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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의 궁핍함이 아무리 심해도 '밖'을 경외함을 조심하라
"'안'의 궁핍함이 아무리 심해도 '밖'을 경외함을 조심하라" 내용보기
박노자 교수(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의 글을 읽으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뒤늦게 한국으로 귀화한 그의 유려한 한국어 문장에 감탄을 하고, 한국사에 대한 해박한 그의 지식과 비판 의식에 또 한 번 감탄을 합니다. 이래저래 별 다른 비판 의식 없이 한국에서 한국민으로 살아가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이 책은 우리의 '근현대 수난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19세기의
"'안'의 궁핍함이 아무리 심해도 '밖'을 경외함을 조심하라" 내용보기
박노자 교수(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의 글을 읽으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뒤늦게 한국으로 귀화한 그의 유려한 한국어 문장에 감탄을 하고, 한국사에 대한 해박한 그의 지식과 비판 의식에 또 한 번 감탄을 합니다. 이래저래 별 다른 비판 의식 없이 한국에서 한국민으로 살아가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이 책은 우리의 '근현대 수난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19세기의 조선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 시대의 미시사를 '개인주의' 관점에서 다시 보고 해석하고 그리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 역사의 연장선상에서 있는 현대사회의 '폭력적 논리의 이념적 근거'를 밝히고 있습니다. 구한말 이래 '국민'이라는 담론이 가지는 '전체주의적 속성'을 파헤치고 있습니다. 전체주의적 속성은 사회적 폭력을 용인하는 '사회진화론'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하며, 이를 '개인주의'적 관점에서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는 구한말의 미시사라고 할만큼 구한말과 일제시대의 많은 자료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풍부한 자료 인용과 남다른 시각 - 이로 인해 개인적으로 매우 뜻깊은 역사 여행을 경험했습니다. 보수냐 진보냐, 지배층의 역사냐 민중의 역사냐는 식의 이분법적인 시각이 아닌, 박노자 - 그만의 시각으로 역사를 정리하고 있어, 신선합니다. 그 시각의 참신함에 역사 공부가 즐거워집니다. 내친 김에 한국사 책 네 권을 더 샀습니다. 이 참에 한국사 지식을 체계적을 쌓고 싶습니다. 맘 속으로 늘 찜찜했던 정리되지 않은 역사 지식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박노자는 '수난'이라는 말로 글을 시작합니다. 비록 입장이 다르더라도 대개의 사학자들과 일반인들조차도 우리의 역사를 얘기할 때 '수난의 역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대개의 사학자들이 그 '수난'을 말할 때는 외부 세력으로부터의 집단적 국가적 피해를 강조합니다. 외세의 침략을 통한 수난의 역사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박노자의 시각은 다릅니다. 19세기 말의 조선을 "민초들의 일상에서 볼 경우 외세의 침범보다도 조선 사회의 내재적 위기가 훨씬 더 큰 고통을 주었다"고 말합니다. 나아가 "관리라는 이름의 폭력배에게 사냥감이 될까봐 백성들이 좋은 옷을 입거나 좋은 집짓기를 꺼렸던 나라, 관리자의 도둑질로 조선 군인들은 물론 미국에서 초빙된 외국 교관들도(!) 월급이 일 년 이상 밀리곤 했던 나라가 바로 19세기 조선의 모습이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외부의 침략이 아닌 내재적 모순으로 인한 조선 백성의 수난이 더 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큰 수난은 "외적들에게 삼천리 강토를 빼앗기고 부일배附日輩나 부미배附美輩들로부터 착취와 통제를 당하는 것도 고난이겠지만 그들에게 정신적으로 압도당해 그들의 논리에 알게 모르게 길들여진 것이 가장 큰 치욕"이라고 말합니다. 이 책은 그 치욕적인 '논리'의 역사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문명이 야만을 정벌할 권리가 있다고 봤던 <독립신문> 필진의 세계관은 바로 그들이 존경해 마지 않은 이토 히로부미나 야마가타 아리토모와 같은 조선 침략의 주범들의 세계관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말하고, 그 원인을 파헤치고 있습니다. 이런 제국주의적 논리가 알게 모르게 우리들에게 깊이 내면화된 것이야말로 우리의 최대의 손실이자 수난이라고 말합니다. 이 책은 인종주의와 제국주의, 그리고 그 이면에 내재된 약육강식 우승열패優勝劣敗의 폭력적 '사회진화론' 사상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구한말과 일제 시대의 지식인들의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줍니다. 제국주의 침략을 통해 민족적 저항 의식이 성장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 저항 의식 못지 않게 한편에선 서구에 대한 숭배 현상을 불러왔는데, 개화파와 일제시대 지식인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그 실상과 한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박노자는, '밖'의 화려함에 비해 '안'의 궁핍이 아무리 심해도 '밖'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리석은 일임을 선조들의 실수에서 배우자고 말합니다. * 글이 길어질 것 같아 '개인주의'와 '유사 개인주의'의 잘못된 이해 - 즉 마치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동일하게 사용되는 오류와, 역사적 인물을 통해 진정한 개인주의를 실천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생략했습니다.
n******8 2005.01.2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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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땅의 과거에 대한 공백을 인식하게 하는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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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아주 많은 관심을 가지지 않은 사람으로써 이 땅에 살아온 이들의 과거란, 소위 조상들의 삶이라는 것은 항상 공백이라고 여겨진다. 물론 다른 땅에 살던 옛사람들의 삶도 알지 못하는게 사실이지만, 지난 한 200여년간을 돌아보면 소위 사회과학 서적이랍시고 손에 잡았던 책들에서 유럽이나 미국의 삶에 대해선, 그들의 경제와 계급간 갈등, 문화와 과학에 대해선 오히려 그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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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아주 많은 관심을 가지지 않은 사람으로써 이 땅에 살아온 이들의 과거란, 소위 조상들의 삶이라는 것은 항상 공백이라고 여겨진다. 물론 다른 땅에 살던 옛사람들의 삶도 알지 못하는게 사실이지만, 지난 한 200여년간을 돌아보면 소위 사회과학 서적이랍시고 손에 잡았던 책들에서 유럽이나 미국의 삶에 대해선, 그들의 경제와 계급간 갈등, 문화와 과학에 대해선 오히려 그 줄거리를 잡고 있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땅에 살던 이들의 삶에 대해선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언급된 내용들이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들의 8-90%를 차지한다.


