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짧은 시, 긴 여운, 감동은 하루를 살게 한다. 중, 고등학교 때 가장 시를 많이 읽었다. 시인들이 속삭이는 언어에 귀를 기울이면, 하나의 풍경이 떠오른다. 시어에 울고, 웃고, 분노하고, 아파했다. 통찰력 있는 표현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상의 풍경을, 시인은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 했었다. 가장 짧은 언어로 세상의 풍경을 이야기하는 시가 좋다. 최영미 시인을 책으로 처음 만난 건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아니였다. 『시대의 우울』에서 렘브란트를 찾아 헤매는 여정 속에 드러난, 시인의 솔직하고 독특한 감수성이 그이와의 첫 만남이였다. 『화가의 우연한 시선』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에 끌렸다. 시인의 감수성을 키우기까지, 저자가 만난 55편의 시가 모였다. 시를 쓰지는 않더라도 인생을 보다 깊고 풍부하게 향유하기를 바라는 글에는, 시가 많이 사랑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세월이 지나도 다시 낭송했을 때, 처음 만났을 때의 여운과 감동이 그대로 살아있는 시가 좋은 시라 생각한다. 인생에 정답이 없는 것처럼, 모든 이를 만족하는 좋은 시보다는, 각 개인에게 더 절실하게 와 닿는 시가 있다 생각한다. 다양한 시들을 접하다보니, 영감을 주는 시에 눈길이 간다. # 차와 함께 시인과 담소를 나누다. 따뜻한 차를 마시며, 시 한 편을 읽는다. 생각에 잠긴 후, 시인의 글이 주는 여운에 대해 글을 쓴다. 시를 바라보는 저자의 글을 읽고, 남은 마음의 흔적을 글로 담는다. 저자와 한 테이블에서 찻잔을 마주하지 않지만, 글의 흔적들을 통해, 담소를 나누는 기분이다. 진짜 연애를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거짓말이라 표현한 「불행한 우연한 일치」에는 웃음이, 「여행 길에 병드니」라는 하이쿠에는 애절함이 남아있다. 김수영 시인의 「눈」에서는 천진함을 느꼈고, 마음이 맑아졌다. 사랑을 잃고, 더듬더듬 빈집에 갇혀버린 애련한 상실의 마음이 담긴 「빈 집」에서는, 생각을 마쳤을 때, 차가 식어있었다. 낭송했을 때, 울림을 주는 시가 좋은 시라 생각한다. 읽자마자, 풍경이 그려지고, 생각이 달라진다. 감정이 움직였던 시와는 즐거운 데이트를 한 기분이다. 저자가 따로 남긴 글을 읽어서야 시어가 그려진 풍경과 의도가 느껴지는 저자의 글과의 만남은 시를 바라보는 다른 시선을 만나 좋았다. 적어도 시가 세상에 존재하는 한, 세상이 삭막하진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를 쓰는 시인과 시를 읽어주는 독자가 있는 사회에서는, 작은 촛불처럼, 희망의 불씨가 남아있다 믿는다. 시인과 함께 시를 읽는 일은 즐거웠다. 한 호흡에, 읽기보다는, 일주일에 한 번, 마음의 변화를 주고 싶을 때 읽으면 좋다. 한동안 서가에 둘 생각이다. |
|
아주 오랜만에 시집을 읽었다. 내가 처음 시집을 접한 것이 초등학교 때인것 같다. 학교 선생님중에 시인이 계셨고 새 시집이 나오면 학생들에게 선물로 주었던 기억이 났다. 요즘에는 초등학생들에게도 프라이버시 라는 것이 있어서 없어졌겟지만 당시에는 매일 매일 일기를 쓰고 일기장을 선생님께 제출해서 검사를 맡았는데 일기라는게 사실 숙제중에 가장 힘든 것이었다. 별로 적을 말이 없었고 일상이 늘 같았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하루의 일과를 담은 일기 대신에 일기장에 대신 채울 수 있는 예외를 두었으니 그것이 바로 "시"를 적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처럼 일기장에 쓸 말이 없는 친구들은 시를 일기 대신 적었던 기억이 난다. 나도 매주 한번정도는 시로 일기장을 채웠던것 같다. 최영미 시인의 그 유명한 시 "서른, 잔치는 끝났다" 를 본적이 있고 지금 봐도 참심하고 신선한 시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녀가 사랑한 시들인 어떤지도 읽어보고 싶었다. 