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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 고유의 무교에 대한 생각을 간혹하였으나 이책을 통하여 어느정도 체계적으로 배울수가 있었다. 삼국시대이래로 우리의 전통인 무교는 서민들에게는 많은 희망과 삶을 어느정도 유지시키는 하나의 공통체적 의식이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주자학의 등장으로 상류층이 하층민을 억압할수단으로 무교를 강제로 탄압을 하였으나 그명백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현대에는 또한 미신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들에게 알려지고 있다. 어쩌면 서양의 우수한 종교라는 타종교가 우리의 것을 억압하려는 수단으로 책과 언론등에게 미신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무교뿐만 아니라 타종교에도 미신적인 요소가 어느정도 가미되어 있다. 또한 부작용또한 많이 있으나 언론에서는 우리의 신앙을 전적으로 낮은 미신으로 치부를 하여 우리들의 두뇌는 이것은 결코 낮은사상또는 낮은 신앙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받으면 무속인또는 점을 보러 가는 광경을 목격할수가 있다. 우리의 마음속은 아직도 우리의 고유신앙인 무교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타종교처럼 체계적이지도 않고 경전도 없기 때문에 발전을 못하였으리라 예상을 한다. 우리들에게 술과 노래를 마시는 문화가 다른 나라의 문화보다 발달된것도 아마도 우리의 원시적인 굿과 관련된 것으로 보아도 되겠다. 그래서 몽롱한 상태에서 신과하나되는 기분을 느끼고 싶은 것은 아닌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악과 선을 전혀 배제하지 않는 무교의 기본특성을 이해할수가 있어야 된다. 서양의 종교는 선과악을 구분하였으나 우리의 무교는 그둘을 전부포용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굿판을 살펴보면 우리는 이해하고 알수가 있다. 특이한 것은 한이 많은 신을 무교를 하는 분들이 많이 받아들이는 것을 알수가 있다. 최영장군 또는 맥아더장군 박정희대통령까지 그범주는 넓기때문이다. 그것은 아마도 한을 통한 의뢰자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목적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의 소중한 전통을 없애면 안된다는 것이다. 고유의 신앙을 우리가 조금더 관심을 갖고 애정을 쏟는것이 우리의 문화를 발전시키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깨닫는 기회가 되었다. 우리의 고유한 전통에 희망이 가득하기를 기대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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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고유의 종교로서 중국에 도교가 있고, 일본에 신도가 있다면 우리에겐 무엇인 있을까? 바로 ‘무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의 도교나 일본의 신도가 그 나라의 민중 종교로써 충분히 기능하고 있는 반면 우리의 무교는 거의 잊혀져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잊혀져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맞는 말일까? 이 책 안에는 놀랍게도 현재 무당의 수가 대략 20~30만 명 정도라고 쓰여 있다. 대비하여 신도의 수가 가장 많다는 기독교의 목사가 10만 명이 못된다고 하니, 참으로 엄청난 수이다. 이로 미루어볼 때 우리나라의 제일의 종교는 무교라고 아니할 수 없다. 저자는 ‘무교’는 어엿한 하나의 종교이며, ‘무당’은 신도가 신령과 만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한다는 측면에서 어엿한 사제이며, ‘굿’은 엄정한 체계를 갖춘 엄연한 종교의례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책 안에는 무당이 되는 과정, 굿의 종류와 내용,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령들에 관한 얘기들이 매우 재밌고 흥미롭게 쓰여 있다. 저자는 ‘한국은 무교의 나라’라고 과감히 주장한다. 극성스런 기독교도가 들으면 가만히 듣고만 있지는 않을 주장이다. 외부에서 들어온 종교는 반드시 그 지역의 토속 신앙과 습합되기 마련이다. 다시 말하면, ‘오리지날’을 유지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인도의 불교와 중국의 불교와 한국의 불교와 일본의 불교가 부처를 신앙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 보면 내용을 달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그 나라의 토속 신앙과 외래 종교가 섞인 혼합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외래 종교 역시 우리 토속신앙인 무교와 혼합되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각 종교의 이름이라는 외피를 벗겨보면 내용물은 오히려 ‘무교적’이라는 것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우리나라의 모든 국민은 거의가 무교의 신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말도 된다. 