실학에 대해서도 조금은 접해본 것 같고, 해방공간이라 불려졌던 시기의 정세에 대해서도 약간은 읽어봤지만, 각종 '양요'(병인양요, 신미양요) 시기부터 대원군과 고종의 시기도 들어봤지만, 개화기의 기독교와 각종 신흥 민족종교들에 대해서도 관심은 가져봤지만, 막상그 당시 살던 이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면... 그냥 어려웠고, 핍박을 받았나부다~ 정도 이상의 생각은 없었다. 그러기에 이 시기는 나에게 공백이다.


그렇기에 박노자의 작업들과 설명은 적지않은 충격으로까지 다가온다. 어쩔수 없이 남겨진 문헌들을 바탕으로 추론해가는 당시 조선땅에 살던 이들의 삶과 생각들이지만, 그것들에 대해 직접 접해본 바가 별로 없기 때문에, 상당히 낯선 우리 조상들의 사고방식을 접하고서는... 아~! 하는 감탄과 탄식이 함께 나오게 된다.


박노자의 글들은 가끔씩 단편적으로만 접해봤었다. 어찌하여 러시아 출신의 사람이 이 극동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지 여전히 의문이지만, 그 본질적인 낯섦때문에라도 이 땅에 있는 역사학도 그리고 일반인들이 자신의 할머니 할아버지 대의 사람들이 살던 모습과 생각을 한번은 더 추측하게 만드는 것 같다.



이 책에서 노골적으로(?), 부정적으로(?), 또는 솔직하게(?) 그려진 조상들의 특성을 몇가지로 정리하자면, 1. 그들은 확실히 생각의 폭이 좁았다. 성리학과 실학의 기반에 새로운 문물이라는 경험은 있었지만, 일부 일본과 중국의 소수 학자들의 사상이 당시 지식인들이 가진 사고의 폭을 결정했다. 2. 소위 개화기 선각자들은 대부분 조선땅에 대한 사상적인 얕잡아봄? 상대적인 우월의식이 있었고,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자신들을 준서양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현재의 검은머리 외국인들처럼), 3. 해외에 대해서도 적대감보다는 부러움들이 더 지배적인 정서였으며, 현재도 그렇듯이 제3세계 연대에 참여하여 선도하고자 하는 생각을 가진 이들은 드물었다. 4. 그러면서도 전근대적인 부패와 계급, 성차별의식은 여전히 뿌리깊었다.