누구나가 관심 있어하는 사람의 소중하게 간작히고 좋아했던 그 무엇들을 들추어보고 싶은게 사람 마음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최영미 시인 뿐 아니라 유명한 많은 시인분들이 본인이 직접 좋아하거나 선정한 시들을 모아놓은 시집이 많이 나오는게 가장 만족스러운 분들은 그분들이 평소 쓰신 시들과 분위기가 많이 닮아있기도 하고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기도 한다는 점이다. 주간지에 연재했던 시와 추가로 담은 시를 이 단행본에 담아서 그런지 보다 폭넑고 대중적인 느낌이 든다. 겨울이 코앞으로 다가오는게 느껴질 정도로 쌀쌀한 11월이다. 시인 최영미가 가려 뽑은 세계의 명시 55편이 명시와 해설, 그리고 시집과 함께 속이 따뜻해질 수 있는 차 한잔을 함께 해 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책속에 담긴 시 한편을 옮겨본다. 김수영 눈이 온 뒤에도 또 내린다 생각하고 난 뒤에도 또 내린다 응아 하고 운 뒤에도 또 내릴까 한꺼번에 생각하고 또 내린다 한줄 건너 두줄 건너 또 내릴까 폐허에 폐허에 눈이 내릴까 |
|
그는 끝끝내 세상을 모르고 살기를 선택한, 우리의 슬픈 시인이었다(p109).
詩는 시가 아니었다. 인생이었다. 시에는 삶과 죽음, 사랑, 이별이 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인생을 쓴다는 것이다. 시를 읽는다. 생노병사와 희노애락을 읽는다. 시를 쓰고 읽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생과 사랑을 쓰고 읽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시는 모든 것을 가장 '간단'하게 모든 것을 담을 수 있어서 쓰기 쉽다. 형식은 자유다. 몇 자의 여운으로 나의 생각과 인생을 적을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인생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표현이어야 한다. 언어 선택을 잘해야 한다. 그렇게 다른 사람이 쓴 시를 읽고, 그 사람의 느낌과 정서와 인생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어떤 이는 시를 쓰다가 안되면 소설을 쓰고, 그래도 안되면 평론을 쓴다고 한다. 이 말은 그만큼 시를 짓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시 한 편을 읽은 것은 소설 한 편을 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로도 들린다.
시를 짓지 못하는 내가 지금 시집을 들고 있다. 나는 이 책에 등장하는 수 많은 시인들의 시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은 반푼어치도 없다. 내가 인생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을 읽고 내 마음대로 이해하려고 한다. 거기서 그냥 나만의 느낌을 얻으려고만 한다. 나의 느낌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누구나 좋아하는 노래가 있고 좋아하는 시가 있다. 그것에는 자기의 '인생 공감'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도 사랑하는 시가 있다. 평소에 그런 시들을 외웠다가, 어디에선가는 한 번은 꼭 사용해본다. 내가 애용하는 시는 교과서의 시가 대부분이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이 책에는 내가 애용하는 시가 나온다. 이 책에는 책의 제목처럼 최영미 시인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시, 세월이 지나도 신선함을 잃지 않고 번역해도 죽지 않는 시들이 소개되고 있다. 바이런, 릴케, 예이츠 등의 서양 시인을 비롯해서 정약용, 한용운, 김소월, 천상병 등 그외 여러 시인들이 그들의 시정을 여과없이 뽐낸다. 거기에 최영미 시인이 자기의 감정을 짤막하게 보탰다. 이 시집에는 50편의 외국시와 10 편의 국내시가 실려 있다. 외국시는 저자가 직접 번역한 것은 아니다.
