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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남자다움, 성정체성, 신앙인으로써의 남성성... 카리스마, 리더쉽.. 두려움 이런 단어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나름대로의 해답을 찾아가던중, 친구의 권유로 이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임상심리학을 전공한 래리크랩과 외 두명, 총 3명의 저자가 자신의 경험과 어린시절의 이야기로 이책은 시작됩니다.
1부만 읽고 서도.. 이 책이 20대의 나에게 엄청난 인사이트를 줄것이라는 예감이 들어서.. 친구들과 함께 책을 읽고 토론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내용은 남자답지 못한 남자의 대한 분석과 빗나간 요리법신학으로 가득한 요즘의 세태, 혼돈과 불확실 성으로 뛰어들지 못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안주하는 남성의 고질적인 병..등을 일부에선 지적하고 2부에 들어서는.. 좀더 깊이있게 남성의 관계문제와 남성이 가진 두가지 욕구의 스팩트럼 강자욕구와 의존욕구에 대한 분석이 이뤄집니다.
제 3부에서는 앞서 지적한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이 부분이 개인적으로 좀 미흡하게 느껴졌지만, 이 책의 촛점과 방향이 너무나 정확하고 절묘해서 읽는 가운데 깊이 생각하며 저의 신앙인으로써의 남성성.. 더 나아가 이시대에서 남자로써 살아가는 것에 대한 통찰을 할수 있었습니다.
<<오자>> 188페이지 두번째 단락에 그렇게-> 그렇기 로 바꿔야 합니다. [인상깊은구절] 그들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확신 하나만 가지고는 어둠속에 들어서기를 거부한다. 161페이지 남자가 둘중 하나로 움직이는 이유 기억하라는 개념은 성적인 되에 대한 고민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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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은 금이다.’ 말이 많다는 것은 늘 많은 실수를 하게 될 여지를 남겨 두는 것입니다. 침묵은 그것 자체가 바람직한 것으로 인식이 되어 왔습니다.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을 가리켜 저 사람은 말이 없어서 좀 답답하다 이 정도이지 저 사람은 말을 하지 않는 나쁜 사람이다라고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침묵은 우리에게 별다른 나쁜 것이 아닙니다. 아니,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은 ‘아담의 침묵’입니다. 바로 이것이 이 책이 쓰여진 동기입니다. 저자는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합니다. 아담은 침묵함으로써 자신의 역할을 하지 못했고 인류의 파멸을 초래했습니다. 그런 아담의 후예로서 남자는 혼돈 속에 빠져들면 침묵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며 악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남자를 그 침묵 너머로 부르시고 계신다고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그렇습니다. 저자의 말대로 세상이나 인생이 쉽다는 이야기는 거짓말입니다. 인생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학교 시험처럼 시험 범위가 있고 정답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답이 정말 있는지 없는지 조차도 의심스럽고 예측 불가능이고, 범위도 없습니다. 지나고 나서도 그것이 최선이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혼돈과 혼란이 있습니다. 어두움입니다.
사람들은 어두움 가운데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정전이 되면 사람들이 순간 멈춰섭니다. 본능적으로요. 아무도 자신이 제어하기 힘든 어두움 가운데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런 어두움과 혼란 가운데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세상에서 우리는 우리가 알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칩니다. 그 때 남자들은 침묵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어두움 가운데서 남자들이 하나님을 기억하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 어두움을 두려워하지 말고 들어가기를 원하시며, 그럴 때 하나님을 정말 알 수 있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남자다운 남자는 모든 것을 잘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닙니다. 혼란 가운데에서 모든 상황을 통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기있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남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억하며 이야기하는 것이 진정한 남자입니다.
