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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감추고 싶은 것이 있다. 특별히 잘못이나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굳이 다른 이에게 내보이고 싶지 않은 ‘무언가’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스스로도 잊고 싶은 실수, 괜히 혼자 곱씹게 되는 어떤 순간, 남몰래 간직하고 있는 감정, 약점이라 여겨지는 성격, 어떻게든 지켜내고 싶은 자존심 등등. 비밀과는 약간 결이 다르다. 말하면 안 되거나 그 누구도 모르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나 할까. 절대성에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지 않았으면 하는 방어기재. 그런 인간심리에 초점을 맞추어 ‘감추다’라는 주제로 일본 여성작가 11명이 각자 다채롭게 이야기를 펼쳐냈다. 9명의 작가가 집필한 단편집 <버리다捨てる>에 이은 두 번째 기획이다. 이유 理由 /시바타 요시키柴田よしき 한 남성예능인이 주차장에서 습격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미모의 여성일러스트레이터가 피의자로 체포되었다. 여자는 범행사실을 깔끔하게 인정했지만 이유에 대해서는 완전히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의 접점이라면 남자가 방송에서 여자의 작품을 비하했다는 것 정도. 그러나 그렇다고 사람을 칼로 찌르는 폭력을 저지를까?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으로 남에 대해 비아냥거리는 것이 피해자의 방송 캐릭터였는데도? 그대로 검찰에 송치하기에는 영 찜찜한 상황. 대체 여자는 무엇을 숨기려 하는 걸까, 형사는 고민한다. 자택경비원의 우울 自宅警備員の憂鬱 /나가시마 에미永嶋恵美 중학교 2학년 2학기를 앞두고 부등교를 선언한 마나미. 요리도, 세탁도, 할머니 간호도 전부 맡아 할게. 싱글맘으로 간호사일이 바쁜 엄마는 못이기는 척 받아들여주었다. 그 후 5년간은 장밋빛 천국의 나날이었다. 성인이 된 지금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이젠 당당히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긴 어려울 듯하다. 그런데 오늘밤, 남동생의 방에 몰래 온 손님이 있는 듯하다. 불시점검을 하자 웬 꽃미남 친구가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소년이 떠난 뒤 뭔가 이상한 점을 눈치 챘다. 이 ‘자택경비원’의 경력을 깔보지 말라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어 誰にも言えない /마쓰오 유미松尾由美 작은 탐정사무소 소장 안자이는 젊은 어시스턴트 나쓰노에게 어렴풋이 마음이 가는 자신을 숨기고 있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그가 어느 날 외국인 여성을 데리고 왔다. 곤란한 얼굴로 망연자실해 있는 그녀를 우연히 길에서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것. 정식의뢰는 아니지만 일단 상담은 해주기로 했다. 홈스테이를 하고 있는 집주인 가족의 태도가 갑자기 달라진 데 대해 불안과 걱정에 싸여 있는 여성의 이야기를 듣고 미국과 일본의 문화차이를 설명해 주었는데, 오히려 그녀도 내 마음을 눈치 챈 것 같다. 부오정 기담 撫桜亭奇譚 /후쿠다 가즈요福田和代 부오정이라 이름붙인 드넓은 부지를 남기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유산정리를 위해 남은 아들 3형제가 모였다. 부동산 회사를 물려받아 경영하고 있는 장남. 은행에서 일하는 차남과 미모의 아내, 고교에서 미술교사로 재직 중인 미남 화가 삼남. 아버지가 사들인 뒷산은 한때 금이 묻혀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홀로 된 아버지의 취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이곳저곳 땅을 파보고 그 자리에 벚나무를 심는 것뿐이었다. 지금은 빚만 남은 야산을 처분하자니 뭔가가 숨겨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뼈가 될 때까지 骨になるまで /니이쓰 기요미新津きよみ 가까운 사람의 비밀이 사후에 드러난다는 것은 소설이나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혼을 두 번 했다는 것. 첫 번째 결혼에서 얻은 아들이 있다는 것. 그 아이를 두고 집을 나왔다는 것. 두 번째 결혼에서 낳은 외동딸인 엄마도 나중에서야 알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아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어머니의 부고를 전해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 아닐까. 손녀딸은 갈등하는데, 의외의 인물로 인해 할머니가 끝까지 감춘 진실을 깨닫고 말았다. 알리바바와 40의 사체 アリババと四十の死体 아직 부러지지 않은 검 まだ折れていない剣 /미쓰하라 유리光原百合 중동의 유명한 민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을 토대로 재가공한 이야기. 스토리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나 앞부분은 생략하고 ‘모르기아나’의 기지로 도둑을 물리치는 부분을 가져왔다. 