세익스피어는 내가 죽거든 애도하지 말라고 한다. 자기의 시를 보더라도 자기의 이름을 자꾸 부르지 말라고 한다. 그가 인생에서 얼마나 사랑을 많이 받았는지를 본다. 그의 삶에 대한 자신감을 보고, 더나아가 그가 여기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남기는 염려와 사랑을 본다. 인생과 시에서 우러나오는 사랑과 자신감에서 나의 가슴을 열고 나의 그것들을 본다. 얼마나 옹색한 것들인지 모르겠다. 나도 그들처럼 마자막 순간에, 남은 자들을 염려해 보고 싶다.
워즈워드는 자연의 무지개를 보고, 어렸을 때의 느낌이 죽을 때도 그러할 것이라고 하면서 무지개의 아름다움을 형언할 수 없음을 안타까워할 뿐이다. 무지개는 아름다운 것이고 꿈과 낭만을 가진 것이다. 무지개 뿐만아니라 자연의 것 중에 아름답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느냐만은, 그래도 무지개의 여러 가지 색깔들이 서로의 경계를 침범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것은 환상적이다. 그 환상은 어렸을 때나 어른이 되었을 때나 변함이 없다. 단지 인간의 변덕스러운 마음이 변했다. 아름답게만 보이던 것들이 당연한 과학적 현상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자연을 가슴으로 이해하던 것을 머리로 이해한다. 내마음속의 무지개도 빛의 반사작용이라는 몇 글자로 무지개를 벽에 걸어 놓았다.
외국의 시를 읽는 것은 국내의 시를 읽는 것보다 부담스럽다. 외국의 시를 번역할 때에, 그 시어에 마땅하고 적당한 시어를 고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 시어를 읽는 이들의 문화적 감정도 그 나라의 그것과도 다른 것도 한 몫을 한다. 된장국은 뚝배기에다 먹어야 제맛이 나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번역이 잘 되었는지도 나는 잘 모른다. 단지 나는 나만의 관점으로 읽고, 읽고, 또 읽고, 읽기를 반복한다. 그렇다고 내가 가장 잘 아는 언어로 쓰여진 것이라고 해서 내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대할 수도 없다. 결국 시를 이해하는 것은, 그것이 어떻게 쓰여져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내 마음 속에 누가 살고 있느냐가 문제이다. 나만의 상상력과 감정과 감성으로 그들을 만나고 이해한다. 누가 뭐래도 나만의 세익스피어와 워즈워드, 천상병을 만난다. 거기에서 그들의 인생을 맛본다. 그 맛에서 내 인생을 그려본다. 내 마음 속에 나만을 위한 인생 화가가 살고 있다.
|
|
소설과 시, 희곡과 시나리오 그리고 평론. 내 학부시절 마지막 2년을 이 모든 장르가 넘실대는 문창과에서 보냈다. 난 원래 기자나 PD를 꿈꾸던 신방과 학생이었는데 어느 순간 글쓰기가 좋았고, 어쩌면 내 길이 작가일 수도, 하면서 아무렇게나 편입해버렸다. 당시엔 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얼마든지 일을 저지를 수 있어서 미래에 내가 나아가야 할 길 같은 건 생각 안해도 되었다. 아니, 안했다. 문창과를 졸업하면서 나는 창작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란 걸 알았다. 책보다 영상매체를 더 좋아했고, 창작보다 남의 이야기를 읽는 게 더 좋았으니 애초 나는 문창과로 가면 안 되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스토리텔링이라면 몰라도 기본적 작법은 여전히 모른다. 관심도 없다. 그런데 그런 내가 유난히도 어려워하고 싫어하는 장르가 있었으니 바로 시.