저도 침묵이 남자의 특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원래 남자는 침묵하니까 저도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분명히 확신컨대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이야기하시기를 바라셨을 겁니다. 아담이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었습니다. 혼돈과 어두움 속에서 침묵으로 숨는 것은 악한 행위이며 죄입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지금 어두움 속으로 우리를 부르시고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돈이 많으면 안전할 것이라고 좋은 대학을 나와서 좋은 직장을 취직하면 또는 권력이 있으면 안전할 거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노력합니다. 그러나, 삶은 우리의 뜻대로 통제되지 않습니다. 수많은 상황들로 우리를 몰아갈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과 함께 그 상황으로 뛰어들어가라고 저자는 격려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뛰어들어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큰 실패를 맛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뛰어들어가면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와 신비, 그 분을 의지했을 때 일어나는 아름다운 결과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침묵은 금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와 내 가족과 친구들과 사회를 파괴시킬 수도 있는 악입니다. 세상은 쉽지 않습니다. 어렵습니다. 정말 어렵습니다. 또한 어두움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말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지금 침묵하고 계십니까? 지금, 뒤로 물러나 가만히 앉아 계십니까? 어두움이 두려우시다구요? 그러나 그 어두움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다는 알고 계십니까? 지금 바로 뛰어드십시오.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계십니다. 이 책이 지금 다짐한 당신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줄 것입니다. [인상깊은구절] 그러나 침묵은 금이 아니다. 침묵은 치명적이다. 아담의 침묵은 치명적이었다. 관계의 단절을 가져왔다. 궁극적으로 그것은 죽음을 불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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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 따르면 하나님은 남자들에게 독특한 사명을 주셨다. 남자들이 남자가 되면 세상이 달라진다(47쪽). 그런데 오늘날의 남자들은 아담처럼 하나님을 잊은 채 침묵만 지키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아담에게는 독특한 사명이 있다. 남자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여 때에 맞게 말해야 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주어지는 자신감과 지혜를 가지고, 위험한 불확실성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이제는 남자들이 제 목소리를 되찾을 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리고 말할 때다"(15쪽).
첫째로, 본서의 저자들은 "아담은 말해야 할 때 침묵했다"고 아담을 역사의 법정에 세운다. 하와는 사단의 꾀임을 받았다. 그리고 금지된 과일을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한" 아담에게도 주었다(창 3:6). 아담은 처음부터 쭉 거기에 있었을까? 그는 모든 말을 들으며 거기 있었을까?
아담은 자신의 첫 번째 영적 싸움에서 하나님을 대변하지 못했다. 그는 남자로서 실패했다! 아담의 침묵은 모든 남자의 실패의 시발점이 되었다. 아담 이후로 모든 남자에게는 말해야할 때 침묵하는 본능적인 성향이 있다.
둘째로. 저자는 '남자답지 못한 남자'와 '남자다운 남자'에 대해 설명한다. 그에게는 이런 모습이 나타난다. 그는 통제적이다(비인격적으로 힘을 행사한다). 그는 파괴적이다(또는 위험하다). 그는 이기적이다(무엇보다도 자신의 특정 기분에 집착한다).
남자답지 못한 남자는 대화를 통제한다. 그는 가족과 친구들을 조종한다. 그는 자신이 감당할 자신이 없는 상황이면 무조건 피하는 쪽으로 자기 삶을 수습한다. 그는 아무도 깊이 신뢰하지 않는다. 그는 남의 말을 들을 줄 모른다. 우정이 자기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경우를 빼놓고는 아무에게도 깊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심층으로 들어가 보면, 남자답지 못한 남자들의 통제 욕구 밑에는 무력감이 있다. 파괴적인 힘은 증오에 찬 분노에서 온다. 또한 그들은 이기심만이 생존의 유일한 희망처럼 보일 정도로 두려움에 차 있다. 통제, 위협, 이기심은 남자답지 못한 남자가 관계를 맺는 방식의 전형이자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의 전형이다.
반면에, 남자다운 남자는 아주 다르다. 남자다운 남자는 자신이 무력하지 않고 강하다는 것을 안다. 남자다운 남자는 평안을 경험한다. 남자다운 남자에게는 자신의 고통이 다른 사람의 곤경을 느끼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경험에 정직하게 직면할 용기가 있다. 그래서 그는 타락한 세상을 사는 슬픔, 불완전한 공동체 안에 사는 외로움을 느낀다.
