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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청춘의 도서와 책의 기획의도가 동일하다. 독서는 항상 할 수 있는 취미생활이되, 그 시기와 또 독자가 받아들이는 강도에 따라 다른 효과가 나타난다. 내가 공부로 읽었던 책이랑, 쉴 때 읽었던 책, 그리고 억지로 읽은 책은 같은 책이라 할지라도 많이 다를 것이다. 내게 책이 가장 절실하게 다가왔던 시기는 나에게 가장 큰 자양분이 된 시기는 언제였을까를 톺아보게 된다.
유시민과 강상중의 경우, 성장기 때 읽은 책이 지금의 자신을 만드는 큰 기여를 했다는 것이다.
강상중이 꼽은 책은 4~5권이며, 그 책이 자신이 서있는 자리를 그렸다고 말한다.
먼저 나쓰메 소세끼의 산시로를 통해 주변인으로서의 주인공의 심정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굵직한 현대사의 격동을 한국으로부터의 통신과 마사오의 책을 통하여 읽어낸다. 또한 막스 베버를 통하여 기독교와 자본주의 공고한 결합관계를 읽어내고 있다.
내가 읽은 책이라고는 그 중에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정신'밖에 없어서 그런지 동감할 수는 없었으되, 그의 책소개를 통하여 강상중의 삶과 가치관을 알게 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책을 읽고 성장하고, 그 이야기를 소개하는 이 과정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특히 책에 대한 감정이 남다른 나의 입장에서 이런 담담한 서평을 보는 기쁨이 있다.
나 또한 이런 책을 하고 갖고 싶은 생각 굴뚝같다.
이 책은 포켓보다는 조금 큰 판형이라 아담하고 이쁜 크기이나, 많은 지면을 낭비한 감이 있다. 종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이런 면에서 포켓형으로 만들어진 작은 일본책들이 떠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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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중. 청춘. 두 단어의 조합은 이상하게 어울린다. 하다보니 강상중이라는 사람의 책을 읽게 되었고 책을 읽고 좋았다. 의도치 않게 강상중의 책을 역순으로 읽게 되었다. 가장 최근 책을 읽은 후에 이곳 저곳 도서관에서 발견하여 읽게 되었는데 신기하게도 출판 년도가 이번 책이 가장 오래되었다. 처음 읽었던 책이 일본의 원전 사태와 저자의 아들 자살에 따른 생각을 굿내림식으로 쓴 책이었다. 분량이 짧으면서도 내용의 깊이가 있어 끌리게 되었다.
이번 '청춘을 읽는다'는 강상중의 쓴 책이라는 것을 알고서는 별 주저함이 없이 곧장 집어 들어 읽게 되었다. 자이니찌라는 특수한 신분으로 살아가는 경계인으로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삶을 살아가지만 대학교수로 일본 TV에도 출연하며 어느 정도 지식인으로 성공한 삶을 살아가게 된 묘한 위치에 있는 저자의 상황에 호기심이 생기고 그가 하는 이야기에 관심이 갔기에 강상중의 책은 읽게 되는 듯 하다.
'청춘을 읽는다'는 저자의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을 몇 권의 책과 함께 소개하는 책이다. 몇 몇 작품을 읽었던 시기와 그 시기에 자신에게 벌어졌던 경험과 생각들에 대해 적으면서 현재의 자신과 비교한다.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 나에게 어떤 책이 이 책에서 소개된 것과 같은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나라는 사람을 만든 든든한 책이 있을까하고 궁금했는데 얼핏 생각하니 딱히 이것이라고 이야기할 만한 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딘지 상대적으로 괜히 추억없는 청년시절을 보낸 것이 아닐까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나 나름대로 의미있는 청춘시절을 보냈을텐데 이 책에서 언급된 책들만큼 길고 길게 이야기할 수 있는 책은 언뜻 떠오르지 않아서. 책에서 총 5권의 책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책들은 단순히 책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저자 자신의 삶을 언급하기 위해 필요한 책들로 구성되어 있다. 소개 된 책 전체가 저자 삶의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고 그 중에 일부나 전체를 관통하는 개념과 사상이 영향을 미친 것이다.