대학 때 나는 솔직히 시를 아주 싫어했다. 시는 압축된 이야기인데, 나는 긴 이야기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단편소설보다 장편소설이 좋았고, 한 권짜리보다 열 권짜리 소설이 훨씬 좋았다. 나는 한 번 몰입하면 오랫동안 헤어나오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가 좋았다. 그런 이유로 간혹 영화보다 드라마가 더 좋을 때도 있다. 그래서 시는, 안 읽었다. 어느 순간 바로 그 편식이 내 발목을 잡았다. 소설에 필수적인 톡톡튀는 문장력을 구사하기 힘들었고, 내 글은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반전 없는 라디오 사연같은 특성없는 글이 되었다. 형식적으로 소설을 써서 졸업했지만 그게 소설이었는지 나조차 의심스럽다. 하긴, 그게 그런 식으로 가능한 재능이었음 대한민국 모든 문창과 졸업생들은 모두 소설가가 되었게?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시를 피해다녔다. 한편으론 누군가 나와 함께 시를 읽으며, 그 시에 살을 붙인 이야기를 들려줬으면 싶기도 했다. 시인 최영미라면 어쩌면 오랫동안 굳어버린 시에 대한 도피증을 치유해줄지도 몰라. 이 책을 만나게 된 건 오로지 '시'와 '최영미'였기 때문이다. 시를 해석하는 이야기는 도처에 널렸지만 내 시선이 멈춘 곳이 하필이면 시인 최영미였다는 얘기다.
시는 여전히 어렵다. 막 읽어내리면 얻는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시 한 편도 의도를 파악해낼 수 없다. 그래도 나는 이게 내 한계가 아니었으면 싶다. 최영미 시인도 처음부터 시를 공부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녀는 서양사학을 전공했고, 그 후 등단하여 시인이 되었다. 시를 어려워했지만 시를 읽을 때 누릴 수 있는 인생의 향락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오래된 시인들이 어떤 마음에서 그 시를 썼는지, 당시 시대상과 개인사가 어떠했는지가 작품 속에 고스란히 묻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시]는 꼭 일부러 사지는 않아도 될 책이다. 시읽기를 좋아한다면 좋아하는 시인의 시집을 한 권 사는 게 더 효과적일지도. 하지만 나같은 사람이라면, 한 번 투자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시선집이다. 최영미 시인의 간편정리에 따라 시의 본문이 주제별로 실렸고, 시 한 편이 끝날 때마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그녀의 간단한 설명이 디저트처럼 함께 한다. 사실 시보다 그녀의 설명을 읽는 게 더 좋았다. 그게 아니었음 금새 시를 던져버렸을 테니까. 고대, 중세, 현대 가리지 않고 동서양을 넘나드는 거대한 시의 물결. 맛보기만으로도 감동이 벅찼다.
그녀가 어떤 의도로 어떻게 이 많은 시들을 골랐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최영미라는 이름에 믿음이 있기에 그녀가 골라준 시들을 관심있게 읽는 것 뿐이다. 시를 모르는 나는 이상하게도 시인 이름에는 일가견이 있어, 여기저기 거의 아는 시인의 작품이라 더 친숙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시 자체를 즐기지 못한다면 그 또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시가 밥을 주는 것도, 빵을 주는 것도 아닐테니 말이다. 그녀가 사랑하는 시가 아직은 내가 사랑하는 시가 될 수는 없지만, 내게 있어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리란 사실만은 명확하다. 그녀가 소개하는 55편의 시와 함께 나는 몇 번이고 낯선 길을 떠나려 한다. 어린 마음에 죽어도 닿을 수 없을 거라며 도전하지도 않고 피해버린 예전처럼 또다시 포기할 순 없으므로. 시 역시 이야기이고, 삶이고, 대화이므로. 나는 그래도 릴케의 낭만과 기형도의 고독, 천상병의 꿈 같은 시 세계를 여전히 천국적 아름다움이 주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
|
내가 사랑하는 시...
깊어가는 가을에 내손에 들어온책이다. 책은 여러방면으로 읽고 있지만 시집은 사실 그다지 읽지 않는 편이다. 짧은 함축적인 단어를 이해하는데도 워낙 시간을 많이 잡아먹기도 하지만 나의 지적인 수준이 '詩'를 이해할 정도의 높이가 되지 않기 때문이리라... 아마도 '시'라는 것에 대한 뭔가모를 선입견도 작용하였지 않았나 싶다. 시는 어렵고, 고리타분하고, 말을 뱅뱅돌려 헷갈리게한다는 그런 선입관이 아닐까?
