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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을 하다 추락해 저자는 한순간에 전신마비 환자가 되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그 사고로 저자는 오랜 시간을 병상에서 보내게 된다. 그런데 그간의 병상기록들과는 뭔가가 다르다. 전문적인 의학용어도 그렇지만 감정이 많이 절제되고 배제된 문장들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은 병상일지이다. 그런데 그 기록이 너무 담담해서 오히려 더 집중하게 된다. 꺼이꺼이 목 놓아 우는 사람도 슬프지만 울지 않으려 애쓰는 이의 앙다문 입술도 보는 이에게는 더한 슬픔을 안겨 준다. 우리나라 최고의 신경과 의사인 저자는 한 순간의 사고로 중환자실과 오랜 병상에 있게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끝나지 않을 재활훈련들... 이 책은 말하자면 전신마비의 환자가 나중엔 스스로 걸어서 설 때까지의 이야기이다. 책 속에 나오는 의학용어들과 병원의 실제적인 모습들은 이 책을 이해하고 저자의 감정을 살피고 알아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토닉 스파즘이구나. 테그레톨을 달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반 알을 먹었는데 한두 시간이 지나 또 경련이 오기에 한 알씩 하루 세 번으로 증량하였다. 마침 병상에 들른 재활의학과 백남종 교수에게 토닉 스파즘이 있다 하니 테그레톨보다는 바클로펜을 권했다....(중략) 넘어지면서 얼굴이 땅에 부딪쳤을 때, 목이 바위에 닿으면서 경동맥이 으깨어지지 않았을까? 그 때문에 다이섹팅 애뉴리슴이 생기지 않았을까? 경동맥뿐만 아니라 목뼈 속에 들어 있는 추골동맥 역시 염려가 되었다. 물을 마시는데 사레가 드는 걸 느꼈다. 그쪽의 미주신경이 으깨어진 것은 아닐까?> P.30~31 책의 내용을 읽다 보면 처음 듣거나 생소한 의학용어나 단어들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각주나 해설이 달려 있다. 나는 이러한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단순히 환자가 머리가 아프다거나 배가 아프다고 하면 너무 막연할 텐데 구체적인 정황이나 용어를 들어 사용하고 있어서 어느 정도의 상태인지, 지금이 어떤 곳이 심각한지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었다. 처음에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우리나라 최고의 신경과 의사의 강인하고 담대한 정신력의 승리라고 생각되었고 그가 의사였기에 가능했을 응급처치나 물리치료나 실제 치료과정들을 읽어 가면서 일반인이 그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그와는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치료가 이어졌거나 흘러가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두 번 세 번 읽어 보았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조금씩 잡혀 가기 시작했다. 저자는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어느 날 갑자기” 맞닥뜨리게 되는 상황 속에 처한 한 인간의 태도와 방법적인 면에 대해 적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찌보면 기승전결, 롤러코스터 같은 독자를 흡입하려는 문장이 가득 들어찬 빠른 코스를 답습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날 것, 생생한 치료과정을 적어 나갔던 것이리라. 그것은 현학적인 자세를 드러내거나 저자가 인내심이 강했다거나 누구 못지 않은 강한 정신력을 소유해서 그 모든 위기 상황을 극복했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래, 내 몸이 아무리 망가졌어도 의지는 살아 있으니 부족함이 없다. 사마천이 史記를 쓰고 난 뒤, 자신이 당한 궁형은 구우일모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신경계질환 환자가 겪는 거의 모든 고통을 겪어 보았고, 지금도 겪고 있다. 온몸이 마비되어 걷지 못하고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고 씻지 못하는 불편, 대소변의 어려움, 견디기 어려운 통증, 죽음과의 대면, 이 모든 것을 겪어 보았고 아직까지도 내 일상의 일부이다. 가수 강원래나 수퍼맨의 크리스토퍼 리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지만, 나는 내가 세상을 어떻게 마칠지 알고 있다.” P202~203 자신의 마지막이 어떨지를 안다는 일, 사고 후의 부서진 몸이 어떻게 나아갈지를 안다는 일, 자신의 마음 상태와 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육체의 한계를 바라보면 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태도와 겸양에 대해서 이 책을 읽으면 깨달아지는 지점이 있다. 그래서 긴 에필로그를 통해 자신이 사고중에 받은 축복들에 대해서 길게 적고 있는 것이 더 가슴 아팠다. 실제의 현실과 사회에서 바라보는 냉정한 시선들에 대해서도 깊이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복잡하고 타락하고 이기적이고 정의가 실종된 시대에 살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남의 불행은 그저 한낱 이야기일 뿐이며 다른 이의 슬픔은 종이조각에 불과할 뉴스인지도 모를 그런 세상이다. 