뭐 악감정을 가지고 쓰여진 글들은 아니겠지만, 조금이라도 민족주의적 감정을 가지고 박노자의 글을 읽는 이들은 반감이 생길정도로 생각도 못했던 조상들의 상처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이 땅의 사람들은 과거의 허물을 들추는 것에 상당히 서투르고 인색하다. 겨우 이정도를 가지고 말이다. 한국사람이 이런 글을 썼다면 왜곡되었다고 비판받고, 저자의 경우 외국인 시각의 한계를 지적받을 것이다. 박노자의 작업이 국내 역사학계를 비롯한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모르겠지만, 오랬동안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막연히 알고 있으니 여러모로 사상계에 긍정적인 자극이 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



무엇보다도, '그 사람이 이야기하는 거 다 아는 건데, 별로 중요한 게 아니어서 난 그런 연구 안했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해버리고 무시하는 역사학자들이 많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YES마니아 : 골드 e****s 2011.10.2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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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배반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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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흥미가 생긴 것은, 최근 생각하게 된 가설 때문입니다. 일제 시대 때에는 조선 총독부는 수탈을 목적으로 하는 타자였지 내면으로 받아들여지는 우리의 정부일 수가 없었고, 상해 임시 정부는 해외에서 독립 투쟁만 하고 있었고, 조선조의 전통적인 지배 조직은 이미 산산히 와해가 되었기 때문에, 구너력의 공백으로 오히려 경성에는 오히려 해방 이후 정당한 정부가 들어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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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 흥미가 생긴 것은, 최근 생각하게 된 가설 때문입니다. 일제 시대 때에는 조선 총독부는 수탈을 목적으로 하는 타자였지 내면으로 받아들여지는 우리의 정부일 수가 없었고, 상해 임시 정부는 해외에서 독립 투쟁만 하고 있었고, 조선조의 전통적인 지배 조직은 이미 산산히 와해가 되었기 때문에, 구너력의 공백으로 오히려 경성에는 오히려 해방 이후 정당한 정부가 들어섰을 때보다 더욱 사상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었다, 라는 생각을 했었더랬습니다. 한국인 특유의 집단, 단체주의, 남 눈치 보기, 엄청난 일체화가 부담이 되서 든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이 책을 보면 그러한 제 생각에 대한 어떤 힌트를 얻었다기보단 '아, 참 내가 한국 근현대사에 무심했구나'하는 생각이 더욱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니, 국사 시간에 배운 일제 시대 이야기 외에 제가 일제 시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관심을 가진 적은 없었던 것 같네요. '토지'도 최근에야 읽기 시작했고, 굉장히 독립운동에 대해서도 개화파에 대해서도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구요. 이 책의 '나를 배반한 역사'란 제목은 역사가 어떠리라고 기대를 해야 가능한 제목인데, 제 입장에서는 '내가 몰랐던 역사'라고 해야 되겠네요. 


 일단 우리로서는 명백해 보이는 '조선의 악습과의 단절'은, 결과적으로 말해서는 완벽하게 되었지만, 당대의 사람들, 특히 180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에 있어서는 대단히 의식적으로 노력을 해서 끊어내야만 하는 역사였었습니다. 이 책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은 너무 지나치게 단절된 나머지 일제 시대 선각자들의 정치적인 스탠스를 지금 시점에 본받아야 할 것이라고 착각해서 추앙한다는 것입니다. 후일 친일파로 돌아섰긴 했지만 초반부의 그의 개화의지는 우리 민족의 자체적인 개화 추진 의지가 있는 것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하지만, 그건 꿈보다 해몽이지요. 대부분은 친일파로 돌아설만 했으니 돌아선 것이고, 특히 당대 유학파 지식인들은 일제를 서양의 폭거에 항거하는 아시아의 방벽으로 생각하기 까지 했다고 하니, 정말 착각도 이만저만이 아닐 수 없지만, 당시에 인식은 조선의 거대한 악습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우리도 제국주의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하니까요. 하기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정말 많으니 연속성이 있긴 하네요.


 반면 오히려 과거의 인물들보다 현대에 와서 못해진 부분도 있지요. 우승열패, 약육강식의 원칙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의식은 과거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적어도 당대에는 이집트, 베트남 같이 제국주의에 침탈당하는 나라들에 대한 동정은 있었다는 거지요. 그리고 우리도 그와 같이 되기 위해서 힘을 키워야 한다, 이런 식으로 논리가 전개되어 나갔는데 열등해서 패하는 게 당연하다고 해도 적어도 측은지심은 가지고 같이 아파하는 마음은 있었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지금 한국은 당시의 약자 쪽에 서있던 입장에서 상당히 강자쪽으로 붙어 있죠. 어느덧 우리 안에 내재화된 제국주의 논리가, 동남아와 아프리카를 무시하는 마음으로 드러나 버린 겁니다. 


