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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림 스님과 함께 금강경 읽기
기독교를 하고 또 다른 종교를 믿어도 금강경을 읽으면 진정한 기독교도가 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에 호기심과 기대가 가득했다. 진리에 눈을 뜨게 하고 우주의 실상을 깨닫게 하는 가르침이 금강경에 있다니 정말 꼭 읽어 봐야 겠다는 열정이 치솟았다.
뿐만 아니라 통일 운운하는 사람, 학문을 연구하고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도 민주주의를 온전히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도 정말로 금강경을 읽어야한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니.. 저자야 말로 금강경을 깨뚫은 도인임에 틀림이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금강경은 금강반야바라밀경의 약칭으로 그 어떤 경전의 사상보다 더욱 견고한 사상과 철학이 담긴 책이라는 뜻이다. 가장 단단하여 그 무엇으로도 깨뜨릴 수 없는 진리의 본질로서 반대로 말하면 중생의 모든 번뇌조차 다 깨뜨릴 수 있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본다.
즉, 이상적인 세상으로 가는 길!! 즉 반야(般若)를 가르쳐 주는 경전이다. 수행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을 항복 받는 일입니다. 마음을 어디에 두느냐 마음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마음의 본질을 깨닫고 도를 찾아 가는 바른 길을 안내해 주는 책이다.
상(相)이 있으면 중생이고 상(相)이 없으면 바로 부처님이다. 그것을 가르쳐 주는 경전이 바로 금강경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것 하나 가르쳐 주는 것이 금강경이라는 저자의 말에 무릎을 치며, 절로 고개가 수그러진다.
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다. 이것은 불교의 핵심이면서 대승불교의 일 선언이란다. 그런데 아상(我相)만 없어지면 나머지 인상, 중생상, 수자상 등 모든 것이 다 없어진다니... 아상(我相)이 있으면 이것이 벌어져서 여러 가지 상을 만들고 그 상속에 뒤섞여 살아 가는 인상 군상들의 다양한 모습을 본다.
사람들은 무슨 장자리 하나를 얻기 위해 권력을 탐하고 물질을 탐하고 명예를 탐한다. 그 모든 것이 상을 탐내는 것이다. 즉, 아상(我相)에 사로잡혀 도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참으로 명쾌한 논리가 숨어 있음을 발견한다.
상을 없애는 저자의 자작시가 마음을 울린다.
빨래
스스로 마음을 비운다, 비운다 하면서도 돌아보면 남아있는 자존심 얼마나 비벼 빨고 행궈야 하나 문득 고개 들고 쳐다보니 초겨울 하늘 구름 한점 없이 깨끗하다.
금강경을 계속 읽으면 아상에서 벗어나게 된다. 천하의 사람들을 만나 여여롭게 크게 웃을 수가 있을 것이라는 저자의 해석에 가슴을 울리는 북소리 같은 감동을 받는다. 나도 금강경을 계속 읽음으로 천하를 유유저적하며 한바탕 크게 웃으면서 세상을 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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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전 인도의 한 지방, 석가모니는 고요한 숲속의 절에서 저녁공양을 마치고 몸을 씻고 의관을 차려입은 후, 1250명의 대중들 앞에서 제자 수보리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설법을 한다.
어떻게 마음을 머물게 하고 어떻게 항복을 받을 것인가 하는 수보리의 질문에 아상(我相), 인상(人相),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고 부처가 아니다라고 선언(?)을 한다.
위 4개의 사상(四相)가운데 특히 아상인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을 대개는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것으로 이해하는데 결코 그것이 아니라 나의 상(相)을 부정하는 것이 제일로 중요하다고 한다.
"내가 중생을 제도 했지만, 중생을 제도 했다는 상(相)이 없다. 부처님은 상이 없기 때문이다" 는 말이 금강경의 핵심이라고 이 책의 저자 효림스님을 강조한다.
진리는 정한 바가 없는 것을 깨달은 것이지 정한 바가 있는 것을 깨달은 것이 아니며, 누구나 깨달음을 얻으면 일체법이 다 불법이니 불법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며,, 설법도 설한 것이 없으니 법을 설한 바가 있다고 하지마라, 다만 그 이름만 설법이다. 고 금강경의 내용을 이야기 한다.
무심(無心)의 근원인 무주상(無住相)의 내용을 이해하고 체득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부처요 깨닫는자라고 한다.