최근에 읽어본 시가 4~5년전에 읽었던 '시가 내게로 왔다'는 시집이다. 이 시집도 '김용택시인이 사랑하는 시'라는 부제목이 적혀있다. 예전에 MBC-TV의 느낌표 "책책책 책을읽읍시다'라는 프로에서 선정한 시집이었는데.. 벌써 오래전에 끝난 프로그램에서 선정한 시집을 읽고 그뒤에 읽은 시집이 없다니 참으로 나의 시집은 인연이 없었나 보다. 이책도 개인이 적은 시집이 아니라 '김용택'시인이 추천한 시를 모은 책인것을 보면...
이번에 몇년만에 읽은 이책 '내가 사랑하는 시'도 최영미시인이 추천하는 시를 모은 시집이니 최영미시인의 시집은 아닌것이다. 내가 고르는 시집은 어찌 이리도 시 '모음집' 뿐일까? 이시집은 최영미 시인이 시인이 되기위해 꿈을 키울수 있는 힘이 되어준 시 55편을 간추려 모은것이다. 기원전 파라오의 시부터 우리나라 천상병 시인까지... 이름 들어본 세계의 여러시인들의 시를 한권에서 만나는재미도 제법이구나 하는 생각이든다. 여러시인의 시를 이렇게 만나는 이책을 한권 읽으면서 이깊어가는 가을 더욱 깊은 시속으로 빠져드는것도 꽤나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른 잔치를 끝내고 마흔의 세월을 살아오고 쉰의 세상에 다가가는 한때 386세대의 녹녹한 삶의 모습들을 여러 시에서 찾아 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시들이 낮설었지만 내가 아는 오래된 시한편이 눈에 들어왔다. "가고 오지 못한다는 말은 철없던 내귀로 들었노라 만수산을 나서서 옛날에 갈라선 그내님도 오늘날 뵐올수 있었으면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배철수의 송골매 노래에서 듣던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아.. 나의 지적수준은 이것밖에 되지 않나보다...
제목: 내가 사랑하는 시 저자: 최영미 출판사: 해냄출판사 출판일: 2009년 11월 10일 초판2쇄 발행
|
|
문학을 아주 좋아해서 소설, 에세이는 찾아서 보는 편이지만 시를 찾아서 보는 일은 왜인지 게을리했다.
|
|
무지개 하면
|
|
나는 시인이 시에 대해 쓰는 것을 좋아한다. 시인의 감수성을 성장시킨 그 원천들을 보는 것 같은 내밀한 기쁨을 느끼기 때문이다.
|
|
시를 읽는 사람은 마음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계발 서적, 주식서적, 수필과 소설을 좋아한다. 그래서 시집은 잘 팔리지 않는 책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시는 함축적인 의미를 담은 최고의 글이다. 사랑한다는 편지 10장보다 멋진 시 한줄이 연인의 마음을 훔쳐오는 것은 시가 가진 위력이리라.
시인 최영미 씨가 쓴 <내가 사랑하는 시>는 55편의 시가 담긴 책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시를 주관적인 생각과 느낌으로 표현했다. 오랫동안 자신에 노트에 적어 놓았던 좋은 시들, 책과 도서관, 병원등에서 지나가다가 우연히 읽게 된 아름다운 시들을 적고 맛깔난 해석을 담아 놓았다.
모처럼 책을 읽으며 문득문득 멈추어 나를 돌아볼 기회가 생겼다. 시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읽을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시의 언어 유희를 읽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고 시인의 아름다운 시어를 통해 좀더 멋진 상상의 세계로 가는 듯하다.
시인은 사랑을 노래하고, 젊음을 노래하고, 인생을 노래한다. 시인은 예술을 노래하고, 자연을 노래하고, 전쟁을 노래한다.
<내가 사랑하는 시>를 읽으면서 나도 이런 노트를 한권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교과서에 읽었던 시, 신문에서 읽고 스크랩 해 놓았던 시, 맛있는 식당의 벽에 걸려 있는 시, 공동묘지의 묘비 위에 적어 놓은 시
삭막한 세상에서 좀더 순순한 영혼으로 살아가고 싶을 때 아름다운 시 한편과 함께 따뜻한 고구마 하나, 커피 한잔이 나를 부른다.