 또한 재밌는 것은, 조선 왕조는 지금에 와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처음부터 그랬다는 건 아니었죠. 1900년 근처에는 우리 나라는 영국, 일본과 같이 입헌군주정을 세워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물론 이건 민초들의 목소리가 바로 터져 나오는 민주주의는 안 된다, 라고 생각하는 엘리트주의자들 때문이었지만 이씨 왕조를 버린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던 당대의 선비들의 인식 때문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왜 아무도 왕정을 기억도 못 하는가? 일제가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만들고 경복궁을 중앙청으로 만드는 노력 때문도 있었지만, 애당초 왕조 자체가 산산히 흩어졌기 때문에 의미가 없었던 거죠. 우리 독립 운동사에 왕조의 후손들이 어떤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죠? 일제가 박살을 내서 그렇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애초에 왕조와 백성 간에는 간극이 지나쳐서 그런지도 모릅니다. 1800년대 민중의 핍박받던 삶은 일본이 들어오기 이전에 탐관오리들의 횡행 때문이었죠. 양반 계급이 그럴 생각이 없는데 개화가 되었다고 민주주의적인 정치 체제로 과연 돌아설 수 있었을까요? 사실 유럽의 정치체제를 받아들인 일본은 겉으로만 민주주의를 받아들여 국민들을 장기 말처럼 생각해서 전쟁에 동원하는 일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죠. 당시의 조선 지식인들도 '개인의 자유보다 국가의 안녕'에 우선하는 마음가짐을 촉구하는 글을 많이 썼습니다. 지금도 국익을 위해서라면... 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만약 자신들의 자유를 반납하라고 하면 용납을 할까요? 그냥 나랑 상관 없는 남들의 생각을 제한하는 것은 국익을 위해서, 나의 자유는 당연한 것 같은 생각을 많이 하는 지금에서라면, 나는 자유롭지만 백성 무지랭이들은 좀 참아줘야겠다는 식의 당대의 글에서 아무런 모순을 못 느낄 성도 싶습니다.



 

e****e 2014.02.21.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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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개인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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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대한민국'과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라는 책에서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한국사회 비판서를 보여주었던 박노자 교수가 이번에는 자신의 전공을 잘 살린 역사 서적을 썼습니다. 역시 이 책에서도 박노자 특유의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기가 돋보이더군요. 조선 말엽부터 식민지 시대까지에 이르는 역사 기간 동안을 배경으로 하여 우리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것, 당연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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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대한민국'과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라는 책에서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한국사회 비판서를 보여주었던 박노자 교수가 이번에는 자신의 전공을 잘 살린 역사 서적을 썼습니다. 역시 이 책에서도 박노자 특유의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기가 돋보이더군요. 조선 말엽부터 식민지 시대까지에 이르는 역사 기간 동안을 배경으로 하여 우리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것, 당연한 것이라 여기며 지나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그런 과정 속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상세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이 책에서의 또다른 특징이라면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에서 평화주의의 모토를 많이 강조했었듯이, 비슷한 맥락에서 개인주의를 많이 중심에 두었다는 겁니다. (결국 그 둘이 연결되는 지점이 있지요 ^^;) 제목도 그래서 '나'를 배반한 역사로 달았고, 테마로 잡은 소재들이 대부분 한국 근대사에 있어서 개인으로서의 '나'를 소외시키고 국가와 민족이라는 '감옥'에 갇혀있었던 그런 사례들입니다. 예를 들어, 아시아인종주의나 개신교 개인주의자, 여성운동 등등이 그렇지요. 박노자 교수는 윤치호같은 그 시대의 지식인들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그들이 그렇게 나약하게 사회진화론에 빠져들고 결국 일제의 식민지배에 협조하게 된 이유를 밝히면서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 이유를 이해하자라고 말을 합니다. 저로서는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던 구한말 조선의 지식인들과 사회진화론 그리고 후의 친일행각으로 이어지는 관계를 구체화하여 준 건 정말 도움이 되었습니다만, 그런 서술 뒤에 반드시 따라오는 '그들을 이해해야한다'라는 말이 상당히 껄끄럽게 들렸던 것 역시 사실입니다. 설마 박노자 교수가 그런 친일파들의 행각에 면죄부를 줄 수 있는 '어쩔 수 없었던 사회환경'을 제시하고 그들을 이제 용서하자라고 말을 하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책 곳곳에 그런 의심이 가는 서술이 보이더군요.. '이해'가 아니라 '의식하자'라고 했다면 좀더 좋았을 것을.. 개인을 중시하고자 하면서 우리의 근대사를 새롭게 조명하는 박노자 교수의 책은 참 좋았습니다만, 그런 미심쩍은 면 때문에 찜찜한 것도 사실입니다. 좀더 두고봐야할 거 같군요.. (제가 오독한 걸까요? --;;)