전쟁은 생중계되고 있으며 먼 나라의 비참한 굶주림도 우리와는 아주 먼 세상 밖 이야기일지 모른다. 이렇게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에도 병상에는 많은 환자들과 가족들이 잠못 드는 밤을 뒤척이며 지새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기나긴 투병 기록만을 적고 있지 않다. 한 인간이 인생의 크나큰 위기에 직면했을 때 취할 수 있는 태도에 대해 적고 있다. 같은 일에 대해서 우리는 모두 제각각 반응한다. 분노하기도 하고 체념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과 자신을 괴롭히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어떠한 방법이 더 옳은지 그른지는 그 사회가 보여주는 공동체주의에서 나올 것이다. 한 사회의 성숙한 지표는 위기상황에서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앞으로 더 많이 읽을 생각이다. “온갖 고난 속에서도 고통스러워 하지 않고, 운명의 시련과 보답을 똑같이 고맙게 여기는” 한 성숙한 사람을 이 책을 통해 만났으므로, 그로 인하여 내가 인생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은 더 깊어졌음을 감사하며 시간들을 살아갈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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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있고 권위있는 신경과 전문의... 후배와 산에 갔다가 넘어져 전신마비가 되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의사의 병상기록이다.
전문 용어들이 나오고 가능하면 감정보다는 이성위주로 책을 썼기때문에 눈물 콧물 줄줄 흐를 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마음에 와 닿았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 최고의 신경과 의사 중 한명. 그런 사람이 어느날 전신 마비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 그걸 바라봐야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또 오죽 힘들었을까? 엘리트 교육을 받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해본적 없는 의사가 간병인이나 아내 그리고 여동생에게 똥, 오줌을 받게 하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식사나 목욕조차도 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것. 어쩌면 사는 것보다 죽기를 더 원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말을 했다. 자살을 하고 싶어도 스스로 죽을 수 없었다고.. 자살을 하려해도 누군가의 도움으로 자살을 해야 한다면...
그런 그가 다시 읽어서고 말을 하고, 다시 직장에 복귀하고 책을 집필하고 현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좌절과 아픔과 고통이 있었을까?
작년, 재작년... 나에게는 많은 죽음들이 있었다. 물론 대부분 나이가 들어서, 혹은 지병으로 돌아가신 경우가 많았지만 너무 황당한 죽음도 있었기에 재활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게 되었다.
책에서 이런 말이 있다 의사에게 통계가 있다면 환자에게는 희망이 있는 법이다 (p93) 저자의 경우 본인이 아파봤기에 환자의 마음을 더 알지 않을까? 오로지 의사를 바라보며 살아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환자의 마음을 안다면 진심어린 진료를 하지 않을까?
나는... 서 있고, 앉아 있을 수 있고 책을 읽을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 사람들을 위해 뭔가를 해 줄 수 있어서 행복한 사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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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익숙해져 있는 일상속에서 부족함과 불편함을 이야기하며 산다. 물질적인 것에서 오는 불편함이야 어떻게든 참아보면 되지만, 신체적인 불편함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다. 책을 읽으면서 돌아가신 아버님이 생각이 났다. 결혼해서 1년만에 시아버님이 고혈압으로 쓰러지셨고 뇌경색에 합병증까지, 결국 한달만에 우리와 영원한 이별을 하셨다. 만약 아버님이 살아계셔도 몸을 움직일 수 없으셨기에 누워 지낼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병원비나 약값보다도 아버님의 병수발로 가족들이 힘들어할 것은 당연했으나 당신은 그것이 싫으셨는지 그렇게 가시고 말았다. 막내며느리인 나와는 정붙일 시간도 없었는데 말이다. 그 당시 아버님은 살려는 의지가 없으셨다고 했다. 당신의 병이 심각함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성격 탓도 있지만 중환자실에서 온 몸에 꽂혀있는 주사기와 의료기기를 몇번이고 떼어버리는 과오를 범하셨다고 했으니...