무교 신앙의 가장 기본적이고 특징적인 것은 ‘주술적인 기복신앙’이라는 점인데, 우리나라의 불교나 기독교를 보면 현세 기복적 특징을 전혀 벗어나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역시 무교적이다. 우리나라이 기독교는 ‘유독 열광적인 기도와 방언이 중시되는 부흥회 같은 집회를 좋아하는데’(p.140), 여기에서 무교의 굿과 같은 열성과 무아경을 볼 수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이 책에서는 직접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우리나라의 기독교인이라면 거의가 한다는 새벽기도가 사실은 옛날부터 어머니들이 새벽에 정안수를 떠놓고 손바닥을 비비면서 무사안녕을 기원하던 풍속에서 연유한 것인데, 이 또한 무교적인 것은 아닌가? 우리는 보통 무교를 ‘무속’이라고 하여 불교나 그리스도교에 비교하여 원시적이고 저급하며 미신에 불과한 것이라고 여긴다. 종교라고 이름을 붙인다는 것도 어색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이라고 말하고 있다. 초월성에 대한 믿음을 기본으로 하는 종교는 그 종류와 관계없이 본질은 같다는 것이다. 다만 사랑이나 자비 등 인간 윤리의 보편성을 교리로 하는 종교는 나라와 민족을 넘어 전파할 수 있고, 여기에 교리를 일관되게 체계화하고, 다시 권력과 결탁할 때 이른바 ‘고등종교’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종교가 본질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어떤 옷을 입어도 그 사람은 그 사람인 것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 ‘더 이상 우리를 속이지 말고 무교를 우리의 근본 신앙으로 인정해 우리 문화 발전에 유용하게 쓰자는 것’(p.6)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책 말미에 ‘한국인들은 잃어버린 종교적인 정체성을 찾아 표리가 일치하는 정신적 성숙을 달성할 수 있다’고도 말한다. 이런 저자의 주장에 대해서 가타부타하기는 어렵고,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한 하나의 모색(摸索)으로써 돌아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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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리뷰를 미루다 보니 시의 적절해 진것인지 타이밍 놓친 것인지 모르겠다. 책은 제목에서 주장하는 그대로 이다.
종교학자인 저자는 한국의 무교는 어떤 종교인지, 굿은 어떻게 하는지를 시작으로 왜 한국은 무교의 나라인지 주장한다. 책은 다소 격정적인 목소리로 왜 무교가 지탄을 받아햐 하냐고 따지고 사랑스런 눈길로 굿을 들여다 본다. 무신론에 가까워 신이 있으면 좋겠다라는 주의인 나로써는 객관성이 부족한 대목도 보이지만 소수파의 의견을 듣는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책이다. 종교의 가장 원초적인 기능이 기복이라는 점에서 무교는 다른 "고등종교"와 비슷하다. 다들 신의 심판보다는 현세의 기복을 갈망하는 소위 고등 종교가 무교를 비판할 정당성이 있는지 모르겠다. * " 권력 혹은 정치와 결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무교는 미신이라 지탄받고 다른 고등종교는 발전했다. " 몇 달전까지만 해도 이런 저자의 주장은 타당했고 고개를 끄덕 거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정치가 위 주장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잘못된 무교와 정치의 결합이 그나마 호의롭게 보던 무교를 비웃음거리로 만들었다. 오구굿을 했다고 하기도 하고 대통령이 바리공주라 불리기도 하는 등 태어나지 않았어야 할 권력이 무교를 한 번 더 나락으로 떨어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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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에 대한 이해의 깊어짐은 우리 문화에 대한 지극히 소박한 접근이라고 생각해 본다 무교란 우리역사의 기초라 상고사에선 무교에 대한 이해가 없인 접근이 불가하다 그래서 우리 역사학의 기초는 무교이다 무교에서 출발해야 우리의 상고 역사가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단순히 종교적인 차원이 아니라 문화적이고 아주 본래 우리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서 우리의 역사를 봐야 한다 그러할 진대 무교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1.한국 무교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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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무교의 구조: 어느 종교 못지 않게 구조가 3박자로 잘 짜여져 있읍니다 이런 구조를 누가 미신이라고 폄화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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巫 무당을 의미하는 ‘무’ 字다. 