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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코 처음 읽어보는 책인데 왠지 모르게 여러모로 기시감이 느껴지는 소설이 있다. 그 이유를 콕 집어 설명할 수는 없어도 왠지 모르게 낯이 익은 것이다. 이기호의 소설 <사과는 잘해요>도 그랬다. 문체와 구성은 확연히 다르지만 소설의 분위기가 박민규의 소설을 연상시키기도 했고, 소설의 주인공이 무엇인가를 대행한다는 점에서 텐도 아라타의 소설 <애도하는 사람>을 떠올리게도 했다.
시봉과 '나'(진만)의 이야기는 이랬다. 아버지에 의해 시설에 맞겨진 '나'와 택시를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해 부모님을 동시에 잃고 그때의 충격으로 차만 타면 바지에 대변을 보는 바람에 시설에 맞겨진 시봉은 그곳을 관리하는 2명의 복지사로부터 수시로 폭행을 당하거나 원장에게 끌려가 성추행을 당하기도 한다. 아침 저녁으로 꼬박꼬박 네 알의 알약을 먹었고 나머지 시간에는 양말을 포장하거나 비누에 사진을 붙이는 일을 하면서 보냈다. 상습적인 폭력에 길들여진 시봉과 '나'는 폭력에 앞서 '네가 뭘 잘못했는지 아느냐'고 묻는 복지사들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일부러 죄를 만들거나 하지도 않은 죄를 미리 고백하기도 한다. 어쨌든 그들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매를 줄이기 위해 죄의 고백과 사과가 필요했던 것이다. 폭력은 그렇게 일상화되고 그들의 영혼을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우리는 꼭 고백한 대로만, 꼭 그만큼의 죄만 지었다. 그래야 마음이 놓였고, 잠도 잘 왔다. 깜빡 잊고 그날 치의 죄를 짓지 않고 잠자리에 누운 날엔, 다시 방문을 두들겨 복지사들을 깨우기도 했다. 복지사들은 대개 방문을 열자마자 우리에게 발길질부터 해댔지만, 그래도 시봉과 나는 참고 끝까지 죄를 지었다." (p.30)
시설에 원생들이 늘어나자 복지사들은 원생들의 죄를 묻고 사과하는 일을 시봉과 '내'가 대신하도록 한다. 반장이 된 '나'와 시봉은 원생들의 죄를 묻고 죄에 대해 사과하고 매를 맞기도 한다. 적어도 시설에 구레나룻 아저씨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자신은 납치된 채로 강제 입원이 되었다고 말하는 구레나룻 아저씨는 매일 밤마다 도와달라는 말을 종잇조각에 적어 담장 밖으로 던졌다. 이를 보다 못한 '나'와 시봉은 구레나룻 아저씨를 돕기 시작했고, 그들이 메모를 적기 시작한 지 한 달째 되는 날 경찰과 공무원들, 방송사 기자들이 시설로 들이닥쳤다. 원장과 복지사들, 총무과장과 식당 아줌마까지 경찰에 의해 연행되었고 시설은 폐쇄되었다.
갈 곳이 없었던 '나'는 시봉과 함께 시봉의 동생 시연이 사는 임대아파트로 가게 된다. 매춘부로 사는 시연과 그녀의 동거남인 '뿔테 안경' 그리고 '나'와 시봉의 어처구니 없는 동거가 시작된 것이다. 경마로 재산을 탕진한 채 특별한 직업도 없이 시연에게 얹혀 살았던 '뿔테 안경'은 '나'와 시봉에게 돈벌이를 종용하지만 정상이 아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시봉과 '나'는 시설에서처럼 '사과 대신하기'에 나선다.
'뿔테 안경'은 대신 사과할 의뢰인을 찾는 광고 전단지를 붙이고 그렇게 전단지를 붙인 열흘째 되는 날 젊은 여자한테 눈이 멀어서 부인과 절름발이 아들을 버린 사람이 사과를 의뢰하기 위해 찾아온다. 의뢰인의 아내는 한 초등학교 근처에서 김밥집을 하며 아이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러나 의뢰인의 아내는 그들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시봉과 '나'는 그렇게 다른 사람의 사과를 대신하며 교도소에 있는 원장을 면회하기도 하고 시설에서 먹던 알약을 구하기 위해 시설을 다시 찾아가기도 한다. 시설에서 알약과 함께 원장의 일기장을 발견하여 집으로 가져온다. 의뢰인 대신 죽어줄 수 있다면 사과를 받아들이겠다는 의뢰인 아내의 제안을 받고 의뢰인을 찾아갔던 '나'와 시봉은 '뿔테 안경'이 이미 의뢰인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죽음으로써 사과할 결심을 한다. 그날 술에 취한 '뿔테 안경'은 김밥집에서 죽음을 맞는다.
