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원한 덴디보이, 오스카 와일드.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로서 그는 정녕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오히려 영원함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를 느꼈을까. 신선이나 흡혈귀로 상징되는 불로불사의 신화는 오스카의 예술적 천재성으로 다시금 변주되어 반복된다. 장생불사를 염원하는 이들은 대개 가진 자들이며 유복한 자들이다. 고통받는 이들은 불사불로의 꿈을 꾸지 않는다. 천년제국을 꿈꾼 진시황의 불로초에 대한 미망도 자신의 세속적 부귀영화를 끝없이 누리려는 자기애적 탐욕에서 기인했다. 이와 비슷한 동기로 인해 예술가들도 자신의 작품에서 자신의 불멸성을 발견하려고 한다.
그의 유일한 장편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모든 미학자들과 예술가들이 필독해야만 하는 예술소설이자 철학우화이다. 영원한 청춘미에 대한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묘사한 이 작품에서 오스카 자신의 섬세한 자기성찰과 예리한 예술철학을 엿볼 수 있다. 그리스의 절대적 가치는 진선미다. 그중 미를 진으로 동일시하고 선과의 절대적 분리를 도모하는 경향이 바로 예술을 위한 예술을 부르짖는 낭만파 예술가들의 표식이다. 육체와 정신의 조화와 심미적 요소를 인생의 주된 이념지표로 삼는 예술지상주의자들은 이 소설을 읽으며 많은 상념에 잠기게 될 것이다. 낭만주의자들이라고 해서「모든 예술은 무익하다」는 오스카 와일드의 관점에 완전히 동조하기는 힘들 것 같지만, 무익한 모든 것은 위험한 것이라는 생각에는 모두 동의할 것이다.
등장인물인 바질 홀워드와 헨리 워튼 경, 도리언 그레이는 각각 다른 관점의 예술과 지성을 대변한다. 화가 바질은 자칭 「좋은 두뇌를 가진」예술가다. 그는 예술가의 유일한 도덕적 책무는 자신의 작품을 완벽하게 완성하는 것이라 믿으며, 작품은 작가의 투영이고 작가 자신의 영혼의 비밀을 드러낸다고 본다. 「감정을 담아서 그린 초상화는 모두 화가 자신을 그린 것이지 모델을 그린 게 아니네」라는 바질의 말에서「실제로 예술은 삶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반영하는 사람을 반영한다」는 오스카 와일드 자신의 예술관을 본다. 바질과 오스카 와일드 모두 전형적인 낭만주의자들이다. 시대적 천재와 새로운 개성을 중시하고, 예술작품에 있어서 저자중심론의 미학노선을 추종한다.그리고 내용보다는 형식과 스타일의 새로운 양식에 집착한다. 그가 도리언 그레이를 사랑하게 된 이유도 예술적 동기가 크다. 도리언 그레이의 개성은 영혼과 육체의 조화라는 그리스 예술의 이상을 체현하였고, 이는 천재화가 바질의 예술양식을 뒤흔들어 놓았다.
헨리 경은 지위와 부를 가진 기혼남으로 바질과는 옥스퍼드 대학시절부터 친구였다. 그는 도리언 그레이의 멘토이자 소울메이트 역할을 담당하는데, 너무나 냉소적인 관계로 결코 모범적인 멘토는 아니다. 더군다나 자연과학자연하는 헨리 경은 도리언을 흥미로운 연구대상으로 간주한다. 그의 시니컬함은 우선 남성우월주의자의 모습으로 표출된다. 여성주의자가 들으면 얼굴을 붉힐만한 마초적인 말들을 쏟아낸다. 또한 전형적인 지적 엘리트지만 육감적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이런 육감적인 숨길 수 없는 아름다움을 천부적 재능으로까지 간주한다. 그는 젊음의 약진과 열정을 찬미하는 청춘예찬론자나 쾌락주의자의 분위기를 풍긴다. 그는 또한 독특한 관계론을 지녔다. 가령 사람을 친구, 지인, 적으로 나누고 높은 지성을 지닌 먹물을 모두 적으로 간주한다. 그는 타고난 강자의 이미지를 보인다. 강자만의 특색을 하나 꼽자면 바로 자기풍자다. 자기를 비웃을 수 있는 자가 진정한 강자의 풍모를 지니는데, 헨리 경이 바로 그러하다. 헨리는「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지적인 모습이 보이는 순간 끝나버린다」라고 말하며 지적 엘리트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취한다. 또한 귀족 출신이지만 그는 자신의 계급에도 적대적이다. 그는 오히려 서민들이 상류계층들의 악덕에 대해서 느끼는 분노에 동감을 표시한다. 그는 나름 혁명적인 낭만적 기질을 갖추고 있는데,「가장 보잘것없는 꽃이 피기 위해서도 세상은 진통을 거쳐야 한다」는 과격한 영웅주의를 피력하기도 한다. 그의 이러한 청춘예찬과 영웅주의는 순진한 청년 도리언 그레이에게 매우 위험한 영향을 미친다. 도리언 그레이가 파우스트라면 헨리 경이 바로 메피스토펠레스인 것이다. 파우스트가 지식에 대한 탐욕으로 파멸한다면, 도리언 그레이는 미적 탐닉이 낳은 기이한 꿈으로 자멸한다.
