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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물에 명암(明暗)이 있지만, 글로벌(Global)이란 단어 역시 마찬가지다. 글로벌화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일단 떠오르는 단어는 경제, 정보, 교류이다. 독일의 실천적 사회학자로 소개되는 페터 슈피겔은 책 서두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왜 지금의 경제학은 빈부격차만을 늘리는가?”
휴머노믹스(Humanomics, Human + Economics). 저자는 글로벌화 되어가고 있는 현시점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우리 미래의 성공요소는 다름 아닌 인간이라고 제안한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해야 인간을 성공요소로 인식할 수 있는지, 이러한 인식을 경제와 학술교류 시스템에 얼마만큼 적절하게 적용할 수 있는지, 그리고 정치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따라 인간과 인류의 지속적인 발전과 질적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이 희망이다’라는 말들을 많이 하는데, 희망을 기대하는 인간이 정작 그 가슴에 희망을 품고 있을 여유 없이 낮은 자존감(자기 존재 감각)에만 묻혀있다면 어찌할 것인가? 저자는 2006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그라민 은행의 설립자 무하마드 유누스를 소개하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에도 유사한 시스템이 도입되어서 못가진 자, 소외된 계층에게 희망의 빛을 주고 있기도 한 그라민 은행 시스템. 길바닥에서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는데 경제학이론이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미국에서 경력을 쌓고 훗날 고향으로 돌라온 방글라데시의 경제학자인 유누스는 신용대출(Credit)의 개념을 원래 의미로 돌려놓는다.
현재 세계인구의 3분의 2이상은 실질적으로 신용대출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신용대출은 오로지 물질적담보가 있을 때에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영활동을 위해 필요한 대출을 받고자 할 때도 장애물은 끝없이 이어진다. 세계인구의 90퍼센트 이상이 대출권리를 누리지 못한다. 법이 있긴 하다. 하지만 이 법 아래서는 돈 있는 사람들만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받을 수 있는 대출금은 많아진다.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나오게 된다. 이러한 불공평이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반드시 물질적 담보가 있어야만 대출이 가능한 것일까?
유누스는 방글라데시의 고질적인 가난을 중심으로 이러한 결정적인 질문에 대해 답을 이끌어내고자 했다. 담보대출의 필요성에 대한 고질적인 선입견에 반대하여, 그는 우선 42명의 극빈자들에게 소규모 창업에 필요한 자금이 얼마인지 물었다. 대답은 굴욕적이었다. 그들은 작은 생산품-예를 들어 수건, 바구니, 항아리-를 만들기 위한 재료를 구입하는데 1달러도 들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물론 고리대금업자나 주문자로부터 착취를 당하지 않은 경우에 한해서다. 유누스는 우선 자신의 재산에서 대출금을 내놓았는데, 놀랍게도 대출받은 사람들이 모두 약속한 시간에 정확히 돈을 갚았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자신의 돈으로 재료를 구입할 때 얻는 이익금이 은행이자보다 훨씬 많았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주문자가 재료를 사준 대가로 얻은 수익이 이제는 소액대출자의 몫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 첫 번째 경험만으로도 가난한 사람들의 경제적인 독립을 위해 은행 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하는 것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라민 은행이 방글라데시에서 소액대출 프로젝트로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의 수는 무수히 많다. 방글라데시의 20퍼센트 이상인 3,300만 명이 벌써 이 은행을 통해 도움을 받고 있다. 2006년까지 6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이 7만 2,000개 마을, 66만 명에게 지불되었다. ‘사람이 희망’이라면 그 희망을 품어주는 구체화된 그 무엇이 있어야하는데, 그 점에서 그라민 은행의 역할은 매우 크다. 저자는 우리 모두가 자기 삶의 경영인이 되어야 역설한다. 곧, ‘잠재력의 경영인’에서 벗어나 ‘삶의 경영인’으로서 최대한 독립적이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도록, 그리고 각각의 사람은 통합적이고 글로벌한 책임감으로 삶의 경영인이 되기를 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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