사고든 선천적이든 정상인이 아닌 사람을 곱게 보는 시선 즉, 우리가 갖고 있는 여유는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들의 자유의지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나름의 생활방식으로 적응해가며 우리의 그늘에서 살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한번은 죽고 어느 누구에게 불행이 닥칠지 모른다. 불행이 비켜가길 바라며 살고는 있지만, 그 불행이 나에게로 왔을때 신을 원망하고 왜 나여야만 하는가 의문을 품을 것이다. 어차피 나에게 온 불행이라면, 그게 내 인생의 몫이라면, 정상인으로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죽지 않고 살게 되었다면, 이 책의 주인공처럼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강하게 먹는다면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평소에 건강을 챙기는 신경과 의사 전범석은 등산 도중 경추골절과 사지마비로 수술을 했으나 척수 손상으로 병원생활을 한다. 몇달을 침대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누구의 도움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지만, 이것도 나의 삶이라 받아들이며 삶의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환자의 입장에서 환자의 몸과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누워있음에도 절망하지 않고 모든 불편과 고통을 글로써 남기며 회복해 나간다. 유능한 의사였던 그에게 왜 고통이 왔는지 원망보다도 깨달음을 갖게 된 것 같다. 의사로서의 능력을 신이 플러스 시켜주려했던 건 아닐까? 환자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헤아릴 줄 아는 그런 의사가 되라고 말이다. 그에게 온 시련과 고통속에서 삶을 포기하지 않고, 고난과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준다. 다시 서 있을 수 있게 된 그는 고행이 있었지만 행복하다고 말한다. 진짜 행복은 오직 마음으로만 찾을 수 있고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사는게 최선이 아닐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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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은 인간의 의지로 어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긴 투병생활을 견디는 환자의 고통과 삶을 감히 짐작할 수 없다. 환자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아파보지 않은 이들 중에 없다. 아픈 고통에 명확한 역지사지의 의미는 들어앉을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나는 매년 열리는 기아체험 프로그램이나 시각장애인을 이해하기 위한 취지의 눈가리기 체험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약자를 이해하는 행위가 되기보다 어줍잖은 흉내내기가 될지도 모르는 우려 때문이다. 그런데 의사가 병에 걸리면 어떨까? 일반인보다 사람의 몸에 대한 전문지식이 많은 의사는 의사라는 이유로 어떤 혜택이 있을까? 이 책의 저자인 전범석 교수는 서울대학병원의 유망한 신경외과 의사다. 어느날 취미삼아 오른 산에서 불의의 사고로 사지가 마비되는 증상을 겪는다. 사고 직후 온몸에 감각이 없다는 걸 안 전범석 교수는 재빨리 자가진단을 내리고 주위 사람에게 지시한다. 남한산성 꼭대기에서 당한 사고장소가 불행 중 다행인지 헬기의 진입이 용이한 곳이라 무사히 분당 서울대학병원으로 이동하여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기적이란 없다. 그저 기억이라 불릴 뿐이다. 삶의 가망이 없던 사람이 병이 호전되는 경우 또는 호전되는 기미를 보일 경우 뭘 모르는 이들은 '기적'이란 단어를 쓴다. 의사들도, 전문가들도 종종 사용한다. 하지만 <나는 서있다>를 읽으며 정작 기적을 만들어내는 힘은 환자와 환자 가족과 신의 힘이 두루 작용하여 일어나는 화학작용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신이 신경외과 의사이면서 전신마비가 되는 사고를 당하는 일 또한 그러고보면 기적 아닌가. 세상의 어떤 일이든 기적 아닌 일이 없다. 이 책은 전범석 교수가 사고를 당하는 시점부터 고통스러운 치료과정과 기나긴 물리치료를 거쳐 다시 학교에 복귀하기까지를 일기형식으로 담았다. 자신의 전문분야이기에 자신의 상태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었던 전범석 교수지만 책 어디에도 절망이나 희망이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지나친 걱정도 없고 지나친 기대도 없다. 의도적인지 우연인지 모르지만 환자이자 의사의 관점에서 철저하게 사고와 상태를 기록하려 했고, 감정과 느낌보다 상황과 지인들을 향한 고마움을 전달하려 한 것처럼 보인다. 때로 완전히 사라진 문학적 기교 때문에 오히려 사고의 심각성이 덜 비극적으로 다가오는 기분이다.