나는 이 한자를 볼 때마다 혼자 무릎을 친다. 생김새가 참 그럴듯하기 때문이다. ‘하늘(신령: 위 가로획)과 땅(인간: 아래 가로획)을 이어주는(세로획) 사람들’이라는 무당의 의미를 한 글자에 완벽하게 담아냈다. 이 책은 그들 무당과 굿의 의미와 역할을 소개한 것이다.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미 제목에 죄다 나와 있다. 제목: 巫敎, 부제: 무교-권력에 밀린 한국인의 근본 신앙 저자는 말한다. 한국의 전통종교는 ‘유․불․도’가 아니라 ‘巫․佛․儒’다. 무속이라는 표현은 잘못됐다. 하나의 어엿한 종교로 인정하여 무교라고 불러야 한다. 한국인들은 겉으로는 무교를 미신이라 경멸하지만, 막상 어려움이 닥치면 무당을 찾는다. 제대로 인식하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의 생활 문화 전반에 무교의 흔적이 아주 많다. 일본인들은 그들의 전통 종교인 신도를 자랑스럽게 여기는데, 우리는 왜 우리의 전통 종교인 무교를 부끄럽게 여기는가? 오늘날 무교가 종교 취급받지 못하는 이유는 권력에서 밀려나 탄압받아왔기 때문이다. 무교를 믿자는 것이 아니다. 미신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하나의 종교로 인정하자는 것이다. 이 책에서 모두가 한번쯤 되새겨봐야 할 부분이 있는데, 아래와 같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다음과 같은 뻔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즉 ‘그리스도교도와 불교도가 사랑과 자비 같은 그들 종교의 고등 덕목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다면 한국 사회가 이렇게 살벌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하는 질문 말이다. 이 종교의 신자들을 다 합하면 전 국민의 반 정도가 되는데 이들이 정말로 덕스러운 신앙생활을 한다면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이 종교의 대부분의 신자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불교나 그리스도교를 믿는 게 아니라 앞에서 본 것처럼 종교를 이용하여 자기 잇속만 챙기는 구복주의자일 뿐이다.”(177p) 나는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저자의 생각과 내 생각이 일치하는 부분을 만날 때마다 공감의 즐거움을 맛봤다. 타종교와의 비교를 통해 설득력을 더한 것도 강점이다. 그러나 아쉬움도 있다. 저자가 좀 뜨거운 상태에서 글을 썼다는 생각이 든다. 약간만 식혔더라면 더 좋았겠다. 나는 무교가 미신으로 치부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를 무당의 자질에서 찾고 싶다. 저자는 언급하지 않은 문제이지만, 나는 무당의 자질 문제가 중요하다고 본다. 한마디로 말해서 진짜 무당과 사이비 무당을 구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신부 목사 승려는 공식적인 절차를 밝아 자격을 얻는다. 그래서 의심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무당은 개인적이다. 무당 역시 혹독한 신병을 앓고 신어머니로부터 끊임없이 배우고 익혀서 태어나게 되지만, 사회적인 검증의 기회가 없어서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데 한계가 있다. 진짜 무당은 사람들의 아픔을 달래주고 한을 풀어주는 고마운 존재이지만, 돈만 탐하는 사이비 무당은 사기꾼과 다름없다. 지금 우리나라의 그 많은 무당 가운데 진짜 무당은 얼마나 될까? |
| 여러 종교에 관심이 많아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참 재밌게 잘 읽었다. 학자로서의 접근 및 일반인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어서... 기독교 학교에 근무하시는 교수님께서... 어떻게 보면 책 제목처럼 권력에서 밀려 있는 무교에 대한 책을 쓰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학자로서 용기와 열정으로 연구를 해주신 덕분에 나 같은 일반인이 무교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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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우리는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면서 많은 복을 빌고 또 빌어준다. 특히 설이나 대보름이 되면 우리는 달에 건강과 풍요를 빌어 왔고, 어촌이나 농촌에서는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위해 1년에 정기적으로 1-2번씩 갖는 풍어제1), 풍농제 등을 하고 있다. 이러한 풍어를 위한 굿이나 풍농을 위한 굿을 한 때에는 미신이라 하여 행하는 것을 금지하였으나 요즘에는 문화재로 톡톡하게(?) 대접을 받고 있다. 현재 문화재로 대접받는 굿은 일제시대와 산업화, 정보화 등 격동의 시대를 거치면서도 무속신앙이 면면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서해안풍어제 기·예능 보유자인 만신2) 김금화(78)씨는 “굿은 복을 나누고 덕을 나누는 신명나는 잔치이자 한풀이고 조상을 숭배하는 전통”이라고 말한다. 굿은 무당이 인간의 길흉화복을 신에게 기원할 목적으로 제물을 바치고 가무와 의식절차를 통해 행하는 제의(祭儀)를 말한다. 