나의 종이 환경에 잘 적응하면 할수록 미래에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적응이란 생식(生殖)이 가능하다는 것이고, 생식은 곧 생존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일부 생물학자들과 행동생물학자들은 ’자연선택‘을 ’경쟁‘이라는 개념과 거의 같은 뜻으로 사용해왔다. 이렇게 해서 생긴 용어가 스펜서의 ’적자생존‘인데, 이는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인류의 삶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투쟁을 암시하는 용어로 변질된 것이다. 하지만 진화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는 자연선택과 경쟁적인 투쟁은 별 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경쟁을 요구하는 진화란 한 마디로 없다는 것이다.
다윈의 자연선택이 홉스와 스펜서, 맬서스 같은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에 의해 왜곡된 사실을 일찍이 1875년에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지적한 말이 있다.
[생존경쟁이라고 하는 모든 다윈주의자(Darwinism)의 학설은 홉스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론과 맬서스의 인구론 같은 경쟁적인 부르주아 경제학 이론을 사회에서 자연으로 간단하게 변용시킨 것이다. ……이 주장은 다시 자연에서 인간의 역사로 변용되어서, 이제는 그것이 인간사회의 불변의 법칙으로 입증된 것처럼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이론이 된다.]
자연계가 본질적으로 경쟁적이므로 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경쟁적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은 다음과 같은 교묘한 3단 논법으로 자주 사용되며 정당화되어 왔다.
1. 자연계는 본질적으로 경쟁적이다. (대전제) 2. 인간은 경쟁적이다. (소전제) 3. 그러므로 인간의 경쟁 역시 본질적이다. (결론)
하지만 이 3단 논법은 ‘자연계가 본질적으로 경쟁적’이라는 대전제부터 잘못된 것이다. <동물 사이의 협력>의 저자 알리는,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경쟁은 보편적인 현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동물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서로 협력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댕기물떼새와 다른 새들의 관계, 비비와 가젤의 협력, 침팬지의 협력 사냥, 식물의 산소와 동물의 이산화탄소 생성 등 자연계의 협력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우리가 TV에서 보는 프로그램은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드물고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싸우고 잡아먹는 경쟁 상황만 보여줌으로써 편견을 갖게 한다. (사자도 며칠에 한 번씩 배고플 때만 사냥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잠자거나 어슬렁거리며 보낸다는 걸 상기하자.)
또한, 경쟁이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는 점은, 경쟁이 인류의 어느 문화에서나 일어나지 않고 경쟁적인 사회에서만 일어난다는 점에서 ‘학습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와 연구, 실험 결과가 이미 많이 나와 있다. 게다가 경쟁 자체에는 스스로 끊임없이 반복하는 자기 영속성이 있다. 사람들과 집단 간의 분쟁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도이치는, “협력의 경험은 협력을 증가시키는 따뜻한 순환을 불러오고, 경쟁의 경험은 경쟁을 강화하는 차가운 순환을 불러 온다”고 말한다.
미국 제일의 경쟁 비판가인 저자는, 우리가 생각하듯이 경쟁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며, 협력과 마찬가지로 인간 속에 내재된 다양한 잠재 가능성 중의 하나라고 한다. 따라서 경쟁은 우리의 본성에 의한 것도, 필연적인 것도, 불가피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살아가는 데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구조가 개인의 발달을 오로지 1등에만 맞추게 함으로써 1등을 하지 못한 나머지 개인들의 사기를 꺾고 성취감과 동기 자체를 무력화시킨다고 한다. 또한 1등을 한 개인도 행복한 것은 아니다. 다음에 오는 경쟁에 대한 불안과 이기주의로 인해 건강한 심성과 인간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가기 어려운 구조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각종 부정부패와 흑색선전, 스포츠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승패를 둘러싼 난투극과 승부 조작 사건 등 우리 사회 곳곳에서 공동체 의식을 무너뜨리는 주요 요인이 바로 경쟁에서 비롯되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인류가 공동체로서 공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상호배타적인 경쟁적 구조를 상생할 수 있는 협력적 구조로 바꾸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기 위한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하는데, 이는 아직 시작에 불과하기 때문에 훨씬 더 풍부하고 다양한 대안 마련이 연구돼야 한다. 우선,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여성계에서는 경쟁적인 남성의 사회구조에 편입하지 말고 저항해야 한다. “여성들의 관점에서 제도를 바꾸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계에서는 어린 아이들부터 경쟁 위주의 수업 분위기와 태도를 지양하고, 소규모 그룹(2~4명)을 중심으로 협력 수업을 연구하고 그에 맞는 커리큘럼을 만들어 시행하며 확산시켜야 한다.
결국, 경쟁을 줄이는 일은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는 데 달려있다. 경쟁에 반대하고 경쟁 사회를 넘어서는 일은, 우리를 둘러싼 사회구조를 확실히 이해하고, 개개인의 인식이 변화해야 하며, 변화된 인식을 통해 집단적으로 연대해 지속적이고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것만이 개인과 공동체를 살리는 길이다. 밀의 말은 경쟁과 그로 인한 폐해를 개인에게 돌리는 나와 우리 사회의 행태를 반성하게 한다.
[인간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도덕적 제도의 중요성을 무시하려는 모든 천박한 방법 중 가장 천박한 방법은, 품행과 품성의 다양성을 타고난 본성의 차이로 돌려버리는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의 <정치경제학 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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