병상에서 9개월을 보내고도 3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전범석 교수의 몸상태가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신마비 상태로 대소변조차 혼자 보지 못했던 이가 화장실에 혼자 가고, 팔과 다리를 움직이고, 서는 것까지 회복한 것만 해도 얼마나 큰 축복인가. 왜 하필 내게 이런 불행이 닥친 것인지를 원망하지 않고 적절한 치료와 온건한 의지로 최선을 다한 그의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또 지금 모습 그대로를 소중히 여기고 감사해하는 그의 겸손함에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불행에 대처하는 법을 배운다. 이 책은 불의의 사고를 당한 이에게 희망과 기적의 메시지를 보내는 의미라기보다 전범석 교수 곁에서 그의 회복을 위해 위로와 간호를 건넨 그의 가족과 지인들에게 더 소중한 의미를 갖는 것 같다. 한 톨의 문학적 기교 없이 있는 그대로의 일지를 담아낸 글이라 그런지 독자의 입장에서는 생과 사의 의미가 확연히 다가오지 않는다. 미화된 것에 적응한 감성 때문인가 보다. 본인이 의사라는 것이 사고에서 이토록 냉정하게 작용하다니, 오히려 그것이 회복과 기적을 가속화 시켰다는 사실이 놀랍다. 겉으로야 침착했을지 몰라도 마음속으로 부단히 싸웠을 그의 두려움과 절망을 짐작하니 새삼 감성적이 된다. 병마나 사고의 아픔에 고통받는 이들에게 의사이자 환자이던 전범석 교수의 굳건한 투쟁의지가 희망의 불씨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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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모르는 것이 약'이라는 말과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이 있다. 두 이야기는 하나의 주제로 서로 상반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혹은 나는 두 이야기를 상황에 맞게 적절히 타협하며 사용해 왔었다.
이 책, 나는 서있다를 읽으며 처음에 나는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004년 6월 어느날 그는 평소 잘 오르던 산을 오르다가 넘어져 전신마비가 되었다. 그리고 기나긴 싸움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책은 서울대병원의 신경과 교수로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던 지은이가 병상일기를 작성한것을 모아 놓은 것이다. 나름 의사로써 할 수 있는 조치를 최대한 취했고 목을 잘 보호했으며 자신의 몸을 스스로 진단 할수 있었다. 얼마나 응급처지를 잘하였는지.. 아마 보통 사람같으면 더 상황을 악화 시켰으리라 생각된다. 그는 짧은 시간에 정확한 판단을 하였으며 그로 인해 최악의 상황을 면할 수 있었다. 아는 것이 얼마 힘이 되는가.. 그는 자신의 몸에 대해 잘 알았기에 그정도에서 그쳤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반대로 그는 자신이 얼마나 절망에 빠져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희망적인 이야기를 던졌지만 스스로 몸의 반응을 살피면서 그는 지금 얼마나 어려운 상황인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이럴 땐 또 모르는 것이 약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스스로 운동을 하면서 빠르게 호전되지 않는 자신을 보며 이렇게 더디게 회복되는 것은 좋지 않는 상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제목에서 던지는 그의 말은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나는 서있다.. 마치 절망에 허덕이면서 쓰러져 있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지은이의 독백같다. 아주 자신감 넘치는.. 아주 당당한..