제의를 살펴보면 제의에는 먼저 제의를 올려야 할 신앙대상인 신, 제의를 올리는 신도, 전문적인 사제자(司祭者)로서의 무당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무당이 행하는 굿은 제의(祭儀) 행사로, 무당은 사제자(司祭者)로서의 무당의 신분을 규정짓는다면 종교라는 말이다. 하지만 무교는 종교성을 인정받기는커녕 오히려 타종교로부터 무속으로 미신으로 지탄을 받고 있다. 이 사실을 종교로 봐야하는지 미신으로 봐야하는 늘 해답을 구하지 못했다. 『무교: 권력에 밀린 한국인의 근본신앙』이라는 책으로 그 의문이 다소나마 풀렸다. 이 책은 한국죽음학회장이신 이화여대 한국학과 최준식 교수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종교를 갖든지 기본적으로 무교적인 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쓴 책으로 한다. 이 책은 모두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에서는 “한국의 고유 종교인 무교는 미신인가?”라는 주제로 무교는 어떤 종교인지 무교에 대한 소개와 무교의 기본 구조, 굿이란 언제 그리고 왜 하는 것인지, 한국인의 근원 신앙으로서의 무교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제2장에서는 “왜 한국은 무교의 나라인가?”라는 주제로 무교는 한국인의 근본 종교로서의 무교 약사, 역사적인 무교의 종교사회학적인 의미 등을 한국 종교의 근원이 무교(巫敎)라고 말하고 있다. 제3장에서는 “한국인의 종교적인 내면세계”라는 주제로 무교에서 바라본 불교와 그리스도교 등 다른 종교와 무교와의 관계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저자는 무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신앙이다. 무교는 고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갖은 핍박을 받으면서 끈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한국의 민간신앙으로 전통을 계승해오는 것은 사실이라며 주장을 하면서 무교의 기본구조와 굿, 무교의 역사 등을 소개했다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은 나름대로 정리하면서 무교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한다. 예로부터 우리는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많은 복을 빌고 또 빌어준다. 특히 조상들은 달에 건강과 풍요를 빌어 왔다. 음력 정월부터 섣달까지 같은 주기에 반복하여 거행하는 주기전승으로 소망을 기원하는 의례적인 행위를 세시풍속이라 한다. 세시풍속은 태음력(太陰曆)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달의 변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세시풍속은 한 해를 기준으로 달마다 배분하여 매 절기마다 상이한 풍습이 있다. 우리의 세시풍속 역사는 상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러한 세시풍속에는 달마다 각기 다른 특징이 있는 데 잡귀를 물리치고 조상의 넋을 위로하고 제사를 올리거나 벌초하는 등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의식이 많다. 세시의 역사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기록된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예의 무천(舞天) 등이다. 이 모두 귀신에게 드리는 제사다. 고려시대에는 연등회와 팔관회같이 불교행사도 세시행사가 되었다 한다. 이 중에서 단오제와 판소리는 무교와 직결되어 있다. 이 세시풍속들은 지금까지 우리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도 있으나 많은 풍속들은 이미 사라졌거나 변화하고 있다.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세시풍속도 그 시대에 맞게 변화하는 것이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세시풍속의 중심에는 무속적 신앙이 있기 때문인 것은 아닌지 모르지만 많은 세시풍속이 사라졌고 또,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면 문제가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다. 우리나라가 무당과 굿은 미신이라 하다가 이제 전통문화로 계승하고 보존하고 있지만 종교적 측면에서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저자는 무교가 미신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데에는 또 다른, 아주 단순한 이유가 있다. 무교는 권력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역사를 보면 무교는 계속해서 권력과의 거리가 멀어졌기 때문에 미신으로 취급 받을 수밖에 없었다. 불교나 유교가 중국에서 들어오기 전까지 무교는 미신으로 천대 받은 적이 없다. 아니 무교는 외려 당시의 보편 신앙이었다. 그러나 불교나 유교 같은 수입 종교가 권력과 결탁되어 세력을 형성하기 시작한 다음부터 ‘무교는 미신’이라는 비난을 피해 갈 수가 없었다. 게다가 다수가 이 종교들을 믿게 되면서 또 그 힘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는 과정에서 목사나 신부의 신분도 언급하고 있다.