한편 집행유예로 풀려난 복지사들이 시봉과 '나'를 찾아와 시설로 데려간다. 시설에서 죽어나간 두 명의 행적을 알고 있었던 '나'와 시봉이 그들에게는 위협적인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나'와 시봉을 땅에 묻을 계획이었던 복지사들은 원장의 일기장을 내가 갖고 있음을 알게 되고 일기장을 가져오라며 '나'를 시연의 집으로 보냈다. '나'는 그들로부터 도망친다. 시봉을 버려둔 채. 언젠가 시봉은 자신에게 사과할 일이 생기면 자신을 대신해 '나'에게 사과하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자살을 시도하여 병원에 입원한 시연을 들쳐업고 시연의 집을 향해 무작정 걷는다.
"나는 계속 걸어갔다. 시연은 말없이 내 등에 뺨을 갖다 댔다. 나는 집으로 가는 길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 걸었다. 나는 잠깐 뒤돌아, 병원의 파란색 십자가 네온사인을 바라보았다. 멀리 왔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병원의 십자가는 높은 곳에서, 가까운 곳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엇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p.220)
이기호의 소설을 읽었던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어디서 본 듯한, 소설의 구성이나 스토리를 이미 알고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느꼈던 건 그의 문체와 사건 전개의 방식이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죽을 죄를 짓고도 사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철면의 시대에 우리는 과연 잘 살고 있는지 작가는 묻고 있는 것이다. 사과할 만큼 큰 죄를 짓는 일이 없었던 시봉과 '나'는 누군가를 향해 언제나 사과할 준비가 되어 있는 반면 사과할 일이 너무나 많은 듯한 우리들은 되도록이면 사과를 피하려 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작가는 묻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는 병원의 푸른색 십자가로부터, 또는 절대자의 시선으로부터 결코 달아날 수 없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무작정 숨기려고만 한다. 어쩌면 범죄 바이러스를 막는 가장 강력한 백신은 사과일런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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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 작가를 만나는 두번째 소설. 표지 날개에 위치한 그의 프로필이 인상적이다. '언젠가는 종교 코너에 꽂히길 바라는 소설집 <최순덕 성령충만기>와, 또 언젠가는 역학운세 코너에 꽂히길 강력히 바라는 소설집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을 낸 젊은 작가 이기호. 그렇다면 <사과는 잘해요>는 어디에 꽂힐까? 법의학 코너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 입담 하나는 정말 대단하다.
<당신이 잠든 밤에> 등장하는 시봉과 내가 이 소설에도 등장한다. 마치 분신처럼. 그들의 나이를 가늠할 순 없지만, 약 5년 동안 사설시설에 갇혀 지낸다. 그곳에서 원장 선생에게 밤마다 끌려가 그의 변태성욕(새디스트)을 풀어줬고, 매일 복지사 2명에게 갖은 폭행을 당한다. 시봉은 택시를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해 부모님을 동시에 잃었고, 정신적 충격으로 차만 타면 바지에 대변을 보는 정신지체아로 변했다. 주인공인 '나'는 어느날 문득 아버지에 의해 시설에 오게 되었으며, '정상이 아니'란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그때부터 모든 기억을 잃게 된다. 그들이 갇힌 시설은 인권의 사각지대.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해 배를 불리는 인간 말종들이 운영하는 곳이다. 2명의 복지사에 의해 심심풀이로 매일 구타를 당하면서, 폭력은 어느덧 두 사람에게 일상이 되었다. 때리면서도 '네 죄를 아느냐'고 다그치는 복지사들. 맞으면서도 뭔가 사과거리를 찾아야 했던 그들. 어느덧 죄의 반대말은 사과가 되어버린 것이다.