[인상깊은구절]
조소와 냉소에 그친 채 진정한 반집단주의적 거항으로 나아가지 못한 후진형 개인주의는 과거 식민지 시절만의 문제인가? ... 그들의 개성은 과연 소비 취향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가? 사실, 개인주의가 사회·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의미한다는 오해만큼 지배계층에게 유리한 오해는 없다.
r*****o 2004.01.0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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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뛰어넘어, 나를 되찾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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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그의 이름만으로도 나는 설레인다. 언제나 그의 책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파란 눈의 한국인인 그가 지닌 지적 능력과 열린 마음 그리고 한국에 대한 애정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나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준다. 그는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한국 근, 현대사를 바라보는 냉철한 눈을 가지고 있다.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내게 있어 하나의 축복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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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그의 이름만으로도 나는 설레인다. 언제나 그의 책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파란 눈의 한국인인 그가 지닌 지적 능력과 열린 마음 그리고 한국에 대한 애정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나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준다. 그는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한국 근, 현대사를 바라보는 냉철한 눈을 가지고 있다.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내게 있어 하나의 축복과도 같다. 지난 식민지 경험은 우리의 역사에 있어서 일종의 완충지대와도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도덕적인 옳고 그름, 가치판단을 떠나서, 현재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폭력성과 권위주의, 정치에 있어서의 낮은 성숙도 등을 이야기할 때마다 식민지 역사가 그 원인으로 거론됨으로써 우리는 우리 역사, 현실의 어두운 면에 한 책임을 회피하려 든다. 물론 식민지 역사가 우리 사회의 성숙을 방해한 것은 어느 정도는 옳다. 일제 지배를 정당화하거나 찬양하려는 의도는 결코 아니다. 다만, 모든 것의 원인을 식민지 경험으로 돌림으로 인하여 지난 역사를 보다 명확하게 분석할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저자의 이야기들은 지금껏 생각해보지 못했던 또 다른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게 해주고 있다. 조선 말기 이미 민중들은 지배층의 가렴주구에 충분히 괴로워하고 반발하고 있었고, 당시 조선 사회는 이미 그 내재적인 모순으로 인하여 어느 정도 붕괴를 암시할 수 있었음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우리는 한 걸음 더 진보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는 수많은 영웅들과 배신자들을 양산해 냈다. 우리의 근대사는 국가의 지속, 독립을 위한 개인의 억압사였다. 개인을 돌보지 않고 독립을 위해 전진하는 자세는 찬양되었으며,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 동일시되고 사회에 혼란을 가중시키는, 없어져야만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는 이러한 태도 속에서 우리의 인권에 대한 고민 역시도 억압당했었나 한다. 동시에 그 시대를 살아간 이들에게선 실력을 양성하여 독립을 쟁취하자는 사회진화론, 실력양성론의 흔적이 묻어난다. 하지만 그들은 베트남의 아픔을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서 실력을 키워 제 2의 일본(제국주의 국가)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모순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 중 다수가 친일적, 친미적인 태도를 지니게 되었으며, 우리의 것을 억누르고 서양의 것을 무조건 숭배함으로써 부국강병을 이루고자 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전공 과목보다도 영어를 잘 해야 되는 오늘날의 현실과 너무도 흡사하다고 하겠다. 또 한가지, 그들은 위로부터, 관으로부터의 개혁을 꿈꾸는 철저한 엘리트주의자들이었다. 그랬기에 아래로부터의 개혁 의지를 수용치 않은 그들의 혁명은 실패한 정변에 머무를 수 밖에 없었고, 의병을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로 해석하는 등의 몰역사적인 관점을 보이기도 했다. 모든 내재적인 변혁의 흐름은 배제한 체 오로지 미국적인 것만을 수용하는 현 부시 정권의 태도와도 같다고 할까. 마지막으로 그들은 국가의 독립 이상을 바라보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랬기에 개혁적인 우파나 투사적인 좌파 모두 민주주의 그 자체를 독립적인 가치로 인식하지 못했다. 이는 오늘날의 관료주의적 속성, 전통적 권위주의로 이어지게 된다. 어쩌면 이는 지난 80년대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던 이들이 ‘독재 철폐’ 를 넘어선 전선(목표)를 설정치 못했던 것과도 연관되지 않나 생각한다. 우리의 역사 속에 잠재되어 있는 숱한 오점들을 인정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아픈 행위이다. 특히나 그러한 오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려우면서도 동시에 부인할 수도 없는 괴로움을 야기한다. 모든 이들이 특정 종교를 가져야만 하고, 모든 이들이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해야만 하며, 모든 이들이 권위주의적 보수 문화를 수호해야만 하고, 모든 이들이 전통적 가부장제에 따라야만 하는 사회. 그 속에는 어떠한 다양함도 존재치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정해진 길을 걷는, 하나의 길만이 인정 받는 사회는 그 단일함으로 인해 오히려 더 위태로워질 것이다. 숱한 진통 속에서 진보해온 우리 사회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아파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쓰라림을 딛고 일어설 때 비로소 우리는 사회 속에서 ‘나’의 이름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며, 개개인의 인권 존중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이달의 사락 q*****2 2004.01.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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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대한 올바른 평가란....
"역사에 대한 올바른 평가란...." 내용보기
중·고등학교를 거쳐오면서 소위 국사 편찬 위원회가 저술·편집한 국정 국사 교과서(상)과 (하)편을 기계적으로 암기하고 각본대로 시험을 보면서 국사란 글자의 나열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였다. 항상 텔레비전에 넘쳐나는 수많은 사극을 보면서도 어제 드라마에 나온 배우가 오늘에 사극에 나오니 시대감이나 현실성이 다소 떨어져 그저 오락 프로그램으로 소비한 수준을 벗어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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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를 거쳐오면서 소위 국사 편찬 위원회가 저술·편집한 국정 국사 교과서(상)과 (하)편을 기계적으로 암기하고 각본대로 시험을 보면서 국사란 글자의 나열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였다. 항상 텔레비전에 넘쳐나는 수많은 사극을 보면서도 어제 드라마에 나온 배우가 오늘에 사극에 나오니 시대감이나 현실성이 다소 떨어져 그저 오락 프로그램으로 소비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은 고등 대학 교육을 받은 나로서는 실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국정 교과서에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의 원조로 서술된 독립협회 일파의 미국과 서구에 대한 이념적 태도는 존경을 넘어서 숭배의 단계이다. 그들의 근대화는 눈에 보이던 위생, 유행병, 문맹에 머무르지 않고 모든 것을 서구식으로 뜯어고칠 것을 급선무로 삼았던 듯 싶다. 서재필이 '연대'로 착각했던 미국과 남미의 관계가 실제로는 폭력과 착취를 기만하기 위한 장치였던 것처럼 현재 미국의 인간주의란 미국의 자원 야욕을 위해 이라크를 침탈하고 석유 재벌들은 뒤에서 물심 양면 침략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 기존 이권의 상실에 반발한 프랑스와 독일의 기만적인 전쟁 반대는 19세기 제국주의 열강과 다를 바가 없다. 독립신문을 들추어보면 100년 전 조선과 지금이 별로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일상화된 폭력과 가난·기근·질병·착취등이 사라지고 '근대화'에 성공한 듯 싶지만 19세기에 시작된 열강의 외교적 침탈은 지금까지 맹맥을 유지하고 있다 19세기 치외 법권이었던 일본인이 단지 미국인으로 바뀌고 일인의 말에 치어죽는 것이 미군의 탱크에 깔려 죽는 것으로 변한 것뿐이다. 지배 언론의 대외 인식 또한 변한 것이 없다. 2003년 4월 2일자 파병 결정을 중앙 일보는 이번 노대통령의 정책결정에 대해선 여당의 민주당보다 야당인 한나라당이 더 열심히 지원했다. 이는 상생(相生)의 정치를 위해 바람직한 모습이라 평가된다. 미국의 장단에 맞추어 죄 없는 이라크인을 죽이는 것이 상생인가? 