강상중씨의 책은 통통 뛰는 맛도 없고 깊고 깊은 사색을 해야만 알아들을 수 있는 글도 아니다. 조용한 찻집에서 서로 마주보고 앉아 희미한 미소를 짓고 차를 두 손으로 들며 차 냄새를 음히하며 차에서 나오는 연기를 바라보며 상대방과 함께 담소를 즐기는 느낌이다. 심각하지도 않지만 떠들썩하게 웃어재끼며 이야기하는 것도 아닌. 상대방의 이야기에 집중하며 아주 가끔 감탄사나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느낌의 글쓰기다. 지금까지 강상중의 책과 달리 이번 책은 상대적으로 별로였다. 변함없이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의 이야기는 나온다. 이번에는 아예 그들이 쓴 책을 하나의 장으로 전부 서술하고 있으니 더이상의 언급은 필요없다고 생각될 정도다. 읽으면서 궁금한 것은 도대체 언제부터 강상중은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에 대한 이야기를 책에서 언급했던 것일까? 또는 그의 글에서 이 둘의 이야기가 시작된 것일까? 무척이나 궁금했다.
두 사람의 글과 사상을 통해 자신의 의견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 언급하고 그들의 작품에서 펼쳐지는 세계를 통해 현재 이곳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어떤 의미에서는 은유적으로 표현하는데 굉장하다고 생각된다. 이토록 집요하게 오래도록 두 저자를 갖고 모든 상황을 연결해서 풀어낸다는 것이 말이다. 그러다보니, 짧다고 하면 짧은 시간동안 강상중의 책을 집중적으로 읽다보니 스스로 피로해진 측면이 생긴 듯 하다.
'산시로', '악의 꽃',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일본의 사상',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가 언급되는 책들이다. 이 책들을 통해 저자의 젊은 시절 경험을 소개한다. 시골에서 올라와 정신없고 이질감을 느꼈던 도쿄의 생활. 도쿄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갔던 삶. 한국에 갔다 와서 일본 이름을 버리고 한국 이름으로만 살게된 배경.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경계인으로 살아갔던 청춘의 시기. 초라한 한국에 비해 마천루가 올라가고 세계에서 주목받던 일본의 도쿄에서 살면서 자본주의에 대해 느낀 이야기가 책에는 실려있다.
이전 책에서도 강상중의 젊은 시절과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뜨문 뜨문 언급되며 알게 되었는데 이번 책은 집대성이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한다. 이미, 자신의 젊은 시절에 대해서 초창기에 거의 다 언급했는데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렇게 되면 생각지도 못하게 강상중이라는 인물에 대해 상당히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해야 될 것이다. 실제로, 아들이 자살했는데 이 책을 보니 - 아들 자살 훨씬 전 책이다 - 본인도 자살을 생각해 본적이 있다고 한다.
일본인이면서 일본인이 아니고 한국이름을 갖고 있지만 한국인이 아닌 경계인. 일본의 내부에 대해 알려주고 한국에 대해 객관적으로 알려주는 저자가 강상중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어떤 것에 대해 알려주는 정보자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에 대해 늘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를 통한 성찰로 사색을 권하는 책이 아닐까 한다. 어딘지 비슷한 듯도 하지만 사색의 종류가 같으면서 달라 책을 읽는 사람에게는 좋다. 비록, 이번 책은 다른 책에 비해 다소 별로였지만..
쓰고 보니 강상중과 청춘이 어우리는 이유에 대해 쓰지 정확하게 않았는데 그의 책에는 늘 청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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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한 권의 책을 통해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될 때가 있는데, 이 책도 그런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자이니치, 즉 재일교포라는 사람들, 그 전에도 그 단어는 흔하게 들었지만, 그들이 생기게 된 배경, 그들이 겪어야만 했던 소외와 어려움들에 잠시 멈추어서서 귀기울였던 적은 없었다.