나는 전신마비였다.. 하지만 나는 서있다. 기나긴 싸움이였다. 하지만 나는 서 있다. 모두 내가 일어서지 못할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서있다. 나 또한 절망적인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서있다. 그래,.. 나는 서있다.
그는 꾸준한 운동과 죽을 각오를 다한 물리치료 덕에 지금 서있다. 그뿐 아니라 다시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그런 그의 경험이 같은처지에 있는 환자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고 희망이 될것인가? 하루하루 그의 병상일기를 보면서 얼마나 그가 서있기 위해 사투를 벌였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상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야기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병상일기에서 그는 사투를 벌인 흔적을 남겼다. 그 흔적을 따라가다 보니 희망이 보이고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그는 서게 되었다. 또한 나도 서게 되었다.
아마 그는 오늘도 환자들을 만나며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절망적이십니까? 저를 보십시요.. 저는 서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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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끝나지 않을 기나긴 싸움 그리고 기적에 관하여...
신경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안다 자부하던 한 의사가 쓰러져 전신마비인 상태로 재활한 과정을 엮은 9개월 간의 기록을 책으로 냈다. 그 책의 주인공은 바로 서울대학교병원 신경과 전범석 교수. 남한산에 등산하러 갔다가 정상에 다 와서 아무 이유도 없이 통나무가 넘어가듯이 쓰러져버린 그는 의식은 멀쩡하고 말도 할 순 있지만 오른쪽 새끼손가락과 엄지발가락만 조금 움직일 뿐 사지를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런 상태로 평생을 갈 수도 있었던 상태였는데,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 합병증을 예방하고,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재활훈련을 통해서 조금씩 어려움을 이겨내가는 과정이 담겨져 있다. 손을 쓸 수 없으니 간병인이나 동생에 받아적으라고 해서 정리해둔 책이란다. 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로 평생 그렇게 힘들게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감해보고자 했던 것일까. 하여간 그는 그렇게 이겨냈다.
사실은 그가 그렇게 쓰러진 것부터가 이해가 되지 않는 현상이다. 교통사고가 났거나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전신마비가 온 것도 아니고, 울퉁불퉁한 바위를 헛딛어서 그런 것도 아닌 정상에 아무 것도 걸릴 것이 없는 상황에서 픽 하고 쓰러져버린 모습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정작 당사자는 담담하게 주어진 상황을 감내한다. 자신이 원래 혈압이 조금 낮은데다가 평소보다 땀도 많이 흘린 상태이고, 가방의 무게를 좀 무겁게 해서 가지고 다녔다고 나름 상황정리를 끝냈다. 그러나 어쨌거나 기적은 기적이다. 넘어질 때 앞니로 돌멩이를 들이받아 넘어질 때 머리부터 충격이 가해지지도 않았고, 쓰러진 곳이 산 정상이어서 헬기를 띄워 금방 구조할 수 있었던 데다가, 환자 자신이 신경과에 대해 박식하게 알기 때문에 미리부터 조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고가 났을 때 목을 잘못 움직이게 되면 평생을 전신마비로 살아야 하는데, 그 사실을 주변사람들에게 주지시켜서 들 것에 실을 때도, 엎어진 것을 돌릴 때도 조심하게 했다. 아, 그러고 보니 그가 의식이 깨어있어서 의사소통이 가능했던 것이 가장 기적 같은 일이겠구나!