상생은 서로 살자는 것인데 아이러니 하기 그지없다. 유식하고 유지하고 충군 애국하는 여러 군자들은 철도·광산 까닭에 세월을 보내지 말고 정치가 일신하여 백성들이 내 나라를 사랑할 마음이 나도록 주선을 하시기를 바라며........ 라는 대목은 97년 구제금융 후 모든 경제 시스템을 미국이 주도하는 IMF에 맞게 재편한 후 우리의 경제 종속이 더욱 심해진 것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는 단지 백성에게 정치적 아량을 베풀라는 의미인지? 친미 개화파의 의식을 친일파가 사회 Darwinism으로 이어받고 냉전 세력으로 다시 수구세력으로 탈바꿈한 지배층은 이라크 파병에 수수 방관하며 오히려 한국인 피살을 계기로 빠른 파병을 재촉하며 미국을 옹호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카가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이다'라고 밝혔듯이 100년 전 오늘을 통해 현 세계의 읽어 낼 수 있다는 점은 역사가 오늘을 통해 진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YES마니아 : 로얄 b***o 2003.12.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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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근대역사를 알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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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근대사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듯 하면서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문 것 중의 하나다. 국사책에도 제일 끝에 간략하게 나온 것이 다다. 그마저도 학기말에 배우기 때문에 별 중요성 없이 넘어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 허술한 근대사를 박노자 선생은 약간이라도 아는데 도움을 주려 한다. 이 얇은 책으로 대한민국 근대사를 전부 제대로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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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근대사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듯 하면서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문 것 중의 하나다. 국사책에도 제일 끝에 간략하게 나온 것이 다다. 그마저도 학기말에 배우기 때문에 별 중요성 없이 넘어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 허술한 근대사를 박노자 선생은 약간이라도 아는데 도움을 주려 한다. 이 얇은 책으로 대한민국 근대사를 전부 제대로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상당히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인인 나도 잘 몰랐던 한국역사를 러시아인이었던 박노자 선생은 매우 상세히 잘 알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제대로 된 한국 근대사를 알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 다면 아마 그것이 저자의 생각에 제일 가까운 것일 듯하다. 근대사는 현대사와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맻고 있다. 현대사를 만든 인물들 상당수가 근대사에 빚을 지고 있다. 한국의 현대사가 이렇게 불행해진 것을 알려면 먼저 제대로된 근대사를 알아야 한다.
r*****6 2003.07.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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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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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화는 했다지만 외국인이 어떻게 우리 역사의 이면을 속속들이, 그것도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는지...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역사의 이면과 함께 우리가 걸어온 길을 외부적인 시각에서 독특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 외부적인 시각이란게 외국인으로서 본다는 의미는 아니다. 귀화 한국인으로서의 애정은 갖되 최대한 객관적이면서도 나름의 원칙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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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화는 했다지만 외국인이 어떻게 우리 역사의 이면을 속속들이, 그것도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는지...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역사의 이면과 함께 우리가 걸어온 길을 외부적인 시각에서 독특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 외부적인 시각이란게 외국인으로서 본다는 의미는 아니다. 귀화 한국인으로서의 애정은 갖되 최대한 객관적이면서도 나름의 원칙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때로는 치욕적으로 생각했던 것, 우리 역사속의 피고름을 담담하게 터치하고 있다. 박교수의 다음 책이 무엇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c******a 2003.07.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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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박노자 교수님. 진정한 한국의 근대사를 알려주신 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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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면 참 내가 한심스럽게 느껴진다. 그 긴 6년동안 도대체 난 국사를 왜 배운 걸까? 년도와 중요한 인물들 외우려고? 아니면 정말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이란 사상을 6년동안 머리속에 새긴걸까? 그것은 국사가 아니었다. '국사를 가장한 편견과 선입견'이 올바른 명칭이다. 지금은 어떻게 가르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국정교과서가 존재하는 한 앞으로도 별반
"오! 박노자 교수님. 진정한 한국의 근대사를 알려주신 분이여!" 내용보기
이 책을 읽고 나면 참 내가 한심스럽게 느껴진다. 그 긴 6년동안 도대체 난 국사를 왜 배운 걸까? 년도와 중요한 인물들 외우려고? 아니면 정말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이란 사상을 6년동안 머리속에 새긴걸까? 그것은 국사가 아니었다. '국사를 가장한 편견과 선입견'이 올바른 명칭이다. 지금은 어떻게 가르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국정교과서가 존재하는 한 앞으로도 별반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자신의 밥그릇을 위해 투쟁하는 교장선생들과 학부모들이여. 우리나라 국사교육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그런 것에 대해 성토하는 목소리는 왜 한마디도 안 들리는건가? 아직도 전근대에서 못 빠져나오고 있으며 개인주의가 정착되지 않은 이 나라는 100년 전과 크게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다. 그저 졸부만 되면 다인가? 배부르면 됐지 않느냐라고? 이 얼마나 천박한가. 왜 이 나라가 이토록 천박해져 가는지 근대사를 통해 확인해보라. 오늘도 신문에서는 국민소득을 계산하며, 경제성장률을 계산한다. 경제에 지장을 주는 것들은 모두 악이다. 인간의 권리에 대한 기사는 특히 메이저 신문에선 못 찾겠다.
y******a 2003.06.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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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역사인식이 진보를 이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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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국가 맹주였던 러시아 출신의 한국인 박노자. 하나의 생각, 사고만을 가진 사람은 볼 수 있는 게 그만큼 밖에 안 되기 마련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성장했고, 자본주의의 정글이라고도 볼 수 있는 한국에서 배움을 가졌던 그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볼 수 있는 사람이다. 획일적인 교육과 은연 중의 반공교육의 영향으로 비판의식을 갖기조차 힘들었고, 설령 그 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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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국가 맹주였던 러시아 출신의 한국인 박노자. 하나의 생각, 사고만을 가진 사람은 볼 수 있는 게 그만큼 밖에 안 되기 마련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성장했고, 자본주의의 정글이라고도 볼 수 있는 한국에서 배움을 가졌던 그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볼 수 있는 사람이다. 획일적인 교육과 은연 중의 반공교육의 영향으로 비판의식을 갖기조차 힘들었고, 설령 그 진실을 안다고 해도 야수 같은 빨갱이 사냥이 두려워 말하기조차 힘들었던 진실, 또 다른 시각을 그는 보여준다. 그래서 그의 책은 때로는 생소하고 어려우면서도, 읽고 나면 사회를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눈을 갖게 되어 즐거워진다.