우연히 사설시설에 들이닥친 언론. 결국 그들은 시설의 기둥이자, 내부고발자가 되어 풀려나게 된다. 집도, 부모도 모르는 나는 시봉을 따라 그의 집으로 향한다. 여동생인 시연과 동거남 '뿔테안경'. 그들과의 기막힌 동거가 그렇게 시작된다. 매춘부로 살아가는 시연, 하루가 멀다하고 경마에 빠져 인생을 탕진하는 뿔테안경. 시봉과 나는 시설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하며, 그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사과 대신하기'를 통해 돈벌이에 나선다. 예전 시설에서 복지사들은 그들에게 반장이란 임무를 주고, 다른 사람들의 죄까지 대신 사과하게 하는 역할을 맡겼다. 무차별적인 폭력의 일상. 그리고 그렇게 길들여진 사과의 행태는 딱 초등학생 수준의 지능을 가진 그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정유정의 '내 심장을 쏴라'에서도 정신병원에 갇힌 2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둘다 멀쩡했지만 자유를 거세당한 그들. 결국 결말에 이르러 통쾌하게 탈출하며, 자유를 되찾는다. 이에 반해 <사과는 잘해요>의 두 주인공은 일상에서 다소 결락된 인물들이다. 정신적 내상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그들. 사과를 대신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멀리서 바라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다'란 말이 떠올랐다. 그들의 우연치않은 고발에 의해 감옥에 간 원장 선생과 복지사(둘다 원장의 조카다). 특히 복지사는 집행유예로 풀려나 시봉과 나를 찾는다. 예의 무시무시한 복수의 폭력을 가하는 그들. 하지만 시설에서 죽어나간 2명의 행적을 기억하고 있던 시봉과 나는, 그러한 살인까지 기록되어 있던 원장 선생의 일기장의 존재를 알리며 잠시 숨통이 트이는가 싶었다. 하지만 시봉은 결국 그들에 의해 죽고, 나는 자살을 시도했던 시연과 함께 어디론가 정처없이 걷는다. 병원의 십자가가 내려보는 거리를 걸으며, 그들에게 가한 세상 모든 죄를 사과하듯 말이다.
이 소설은 시설이란 공간이 매우 구체적으로 기술된다. 끊임없이 가해지는 폭력과 인권 유린. 그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철저하게 망가지는 지를 보여준다. 시봉과 나는 무턱대고 사과를 해야 했다. 없는 죄를 찾아, 죄를 만들어야 했고, 그리고 그 죄를 자백하며 폭력의 당위성을 인정받아야 했다. 두 사람은 처자식을 버렸던 한 사내의 의뢰를 받으며, 사과를 대신해야 했다. 하지만 김밥집을 하던 사내의 아내는 '대신 죽을 수 있냐고, 자신과 아들을 버렸던 그 인간을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고 말한다. 그들은 예상하지 못했던 사과 조건을 들어줄 수 없었다. 하지만 뿔테안경은 이미 사내로부터 돈을 받았고, 시봉과 나는 뿔테안경을 죽임으로써 사과를 완성한다.
짧은 소설이다. 포털 사이트에 연재하던 소설을 묶었다고는 하나, 기본적인 뼈대를 제외하고는 완전히 새롭게 썼다고 한다. 그리하여 1,200매에 달하는 원고가 절반으로 줄었고, '도착(倒錯)'이란 단어에 고심했다고 한다. 즉 죽음을 뒤섞는다는 뜻인데, 한편으로 시간과 사물의 이치를 뒤집는다는 뜻도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무엇을 뒤섞고 싶었을까? 죄의 반대말은 무죄가 아니라, 사과가 되어버렸다고 말한다. 죄를 권하는 사회 속에서, 주인공인 나는 분신과도 같았던 시봉을 잃어버렸지만, 그의 여동생인 시연을 업고 거리를 나선다. 이제 그들에게 사과해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온전히 그들은 세상으로부터 사과를 받을 수 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어느 공간, 그 누군가에게 고개 숙이며 공손하게 사과를 해야 하는 건 아닐까? 죄와 사과가 뒤섞인 한판 슬픈 비극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마치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를 보듯, 속도감 있는 글쓰기였지만, 내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무엇.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실례했습니다. I'm Sorry'를 외치며 두 손을 공손하게 모으고 고개를 숙이는 두 주인공이 표지 일러스트로 재현된다. 그나저나 그들의 몸 뒷편에 태엽은 누가 감아놓은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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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종류의 꼭두각시가 있다. 하나는 실로 연결된 나무막대 조절개로, 다른 하나는 태엽으로 움직여진다. 두 꼭두각시는 허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두 명의 사람이 서 있다. 무표정한 한 명과 'sorry, 정말 죄송합니다. 사죄드립니다.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실례했습니다,,,'연신 사과를 하고 있다. 그들 앞에는 어떤 표정인지 알 수 없는 두명의 뒷통수가 보인다. 아마 비웃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내용을 집약해서 잘 담아논 표지가 또 있을까! <사과는 잘해요>에는 사과를 참~ 잘하는 시봉과 내가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사과들 중 그들의 사과처럼 특별한 것은 없다. '죄를 찾다. 죄를 만들다. 죄를 키우다.'로 요약되는 시봉과 나의 사과하기 프로젝트는 항상 머리를 조아리고 있어야 하는 인간 삶의 단편들을 보여준다.