도리언 그레이는 천사와 같은 외모와 더불어 순박한 소년의 마음을 지녔다. 수줍음이 많은 그의 모습은 풋풋한 소녀의 여린 감수성과 닮았다. 그러나 순수는 오염되기 쉬운 법이고 순진은 타락하기 쉬운 법이다. 남의 눈에 소박하고 아름다운 천성을 지녔다고 보이지만 그의 영원한 젊음과 무한한 열정, 부와 청춘은 나르키소스의 자신감을 기형적으로 북돋우는 거름이 된다. 도리언은 초상화 그림이 자신 대신 늙고, 자신은 영원히 젊음을 간직했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빈다. 그의 초상은 화가 바질의 창조적 극치라고 말할 수 있지만, 초상화의 주인공에게 있어서는 풀 수 없는 저주의 주문과도 같다. 그의 초상은 한점의 거짓도 없는 거울이 되어 그의 영혼을 비추기 때문이다. 자신의 모든 죄악과 수치가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다 기록되어 남는다면 제 정신으로 그 기록을 들춰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결국 도리언도 자신이 외재적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지만 내면의 영혼은 추악하기 이를 데 없는 괴물로 전락했음을 깨닫고 만다. |
|
공포물을 엄청 좋아했던 (어디까지나 과거형이다. 나도 예전에는 꽤 좋아했었는데 안 보다 보니 이제는 찾아서 보던 열정 따위는 없어져 버렸다.) 나는 도리언 그레이라는 존재를 알고는 있기는 했지만 이 주인공이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이라는 사실은 잘 모르고 있었다. 게다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찾아보었을 때 어마어마하게 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고 나의 무식함에 반성을 거듭 했다. 자신의 순수한 모습을 유지하며 자신의 추악함을 그림이 대신 받는 모티브는 공포 영화나 판타지 물에 엄청나게 많이 존재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 (역시 아는 것이 힘이라는 사실을 새삼 생각하게 한다. ) 하지만 이 책품은 엄연한 고전이기에 내가 알던 현대물의 세련됨은 그리 느낄 수 없었고 클래식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그리고 공포 영화의 모티브가 되기는 했지만 그렇게 공포스럽지 않았다는 것을 미리 이야기 해 둔다. 부와 외모, 명예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젊은 청년 (개념은 없는 것 같다. 너무 귀가 얇단 말이지 ^^;) 도리언 그레이가 자신의 젊음의 유한성에 슬픔을 느끼고 초상화가 대신 자신의 타락한 모습을 표현한다. 그리고 도리언이 타락할 수록 초상화는 더욱 보기 싫게 바뀌어 간다. 물론 이 책의 주인공이 타락했다고 하지만 그저 애인에게서 변심 한 정도에도 주인공이 타락했다는 표현을 하는 것은 고전만의 묘미라고 생각 한다. (요즘 막장 드라마 주인공들에 비하면 오히려 몹시 순수한 정도이다. 게다가 도리언 그레이는 반성이라도 하지만 막장 드라마 주인공은 반성도 하지 않는다. -.-;; ) 하지만 애인의 변심으로 타락 (?) 하게 된 도리언 그레이는 결국 살인을 저지르고 협박과 거짓이 가득한 삶으로 인해 고통받지만 결국 자신의 죄값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질산으로 시체를 완전히 녹여 버렸다던가... 하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는 요즘에 이런 일이 있었데... 라고 이야기 하면 믿는 건 초등학생 정도이겠지만 이 책이 처음 발표 했을 당시로 돌아가 본다면 이 책은 정말 사람들에게 경악과 놀라움의 극치를 안겨준 소설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이 살짝 묻어나는 듯한 이야기는 (세 주인공의 삼각 관계 처럼 보이는 이야기)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기에 충분 했으리라 생각한다. 정말 벨아미에 이어 두번 째 읽게 된 고전 이야기이지만 정말 고전의 놀라움은 말 한 두마디로 표현 할 수 없다. ^^. 정말 재미 있게 훅 읽어 버린 소설 ^^. |
|