나에 대한 집착과 탐욕과 교만, 욕심과 욕망대신 지혜와 비움을 통해 고해의 사슬을 끊고 , 윤회의 사슬을 끊는 열반의 길에 이르는 나침반같은 말씀이 금강경이라 한다.
이 말씀이 워낙 심오하고 막측하여 10년 20년동안 면벽수도니 토굴수련이니 하는것보다 금강경을 독송하는 것이 깨달음에 이르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스님은 강조한다.
그래서 이 금강경은 대한불교조계종의 소의경전(근본경전)이 되었다. 원 명칭은 금강반야바라밀경이며 반야는 지혜를 의미하고 바라밀은 '저 언덕으로 간다"는 뜻으로 해석하자면 어느 것에도 깨지지 않는 지혜로 세상을 사는 말씀으로 이해된다.
이 금강경을 32강으로 다시 재구성하여 제목을 달아 경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정리한 사람은 중국의 양무제의 아들 소명태자로 이 후 소명태자의 주석을 뛰어 넘은 사람이 없다하니 대단하다 할것이다.
강한 이념이나 일신주의 종교에 매몰되어 인간의 참모습을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들과 권력과 금력, 돈에 자기 영혼까지도 저당잡힌 위정자나 일반인들에게 이 금강경은 기독교식으로 보면 스스로 구원에 이르는 길을 제시한다 하겠다.
불경을 많이 접해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쉽게 내용을 설명하면서도 구체적인 사례를 직접적으로 들어서 이해가 빠른 내용은 실제 강의를 책으로 엮어서 낸 형식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소위 '운동권'스님의 시대에 대한 지적도 가슴에 와 닿게 절절한 것이 경전에 대한 뜬 구름잡는 식의 말씀이 아니어서 읽는이의 머리도 시원해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이 책의 또 다른 덤이다.
효림스님과 함께 금강경 읽기/ 새싹 2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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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림스님과 함께 금강경 읽기
불교 관련 서적을 접한 것은 아마도 태어나서 처음이 아닌가 한다. 물론 에세이 혹은 짧은 글들은 읽은 적이 있어도 이렇게 불교 경전을 직접 들여다 본 적은 없었다. 한국에 오랫동안 그리고 깊숙하게 존재하고 있는 불교에 대해서 너무 무관심 했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마음도 있었고, 과연 불교 경전은 어떤 것일까 하는 궁금증도 있었다. 또한 독실한 기독교인이서 궁금증만 가진 채 살아 왔는지도 모른다. 또한 불교 경전에 대해서 무지하다 보니, 어떠한 책을 선택해야 할지 너무 막막해서 쉽사리 도전할 기회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던 중 불교 경전 중의 진수인 금강경을 쉽게 풀이 해놓은 효림스님과 함께 금강경 읽기를 만난 것이다. 불교 경전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해서 알아보니 원시경전과 대승경전으로 나뉘는 듯하다. 원시경전은 말 그대로 불교가 대승불교로 넘어오기 전 쓰인 오래된 경전인데 법구경, 백유경, 열반경, 유교경등이 있다 한다. 대승경전에는 그래도 우리가 한번 정도씩 들어 봄직한 이름들이 있다. 반야심경, 금강경, 법화경, 관음경, 유마경, 화엄경, 무량수경, 무량의 경, 아미타경등이다. 이 책의 저자는 출가하여 가장 먼저 만난 책이 금강경이라고 한다. 출가하기 전 행자 시절엔 천수경, 반야심경을 외웠다고 한다. 또한 젊었던 20대 시절에는 유마경, 법화경을 익혔다고 한다. 금강경은 금강반야바라밀경을 줄임말이라 한다. 금강은 불괴석으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다이아몬드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금강경의 숨은 뜻은 깨지거나 변하여 없어지지 않는다(P17)라고 한다. 반야는 지혜, 바라밀은 도피안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 금강경은 스스로 이상적인 세상으로 가는 길 반야를 가르치는 경전이라 저자는 이야기 한다. 금강경 읽기는 총 34가지 강의로 이루어져 있다. 1~2강이 금강경이 어떠한 것인지 설명하는 부분이고 나머지 부분이 32개 금강경 분강의이다. 금강경의 소제목 분류는 양무제의 아들 소명태자가 붙인 제목이다. 이 제목이 오랫동안 변하지 않고 지금까지 흘러온 것이다. 금강경 읽기는 한 제목에 대한 주해와 강의 이렇게 구성되어져 있다. 또한 일반인들이 어려워하는 불교 용어에 대한 많은 주석이 있어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이 금강경 읽기의 장점이다. 