시설은 참으로 이상하다. 알약을 정기적으로 배급받는다. 의사와 군인복장을 한 듯한 두 명의 복지사는 원생들을 괴롭힌다. 비리를 한 가득 안고 있는듯한 원장도 있다. 그 속에서 오랫동안 생활해 온 기봉과 나는 반장이 된다. 책임감이 막중해진 둘은 원생들을 대신해서 복지사들에게 사과하고 맞는다. 또 사과하기위해 죄를 찾는다. 맞고, 사과하고, 맞고, 사과하고, 또 맞는다. 의도치 않은 내부고발자가 되어 뜻하지 않게 자유의 몸이 된다. 그러나 할 줄 아는 것은 사과하기뿐. 과일가게와 정육점가게 주인들을 시작으로 사과거리가 생겨난다. 두 젓가락 더 먹었어요, 먼저 걸어갔어요 등등. 사과거리는 점점 늘어간다. 죄를 만드는 일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어느 날, 시봉이 말했다. 자신한테 사과할 일이 있으면 스스로에게 하라고,,, 난 그 말을 떠올리고 시봉에게 사과할 일을 만든다. 나는 죄를 그렇게 키웠다.
역설적이게도 시봉과 나는 죄가 없다. 그러나 계속 사과한다. 죄가 있는 복지사들은 연신 두들겨 팬다. 거꾸로 거꾸로~ 돌아가는 미친 세상을 말하는듯 하다. 뭐가 옳고 뭐가 그른 것인지 헷갈린다. 계속 사과하라는 시봉과 나의 말에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싸움을 거는 과일가게 주인처럼, '아이러니'를 닮은 세상의 모습에 사람들은 익숙해져 가고 있다.
불합리한 구조에 아부로 점철되는 사회적 자세는 능력으로 추앙받는다. 돈을 내고 이뤘든, 자력갱생했든, 높은 자리에 오르면 권력의 중심이 된다. 그들에게는 사과할 거리가 수백가지가 되겠지만, 사과를 받기만 한다. 더불어 잘 봐달라는 따뜻한 아첨도 함께. 시봉과 내가 머무는 시설은 삐뚤어진 우리 사회의 모습과 닮았다. 그 안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지만 고향을 찾는 연어인양 다시 시설을 찾는 시봉과 나처럼, 우리들도 일탈을 꿈꾸지만 다람쥐 쳇바퀴 도는 모습으로 적응해 살아간다.
