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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김용석의 서사철학에는 철학사 한권의 책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가 말하는 서사철학, 즉 쉽게 말해서 이야기 철학은 그냥 한명의 철학자가 본인의 철학을 세우기 위해 이야기라는 대상을 정해놓고 시작한 단순한 철학적 작업이 아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너무나도 평범하고 모든 일상 가운데 노출되어 있는 이야기를 너무 지나치게 직업적인 철학적 작업으로 오히려 이야기의 단순성과 소박함과 소통능력을 더욱 복잡하게 얽어놓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이야기 철학을 세우기 위해 서장에서 풀어놓은 그의 철학적 배경의 매트릭스는 가희 철학의 가장 큰 범주안에 4번째의 영역으로 이야기 철학이 필연적으로 포함된 다는 것을 우리에게 설득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형이상학> 1권에서 철학에 대해 정의하기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유일한 원리를 탐구하는 것이 철학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원리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던지고 대답을 시도했던 첫 번째 사람을 탈레스라고 하였다. 탈레스는 철학의 원시적인 형태, 즉 세상의 원리를 신화나 종교에 빗대어 설명한 것이 아니라 철저히 이성과 합리성에 의해 세상의 원리를 설명한 첫 번째 사람이며 이것이 철학의 처음시도라고 한다. 그러나 탈레스의 철학도 앞에 놓인 대상으로서의 자연을 탐구하는 감각적인 사유방식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철학은 감각적이지 않고 보이지 않는 '존재' 자체를 탐구하기 시작하면서 순수한 철학의 세워졌다. 이러한 순수철학의 독립과 동시에 철학의 삼대 분류체계가 세워지는데 그 삼대체계는 자연의 원리를 파악하려는 물리학, 인간과 인간간의 관계를 파악하려는 윤리학, 존재 자체를 탐구하는 논리학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다시 4대 분류체계로 바뀌는데 인간의 인공적인 산물인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라는 것이다. 이로 인해 저자는 이야기 철학의 철학사적 배경을 제공하였다. 실로 고전철학사에 대해서 통(通)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산출이다. 이 책의 저자는 먼저 철학사적 고찰을 통해서 서사 철학의 필연성에 대해서 말해주고 이러한 이야기야 말로 진정한 '존재'자체를 탐구하는 진짜 철학과 연결되어 있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야기 철학의 대상을 신화, 대화, 진화, 동화, 혼화, 만화, 영화 7가지로 정한다. 저자는 결국 7가지의 서사철학의 대상을 통해서 인간존재로 소급해 올라가고자 하는 처음의도에 도달하고자 한다. 신화를 통해서는 처음 인간존재의 기원을, 대화를 통해서 인간실존의 기원을, 진화를 통해서는 인간생명의 기원을, 동화를 통해서는 선한 인간존재의 기원을, 혼화를 통해서는 상상하는 인간의 존재의 기원을, 만화를 통해서는 놀이하는 인간존재의 기원을, 영화를 통해서는 미래적 인간존재의 기원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그런데 여기서 진화를 뺀 나머지 6가지 신화, 대화, 동화, 혼화, 만화, 영화는 모두가 거기에다가 서사철학을 부여할 수 있는 충분한 이야기가 존재한다. 그러나 진화를 이야기 철학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저자의 철학적 고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러니하게도 7개의 대상 중에 가장 서사적 요소가 적은 진화에 대한 분량이 가장 많았다. 진화에 이야기적 요소를 찾는 것은 비극을 희곡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20세기 인류의 사고방식에 가장 커다란 변화를 주었던 진화에 이야기적 요소를 부여하는 것은 그것을 하나의 소설로 만드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결국 이 책의 저자는 서사철학이란 인간이 처음으로 만들어 놓은 인공적인 산물인 이야기를 통해서 근원적인 존재가 무엇인지 찾아 가려고하는 참 철학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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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문학을 서사,서정 등으로 나누고, 서사 즉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면서도 서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사전이나 문제집에 나온 서사에 대한 개념만으로는 당연히 그 설명이 불충분하다. 모든 개념이 그렇지만, 어떤 단어에 대한 개념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도 당연한 것이다. 