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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나이에 요절한 유명한 작가 서배스천 나이트의 배다른 동생 v가 형의 죽음 이후 형의 전기를 쓰기 위해 그의 과거를 조사한다. 서배스천과의 어릴 적 잠시 함께했던 기억, 파리에서의 만남, 형의 책들, 그의 편집자들, v는 그가 가능한 사람들을 만나 서배스천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형의 집에서 양심상 태워버렸던 러시아어로 된 연애편지. 그 편지의 주인공을 찾아야 이야기가 완성될 것이라는 믿을 하에 그 여인을 찾는 여행을 시작한다. 여인의 친구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를 통해 사실 '여인의 친구'가 편지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알게 된 v는 더 자세히 확인도 하지 않고 그녀를 등지고 떠나온다. 그리고 들려주는 여행의 마지막 단계. 서배스천이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우여곡절 끝에 도달한 병원에서 v는 서배스천인줄 알고 다른 사람의 병상을 지키며 위안을 얻는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그는 깨달음을 얻는다. 영혼은 항구적인 상태가 아니라 존재방식일 뿐이라며. 그리고 마지막 문장, 나는 서배스천이다라는 글로 마무리한다. 책은 화자인 v가 전기를 쓰기 위한 과정을 엮은 전기. 이다. 그리고 서배스천이 사랑한 여인의 친구였다고 믿었던 여인은 사실 여인 본인이었다. 서배스천이라고 믿었던, 밤새 그에게 위로를 준 남자는 사실 서배스천이 아니었다. 뭐라 메모를 남기기 어려운 책이다. <롤리타>와는 매우 다른데, 말투랄까, 약간 거만함을 보여주는 글들은 <롤리타>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책에 나오는 서배스천은 어릴 적 러시아를 떠나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작품 활동을 했던 나보코프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어있다고 한다. 언어적 정체성에 대한 그의 고뇌가 많이 보였고, 덕분에 조금은 나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었다. 작품 속에서 그는 타인의 입을 빌려 서배스천을 이렇게 평한다. 나는 소설이 마음에 들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나쁘지 않았지만, 작가가 적어도 지적으로는 꽤나 속물인 것 같다고 말했다. 좀 더 설명해달라고 하자 그는 자기가 보기에 나이트는 상대들에게 규칙을 알려주지 않은 채 자기가 직접 고안해낸 게임을 계속해서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덧붙였다. 자신에 대한 평일까? 이런저런 장치가 많이 들어있는 듯했지만, 아직 손에 잡히지 않는 어려운 소설. 거기다 마지막에 너무 서둘러 클라이맥스를 맞고, 또 급하게 마무리되는 느낌을 받았다. 전기를 쓰는 사람치고 느긋했던 시작과 너무 상반되는 마무리. 후에 다시 한번 읽어보리. *밑줄 서배스천이 탈출하던 당시 러시아의 모습이 아무리 섬뜩했다 할지라도, 우리 모두가 느꼈던 쓰라린 심정을 그가 느끼지 않았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 모든 정황을 고려해본다면 그곳은 그의 고향이었고 역시 존재 자체가 범죄라는 이유로 죽음이나 유배로 내몰려야 했던 친절하고 선량하며 온순한 사람들이 있던 곳이자 그 자신 또한 속해 있던 곳이었다. 그의 어둡고 음울한 젊은 날, 낭만적인 - 한마디 덧붙이자면 어느 정도는 작위적인 - 어머니의 땅에 대한 열정이 그가 나고 자란 땅에 대한 진실한 애정을 지워버릴 수는 없었으리라 확신한다. "나는 케임브리지에서 잘 지내고 있으니 너도 소르본에서 잘해나가기를 바라. 그리고 어찌 되었건 네 마음에 드는 주제를 찾아내서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 그게 지겨워질 때까지 말이야." 그의 검은 눈에서 무언가가 살짝 반짝였다. "행운을 빈다." 그가 말했다. "안녕." 서배스천의 삶의 기조는 고독이었다. 