셋째로, 이전 세대에 믿음의 남자들은 긴 세월 지속되는 치열한 개인적인 '영적 전투'를 끝까지 맹렬히 싸웠다. 바울, 어거스틴, 조나단 에드워즈, 존 낙스 같은 남자들은 이러한 성숙한 남성성을 보여주는 모델들이다. 그들은 상한 심령으로 무릎을 꿇었고, 일어나서는 남을 섬겼다.
저자는, 우리 시대의 남자들이 하나님을 구하는 것보다 남성성을 찾는 일에 더 골몰한다고 말한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에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남성성을 공부하고 그 공부하고 배운 바를 실천하려 애쓰는 과오를 범하는 남자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넷째로, 저자는 '오늘날 우리 세계의 가장 절실한 필요'가 "하나님의 성품이 반영된 삶의 질을 소유하고 드러내며,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을 알고 싶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경건한 남녀들"이라고 말한다(230쪽). 하나님은 영적 부모들과 경건한 형제자매를 원하신다. 우리는 이제 '멘토 세대'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 책은 남성성 또는 남자다운 남자의 문제를 다룬다. 그리고 남성성의 왜곡의 근원을 파헤치고, 그 결과로 빚어진 비극을 드러내며, 성경적 남성성에 관하여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진정한 남자로 거듭나기 원하는 남자들과 아버지들, 그리고 이 세대의 영적 멘토가 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이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인상깊은구절] 세상 도처의 남자들이 제 목소리를 되찾고, 힘을 발휘하고, 진정한 남자가 되라는 하나님의 부름에 순종하는 기쁨을 회복할 때, 기독교 공동체는 그 본질부터 달라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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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선택은 하나님에 대한 망각을 요한다. 이런 의미에서 망각은 단순히 열쇠를 어디 두었는지 잊어버리는 것 이상이다. 그것은 기억을 거부하는 능동적이고 고의적인 선택이다. - 115p 남자들은 음란함에 쉽게 넘어진다. 그게 잘못된 것이라는 막연한 마음의 불편함이 있지만 그래도 그 길만이 지금 나의 불만을 잠잠하게 해줄 것 같은 느낌에 마음 속 하나님을 애써 지우고 음란함에 빠져들게 된다. 죄를 진 이후에 밀려드는 죄책감과 무기력함은 다시는 그런 잘못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만들지만 연이어 찾아오는 불편한 감정은 쉽사리 해결되지 않기에 또 다시 음란함을 찾게 된다. 죄를 지은 남자는 당당함을 잃어버린다. 행여 나의 죄가 드러날까 노심초사하며 눈치를 보게 된다. 스스로 자유롭게 지은 죄가 남자가 남자다울 수 있는 자유를 억압한다. 이 책은 남자다움에 대한 책이다. 정말로 남자다운 남자는 어떤 모습인지에 대한 성경적인 비전을 이 책은 제시하고 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첫 사람 아담을 만드셨다. 아담은 남자, 하와는 여자라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고, 하나님이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말씀하셨다는 것도 누구나 알고 있다. 이 책은 이런 의문을 담고 있다. 하와가 뱀의 유혹에 속아서 선악과를 따먹을 때에 아담은 과연 어디에 있었는가...? 그렇다 하와가 선악과를 바라보고 선악과를 따고 선악과를 먹는 동안 아담은 하와의 바로 옆에 있었다. 그는 적극적으로 하와를 말렸어야 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말을 해야 할 때에 침묵하였던 것이다. 아담 이후로 모든 남자에게는 말해야 할 때 침묵하는 본능적 성향이 있다. - 14p 뭔가 대단히 잘못됐다. 거친 남자들은 있지만 남자다운 남자는 없다. 부드러운 남자들은 있지만 남자다운 남자는 없다. 세상엔 남자다움에 대한 모델을 제시할 사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두려움은 남자를 남자답지 못하게 만든다. 그 두려움을 남자답게 해결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남성성을 갖추게 될 것이다. 우리가 어둠 속에서 말하기로 결심 할 때 하나님은 용기를 주신다. 떨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는 용기가 아니라 그 다리로 전진하게 하는 용기다. - 138p 남자들이 남자가 되면 세상이 달라진다. - 47p 이 책은 진정한 남성성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남성성의 부재의 원인에서부터 그로부터 시작된 관계에서의 죄악들 그리고 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된 멘토의 시대까지... 세상이 왜곡시킨 남성성의 모델을 새롭게 정립하는 책이다. 래리 크랩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있다. 이 비전을 함께 공감하고 함께 꿈꾸는 남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할 때에 래리 크랩의 비전과 같이 세상이 달라지는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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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입장에서 읽어도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다. 아담이후 남자들이 세상의 유혹과 두려움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고 그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그리고 그 무력감을 어떻게 극복해 갈 수 있는가를 저자들의 이야기와 더불어 얘기하고 있다.