금강경의 내용뿐만 아니라 폭 넓게 불교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금강경의 핵심 내용은 상(相)이라는 말로 압축되어진다. 이미지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운데 사람에겐 저마다의 상이 존재한다. 이 상의 종류에는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으로 나뉜다. 아상의 나의 상이고 인상의 남의 상이다. 아상과 인상이 만나면 중생상이 되고, 수자상은 모든 삶은 불멸하는 고유의 연혼이나 생명이 있다고 생각하는 상이라 한다. 이 상에 대한 이해가 금강경을 읽는 묘미라 할 수 있다. 저자는 금강경을 읽어야 되는 이유를 여러 가지 말한다. 진정한 이상의 세계. 즉 사람마다의 견해차이, 가치관의 차이, 이념의 차이 등에서 오는 갈등 해소를 금강경의 독송에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저마다의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 세상에 진정한 자신의 상을 이해하고 서로의 상을 인정할 때 금강경이 가르쳐 주는 미학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종교를 떠나 저자가 바라는 마음이 구구절절 전해져 옴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반면 다른 타 종교에 대한 비판을 조금 더 이해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저마다 생각이 있고 저마다 추구하는 삶이 있는 것이 삶이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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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공부를 해보고싶어 서점에 가서 손에 잡히는 대로 고른 책이다. 예상과 달리 금강경에 대해 너무 많은 해설서가 있어 선택이 쉽지 않았다. 주석서가 그리 많을 줄은 몰랐다. 그런데 막상 골라 읽고보니 제대로 된 선택은 아닌 듯 하다. 해설을 한 효림스님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프로필을 보니 꽤 유명한 분인가보다. 이 책은 효림스님이 자신의 절에서 신도들을 상대로 금강경 해설법문한 것을 그대로 글자로 옮긴 책이다. 과거에도 반야심경이니 육조단경이니 등등의 해설서를 읽은 적은 있지만 내용은 기억나지 않고 금강경도 조계종의 소의경전이라 해서 뜻도 모르고 독송만 해온 것이 사실이다. 몇 년전 김용옥씨의 금강경강해를 재미있게 읽은 것은 아직 머릿속에 남아있다. 금강경은 金剛般若波羅密經의 약칭이다. 번뇌를 깨고 피안에 이르는 지혜를 설한 경전이다. 한역된 금강경을 지금의 형태로 32분절 체제로 만든이는 남북조시대 양무제의 아들인 소명태자다. <문선>을 편찬한 소통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이다. 각 분절마다 네글자로 소제목을 붙였다. 1분절의 제목은 법회인유분, 32분절은 응화비진분. 사실 금강경은 그간 많이 독송했지만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른다. 뜻을 하나하나 따지면서 읽기보다는 주문처럼 생각하고 독송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이기도 하다. 해석을 해보기도 했지만 한문을 조금 배운 나로서는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언젠가 김영사의 박은주사장이 매일 새벽에 일어나 금강경을 읽음으로써 하루를 시작한다는 애기를 듣고 여기 뭔가 대단한 것이 있나보다 하고 사경을 시도한적도 있었다. 이 책에서 효림스님이 강조하는 것은 ‘無住相布施’로 보인다. 이말 한마디면 금강경을 읽었노라 할 만하다 했으니 일언이폐지라 하겠다. 불교를 믿어서라기 보다는 상식선에서 육바라밀을 알고 있었지만 첫째 덕목이 보시라는 것을 잊고 살았다. 여유가 있어야만 보시하는 것은 아닌데 너무 내 생각만 하고 산 것인지. 금강경을 독송하고 주변에 알리면 보석상자를 기부한 것보다 공덕이 크다 했는데. 다른 금강경해설을 보지 못했으니 김용옥의 해설서와 비교해본다면 이 책은 설법을 그대로 옮긴 것이므로 대중성을 뛰어나다 하겠지만 그만큼 정밀성이나 전문성은 떨어진다고 하겠다. 도올 역시 대중성을 표방하지만 학문적 탐구가 기반이된 대중성이라는 점이 다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외려 도올 저작의 흡인력만 확인한 셈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얻은 것은 ‘번뇌망상을 끊고 무주상보시를 행하라’는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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