도리언 그레이는 돈 많은 꽃미남이다. 게다가 아름다운 외모만큼 순수한 영혼을 지니고 있다. 해맑은 소년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알아본 바질 홀워드는 조금은 답답하고 소심하지만 재능있는 화가이다. 바질 홀워드는 아름다운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화 작업에 한창이던 중 원치 않게 도리언 그레이를 친구인 헨리 워튼 경에게 소개시켜 주면서 비극은 시작된다. 런던에서 최고로 시니컬한 헨리 워튼은 순수소년 도리언 그레이에게 독이 된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화가 완성되던 날, 헨리는 도리언에게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동시에 젊음의 유한성을 알려준다. 도리언은 아름다움을 실감하며 황홀해하다가 그 아름다움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워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독이 되는 존재인 헨리와 가까운 사이가 되면서 그의 냉소적인 언행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이제 도리언은 더이상 순수소년이 아니다. 처음으로 사랑하게 된 여인에게 크나큰 상처를 준 사건이 벌어진다. 그 사건 직후 우연히 바질이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보게 되고 화폭 속 추하게 변한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죄값을 대신 받는 초상화 덕분에 도리언은 타락의 늪 속으로 서서히 빠져든다.
나이가 들수록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지금껏 살아온 인생이 얼굴에 나타나게 되니 선한 삶을 살라는 옛사람들의 충고이다. 도리언은 타락했지만 선하고 아름다운 얼굴을 갖고 있다. 대신 초상화 속의 도리언은 추한 얼굴로 변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도리언의 영혼이자 양심이다. 영혼과 양심을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에 꽁꽁 숨겨두었기에 그는 가책없이 악행을 저지를 수 있던 것이다. 바질 홀워드는 이러한 도리언의 "선(善)"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초상화를 바질에게 보여준 것은 도리언이 나락에서 빠져나오고자 한 행동이었으리라. 하지만 바질이 그의 악행을 질타하자 도리언은 바질을 난도질하고야 만다. 즉, 그나마 남아 있는 "선"을 없애버린 것이다. 영혼도 없고 양심도 없고 "선"마저 없는 도리언은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끝없는 추락 속에서 도리언은 결심하고 행동한다. 그는 '나는 이제 착하게 살거야, 벌써 착한 일도 했는 걸, 이제 초상화 속의 추한 나도 조금은 선해졌을 거야.' 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바람을 확인하고자 희망에 부풀어서 초상화를 마주한다. 선행이라고 믿었던 것이 그의 위선이고 허상이었다는 사실만을 확인한 도리언은 결국 자살을 선택한다.
도리언에게 바질이 "선(善)"이라면 헨리는 "악(惡)"이다. 도리언이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선보다는 악에 끌린 듯 싶다. 이 작품을 읽는 내내 바질보다는 헨리가 매력적이었다. 런던에서 가장 쿨한 헨리는 도리언에게 냉소적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알려준다. 하지만 그는 도리언과 달리 시니컬한 인간형일뿐이지 악행을 행하지는 않는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냉소적이지만 진정한 "악(惡)"이 아닌 헨리는 더이상 도리언에게 그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일 수 없었다. 헨리 워튼 경, 그도 늙어가고 있던 것이다. 그저 늙어가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고 자신의 사고가 젊은 이들에게 뒤쳐질 것을 걱정하는 어쩔 수 없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항상 도리언과의 대화에서 주도권을 잡고 가르치는 입장에서 이제는 도리언에게 젊음의 비결따위를 가르쳐 달라고 말한다. 그랬기에 헨리 워튼이라는 인물이 더욱 현실적이었던 것 같다.