그는 '수난의 역사'라고 하는 논리의 이면을 지적한다. 그 피해 정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가 외세의 피해자'라는 의식을 주입해, 단결을 꾀하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그는 근현대 한국사에서 '국민'이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를 되짚어 본다. 요즘도 정치인들은 걸핏하면 국민의 뜻을 들먹인다. 이 때의 국민이란, 주체적인 개인으로서의 국민이라기보다는, '통치의 대상'으로서의 국민의 성격이 오히려 강하다. 이에 대한 증거로서 박노자 씨는 '대한매일신보'의 유명한 논설을 인용하고 있다. '국민이란 것은 필연적으로 동일한 정신을 가지며 동일한 이해(利害)를 느끼며 동일한 행동..'. 이러한 국민에 대한 개념은 구별짓기로 이어졌다. 즉, 동일한 정신, 이해, 행동을 하지 않는 국민이라면, 국민의 범주에서 구별지어 버린다는 것이다.

이는 요즘 뉴스 속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가령, 근로자들이 파업을 일으키면, 그 수가 아무리 많든 적든, 그것이 국가경제 혹은 시민의 발을 묶는다는 표현은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바로 '구별짓기'인 것이다. 국가전체의 절대적인 이해, 즉 경제발전이라는 지상 가치에 도전하려든다면, 순식간에 국민의 범주에서 제외된다. 그는 외세의 침략, 그 수난의 역사 속에서 가장 비극적인 것은, 상당수 사람들이 그 체제의 반(反) 인륜적인 논리를 자기화 한 것일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패권논리와 이기주의이다.

