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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램덩크 이후, 이노우에 작가의 또다른 작품이 등장했다고 해서 주목을 끌었던 시점.
일본에서 실존했던 검사 미야모토 무사시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지만 그 인물이 누군지 몰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이 만나는 많은 무사들과의 결투와 결투신, 그 순간 발현되는 심리와 감정의 묘사가 이 작품의 특징이다.
스토리와 작화 모두가 일품인 작품으로 시대가 흘러도 소장가치가 충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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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램덩크의 작가 다케이코 이노우에가 농구공을 버리고 칼을 들었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만화 슬램덩크의 신화를 만들어 냈던 그가 안정된 농구공을 버리고 아직 날이 서지도 않은 칼을 든 이유는 무엇일까? 피와 살이 튀는 잔혹한 디테일의 묘미를 살린 정통 사무라이 무협 스타일에, 은근한 유머, 탄탄한 스토리
이노우에 다케히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만화가 중의 하나인 이노우에 타케히코는 『슬램덩크』의 대성공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만화 작가이다. 1967년 일본 가고시마현 출생으로 쿠마모토 대학 문학부를 중퇴하고 호조 츠카사의 어시스턴트로 일하다 독립, 1988년 소년점프 신인만화공모전인 제35회 데즈카상에 「마에데 퍼플」로 입선하며 데뷔하게 되었다. 사실 소년점프에서도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젊은 작가에게 기회를 주자는 마음으로 연재를 시작하였던 것인데 그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세계적으로 1억부가 팔릴만큼 큰 인기를 모으면서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일본 내에서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만화가로 등극하게 되었다. 1995년에는 제40회 소학관 만화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그 뒤 미야모토 무사시의 일대기를 다룬 『베가본드』도 일본과 한국 등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배가본드』는 2000년 제 24회 코단샤 만화상을 받기도 하였으며 2002년에는 제 6회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만화 대상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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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30 어떤면에서 이 시점부터 사사키 코지로의 역할을 지나치게 확대하는 무리수를 두었기에 감당하지 못했다는 말이 있지만, 사사키 코지로라는 인물을 만들어내는 것에는 무사시를 완성시키고자 하는 욕심이 있고, 이 방법외에는 찾을 수가 없다고 보인다. 마무리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 |
| 무사시가 인슌에게 패배하자, 무사시를 치료하면서 '인슌은 승리만을 거듭하여 패배를 모르며 공포를 모르기 때문에 미숙하다'면서 인슌의 약점을 알려준다. 그리고 무사시가 패배한 이유를 일깨워주는 한편, 몸소 무사시와 맞서면서 보장원의 창술이 어떤지 보여주는데 무사시가 계속 패배했다는 묘사가 나온다. 하지만 그 가르침을 받은 무사시는 결국 인슌과 싸워서 승리하고, 인슌이 드디어 깨우쳤음을 기뻐하면서도 인슌이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알기에 슬퍼한다. 함께 승부를 지켜본 아곤에게 이 승부는 보장원의 기록에 남기지 말 것을 부탁하고는, 거의 동시에 기절한 인슌과 무사시를 데리고 하산한다. 다만 노인인데다 비를 맞아서 잠시 앓았다. |
| 아곤은 보장원의 일원이자 인슌의 동료. 실력으로는 보장원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며 우락부락한 외모에 우직한 성격이다. 기온 토지와의 대결을 피한 중을 두들겨 패서 겁쟁이는 필요없다고 쫓아낼 정도. 한편으로는 강함에만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인슌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보장원 내 거의 유일한 인슌파라 할 정도로 인슌의 실력만큼은 신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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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클라스가 다른 작가임에는 틀림없지만 개인적으로는 별로인 작가. 슬램덩크 초기의 그림과 배가본드를 비교하면 확실히 그림에도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 가히 예술이라 할 수 있는 그림과 구성,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 배가본드는 확실히 재밌다. 하지만 연재를 안한지 너무 오래되었다. 마치 일류 셰프가 코스요리를 하다가 메인은 내지 않고 그만 먹으라고 하는 경우이다. 그렇기에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작가이다. |
| 슬램덩크의 작가 이노우에 타케히코의 배가본드 30권 리뷰입니다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그만큼 강해지고 싶어 했던 미야모토 무사시..아직 옥에 갇혀있다 천하제일임을 증명하고 싶다면 자신이 최고라는 증거를 만들고 싶다면 모든 사람을 베지 않으면 안된다 이 지상에 마지막으로 자신 혼자 남을 때까지..칭호를 손에 넣는다 해도 결국 자랑할 상대는 이미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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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특유의 탐미주의, 혹은 삶을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 추구의 도구로 여기는 듯한 인식의 기원은 어디일까? 단순한 생존 만으론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 잦은 전쟁과 천재지변으로 너무 쉽게 스러지는 생존을 역사 내내 보아왔던 경험의 결과일까? 그냥 생존만을 추구하기에 삶은 너무나 보잘 것 없고 약하다는 인식? 아무튼 수많은 회유를 모두 거절하고 무사시는 다시 검의 길을 걷기로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