아니, 나의 게으름인가.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서사'라는 것에 대해 철학적으로 접근했다. 저자는 아직은 '시론'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고 하지만, 시험적인 접근만으로도 독자인 나는 그 동안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충분히 숙고하는 기회가 되었다. 특히 놀라운 점이 있다. 이 책은 서사 철학에 대한 개념을 이야기 하고 신화나 영화와 같은 서사 장르들의 서사적 특징에 대해 얘기하지만, 그 이야기의 궁극에는 우리 삶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라는 결론에 이른다. '진화'라는 자연과학적 대상을 가지고 서사 철학적 접근을 취하고 있는 부분이 특히 우리 삶은 이야기라는 나의 결론을 강화시킨다. 개개의 사실들을 가지고 하나의 플롯을 만들어 가며 거대한 서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지켜 보노라면, 나는 그 거대한 생명의 이야기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라는 자기 성찰을 하게 된다. 다윈의 그렇듯, '나'라는 세상을 살아가는 한 개인의 삶도 어떤 이야기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될 때, 그 이야기는 완성된 이야기가 아니라 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럴 때 기쁨만이 아니라 슬픔도 '내'가 주인공인 거대한 영웅신화를 구성하는 거대한 플롯의 한 부분이라는 긍정을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든지, 일차적으로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 이후는 일차적으로 바라봤을 때 파편적으로 머무는 이야기의 파편들을 이차적으로 특정 서사라는 끈으로 엮는다면,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진실들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른다. 이 때 나는 생각하게 된다. 나는 좋은 작가인가, 나쁜 작가인가. 모든 작가는 좋은 작가이고, 누구나 살아가면서 걸작을 한 편 쯤은 쓸 수 있다는 상투적인 얘기를 넘어서서, 나의 소설을 조금 더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적 상상력을 가질 수는 없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미 우리 삶은 단순히 파편적으로 시간의 물결속에 쓸려가는 삶이 아니라, 시간을 가역적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는 의미있는 몸짓이 되어 있지 않을까.
저자가 철학자이기 때문에 철학적 해박함에 대해서는 당연히 존경스럽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자연과학적 지식과 그것을 인문학적 지식과 융합시키는 솜씨에 놀라게 된다. 이 책을 통해 작품을 만들어 가는 작가는 더 훌륭한 작품을 쓸 수 있을 것이고, 자연과학자는 새로운 발견에 이르게 될 것이며, 사소한 인생을 살아가는 생활인에게는 더 나은 삶에 대한 추동력이 주어질 것이다. 독특한 시도이며 좋은 책이다. 글이 어지럽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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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서사시도 길가메시 서사시, 즉 길가메시의 이야기 이고, 서양 사상과 문명의 뿌리라고 일컬어지는 그리스 로마 신화도 역시 이야기 입니다. 우리나라의 단군 신화도 이야기 이며, 불경과 구약도, 신약도 애초에 누군가의 ‘말씀’을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도, 플라톤도, 공자, 맹자, 장자도 전부 대화(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이렇게 인류의 지성사에 있어서 이야기는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 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한 집단에는 무의식이 존재하고, 이야기꾼들은 그것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 의식의 차원으로 끌어올리죠. 그 이야기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존재합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아버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기기묘묘한 전설의 형태를 띄기도 하고, 때로는 소크라테스와 에우티프론간에 대화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조개 껍데기의 무늬로 고개를 빼꼼이 내밀기도 하죠. 이 책 ‘서사 철학’은 이런 ‘이야기’에 관해 얘기를 하는 책입니다. 