'마음은 소설가 같아도 손과 발은 노동자 같은~' . 작가 이기호에 대한 표현중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벽돌을 나르고 땀을 흘리는 고됨속에서 질펀한 욕짓거리로 시작하는 사회 비판처럼 이기호의 글에는 메아리가 되어 곰곰히 생각하게 만드는 강한 여운이 있다. 빠르게 진행되는 호흡속에 전개되는 시봉과 나의 모습처럼 우리도 숨쉴틈없이 빠르게 살아가고 있다. 그 속에서 한 템포 늦춰 생각해보자. 내가 시봉에게 하지 않은 사과처럼, '네가 나이기에'라며 생각하고 훅- 지나간 일이 있을 수 있다. 혹시 당신도 지금 시설의 '알약'을 찾고 있진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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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정신병자가 주인공이다. 화자인 진만이와 시봉이는 수용시설이 폐쇄된 후 시봉이의 여동생 집에서 빌붙어 살며 돈을 받고 사과를 해주는 일을 시작하게 된다. 나부터도 사과를 해야 할 일을 생각해보면…일단 지금 생각나는 건 4개 정도인데 받고 싶은, 받아야 할 사과를 생각해보면 수백 가지도 넘게 떠오른다. 하지만, 항상 죄책감에 시달릴 만큼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고도 사과를 망설이는 사람도 분명 있을 터 가정을 버리고 도망친 남자가 전 부인에게 사과를 해달라는 의뢰를 받게 되고 진만이와 시봉이의 처절한?! ‘용서해 줄때까지 사과하기’가 시작된다. 오랜만에 책을 보면서 신나게 웃은 것 같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하지만 절대 가볍지는 않다. 웃고 난 뒤 씁쓸하게 뭔가가 남는다.… 이건 뭐지?…… 약을 먹으면 어지러웠는데, 이젠 약을 먹지 않으면 어지러워서 제대로 서있을 수조차 없게 약에 길들여져 버렸고 수용시설에서의 폭력, 사과해야하는 버릇에도 길들여져 버린 두 남자가의 세상 적응기… 이 책을 읽는 동안 이 세상 전체가 거대한 정신병원 같았다. 진만과 시봉이 생활하던 복지시설의 원생들을 관리하는 복지사들만 봐도 그 시설에 입원해있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자신들의 폭력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끝임 없이 죄를 자백하라고, 사과하라고 강요하는 복지사들 그들의 잘못을 눈감아주는 원장까지… 누가 진짜 미친 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들은 미친놈이란 딱지를 때고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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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이 매우 독특하다. 장편이지만 쉽게 읽을 수 있을 만큼 많지 않는 분량이다.
간단한 줄거리는 보육원원 횡포에 길들여진 두 남자의 이야기로 내부 고발에 의해 부정을 저지른 보육원 관계자들이 모두 구속수감되고, 보육원이 운영이 되지 않아 그곳에 있을 수 없게 된다. 그후 그들은 보육원을 나와 동생의 집에 있으면서 어려운 사과를 대신 해주고 돈을 받는 일을 하며 생활한다. 그리고 하나둘씩 찾아오는 의문과 진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삐에로 같은 소설이었다. 책 표지와 재목을 보면 유쾌하고 상쾌하고 재미있는 내용으로 구성된듯 보이지만 소설은 절대 웃을 수 없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웃음을 주었다. 웃음의 의미는 즐거운, 쓰디쓴....여러가지 경우의 웃음인듯 하다.
개인적으로 독특하고 괜찮은 소설인듯 하다. 하지만 끝맺음이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소설의 전개상으로는 작가는 아직 할말이 남아 있는데, 왜 그렇게 두 남자의 동생인 시연이가 몰래 병원을 도망치듯 그렇게 끝을 맺었을까? 소설의 전개상 뒤의 이야기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놓았다고 하기에는 미흡한 부분이 많다.
이러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다음의 장편소설을 기대하게 할만큼 "사과는 잘해요"는 나의 입맛에 맞는 소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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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씨의 작품은 두번째로 접하는 것이다. 제일 괜찮다는 평을 지닌 [최순덕 성령충만기]는 읽어보질 못했고 [갈팡질팡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를 읽었었는데, 8편으로 이루어진 단편집이었다. 그 중 절반 정도는 괜찮았던 작품이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것은 아마 이 <사과는 잘해요>에 나오는 시봉이와 진만이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시봉이와 진만이라는 이름은 이제 비주류에 속하는 인물을 대표하는 이름이 되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봉과 진만은 소위 '시설'이라는 곳에서 같은 방을 쓰며 생활하던 인물들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시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나쁜 시설이 주목받는 소재는 아니다. 어쨌든 시설이 원장의 구속으로 문을 닫게 되고 시봉과 진만은 시봉의 여동생인 시연의 집에서 기생하게 된다. 시연의 집에는 시연과 함께 사는 뿔테 안경을 쓴 남자도 있었다.
시설에서 복지사들로부터 다른 원생들의 죄를 대신 사과하는 일을 도맡아 하게 되면서 시봉과 진만은 다른 것은 몰라도 '사과는 잘'하는 사람들이 되고, 시설에서 나와서도 사과를 하면서 돈벌이를 하게 된다.
