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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영화를 가끔 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 스마트 디바이스의 성능이 좋아지면서, 지나간 영화를 쉽게 다시 볼 수 있게 되어서, 영화들을 다시 보게
되면, 그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건, 그저 좋구나 하는 정도로
지나갔던 이야기들을 다시 불러내어 생각해보게 된다. 트루먼쇼를 다시 보면서 더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비록, 자유의 몸이라고 해도, 너무
많은 것에 메어서 살아가는 현실의 모습은 과연 이게 나일까? 하는 고민을 때로는 하게 하고, 그런 고민과 만나게 된다.
# 1. 다른 데는 뭐하지? 영화가
끝나자 마자, 채널을 돌리는 사람들… 기본적으로 자신이 인생은
자신 외에는 관심 없다. 스스로 바꾼 스타일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몇 번을 물어보아도 거리에 나서면
자신 외에는 변화에 민감한 사람은 거의 없다. 기본적으로 타인의 인생에 관심이 생기는 경우는, 잠시 가쉽이 되었을 때 외에는 없다.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에 대해서
너무 연연해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일정 시간 살아낸 후에, 어느 시점에 타인에게 비치는 내 모습은 사회적인 평가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 들여야 한다. 틀 안에 있는 것이 답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 하는 건, 청춘에게는
가능한 일이지만, 그 틀을 벗어나 어느 정도 이룰 나이가 된 중년에게 똑 같은 기준을 들이댈 수는 없다. 아이러니한 건, 결혼을 안했다고 세월이 내려앉지 않는 것은 아닌데, 여전히 청춘처럼 틀이 싫네 하며 사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난다는 것이다. (과연
자발적인 것인지, 자발적인 척 스스로를 설득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처럼 타인에게 있어서 내 삶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변함없다. 결국 나만이 내 인생을 위해서 관심을 가지고 돌볼 수 있다. 스스로
챙겨야 한다. # 2. 바깥 세상도 다르지 않아, 같은 거짓말과 속임수가 판을 치지 세상을 향해 나가려는 트루먼에게 PD는 말을 한다. 벗어나봐야 거기가 거기라고 말이다. 얼마 전, 타사로 이직한 후배와 밥을 먹었다. 처음 이직 했을 때와는 달리, 일정 기간이 지나고 나니 거기에서도
나름의 고충이 생겨난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라이 총량 불변의 법칙”이라는
말처럼, 조직에서는 자기에게 맞지 않는 사람이 늘 있게 마련이고, 조직을
옮기고 나서도, 또는 조직에서 그 사람이 사라진다고 해도,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난다. 때로는 자신이 타인에게 그 또라이가 되어 있기도 하다. 트루먼 쇼에 설정된 세상도 결국 인간 군상이
사는 곳이고, 연기자들도 사람이기에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의도를 가지고 나를 바라본다면 그것을 견디기는 어려울 것 같다.
똑 같은 상황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조직 내에서도 레퓨테이션이 형성되고 나면, 조직 내에서 서로 처음 만나는 사람도 서로 상대방에게 대하여 들은 정보를 근거로 그를 대하고자 한다. 인간으로서 사회적 생활을 하는 동안, 벗어나는 것을 결과적으로 궁극적인 해결책은 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자신을 편견없이 대해주거나, 적어도 자신에게 유리한 평판을 기반으로
살 수 있는 조직이나 사회에 소속되고, 자신 역시 그런 대접을 받을 수 있도록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 3. 언제나 떠날 수 있지만 그러려고 하지 않았어 마음만 먹으면 진실을 알 수 있는 데도 시도하지 않았지.
언제나
모든 벽을 세우는 건, 자기 자신이다. 응답하라 1994에서 빙그레에게 삼천포가 했던 장면이 기억난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려보지 않고 생각하는 건, 네가 꽉 막힌 사람이라고 말하는 너의 아버지를 꼭 닮았다고 말이다. 삶이 불만이 차 있을 때는 외부의 불만과 자신의 불만을 저울에 놓고 객관화시켜서 볼 필요가 분명히 있다. 자신의 것을 솔직하게 평가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하지만, 문제의 중심을 찾아 내기 위해서는 원인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이를 파악하고 나서도 한 걸음 내딛는 선택은 쉽지 않다. 세상이 시끄럽다. 한 발 더 나가면, 내가 먼저 총대를 매면 문제가 될 것 같아 침묵하던
사람들은 이제 판이 깔아진 이후에는 너도 나도 정의를 쉽게 외친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에 하나이다. 마음만 먹었다면 이제야 세상을 바꿀 수 있었던 걸까? 지난 대선에
나는 무엇을 했던가? 그 때는 내 신념이나 가치판단에 문제는 없었던 걸까? 왜 나는 더 적극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예상되는 문제에 대한 이야기로 설득하지 못했던 걸까? 생각해보게 된다.
# 4. 당신이 틀렸다는 걸 그가 증명할 거에요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기본적으로 혼자 가는 삶이지만,
부모는 항상 자신의 편이고, 자식과 아내 역시 옆에 서준다. 과거의 삶의 궤도가 어떻기 때문에 미래가 어떠할 거라는 세상의 편견은 스스로 틀렸다고 증명해내야 한다. 전형적인 프레임에 매몰될수록,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자기 자신이지
타인이 아니다. 트루먼이 증명해내는 장면에 쾌감을 느끼는 건, 아마
내가 원하는 삶과의 이루지 못한 괴리를 그가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영화가 끝난 후, 채널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서 주변의 편견이 있다면 이를
부수고, 원하는 길로 나아갈 행동이다.
영화의
메시지에 푹 빠져 들었다. 트루먼에게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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