그러나, 우연히 읽게 된 이 책으로 인해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게 되었고, 그들에게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들게 되었다. 그들의 어려움에 같이 동참하지 못했던, 아니 관심조차 갖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
저자의 머리말을 읽으면서 가슴 한편에 눈물이 고임을 느꼈다. 사춘기, 청소년기, 그렇지 않아도 고민이 많고 힘들텐데, 재일교포라는 한때 식민지였던 나라에 뿌리는 두고 한때 지배자의 나라에 여전히 살아야 하는 것에서 오는 갈등, 고통, 고민들... 또 그 당시 어려웠던 - 물론 지금도 어렵지만 - 두 한국(조선)의 사회, 정치, 경제적인 모습들에 같이 고민하는 모습들이 정말 놀라웠다. 오히려 이 나라 안에 살면서 무관심하기 쉬운데, 이들은 나라 밖에서 더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계속 지켜보고 있었던 것...
이러한 저자의 청년기에 가장 크게 영향을 주었던 다섯권의 책을 소개하고 있다. 그 당시 나라(일본과 북한, 한국)와 개인의 상황과 함께.. 그 중에는 일본의 정치사상가와 작가의 책까지 끼워있어 이해가 쉽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세계를 더 큰 그림 안에서 보게 하는 역할을 하게 했다. 모든 것이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세계를 그는 고민하며, 읽으며, 생각하며 살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을 통하여 그의 책뿐 아니라 다른 재일교포 2세인 서경식의 책까지 같이 찾아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안타까운 과거의 뒤를 살고 있는 나에게 새로운 역사 의식과 현실을 바라보는 눈을 준 소중한 책이다.
한가지 흠이라면 간혹가다 일본 한자어 같은 단어들이 제법 나오는데, 무슨 말인지 모를 때가 좀 있었다. 번역할 때 단어들을 우리가 쓰는 단어들도 풀어 쓴다면 이해에 더욱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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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본적인 자세는 매사에 거리를 유지하면서 나 자신을 잃지 않고 어떠한 ‘주의’ ism 나 ‘도그마’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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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는 힘을 잃지 않을 때, 우리는 여전히 청춘이다!
다행이다...아직 나도 청춘인 것인가!!...ㅎㅎ 처음 이 책을 선택하는데에는 두가지의 요소가 영향을 미쳤다. 넘치는 열기의 청춘들이 주인공인 소설이나 영화에 목매는 내 '청춘사랑'과, 넘치는 열기의 가벼움'따위'와는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책 다섯권을 '읽었다'고 회고한 저자의 의미심장한 말이 바로 그것이다.