이 지혜로운 하녀의 숨겨진 사연이야말로 크게 각색된 포인트다. 또 하나는 G. K. 체스터튼의 ‘브라운신부’ 시리즈 중 주목할 만한 작품인 ‘부러진 검의 의미’를 토대로 상상의 나래를 폈다. 성자와 같은 전쟁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장군이 출정을 떠나기 전의 모습은 평판과는 180도 다른, 평범한 중년남의 추레함이었다. 생일 부케를 당신에게 バースデイブーケをあなたに /오사키 고즈에大崎梢 데이케어 서비스 센터에 입주한 노인들 중 한 노부인에게는 매년 생일날이면 아름다운 꽃다발이 배달된다. 간략한 축하인사가 적힌 카드와 함께. 서명은 항상 M이라는 이니셜 한 글자뿐. 누구냐고 물어보면 늘 다른 이름과 추억담이 흘러나온다. 마코토, 미야카와, 모리, 미키오, 무라이... 스태프들 사이에서는 과연 진짜는 누구인가 하는 궁금증보다도 향수에 푹 빠진 부인의 로맨틱한 이야기가 더 흥미진진하다. 아무렴 어떠랴. 그저 건강하게,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근사한 생일부케와 함께 행복해할 수 있기를... 달콤한 생활 甘い生活 /곤도 후미에近藤史恵 어려서부터 남의 떡만 커 보이는 성질을 가진 소녀가 있다. 똑같은 것이라도 남의 것이 더 좋아 보이고 더 맛있어 보이고 더 갖고 싶었다. 어릴 때는 언니의 것과 바꿔달라고 떼를 쓰면 통했으나, 학교에 다니면서 더 이상 그런 식으로는 미움만 살 뿐이라는 현실을 깨달았다. 그래도 타고난 성질은 바뀌지 않아서 교묘한 방법을 고안해냈다. 그룹에 끼지 못하는 아이들과 친구가 되어 자연스럽게 물건을 탐하는 것. 상대가 소중하게 여길수록 탐욕 또한 커져만 갔다. 그런데 그 달콤함이 독이 되어 돌아올 줄이야... 수채화 水彩畵 /마쓰무라 히로미松村比呂美 엄마는 한 번도 칭찬을 해준 적이 없다. 심지어 집에는 내방조차 없다. 싱글맘이라도 미술계에서는 인정받는 화가이기에 경제적인 어려움은 전혀 없는데도. 작업실에도 안방에도 출입금지에, 어렸을 때 그림에 관심을 보였더니 무척이나 싫어하셨다. 하나뿐인 딸에게 어째서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지 도저히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비뚤어진 건 아니다. 오히려 엄마 마음에 들고자 안간힘을 다해 노력해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상냥한 미소를 보내준다. 엄마가 갑자기 변한 이유가, 감춰진 비밀이 너무 서글프다. 소년소녀 비밀기지 少年少女秘密基地 /가노 도모코加納朋子 나와 진탄과 비밀기지와 모험 이야기. 단짝인 우리는 자전거 보조바퀴를 떼어내고 씽씽 달리게 되었음에도 행동반경에 제한이 있는 터라 도통 재미가 없었다. 그러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면서 조금 여유가 생겼다. 집 근처라도 모험을 하고 싶던 차에 공원과 녹지를 가르는 울타리의 빈틈을 발견했다. 비집고 들어서니 그곳에는 허름한 창고가 있었다. 탐정만화에 푹 빠진 진탄은 사건 냄새가 난다며 좋아라한다. 이제부터 이곳은 우리의 비밀기지. 소꿉놀이를 한 흔적이 있기도 하고, 저 수상쩍은 보따리는 뭘까...? 미련 心残り /시노다 마유미篠田真由美 한 하녀의 넋두리를 들어볼까. 어려서부터 부잣집 마님의 하녀로 살아오면서 감춰온 일이 많았다. 그만큼 거짓말도 많이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는 것을 곧이곧대로 말했다가는 분명 야단을 맞을 테니까.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을 하고 ‘네, 네’ 하며 지내왔다. 덕분에 별 탈 없는 생활이었다. 주인님이 천사 같은 마님을 의심해 호젓한 지방의 별장으로 쫓아내기까지는. 마님과 둘뿐인 시골생활은 지루하기만 했다. 마님이 돌아가시던 날의 일도 감췄다. 그 결과 이런 어두운 곳에 홀로 남은 걸까. 11가지 이야기에는 공통된 소도구로 등장하는 것이 하나 있다. 머리장식용 반월형의 빨간 빗. 작가마다 이를 어떻게 활용했는가를 찾아내는 재미 또한 이 작품집의 노림수일 것이라 생각하며 보물찾기 마냥 즐기며 읽었다. 그저 소품일 뿐인 경우도 있고, 주요한 도구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마지막 <미련>에서 조금 섬뜩한 느낌으로 마무리되는 바람에 더욱 인상에 강하게 남는 효과를 낳았다. 뭔가를 ‘감춘다’는 주제인지라 뒷맛이 썩 개운치는 않은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가운데, 가노 도모코의 <소년소녀 비밀기지>를 가장 재기 넘치는 작품으로 꼽고 싶다. 비밀기지에 대한 소년의 기억과 소녀의 기억과 창고주의 기억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에 더해, 진실을 알 일도 없고 서로가 알 필요도 없는 향수로 남는다는 설정이 짧은 작품임에도 짜임새 있게 구성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음은 곤도 후미에의 <달콤한 생활>. 자승자박, 인과응보라는 말이 떠오르면서도, 사필귀정이라기에는 의문이 드는 오싹함에 점수를 주고 싶다.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떠나서. 다양한 작가들의 단편을 한권의 책으로 읽는 건 그 나름의 재미가 있다. 다음에는 또 어떤 테마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갈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