여기서 패권주의이란 단순히 국가적인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작은 조직 혹은 개인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적자생존'의 논리대로라면, 패권, 즉 유리한 강자의 위치에 선 존재의 행위는 쉽게 합리화될 수 있고, 약자는 스스로 강해지지 못한 대가를 치르는 게 이상할 게 없다. 이라크 전쟁 보도에서 보수 언론은 그 같은 내면화한 논리를 잘 보여주었다. 명백한 침략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이라크 인들의 무덤 위에 선 미국의 승리가 마치 이라크에 혜택을 가져다줄 것처럼 보였다: 독재로부터의 해방, 민주주의로의 발전. 그는 역사의 진실을 바로 보고, 불가피한 면과 바람직한 면이 구분하는 것이 지난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는 길임을 강조한다. 너무나 익숙하고 정당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있다면, 그것에는 의문을 제기해봐야 하는 것임을 그는 느끼게 해준다.또한 '구별짓기'를 통해 다른 사상, 생각을 가두고 짓눌러버리기 보다는, 다양한 목소리를 허용하는 민주주의야말로 진정한 민주사회의 기반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인상깊은구절]
과거의 폭력주의를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선악의 기준으로 판단될 수 없는 선택으로 본다면 현재의 폭력도 아울러 긍정적으로 보게 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 과거의 폭력주의에 대한 긍정은 불가피하게 지금 현재에 또 다른 폭력을 추가시킬 것이다.

YES마니아 : 골드 j****a 2003.05.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