영원한 젊음이란 모순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영원한 젊음을 갈망하고 늙어가는 것에 대해서 두려워한다. 나 역시 그러하다. 겉모습은 눈에 보이지만 영혼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일치하지 않은 겉과 속은 당장이야 타인의 눈을 교묘히 가릴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아무리 외모가 번지르하더도 영혼이 시궁창이라면 그 냄새는 금새 발각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오스카 와일드는 말하고 있다. |
|
‘영원한 아름다움을 가질 수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겠어’ 라고 말하는 사람은 도리언 그레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그는 아름다운 외모와 부와 젊음을 모두 갖춘 행운아다. 남부러울게 없는 그는 단 하나의 소원이 있는데 다름아닌 평생동안 이 젊음을 유지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주름이 깊게 파이고, 얼굴에 그늘이 진 자신의 모습은 생각하기도 싫었던 그는 바질 홀워드가 그려준 자신의 초상을 본 뒤, ‘그림이 자신 대신 늙고, 자신은 영원히 젊음을 간직했으면 좋겠다’ 는 소원을 빌기에 이른다. |
|
"젊음"이란 그 자체만으로 빛나고 아름답기에 많은 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젊어지기 위해, 혹은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나름의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세월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몸은 점점 늙어간다. 특히 얼굴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곳이기에 "불혹의 나이"에는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는 것일게다. 하지만.... 만약! 한창 빛나는 스무 살의 얼굴 그대로 전혀 늙지 않는 방법이 있다면... 사람들은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그 방법을 따르지 않을까? (현대에서 보톡스 주사를 맞고, 주름 제거 수술을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스무 살의 도리언 그레이는 누구나 인정하는 미모를 지녔다. 이런 그를 숭배하게 된 화가 바질은 도리언의 초상화를 그리게 되고 이 초상화를 본 헨리는 너무나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그 나이 때에 어울리는 약간의 자만심과 당당함 그리고 젊은이만의 솔직함을 지닌 도리언에게 강한 호기심을 가진다. 그렇게 절대로 만나지 말았어야 할 세 사람이 만나게 된다. 도리언을 지나치게 숭배하는 바질로서는 인생 최고의 그림을 그리게 되지만 그럼으로서 도리언은 자신의 외모에 나르시즘을 갖게 되고, 언제나 냉소적이고 비관적인 헨리의 철학이 도리언에게 영향을 미치며 도리언은 그림 앞에서 해서는 안 될 소망을 빌게 된다. "얼마나 슬픈 일인가요! 나는 점점 늙어갈 테고 끔찍하고 무서운 모습으로 변하겠지요. 그런데 이 그림은 언제까지나 젊은 모습 그대로일 거예요. 오늘 이 6월의 어느 한 날만큼도 늙지 않겠지요....... 다른 방식이 있기만 하다면! 언제까지나 젊음을 간직하는 것은 나고, 늙어가는 것이 이 그림이라면. 그럴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모든 것을 줄 거예요. 이 세상을 통틀어 내가 주지 못할 건 하나도 없어요. 할 수만 있다면 내 영혼도 바칠 거예요."...41p 그리고 그 소원대로 도리언 그레이가 조금씩 성장하며(성장한다는 것은 더이상 깨끗하지 않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며 온갖 죄악을 이해하고 때로는 죄를 짓기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지르는 악행들에 따라... 그토록 아름답던 초상화는 점점 비열해지고 잔인한 미소를 띠며 늙어간다. 자기 대신 온갖 죄를 떠안고 늙어가는 초상화를 바라보며 도리언 그레이가 깨달은 것은 무엇일까! 이제 자신은 더이상 늙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서 생기는 기쁨! 그림이 변할 때마다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깨달음으로서 자신이 성장했다고 생각하는 자만심!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따라 너무나 추악하게 변해가는 그림에서 자신의 영혼이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보며 드는 혐오감까지!!! 도리언으로서는 아주 간절했지만 도저히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소망이 정말로 이루어짐으로서, 그 현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점점 더 바닥으로 추락해 간다. "아! 그가 살아가는 동안 모든 짐은 초상화가 짊어지고, 그는 때묻지 않은 찬란한 젊음을 영원히 간직하게 해달라고 대단한 자부심과 열정으로 기도했던 순간이 있었다. 