-180쪽 또한 무교가 종교로 인정받기 위해서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무(巫)에 대한 사상 그 개념과 성격에 대한 바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아직도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많은 사람들이 종교적 관점에서 이해타산을 벗어나 민속세시 풍속이라고 여기는 윤달(閏月)은 군달·공달이라 하여 무슨 일을 해도 탈이 없는 달로 여기며 평소에 꺼리던 이사·이장(移葬) 등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무교가 한국의 전통종교로 인정하기위한 실마리가 있는 것은 아닐까? 특히, 이 책에서 느낀 점은 옛날부터 우리 나라에서 물을 소중하고 귀중하게 다뤘다는 느낌을 받았다. 바라공주의 설화에서 공주가 매일 같이 길러 쓰던 물이 부왕의 병을 고치는 약이라는 사실이다. 이 부분에서 우리나라도 물을 생명의 기원으로 여긴 최초의 설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지금까지 무교에 대한 오해를 가지고 있었으나 무교가 우리 민속과 민족정서에 많은 영향을 끼쳐왔음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무교가 우리 민족 전통의 고유한 종교라는 사실과 민족 종교로서 인정받아야 할 종교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었다. 무교에 대해 오해와 편견,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읽어본다면 폭넓은 정신세계를 확인해 볼 수 있다는 생각에서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1) 전래되는 풍어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82-2호인 '서해안 풍어제'로서 대동굿과 배연신굿이 있다. 2) 만신(萬神) : 무녀를 높여 일컫는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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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 권력에 밀린 한국인의 근본신앙
한국인의 심성에 세겨진 신앙과 종교는 무엇인가? 이 책은 이런 화두를 가지고 쓴 최초의 책이 아닌가 싶어 호기심과 기대감을 가지고 읽었다. 과연 외래종교에 의해 우리 민족 전통의 고유힌 뿌리를 보지 못하고 살아 가는 우리들에게 스스로를 반성하고 경종이 될 만한 책으로 의미 깊게 읽었다.
그렇다고 하여 이미 갖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각자 나름대로의 신앙심을 폄하 하고자 함도 아니라 그저 우리 민족의 고고한 역사의 흐름속에서 면면히 발견되는 있는 그대로의 역사성과 민족성의 본연의 뜻을 되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균형잡힌 시각을 던져 주는 책으로 의미 깊게 읽을 수 있었다.
신명나는 무교적 토양과 토착적 종교심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하지 않고서는 어떤 종교의 신심도 온전하게 바라보고 평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나의 뿌리는 무엇인가? 나의 사고와 심성의 바탕은 무엇으로 자리잡고 있는가? 내가 믿고 있는 신앙의 본질과 의미를 무엇인가를 되짚어 보게 하는 책으로 생각되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국인 스스로가 문화 정체성을 찾아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찾아 가도록 길 안내를 해 주고 있다. 더 이상 우리 자신을 속이지 말고 무교를 우리 근본 신앙의 뿌리로 알고 인정함으로서 문화 발전에 유용하게 활용하자는 의도를 던져 주고 있다.
무교가 한국인의 전통 문화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대도 불구하고 심히 이상하게도 주인공인 한국인들은 그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왜 일까? 무엇이 우리를 회피하게 하는 걸까? 그러나 삶의 곳곳에서 펼쳐지는 신명나는 놀이 문화의 밑바닥에는 여지없는 무교적 심성이 깔려 있는대로 이상하게도 인정하려 하지 않으니 참 이상할 노릇이다.
신명과 신들림은 한국인에게 있어 세계적 수준이다. 그중에 한국인의 음주가무 문화는 추종을 불허할 정도라는 사실을 현상학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들은 낮에는 유교적 문화의 세계를 보내고 밤에는 무의식적으로 비질서의 세계를 지향함으로 균형을 잡고자 하는데 이는 망아의 세계를 접하는 무교적 관념과도 일치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뿌리 깊은 한국적 본향의식을 추구하는 과정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비록 어떤 신앙관을 가졌든지 간에.. 한국인의 심성에 이처럼 뿌리박혀 있는 토속적 무교 문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져야만 현상을 바르게 해석하고 내면을 알차게 다질 수 있지 않을까 ..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균형감각을 갖게 하는 책으로 한번 꼭 읽어 보기를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