저자의 '고민하는 힘'을 '읽고나면 더 고민하고야 말것 같다'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아직도 읽지 않고 있는 내게, 그가 말하는 청춘의 진정한 의미는 좀처럼 마음을 뒤흔들지 못하는 무거운 문진처럼 다가온 것이 사실이다. 그것도 그럴것이 저자가 자신의 청춘 베스트 목록으로 꼽아놓은 책들중, 생일이 같다는 얼토당토한 이유로 좋아하게 된 작가 보들레르의 악의꽃을 제외하면, 그나마 제목이라도 알고 있는 산시로 외엔 바라보기만 해도 답답함을 호소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_여기서 더 놀라운 사실은, 베버를 보고 답답하다 느낀 나는 실로 '사회학도'였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막연한 생각이 넘쳐 책을 앞에 두고도 이걸 읽어야 하는지, 아니, 읽을 수나 있을지 고민이 앞섰다. 그래서 마지막 방법으로, 맨 처음 페이지가 아닌, 내가 좋아하는 보들레르의 이야기부터 무턱대고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여러가지 전문적인 느낌이 폴폴 나는 인문서들을 보고 있노라면,저건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읽게 되며, 또 어떻게 읽어나가는지 도통 감이 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일단 한번 목차를 살펴보라. 그리고 이건 자신있다 싶은 페이지를 찾아 먼저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이 '청춘을 읽는다'역시, 인문학에 거의 문외한인 나에게 다가온 첫 느낌과는 달리, 중간부터 읽어버린 후에 다시 찬찬히 읽어내려간 그 느낌은 그리 어렵지만도,그리고 딱딱하지만도 않다는 결론이란 의미다^^
어려운 주석의 향연에, 그리고 저자의 실로 놀라운 지식들의 파도에 절대 주눅들 필요가 없다. 그는 자신의 청춘을 조근조근 이야기할 뿐이기 때문이다. 단어 하나하나를 이해하기 보다, 그가 말하는 진정한 청춘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초잠을 맞춰 읽다보면 어느새 인상깊은 구절이 머릿속에 되뇌일 정도로 이 책은 친근하게 다가오게 된다^^
저자의 청춘을 읽다보면, 어느새 내 청춘을 돌아보게 되고, 내 청춘의 뒤안길-아직은 뒤안길이라 칭하고 싶지 않지만;-에 다다르면, 나도 저자와 같이 나를 뒤흔들어 놓았던 나만의 청춘의 저서들을 떠올리게 될 것이 분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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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즐겨 읽는 요즘, 나의 서재는 물론 남의 서재를 슬쩍씩 들여다 보고 싶은 강한 욕구가 생기곤 한다. 특히나 우리시대의 화두로 떠오르는 몇 몇 지식인들은 어떤 책을 읽고 음미하며 삶에 반추하고 살아가는지 정말 궁금할 때가 많아서 네이버의 지식인의 서재같은 코너를 눈여겨 볼 때가 많다. 그러던 차 눈에 띈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고민하는 힘으로 대한민국에 한바탕 지성인의 모습을 알려주었던 저자 강상중이 그가 혼돈의 젊은 시절에 읽었던 책에 대해 마치 한편의 회고록처럼 쓴 책이다. 그는 어떤 책을 읽고 어떻게 사유하는 힘을 길렀을까?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을 스스로 구하기 위해 나는 스스로 이 책을 선택했고 거침없이 읽어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난 그의 청춘을 읽기가 조금은 버거웠다고 말하고 싶다. 자이니치로써 일본과 한국 사이에서 정체성을 고민하고 온통 불만족스러운 현재와 불안한 미래에 위태로워하는 모습은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물론 동시대의 사람임에도 그와 같은 시련이나 시대적 상황을 거치지 못했기에 이런 그를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어폐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청춘이 어떠한 격변의 시기를 힘들게 거쳤는지를 억지로 이해한다손 치더라고 그가 읽었다는 나쓰메 소세키의 [산시로]라는 작품에서 보들레르의 [악의 꽃], 마루야마 마사오의 [일본의 사상]에 이르기까지 나는 읽거나 접해본 책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하고 말았다. 이 책을 읽다보면 그가 언급한 이 5권의 책들이 저자에게 얼마나 깊은 인상과 중요한 인생의 깨달음을 알려주었는지 짐작은 가지만 나에게는 그 느낌이 활자 그대로 받아들여질 뿐 마음으로부터 전해져 오는 무언가는 여전히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그나마 막스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맛이라도 좀 본 작품이랄까? 