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강점기가 시대적 배경인 책을 읽을 때, 나는 가끔 생각한다. 일본의 작가들은 그 시대를 어떻게 서술하고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가끔 만나게 되는 일본 소설은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피해만 서술하기 급급했다. 원자 폭탄이 터지면서 피해 입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전쟁으로 인해 헤어지게 된 가족들의 이야기, 전쟁 이후 피해 복구에 관한 이야기 등. 자신이 벌인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주변국의 아픔은 이야기 하지 않았다. 일본 소설은 분명 다양한 소재를 재미있게 표현하지만 자신의 과거에 대해선 눈감는 듯 했다. 얼마 전 일본의 유명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역사를 왜곡하려는 일본 우익 세력에 “역사를 잊으려 하거나 바꾸려 해서는 안 된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 발언은 하루키의 최신작 ’기사 단장 죽이기‘라는 책에서 난징대학살 내용을 다룬 의도를 밝히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에 우익 세력은 그를 매국노라 비난했다고 하는데 하루키는 소설가로서 할 수 있는 건 제한돼 있지만 이야기로 싸워가는 것은 가능하다며 소신을 밝혔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늘 궁금했다. 일본인들은 그 당시를 어떻게 표현하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반성하는 일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싶은 것인지. 제법 오랜 시간 일본 소설을 읽었는데 처음으로 이런 소설을 만난 것 같다. 2차 세계 대전, 한 중 일에서 일어난 일을 제법 객관적으로 서술한 책을. ‘세상 끝의 아이들’이란 책을 다 읽고 세 소녀의 모습을, 할머니가 된 이 소녀들을 상상했다. 죽지 못해 살았을 인생이지만 그 인생 속에서 세 사람은 서로를 생각했고, 그 기억으로 힘든 인생을 버틸 수 있었다. 전쟁 가능한 나라가 된 일본. 그 나라의 지도자 또한 이런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한 나라의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생각게 하는 책이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대 만주 개척촌엔 사람들이 모여든다. 일본 고치 현 서부의 두메산골 센하타 마을에서 농사지을 땅이 없던 다마코네는 정부의 달콤한 회유책에 넘어가 만주 개척촌으로 이주한다. 조선 평화리에서 지주의 가족으로 태어나 풍족하던 미자네는 조선총독부에 땅을 빼앗기고 허망하게 할아버지가 죽자 가난하게 살게 된다. 이에 새로운 삶을 위해 만주로 떠나게 된 미자네 식구들. 만주에서 만나게 된 다마코와 미자는 친구가 된다. 이 둘에게 어느 날 꽃 같은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나타난다. 소녀는 요코하마에서 운송 일을 하는 아빠를 따라 만주에 오게 된 마리였다. 이 셋은 친구가 되어 어울리게 되고 황톈천 하류에 있는 절로 놀러 가게 된다. 절에서 소나기를 만나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신세가 되고 식민지 나라 조선에서 온 미자는 자기 몫의 주먹밥을 몸이 약한 마리에게 제일 많이 떼어준다. 자신은 제일 적게 먹고 친구를 배려한 미자의 이 모습은 훗날 두 친구들의 머릿속에 떠나지 않는 추억으로 남게 된다. 부모와 동네 사람들에 의해 구출된 소녀들은 이후 뿔뿔이 흩어진다. 마리는 아버지를 따라 요코하마로 돌아가지만 공습으로 인해 가족을 잃고 고아가 된다. 다마코는 전쟁에서 패한 일본인들이 만주를 떠나는 과정에서 인신매매를 당해 중국인 부부에게 팔려가 중국인으로 자라게 되고 미자네는 일본으로 건너와 불고기 가게를 차리게 되는데...
이 책은 작가가 20여 년간 한·중·일 3국을 발품 팔아 다니며 취재해 고쳐 쓰고 고쳐 쓴 소설이라고 한다. 이 소설에는 한국전쟁, 4.3사건, 문화대혁명, 관동대지진 등 지난 70여 년의 한중일 역사가 담겨있다. 일본인이기에 자신에게 불리한(?)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표현할지 궁금했는데 나름 객관적인 느낌이 든다. 모든 것이 다 그런 것은 아닐지라도. 지금까지 올바르다고 믿었던 가치관이 전쟁으로 인해 흔들리고 나와 다른 체제의 사람이라고 양민들을 학살하며, 이웃 나라의 전쟁으로 특수를 누린 사람들.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아무도 죽지 않았을 사람들의 죽음까지.
일본인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 죽였는지 일본인이 얼마나 많이 죽어갔는지. 옥쇄를 각오하고 적을 쳐부수자, 한 사람이 한 명씩 죽이자며 학교에서 죽창을 들고 짚 인형을 찔렀다. (339) 일본인들도 알아야 한다. 그들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픔으로 몸부림 쳤는지. 그들 또한 전쟁에서 지고 군인들과 민간인들이 죽었겠지만 이웃 나라에 비할 바는 아닐 것이다. 아베는 일본을 전쟁 가능한 나라로 만들기 위해 법을 개정하고 미국과 다양한 외교를 벌이고 있는데 우리는 중간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문제다. 다시는 전쟁이라는 역사를 반복해서는 안 되는데 지도자란 사람의 머리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처음으로 만난 일본인이 쓴 2차 대전의 객관적 이야기. 모든 것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읽어볼 가치는 있다.
|
|
일본인이 쓴 일제강점기 배경의 소설.. 단순히 이것만 봤으면 보지 않았을 겁니다. 요즘 일본의 행태를 보아하면.. 일본책을 자주 보던 지인이 이 책이 꽤 괜찮다며 출간되면 꼭 보라고 추천해 주어서 보게 되었습니다. 일본 강점기 시대에 한중일 세 소녀에 관한 우정과 그 후의 이야기... 꽤 긴 내용이었는데 가슴 먹먹하니 많은 생각을 하며 끝까지 잘 봤습니다. 이 책을 일본의 지도자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습니다.
|
|
작년에 부산영화제에 갔다가 <너는 착한 아이>라는 일본 영화를 감상했는데, 무척 인상적이고 감동 깊었습니다. |
|
446쪽. 꽤 두꺼운 편인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