문장도 간결하고 내용도 어렵지 않고 줄간격도 넓어 가독성은 아주 훌륭하다. 시봉과 진만의 비주류적 인물의 성격을 반영하듯 단순한 문체가 줄곧 계속된다. 하지만 작위적인 느낌이 강하다. 자신은 억지로 웃음을 참고 남을 웃기려고 하는 개그와 같은 억지 설정이 많아 크게 마음에 와닿지는 않는다. 가장 뜬금없었던 것은 자신과 같은 방에서 생활했던 어느 남자의 죽음이 바로 아버지의 죽음이었다는 것을 표현한 대목이다. 이렇게 가끔 뜬금없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고 이 말을 하고 싶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저런 문제를 이야기 하고 싶어하는 것 같기도 하고..알쏭달쏭하다가 어느 새 이야기는 끝나버린다. 이도저도 아닌 듯한 작품의 성격이 아쉽게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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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참 좋다, 싶었다. 정말 순식간에 잘 읽힌다. 그런데 참, 솔직히 무어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쩝...
S모 방속국에서 하는 SOS라는 프로그램이 있지 않은가. 어디론가 끌려가 주는대로 먹고 돼지우리같은 곳에서 자는 인간노예를 처음 봤을때의 충격이 나는 여직 남아 있어서 - 그때 처음으로 인간에 대해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기 때문에...- 단순히 지능이 떨어진다거나 모자란 인간이어서 이런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에는 시봉과 진만이라는 두 주인공이 나온다. 시설에 끌려갔을때부터 분신같이 붙어다닌 두 사람은 왜 맞아야하는지 이유도 모르면서 죽도록 맞고, 연신 약을 들이키며, 양말을 포장한다. 복지사들에게 당한 폭력도, 시설에서의 부당한 대우도 주변인이 분노해주기엔 두 사람은 너무 많이 모자라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자각도 없다. 자살을 하고, 탈출을 시도하는 여타의 원생들과 달리 그들은 반장이라는 감투를 쓰고 다른 사람의 죄를 캐내 사과를 대신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물론 죄책감도 개념도 없다. 시설이 고발을 당해 시봉의 여동생 집에 얹혀살게되고 밥값이라도 해야하는 두 사람은 전매특허인 사과대행에 나선다. 삶에 대한 주체적인 의지도 없는 인간들이 사과에 대해서만은 병적으로 집착하고 열광한다. 그리고 관계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삶에 개입한다. 끊임없이 죄를 내놓으라고 하고, 대신 사과를 하겠다고 억지를 부린다. 뒤는 밝힐 수 없다. 읽어보시라.
작가가 연재하던 소설을 묶었다고 하던데 묘하고 뭔가 독특한 분위기가 풍기는 것이 사실이고 왠지 날것의 느낌이 강하게 난다. 짐승과 달리 영적인 활동을 하는 인간이 어쩌면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는 현실이 때론 사실적으로 부딪쳐오기도 한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거나 사과만이라도 좀 잘했으면 싶은, 쓰레기같다는 소리를 들으며 사는 인간도 있다. 하지만 인간은 고귀하다. 부도덕하고 불성실한 인간까지도. 도전적이고 재기는 있으나 사람들 속에 숨어있는 죄와 죄의식에 대해 이야기하기에는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그러함에도 내겐 이 소설이 그 어떤 소설보다 현실적으로 와닿는다. 죄 뿐 아니라 현대인은 많은 것의 노예로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하기에. 자신들을 바보로 만드는 약을 먹지 않으면 병들고 있다고 생각하는 시봉과 진만처럼 우리는 무언가에 의식이든 육신이든 중독되어 있다. 병들어가고 있는 원인, 그것을 찾지 못하는 우리가 바보일까, 죄를 지었으면 사과를 해야하고, 사과를 하기 위해 계속해서 죄를 지어야한다는 죄와 사과의 관계를 주장하는 시봉과 진만이 바보일까. 오늘밤 진지하게 묻고 싶어진다. 그래도 마지막 진만의 주체적인 변화는 조금 반갑다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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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가들은 대개 맘에 드는 하나의 프로필 사진들을 쓴다. 혹 2-3개의 프로필 사진을 쓰더라도 사진 속 사람은 단 한 명이다. 그런데 이 작가는 어떻게… 프로필마다 사진들이 다르다. 그리고 그 사진 속 남자들은 동일인이 맞나 싶게 다른 표정을 가지고 있다. 