운명이 친절하게 그가 원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경탄스러울 정도로 위조하여 안락하게 해주려고 할수록, 그는 그 그림에, 아니 그 어떤 그림에도 어울리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함을 더 절실하게 의식했다. 우연히 발음을 잘못해서 둔한 상대가 그의 말을 다 알아듣지 못하면 얼굴이 새빨개지곤 했다. 그 당시 그는 말하는 것보다 글쓰기에 훨씬 더 능했지만 그래도 그의 시에는 어딘가 애매하게 영어답지 않은 데가 있었다. 우리가 같은 아버지에게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큼이나 분명하게, 서배스천에게는 러시아어가 영어보다 더 쓰기 편하고 자연스러운 언어였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확실합니다. 나는 당신 곁에서 행복했었고 지금은 다른 사람 곁에서 불행합니다. 그렇게 삶은 계속될 테지요. 사무실에서 친구들과 농담을 주고받고 저녁식사를 즐기고 (소화불량이 올 때까지) 소설을 읽고 시를 쓰고 재고를 확인하고 - 대체로 늘 해오던 대로 계속해나갈 겁니다. 하지만 이건 다 헛수고입니다. 달의 뒤쪽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에요. 제발 그 여자를 찾지 마십시오. 과거는 과거일 뿐이에요. 그녀는 당신의 형님을 기억도 못할 겁니다. 삶과 죽음의 모든 문제에 대한 답, '절대적인 해결책'은 그가 여태껏 알아왔던 세상 전체에 쓰여 있었다. 자기가 조사했던 야생의 나라가 자연현상들의 우연한 조합이 아니라 산과 숲과 들, 강이 하나의 방식에 따라 배치되어 일관된 문장을 이룬 어떤 책의 페이지였음을 깨달은 여행자와 같다. 나는 소설이 마음에 들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나쁘지 않았지만, 작가가 적어도 지적으로는 꽤나 속물인 것 같다고 말했다. 좀 더 설명해달라고 하자 그는 자기가 보기에 나이트는 상대들에게 규칙을 알려주지 않은 채 자기가 직접 고안해낸 게임을 계속해서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덧붙였다. 손안에 있던 흔해빠진 조약돌을 물속 깊이 힘껏 집어던지고 나서야 실은 그것이 누구나 탐내는 보석이었음을 알게 되는 법이다. 일상의 햇빛으로 물기가 말라 있을 때는 조약돌처럼 보여도 연한 빛깔의 모래 위에서는 보석의 빛을 낸다. 그래서 잠을 깼을 때 머릿속에서 울리는 무의미한 문장이 실은 놀랄 만한 사실을 알아듣기 힘들게 옮겨놓은 것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여행의 마지막 단계는 가장 어두웠다. 객차에는 나 혼자뿐이었고 이상한 무력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는 나아졌고, 희망이 있다. 그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이 세상의 심장 전문의를 다 데려올 것이다. 옆방에 그가 있고 희미하게 숨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나에게 안정과 평화, 엄청난 안도감을 주었다. 거기 앉아 두 손을 맞잡고 귀를 기울이면서 지나간 모든 세월과 우리의 드물게 짧았던 만남을 생각했다. 이제 그가 내게 귀기울여줄 수 있게 되면 당장 그에게 그가 좋아하건 말건 더는 결코 그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겠다고 말할 것이다. 그의 비밀이 무엇이었건 간에, 나도 한 가지 비밀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영혼은 항구적인 상태가 아니라 존재 방식일 뿐이며, 내가 영혼의 파동을 발견하고 따라간다면 어떤 영혼이라도 나의 것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내세는 어떤 영혼이라도 선택해서, 아무리 많은 영혼 속에서라도 의식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그 영혼 모두가 자신들이 짊어진 짐을 서로 맞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서배스천 나이트다. 나는 서배스천이다, 혹은 서배스천이 나다, 아니면 우리 둘 다 우리가 모르는 누군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