<내가 사랑하는 시>를 읽으며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기쁘게 맞이하는 여유를 갖게 된다.
|
![]() 서른 잔치는 끝났다고 단언하던 그녀, 최영미 시인이 동, 서양을 막론하고 평소 아끼는 세계적인 명시들과 그들에 각각 짧막한 해설을 덧붙여 색다른 시집을 냈다. 최영미 시인을 좋아하는 내게 그녀는 어떤 시들을 즐겨 읊조릴지, 그녀를 감상에 젖게 만드는 시어들이 무얼지 궁금했다. 잠 못드는 밤 나를 달뜨게 하던 몇편의 반가운 시들도 담겨 있어 오랜만에 옛추억에 빠져 본다.
바쁜 일상속에서 그다지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소설류나 자기개발서들을 들척이며 지내다 보니 시를 좋아했는지 조차도 어렴픗해진다.
가을이 되면 어김없이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날을 읊어대던 여학생은 이제 중년의 나이로 접어들고 즐겨 읽던 시집을 놓아 버린지 오래.
가을날
-라리너 마리아 릴케
주여, 시간이 되었습니다. 여름은 아주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던지시고,
평원에는 바람을 풀어줍소서,
마지막 열매들을 가득가득 하도록 명해주시옵고,
그들에게 이틀만 더 남녘의 낮을주시어,
무르익는것을 재촉하시고
무거워진 포도에 마지막 달콤함을 넣어주소서.
이제 집이 없는 사람은 집을 지을 수 없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도록 살 것이며,
깨어 앉아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나뭇잎이 구를 때면 가로수 사이를,
이리저리 불안하게 방황할 것입니다.
여러번 읽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는 시인의 말대로 외우고 다니며 중얼 거리던 시어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변화를 담은 멋들어진 표현들에 매료되었는데, 같은 시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왠지 깐깐하게만 느껴지던 최영미 시인이 가까워진 느낌이다. 그녀는 땡볕에 익어가는 하루가 다르게 포도다워지는 둥근 열매를 '무거워가는 포도'란 멋지게 표현할 시인은 릴케 밖에 없으리라 말한다. 꿈보다 해몽이라 했던가. 시인의 마음으로 읽는 시들은 다른 느낌으로 생생하게 다가온다.
고대 이집트에서 발견된 작자 미상의 '주문'부터 현대의 음유시인이라 불리워지는 레오너드 코엔까지, 시대와 나라를 불문하고 그녀가 뽑은 시들은 처음 부터 내마음을 사로 잡고 묻어둔 감수성을 불러오기에 충분하다.
한편 한편에 정성된 해설은 그녀의 해박한 지식과 섬세함을 품고 있으며 함축된 시어들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지, 시인의 머리속으로만 가능한 재치있고 풍자적인 언어, 때론 아름답고 슬프기도 하고 흥미진진하고 자유로운 언어의 향연들이 잔잔하게 다가오다 어느새 폭풍처럼 마음을 휘저어 놓는다. 입안에서 톡톡 씹히는 보리 알갱이처럼 씹을 수록 단맛이 나고 입안 가득 번지는 보리향 처럼 한편 한편의 시들을 곱씹어 보며 그 의미와 아름다움에 행복해 진다.
루바이 27
오마르 카이얌
젊었을 적에 내 스스로 박사와 성인들을 부지런히
찾아자니며 이런저런 위대한 논쟁을 들었지만
들어갈 때와 같은 문으로 나왔을 뿐.
언제까지나.
루바이 49
반짝이는 금속조각처럼 호황한 일생인데
삶의 비결을 찾느라 시간을 낭비할 건가 - 벗이여!
거짓과 진실은 머리카락 한 올 차이인데-
그대는 무엇에 의지해 인생을 살려는가?
처음 듣는 루바이란 사행시란 뜻이며 제목 없이 번호를 붙여 구분한다고 한다. 먼 옛날 페르시아의 시인은 인생무상을 이처럼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거짓과 진실은 단지 머리 한 올의 차이일 뿐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