그런 과정을 기록할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그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게 아닐까. 자신의 역사고 경험이지만 기록해놓지 않으면 안개처럼 사라져버리고 말 것임에, 그는 기록을 시작한다. 전신마비는 스스로 밥을 먹을 수도, 세수를 할 수도, 소변을 받아낼 수도 없다. 게다가 자율신경계가 고장이 나서 누우면 혈압이 높아지고, 서면 혈압이 내려가 졸도할 위험조차 있으니 완전히 진퇴양난이다. 그런 절망적인 생활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일반인이 겪었다면 망연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전문가였기에, 이런 사고는 재활훈련을 얼마나 빨리, 얼마나 지속적으로 하느냐에 따라 그 예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갔을 따름이다. 처음에는 배 위에 놓인 손에 공이나 봉을 잡아보는 훈련과 팔로 미는 훈련 등으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스스로 앉고, 일어서고, 걷고, 체조까지 할 수 있을 만큼 호전되었다. 그러나 사고를 당하고 6개월이 지났으면 그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어야 한다고 봐야 한다. 약간씩 어눌하고 부정확한 그런 모습을. 하지만 머리는 멀쩡하니, 대학으로 복귀하라는 이야기도 나올 정도로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았다. 아이들도 가르치고, 환자도 치료하고, 책도 내는 등의 일을 할 수 있다고 격려하는 사람도 많았다. 처음엔 퇴원을 하는 것에 공포감을 느꼈지만, 차차 마음을 바꿔서 아직까지도 오라고 하는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받아들이기로 했다. 물론 학교와 집을 오가는 생활이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역시 묵묵히 한 걸음씩 걸어간다면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을까. 욥도 아픈 다음엔 하나님을 원망했지만 자녀나 아내가 아닌 자신에게 그 병마를 오게 하신 것을 생각한다면 그마저도 감사하니까.
추천하는 글에 보면 전 교수의 지기이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인 이왕재 교수의 증언이 있다. 전 교수가 얼마만큼이나 비상하고 얼마만큼이나 진지하고 단단한 사람인지를. 그런 그였기에 인간의 최대 위기 앞에서조차 그렇게 당당하게 살 용기를 얻었을지 모른다. 특별해보이진 않더라도 꾸준히 무언가를 이룬다면 누구나 그런 기적을 체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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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싸움 그리고 기적에 관하여”라고 부제를 단 이 책은 신경과, 특히 파킨슨병과 같은 운동성 질환의 권위자인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전범석교수의 투병기록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흔치 않지만 우연이라고 치부할 일을 겪게 되는 경우를 봅니다. 예를 들면 위암전문가가 위암으로 수술을 받게 된다던가 하는 식 말입니다. 신경과, 특히 운동장애를 전공한 필자가 알 수 없는 사고를 당하여 사지마비가 일어나 병상에 눕게 되는 상황을 상상이나 해보았겠습니까? 다양한 사고를 통하여 사지마비가 온 환자를 도와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온 그로서는 사고를 당하는 순간 자신의 미래가 어떨 것이라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은 의지로 자신을 추슬러 추가적인 손상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의 조치를 취하였을 뿐 아니라 힘든 재활치료를 감당하여 결국은 병상을 털고 일어나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사고가 일어나기 전과 꼭 같은 상태는 아니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라고 하니 불의의 사고는 그에게 불행이었지만, 의지로 이를 극복하여 냈으니 앞으로 자신이 돌보는 환자들에게 귀감이 될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필자이신 전범석교수님은 눈초가 공부하러갔던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과 수련을 받았다고 하는데, 시기적으로는 다소 차이가 있어 미국에서 직접 만날 기회는 없었지만, 그가 수련받은 신경과는 눈초가 공부하는 신경병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어 자주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전교수가 이해의 전공의상을 받았다는 표지가 걸려 있었습니다. 귀국한 다음 미네소타에서 공부한 분들이 가끔 만나는 모임이 만들어졌고 그 곳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교수님의 초청으로 몇 차례 세미나 기회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교수님이 사고를 당하고 투병을 통하여 회복되어 업무에 복귀하였다는 사실은 책이 나올 때까지 깜깜하였으니 죄송하다는 생각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본인이 투병하는데 지장을 받을 수 있겠고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폐가 될 것을 걱정하여 병문안을 극구 피하였다는 말씀을 듣고는 조금 위안이 되었습니다. 책이 나온 다음에 전교수님으로부터 이메일이 왔습니다. 