그 순간은 얼마나 소름 끼치는 시간이었나! 그의 모든 실패가 그 일에서 시작되었다. 그가 살아오면서 죄를 저지를 때마다 바로바로 확실한 처벌이 뒤따랐다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처벌은 인간을 정화시켜준다. "...321p 아름다운 얼굴이란, 미적으로 아름다운 얼굴만을 뜻하는 것은 아닐것이다. 그 사람의 열정과 따뜻한 마음, 온화한 미소가 주는 기분 좋음에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거울도 자주 보지 않는 나로서는, 마음의 평안과 여유를 택하겠다. 오스카 와일드의 유일한 장편 소설이라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마치 희곡을 풀어놓은 듯한 서술이다. 각 장은 한 장소에서 일어나고 대화와 사건이 지문과 구별되어 있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한 인물을 묘사하기 위해 한 인물의 대사나 서술을 통해 너무나 철학적인 이야기를 많이 쏟아냄으로서 지루함을 피하지는 못했다. 그 철학들은 아마도 오스카 와일드 본인의 생각을 잘 드러내 주겠지만, 이야기의 구성 면에서 갈길을 잃은 듯 보이기 때문이다. |
|
![]()
시간은 어찌 이리도 빨리 흐르는지. 올 한해도 벌써 다 지나가고 한달여 밖에 남지 않았다. 솔직히 몇년 전까지만 해도 이정도로 초조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서른 중반에 접어들면서 부터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 이렇게 나이가 들어가는구나 라고 느끼는 순간 허무함이랄지 말로는 정확하게 표현 못할 수만가지 생각들이 교차된다. 거기서 나아가 가끔씩은 내 나이를 깜박할 때도 있다. 좋은 의미에서 '나이를 잊고 산다'가 아닌 의식적으로 기억에서 지워버리게 되는 것 같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이 책은 꽃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청년의 이야기다. 그의 이름은 도리언 그레이, 사람들은 그의 부와 명성 그리고 무엇보다 아름다운 외모를 사랑하고 칭송했다. 이토록 잘 생겼으니 마음도 따뜻하고 예의바르며 순수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물론 처음엔 사람들이 생각하던 도리언의 모습과 실제 그의 모습이 일치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도리언은 화가 바질이 그려준 자신의 초상화를 보는 순간 스스로의 모습에 깊이 빠져버렸고 젊음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포기할 수 있다고 말해버린다.
그후 18년 동안 도리언 그레이는 주름 하나도 늘지 않을 만큼 젊음을 유지하는 행운을 누렸다. 도리언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들은 그의 매력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사교계에서 손꼽히는 인사가 된다. 하지만 도리언의 화려함 뒤에는 쾌락을 쫓아 헤메는 어두운 면이 함께 있었다. 그는 젊음을 이용해서 방탕한 생활을 일삼았으며 그를 흠모하는 다른 사람들까지 파멸로 이끌었다. 그가 행했던 일들은 무성한 소문으로만 떠돌다가 도리언을 비껴갔으나 초상화 속의 '그'는 점차 추악한 몰골로 변해가고 있었다.
책 읽으면서 도리언 그레이의 실제 모습은 어떠했을까 상상해 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었다. 책에 묘사된 것 만으로 그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이 어렵다면 표지 그림을 참고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나 또한 책장을 넘기기 전 한참 동안이나 마음을 빼앗겼었다. '잘생겼다' 라는 말보다는 '아름답다' 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미소년이다. 외적인 아름다움이 무가치하다고는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썩어 없어질 육체를 위해 영혼을 포기했던 도리언의 선택은 분명 충격적이었다. 게다가 그토록 원했던 젊음으로 방탕한 생활만을 일삼았다는 사실이 더 안타깝다. 어쩌면 그가 영혼을 파는 순간, 양심이나 죄책감 같은 선한 마음까지도 함께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시대에 따라서 미의 기준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열망은 비슷한 것 같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인간중심의 문화를 꽃피웠으나 '나이 듬'이 죄악시 되던 시대였다. 여인들은 흰 얼굴을 유지하기위해 중금속에 노출되는 것을 꺼려하지 않았으며 갑갑한 코르셋으로 몸을 감싸는 것도 당연하게 생각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훤칠한 키와 성형에 집착하는 것도 그 시대와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내적인 면이 채워지지 않는 아름다움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껍데기일 뿐이며, 채워지지 않은 갈증만 느끼게 할 뿐이다.