대개는 선호하는 각도나 표정이 있게 마련인데(작가가 연출하고 의도한), 이 작가는 고개를 들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고 왼쪽을 보여줬다가 오른쪽을 보여줬다가 정면을 응시했다가, 한다. 그에 따라 얼굴은 마치 마법을 부리듯 달라진다. 나한테 이기호란 작가는 그렇다. 그의 ‘이야기’(‘작품’이라고 하지 않고 꼭 ‘이야기’라고 표현해야 할 것만 같다) 역시 마찬가지다. 2. <최순덕 성령충만기>를 읽은 후 2010 이효석 문학상을 수상한 ‘밀수록 다시 가까워지는’과 또 다른 단편인 ‘원주통신’을 읽었다. 두 단편은 썩 재밌고 잘 읽혔지만 <최순덕 성령충만기>를 읽으며 느꼈던 ‘이기호스러움’은 없었다. 평론가는 그것을 이기호의 성장, 이라고 평가했지만,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자기만의 색깔이라고는 없는 ‘모범생’을 보는 듯했다. 이 작품은 <최순덕 성령충만기>와 앞에서 거론한 두 편의 단편이 갖는 성격을 모두 지니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추후에 ‘이기호론’이라는 게 나온다면 이 작품은 과도기적으로 평가될 수도 있겠다. 읽기엔 이전보다 덜 거북스럽지만 그로 인해 ‘이기호스러움’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 고유한 성격들은 다소 퇴색된 듯하다.[i] 3. 이 작품은 ‘복지’시설에서 ‘복지사’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폭력을 말하고 있다. 그것을 사회 고발이나 르뽀 식으로 무겁고 진지하게 다루는 게 아니라 시설에 수용되었던 두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시종일관 가볍게 그려내는데, 이러한 형식과는 정반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 사회의 모순과 위선, 아이러니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생명력을 갖는다.[ii] 4. 이 작품은 크게 삼 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총 53개의 소챕터를 단 작은 이야기들로 조각조각 나뉘어져 있다. 크게 보면 장편소설이지만 짧은 콩트들을 모아 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많은 부분을 수정했다고는 하지만, 인터넷 연재물이었다는 태생 때문에 드러난 특징 같기도 한데… 이것은 가독성을 높인다는 측면에서는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도 있을 듯하다. 이야기들이 조각케익처럼 나뉘어져 있어 한호흡에 짤막하게 읽기엔 좋지만, 뭐랄까? 어른들이 흔히 하는 말 중에... 예를 들어 만원을 지폐 한 장으로 가지고 있으면 그건 만원의 가치가 있지만, 일단 9700원, 이런 식이 되어 버리면 그 돈은 쉽게 없어진다. 300원 차이지만 체감하는 가치는 급격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형식적 측면에서 그런 점이 조금 아쉽다. 5. 만약 이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클라이막스가 되는 건 제3장의 7. 내가 알지 못했던 사과, 부분일 것이다. 그러니깐 213~215쪽까지.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작가는 먼 길을 쉴 새 없이 달려온 거구나, 싶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6. 아마도 이 작품을 다 읽고 나면 프란츠 카프카의 『심판』을 읽게 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이 작품을 읽고 여운이나 아쉬움이 남는다면 프란츠 카프카의 『심판』을 읽으면 좋을 듯하다. 사실 이 소설은 작년 여름 카프카의 어떤 소설을 읽다가 문득 구상한 것인데, 소설을 다 쓰고 난 후, 교정을 보다 보니 오히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소설과 엇비슷한 모양새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됐다(222). [i] 나만 이렇게 생각한 건 아닌가 보다. 평론가 박혜경은 책 말미의 해설에서 이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우선 눈에 띄는 변화는 패러디적인 어법으로 기존의 양식화된 권위를 맞받아치는 이기호 특유의 유머러스하고 장난기 어린 언어적 활기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소설의 어법은 차분해졌고 인물들은 유순해졌다. 맷집 두둑한 날것의 생생한 입담 대신 무언가 억제되고 짓눌린 발성에 가까운 간결하고 단정한 문장들과 그 문장들 사이로 배어나오는 정체모를 공허와 무력감이 소설 전체를 뒤덮고 있다는 인상이 지배적이다(226). [ii] 이것 역시 나만의 생각은 아닌가 보다. 