책 179쪽에 인용하셨던 <당신은 무엇을 보십니까> 제목의 시를 제가 펴낸 책 <치매-알면 바로잡는다>에서 읽고서 연구실에 붙여두었다고 하시면서, 감사의 표시로 책을 보내주시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벌써 책을 구입하여 읽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나중에 만나게 되면 사인을 주시라고 답장을 보내드렸습니다. <나는 서 있다>를 읽고서 느낀 감동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제일 먼저 꼽아야 할 것은 전교수님의 가족사랑, 특히 부모님께 대한 효심이었습니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아들이 병석에서 일어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 상심할 부모님을 걱정하여 어느 정도 회복할 때까지 숨겼다는 대목입니다. 부모님 가까이 계시는 환자분들에게까지 당부를 하여 전교수가 기별을 결정할 때까지 모르셨다니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정말 훌륭한 아들이 아닙니까? 부모님의 가정교육이 훌륭하셨음은 부모님에 대한 전교수의 마음 씀씀이로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전교수의 투병과정에 헌신한 여동생을 비롯한 형제들의 우애가 지극함을 통하여 알 수 있겠습니다. 두 번째는 훌륭한 의사이며 환자였다는 것입니다. 흔히 사고를 당하면 혼란에 빠져 무슨 일을 먼저 해야 할지 당황하기 마련입니다만, 사고 이후 의식이 돌아오자마자 스스로를 진단하고 최선의 대응방안을 수립한 점입니다. 스스로에게만이 아니라 중환자를 만나는 의료인도 초기 대응에서 빠뜨릴 수도 있는 점을 놓치지 않음으로서 주위에서 놀랄 정도로 회복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 과정은 책을 직접 읽으시면 자신의 지식으로 삼아 응급상황에서 써먹을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힘든 투병과정에서 좌절하지 않고 꾸준하게 재활치료에 매진하여 좋은 치료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주위에 있는 환자나 의료진에게 권할 수 있는 좋은 표본이 될 것이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투병과정을 혼자 겪은 사고로 버려두지 않고 책으로 묶어 세상 사람들에게 알림으로써 귀중한 경험을 세상의 지식으로 삼을 수 있게 했다는 것입니다. 곳곳에서 인용하고 있는 영화의 한 장면이나 책의 한 구절이 제자리에 꼭 맞도록 하고 있어 전교수님의 사색의 범위가 얼마나 광범위한 지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손가락도 꼼작할 수 없는 사지마비환자가 받는 재활치료가 얼마나 힘이 들었을 터인데도 참아낸 것은 그의 의지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합니다. 사실은 전교수님의 의지가 대단하다는 것을 진즉에 눈치를 채고 있었습니다. 술을 즐기는 눈초도 때로는 술을 끊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막상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던가 모임에서 만난 전교수님은 잔에 술 대신 음료를 채우면서, “평생 마실 수 있도록 신으로부터 허락받은 양의 술을 다 마셨기 때문에 술을 더 이상 마실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날 이후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살아가면서 벼라별 일을 다 당할 수 있습니다. 좋은 일만 보면서 살기를 원하겠지만 때로는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엄청난 일도 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의사로써 환자를 포기할 수 없듯이 나의 삶 또한 포기하지 않겠다.”는 전교수님의 말씀처럼 마음먹기에 따라서 세상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말에는 전교수님이 인용한 영화 <잠수종과 나비>를 보았습니다. 영화 이야기는 다음에 따로 소개하겠습니다. <나는 서 있다>는 읽는 사람에게 큰 힘을 주는 책으로 오래 남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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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화창한 어느 가을 날, 관악산으로 산행을 나섰다가 나의 동서는 산에서 발을 헛딛어 굴러 떨어져 척추를 다쳤다. 머리와 얼굴은 멀쩡하지만 전신이 마비되어 지금도 간병인과 가족의 간호에 의지하고 있다. 병원에서 재활 치료에 열중이지만 한 병원에서 오래 머물지를 못한다. 재활 전문 병원이 부족한 탓에 대학 병원에 입원하여 일정 기간 치료를 받다가 기한이 되면 다른 병원으로 옮겨서 치료를 받는다. 이런 생활이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
한 병원에 3개월을 넘겨 입원하기는 쉽지 않다. 3개월 이상 입원하면 의료보험공단에서 치료비 지급에 제한을 둔다고 한다. 병원 입장에서도 장기 입원환자가 있으면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퇴원 지시를 내리게 되고, 기댈 곳 없는 보호자들은 다른 병원을 찾아야 한다. (185쪽)
이 책의 저자 전범석 서울의대 교수도 2004년 6월 5일 남한산성 산행시 벌봉에서 갑자기 넘어져 경추골절로 인한 사지 마비가 왔지만. 성공적인 수술과 재활 치료를 거쳐 마비된 사지가 회복되어 현재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 병원에서 진료와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이 책은 사고후 9개월 동안의 입원 생활과 투병 과정을 기록한 에세이이다. 전문의로서의 지식이 충분했기에 갑작스런 사고에도 필요한 조치를 신속하게 하였기에 이런 기적적인 일이 생긴 것같다.