어린시절 읽었던 <행복한 왕자> 라는 동화가 생각난다. 멋진 모습을 한 왕자(동상)는 제비에게 부탁해서 자신의 몸에 붙은 장식물들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준다. 사람들은 왕자의 모습이 보기 흉해지자 동상을 녹여버리는데 심장은 녹지 않고 제비와 함께 하늘로 올라간다. 이 동화를 쓴 작가도 오스카 와일드다. 같은 작가가 쓴 책이지만 완전히 다른 형식, 다른 내용이다. 하지만 행복한 왕자와 도리언 그레이 두 사람 중 과연 누구의 삶이 가치있으며, 누구의 삶이 진정으로 행복했을까?, 라는 것만 떠올린다면 작가가 의도한 바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
갖고 있는 책 중에 아끼는 오스카 와일드의 책이 두 권 있다. 한 권은 어린이들용 그림책으로 나온 '행복한 왕자'다. 유난히 마음에 드는 선명한 그림들로 그려진 그림책은 어린 시절 읽었던 '행복한 왕자'의 이미지를 한층 업그레이드시키고 있어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져 나이에 상관없이 영원히 함께 하고픈 책이다. 또 한 권의 책은 성인용 오스카 와일드 단편집인데, 그로테스크한 그림과 주옥같은 단편들이 어우러져 책을 읽다 보면 잠시 현실을 잊고 책 속으로 걸어들어가게 된다.
오스카 와일드의 매력을 딱히 무엇이라 정의내리며 그를 어떤 틀 속에 가두고 싶진 않다. 사실 그를 설명하는 것 자체가 좀 힘든 일에 속하고 불안함도 동반한다. '행복한 왕자'에서는 순수한 면이 강하게 부각되었지만, 그의 다른 단편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어쨌든 밝음과 어두움에 상관없이 작품마다 오스카 와일드의 색채를 물씬 풍겨내며 그 나름의 매력을 뽐내고 있는 것만큼은 변함이 없다. 설령 허무주의적 비관론의 시각을 담고 있어 읽을 때 살짝 불편함을 느꼈다 해도 마음에서 내치기보다는 소설에 내 마음을 적응시키고 싶어지는 것, 오스카 와일드에 대한 호감도는 대략 이 정도이다.
설정부터 꿈을 꾸는 듯한 내용인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 중 처음으로 읽어본 장편소설이었다. 그래서 꽤나 기대감을 가졌었는데, 이 소설은 그런 마음을 실망시키지 않아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롭고 탄력있게 읽을 수 있었다. 초상화 속의 그림이 늙어가고, 자신은 언제나 푸르른 젊음을 간직할 수 있다는 설정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음을 알지만, 그 뒷이야기가 자꾸 궁금해질만한 흥미로운 설정이다. 그림의 주인공인 도리언은 이런 좋은 기회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살리지 못했다. 순수했던 청년은 마술처럼 벌어진 이상한 상황을 건설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그림 뒤에 숨어 온갖 악행을 저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리얼한 인간탐구의 현장과도 같았다.
아름다운 청년 도리언과 화가 바질, 헨리 워튼 경의 삼각구도에 시빌이란 아가씨와 그의 남동생 제임스가 등장하면서 줄거리에 활력이 생긴다. 도리언의 안하무인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행동의 특징이 잘 드러났으며, 누나의 복수를 결심한 제임스가 도리언을 찾아 헤메던 장면은 추리소설처럼 긴박감을 주기도 했다. 도리언은 축적되어가는 악행을 그대로 두고 보기 힘들어서였는지 잠시 죄를 뉘우치고 새 삶을 살아보려는 의지를 가지기도 했다. 그러나, 선하게 살겠다는 생각 속에 감춰진 허영심과 위선에 대한 발견과 함께 이미 저질러버린 죄악은 그를 옭아맨다. 잠시 품었던 선한 마음은 참회의 길로 이어지지 못했고 도리어 완전범죄의 길로 나아가려 했다. 인상깊었던 마지막 장면은 이런 비뚤어진 욕망의 결과물이다.
이 소설은 인간 본성에 내재된 악한 마음의 극한을 보여주고, 지나친 과욕은 화를 부른다는 것을 알려준다. 분수에 맞는 자연스러운 삶, 즉 자연의 흐름에 역행하지 않으며 순리를 쫓는 삶이 평범한 듯 해도 가장 현명한 삶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 진리인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