우리가 인식을 하든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든 상관없이 우리의 의식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서사’를 신화, 대화, 진화, 동화, 혼화(애니메이션), 만화, 영화의 일곱 가지의 형태를 빌어 설명합니다. 이야기 탐구의 아이리스죠. 그런데 사실 이 책은 읽기가 그리 수월하지 않은 책입니다. 아무래도 ‘서사’라는 것과 ‘철학’ 이라는 것을 접목 시키다 보니 경우에 따라서는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라는 의문이 드는 구절도 간혹(?)보입니다. 제 주변에서도 책을 읽어보고 아리송한 부분을 줄곧 토로해 온 분도 계시죠. 예를 들어 이런 부분입니다. “여기서 신의 부재는 신이 없음이 아닌 ‘자리비움’을 뜻한다…(중략)…인간은 신탁을 청함으로써 상황을 불러온다. 이런 점에서 신은 인간의 조건이지만 인간은 신탁과 신의 현존하는 원인이 된다. 영화 속 랑 감독이 애매모호한 대화로 던지는 개인과 상황의 변증법은 고대 서사에 비밀처럼 스며있다.” 이런 부분들이 간혹 눈에 띄죠. 이런 구절들은 그냥 일반적인 사실이나 감상의 나열로 이루어진 텍스트를 읽을 때와는 그것을 대하는 사고의 방식이 달라야 합니다. 기본적인 철학책들과 유사하죠. 조금 더 생각하고, 글 이면의 해석을 시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意自見)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구절들은 시간을 조금 더 들여 정독 하다 보면 자연히 그 뜻이 통하게 되어 비로소 내 것이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지독으로 곱씹으며 책을 일독하시면 분명 많은 것들을 얻어가시게 되실 겁니다. 그것이 작화(作話)능력에 대한 유용한 팁일 수도 있고, 혹은 독해력에 대한 발전일 수도 있습니다. 이도 아니면 조금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해 줄 수도 있을 듯 하네요. 마지막으로 한가지를 더 말씀드리자면, 이런 이야기들의 중요성이 결코 고루한 구시대의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요즘에 더 통용되고 중요시 되고 있죠. 모든 이념과 이데올로기, 사상과 이익 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고, 그런 것들이 여과 없이 오픈 되어 있는 지금, 정보는 차고 넘칩니다. 그 수많은 정보 중 사람들은 어떤걸 취하고 어떤 것을 버릴까요? 유일한 선택의 조건이라고 단언 할 수는 없지만 그 조건들 중 최상위를 차지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스토리’ 입니다. 사람들은 스토리를 보고, 듣고, 읽으며 그 스토리에 감동하고, 분노하고, 공감합니다. 이야기의 힘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분들, 그리고 그 이야기로 누군가를 설득 하고자 하는 분들께도 이 책을 추천해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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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이야기에 관한 철학적 탐구가 담겨 있는 책이 아닐까 한다. 이야기 만들기를 좋아하는 민족 그 족적이 인터넷의 댓글과 각종 블로그로 펼쳐나가 복잡하게 씨실과 날실을 엮어나가는 민족이기에 더 구미가 댕기는 분야가 아닐까 한다. 서사철학...음..이런 분야도 있었나 하는 호기심의 발동 그 방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규명할까 어떻게 펼쳐나갈까 궁금했던 책이었다. 7가지 테마의 신화,대화, 진화,동화,혼화,만화,영화. 자칫 형이상학적인 철학이 이렇게 인간세계에 곳곳에 뿌리내린 살에 와 닿는 여러가지것들을 오랜세월의 신화 부터 요즘의 영화까지 다루어 간다. 한권을 읽고나면 하나하나의 주제가 연결되기도 하고 동떨어져 생각의 고리를 물고 나가는 느낌을 가진다. 특히 진화편에서 다원을 통해서본 종점엔 인간은 무엇이 되고 있는가의 칸트적 물음으로 세계를 진화라는 주제를 가지고 신과 자연 인간과 자연에 관한 새롭거나 생각해볼꺼리를 제공하고 있다. 신화 또한 오이디푸스와 오레스테스 사이의 신화를 통화 신화속의 이야기탐구를 해나간다. 그힘은 철학으로써 열쇠를 풀고 7가지 무지개 빛깔속에서 이야기탐구의 주제속에 철학의 색을 입히고 있다. 동화에서 순수함이 음폐 하는 이야기의 비밀을 닫힌사회와 열린사회 그 두가지 구조의 다른결과들을 이야기 속에서 곱씹어본다. 이렇게 자칫 어려운 비가역성이라든지 공간과 시간에 관해 현실과 환상에 관해 우리들의 친근한 혼화라든가 만화 영화등. 누구나 생각해보고 읽어봄직한 쉬운 이야기속에 숨어있는 또 다른 진실 또다른 이야기꺼리들을 풀어 해치고 있다. 방대한 이야기라 뭐라 요약하기는 서투르나 철학이 우리의 밥상앞의 텔레비젼처럼 친근하게 다가오려 한것 같다. 마치 7가지 무지개가 반짝이는 뫼비우스띠처럼 앞인듯 뒤이고 참이것 같으면서도 거짓이고 온세계인것 같으면서도 거짓세계인 그치만 돌고 도는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는것 같다. 끝임없이 돌고 도는 뫼비우스띠처럼 하나하나 쌓아올린 이야기가 길을 만들고 끊임없이 진화하고 발전해 나가는 느낌이 든다. 이 세상을 이야기들 속에 맛있는 철학꺼리들을 숨겨놓은 듯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