박혜경은 해설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사과는 잘해요』가 보여주는 현실과 한 뼘의 간격을 두고 있는 우화의 세계는 현실이 우화가 되고 우화가 현실처럼 여겨지는 세계이다. 그래서 복지원에서 복지원 바깥 세상으로 이어지는 시봉과 나의 기이한 편력담은 현실이 얼마나 비현실다운가, 또 비현실은 얼마나 현실적인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표본적 사례처럼 여겨지기도 한다(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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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봉과 나는 시설에서 처음 만났다."(...9p)라는 첫 문장을 읽고 <<내 심장을 쏴라>>를 떠올린 사람은 나 뿐이었을까? 시설에서 만난 두 남자가 주인공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하지만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참 다른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심장을 쏴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진중함을 유지한 반면, <<사과는 잘해요>>는 너무나 섬칫하고 살벌한 배경 속에서 자꾸만 실소를 자아낸다. 아마도 시봉과 진만의, 그 어이없을 정도로 솔직하고 직설적인 말과 행동 때문이리라. 첫 문장에서 밝혔듯이, 시봉과 나(진만)는 시설에서 만난 사이이다. 언제부터 시설에 있었는지, 시간은 얼마나 흘렀는지도 기억하지 못한 채 매일 복지사들에게 맞고, 약을 먹고, 일을 한다. 사건의 시작은 어느날 이들의 방에 새로 들어온 노숙자가 시설로부터 구해달라는 메세지를 밖으로 내보내고, 시설의 기둥들이라고 생각했던 시봉과 내가 이 노숙자를 도와 결국 시설의 비리가 밝혀지면서 시작된다. 소설은 시봉의 동생 집으로 온 시봉과 내가 겪는 경험과 그들이 시설 안에서 겪었던 경험들이 오버랩된다. "나는 바스락거리는 비닐을 만지작거리며 내 죄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무언가 분명 큰 죄를 지은 것 같기는 한데, 그것이 무엇인지 도통 생각이 나질 않았다."...25p 복지사들은 시설원들에 대한 자신들의 구타와 폭행을 정당화하기 위해 "죄의 고백"을 원했고, 시봉과 진만은 단지 덜 맞기 위해 없는 죄를 만들어낸 후에, 그 죄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위해 같은 죄를 지었다. 이 죄의 고백은 시봉과 진만이 시설의 반장이 된 후 대리 사과라는 형태를 통해 발전된다. 이 과정은 후에 시설을 나와 그들이 이에 관련된 일을 시작하며 본격화된다. "핸드백을 뒤지기 전, 시봉과 나는 잠든 시연의 앞에 서서 사과했다. 핸드백을 뒤져서 미안하다고, 돈을 가져가서 미안하다고.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시연은 말이 없었다. 시연의 지갑엔 지폐가 한 장밖에 들어 있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들고 나왔다. 우리는 이미 사과를 했기 때문이다. "...112p 이들의 죄와 사과는 마치 어느 것이 먼저일까..하는 닭과 계란의 문제인 것 같다. 죄를 짓고나서 사과하는 것이 아닌, 죄를 정당화하기 위해 먼저 사과하고난 후 죄를 짓는다. 그리고 미리 사과를 했기 때문에 이들은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너무나 아이러니한 상황이지만 이들의 순수함(시설에서 맞은 폭행과 그들을 바보로 만들어버린 약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이 또한 모순이지만..)을 생각하면 풋! 하고 웃음이 나와버린다. 하지만 계속해서 웃을수만은 없다. 이야기는 이들의 모순을 더욱 크게 부풀려 사건은 점점 더 암울해진다. 이야기 진행은 너무나 빠른데 그 속에 담긴 의미는 좀처럼 정리가 되지 않는다. 빠르기가 다른 탓이다. 이 소설이 가진 진짜 의미를 생각할 시간을 별로 주지 않는다. 머리 속에선 바쁜데 이야기는 끝나버리니 무언가 좀 허전하다. '나'는 정말 괜찮은걸까? 언제나 시봉과 함께였지만 이제는 시봉이 없는데 그는 홀로 설 수 있을까? 아부지의 존재를 확인한 후에도 감정은 아무렇지 않은건가? 이 모든 것은 그저 독자의 몫인지... 아님 나만 이렇게 헤매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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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라는 작가는 '사과는 잘해요'라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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