남자는 세상에 태어나서 3번만 울어야 하고 아무리 슬픈 일이 있어도 속으로 삭혀야 한다는 문화가운데서 키워진 한국의 남자들에게 남자의 침묵은 고귀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침묵은 진정한 남성다움이 아니다. 결국 현실도피이고 폭력과 외도라는 타락으로 이어질 뿐이다.
저자는 남자들이 혼란과 어두움을 극복하기 위해선 도망치거나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둠과 혼돈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아담은 뱀이 주는 혼돈 앞에서 침묵으로 도피하였다.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기억하고 말하지 않은 대가로 결국은 두번째 아담인 예수님께서 죽으셔야 했다. 남자들은 기억해야 한다. 자신들의 침묵이 잠깐은 편안해 보일지 모르나 결국은 더 값비싼 대가를 요구할 것이란 것을... 그것은 깨어진 대인관계나 부부관계가 될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비전이 가슴에 와닿았다. 남자들이 영적인 멘토로 세워지는 공동체와 그 멘토들로 인해 회복되는 남성성...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의 의도되로 회복되어지는 남성들... 그런 남성들이 많아진다면 세상은 변화될 것이다. 나 역시 저자와 동일한 꿈을 꾸어 본다. [인상깊은구절] 오늘날 우리 세계의 가장 절실한 필요는 단순히 이것이다. 하나님의 성품이 반영된 삶의 질을 소유하고 드러내며,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을 알고 싶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경건한 남녀들이다. |
| 남성성과 여성성, 남자와 여자라는 의미는 사도 바울이 말한 2가지 비밀중에 하나이다. 예전부터 이 문제에 대해 잘알고 있을 것이라는 나였지만, 남성성과 여성성이 있다는 것, 그것에서 진정 뜻하신바를 이루어나가시는 계획은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 실패한 남성성, 정의와 신념에 뒤돌아서고 어두움 속에서 자기 자신을 찾지 못하고 현실을 피하기만 하는 원래의 '남성성'을 잃어버린 ....어이없게도 나의 모습을 정확히 발견하였다. 모든것이 잘 정돈되어있고 꽤 그럴듯해 보이는 외면.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주위 사람들은 그를 보면 자기도 느끼지 못하는 이상한 거리감을 발견하게 되고 항상 깊이있는 관계와 삶의 행복은 전혀 찾을 수 없는 몬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인 매우 성공한 남자,,, 나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무엇이 남성성이고 진정 지향해야 할 바는 무엇이란 말인가,,, 내 자신이 실패한 보통의 '남자'들의 편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건 아니라고 그렇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 나는 황급히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남성으로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진정한 남성성을 가진 자로 살아가기 위하여, '가장 남성성을 보이신 이는 바로 예수님이었다' 그렇다, 예수그리스도는 맡은 바 임무와 역할을 다하셨고, 신념과 소명에 대해 그리고 주변사람들에 대해 완벽하게 '남성성'을 구현해내셨다. 세상의 무게에 놓여, 주변의 장애나 조건, 환경등의 억눌려 그것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자신의 '의'를 잃어버리게 되는 현실에서 저자는 자기를 찾지 못하는 이들에게 매우 강하나 세밀한 어조로 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가라고,,, 쉽게 되지는 않을 것이지만, 항상 그것을 찾아가려고, 놓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