그러했기에 내가 그의 청춘을 읽는 건 어쩌면 처음부터 무모한 도전이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의 청춘을 만나보고자 했던 것은 고민하지 않는 힘을 잃지 않을 때 우리는 여전히 청춘이라는 강한 메시지를 건네주었기 때문이다. 그랬다. 이제는 제법 인생을 알았다고 삶이라는 숙제에 익숙해져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며 왜?라는 반문을 하지 않는 나는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존재였다. 치기어린 젊은 시절에는 나 역시 제법 왜? 세상은 이리도 불공평하지? 왜 사회는 이런 시스템으로 돌아가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무수히 던진 적이 있었다. 그런 물음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는 또 한 번 현실과 이상사이의 괴리감에 무차별적으로 던져지기도 했었고, 거기에서 스스로 기어 나와 나만의 방식으로 길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어떤가? 너무나도 고민 없이 현실에 안주하면서 다가올 미래에는 불안해하기만 하고 있었다. 그 어떤 고민이나 해답도 없이 이렇게 다들 살아간다는 안이한 위안에만 몸과 마음을 의지한 채. 다른 이의 삶 속에서 해답을 찾기에 급급했던 나는 이제야 내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함을, 그것은 고민하는 과정에서 치열하게 얻을 수 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제는 나의 청춘을 읽으련다. 아니, 읽어나가련다. 영원한 청춘을 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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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새로운 시대배경이나 생각 아래서 새로운 행동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러한 것이 어느 일순간 생겨지는 것이 아니기에 스스로 그에 대한 고찰과 많은 깨달음의 기회를 통해 보다 익숙하고 노련한 지혜를 펼쳐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던 중에 스스로에게 강한 의지와 느낌을 가르치고 익히게 한 이들과 책이 무엇이었던가 잠시 생각해 보게 된다. 그로인해 나는 그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하려 노력했던가도...... 강상중을 지금의 위치에 있게 한 근원적인 다섯 권의 책들은 그만의 의미와 교훈을 느끼게 하며 재일 한국인이라는 입장에서 탈피해 꿈과 희망의 것을 키워 갈 수 있게 한다.
낯설고 경이한 느낌의 도쿄를 내딛던 그때의 느낌과 맞물려진 산시로를 말하며 그 시대의 모습과 느껴지는 또 다른 모습의 것들에 대한 회의는 삶의 이면과도 같은 것들을 연상케 하는 이야기 나쓰메 소세키의 산시로, 열일곱 활기찬 청춘이 변화하게 만들었다는 보들레르의 시집은 현실에서의 자신의 처지 그러한 것에 대한 불안과도 같음에 끓어오를 수 밖에 없었던 의지의 표출과 역할에 대한 경험의 것들을 거치며 변화할 수 밖에 없었던 과정의 것을 이야기 한다. 그 안에는 마음속 어둠과도 같은 것에 대한 것들도 있고 그로인해 깨닫게 되는 사랑과 추억의 것들이 있기에 또 다른 지표와도 같은 시도나 만남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라 느껴져 온다.
그리고 T.K生의 한국으로부터의 통신,마루야마 마사오의 일본의 사상을 통해 그토록 갈망하던 조국의 암울한 현실을 대하게 되었을때 상대적으로 느끼게 되었던 충격과 실망과도 같은 것으로 인해 스스로에 대한 것을 찾게 되는 기회를 열어 자신만의 생각을 그 안에서 정립해 갈 수 있었다고 말한다. 또한 자본주의를 보는 시각, 삶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 보람을 느끼게 되었다는 막스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까지 언급하고 있다.
솔직히 그에 대한 깨달음이 다소 다르더라도 그 일면의 것들에서 공감하게 되는 것들이 있음으로 시대적 아픔과 상대적 차이를 조금은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의 삶에 축이 되어 주었다는 책들을 통해 의식이 변화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게 되기 까지의 과정을 속속들이 이해하기는 다소 어려운 면도 있지만 그만의 독특한 사고력의 체계를 이룬 것만은 확실하다라는 생각은 해보게 된다. 그러고보니 나 자신의 됨됨이를 살피기도 전에 내 자신은 너무도 단편적이고 편협적인 사고의 틀로서 이기적이고 감정적인 것에만 집착해 다소 무모한 갈망만을 꿈꾸고 있는 것이 아닌지 반성케 된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보다 또다른 구체적인 사고와 실현의 것들을 모색해 보아야 할 것이란 자각을 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