척수를 크게 다치면 호흡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횡경막을 담당하는 신경에 문제가 생겨 호흡 마비로 사망하기 쉬운데, 저자의 경우 호흡 마비가 오지 않았다는 것은 기적이다. 척수손상에 대한 전문 지식이 충분했기에 목 보호를 확실하게 조치하여 헬기로 사고지점에서 인근 분당 서울대병원으로 신속하게 후송하여 국내 권위자가 척추 수술을 하도록 했다. 자신의 병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었기에 합병증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고 평소 돌쇠로 불릴 정도로 건강체질 이었기에 마비로부터 일어날 수 있었다.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른쪽 엄지발가락, 오른쪽 새끼손가락을 약간 움직일 수 있었다. 향후 어떻게 전개될 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의 생각이나 상황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쓸 수가 없기에 여동생과 간병인에게 자신의 말을 받아 적도록 했다.
완치하는데 기간이 얼마나 소요될지 알 수 없지만, 그는 앞으로의 계획을 철저하게 수립하여 기나긴 싸움을 시작했다. 첫째, 전문 간병인을 구한다. 둘째, 부모님에게는 이 사실을 절대 알리지 않는다. 셋째, 문병객을 받지 않는다.
물리치료는 매일 오후 2시 반부터 30분 동안 치료사의 도움으로 진행했다. 머리 한 번 감는데, 간호사, 간병인 포함하여 여섯 명이 매달려 한 시간 이상 씨름해야 한다. 치료를 거듭하면서 손이 점점 올라가 목 근처까지 올릴 수 있다. 이젠 앉을 수도 있다. 사지가 마비되어 병상에 누운 지 한 달만에 땅을 딛고 혼자 설 수 있었다. 이틀 후 처음으로 앉아서 변을 볼 수 있었다. 며칠 후 처음으로 오른 손으로 머리카락을 만질 수 있었다. 간호사의 도움으로 몸과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산책길을 걸었다. 본격적인 체력강화 훈련을 했다. 이젠 스푼으로 밥을 떠먹는다. 젓가락으로 반찬도 집을 수 있다.
5개월 만에 귀가했다. 이젠 외래 진료를 받기로 했다. 아침 여섯 시에 기상하여 식빵과 과일로 조식을 마치고 병원으로 첫 출근을 했다. 병원에 도착한 시간이 7시 20분, 9시 부터 진료를 시작했다. 오후 2시부터 물리치료를 받아야하기에 환자 수는 20명 이내로 제한했다. 매주 외래 진료를 2회 나간다. 2005년 2월 23일, 입원한 지 268일 만에 마침내 퇴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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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 14.8cm 세로 21.3 cm 옅은 베지색에 일기장 그림이 있는 책이다. '나는 서있다' 라는 책 제목이 왼쪽 위편(책의 중앙을 원점으로 치면 제2사분면에!)에 단정하게 서있다.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는 느낌이다.
당연하게 곁에 있기에 소중함을 자주 잊는다. 공기 물도 그렇지만 건강도 그렇다.
개콘에 '그냥 내비둬'라는 코너가 있다. 닭살 커플의 과시용 혹은 상황에 관계없이 서로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애정 행각을 비아냥대며 웃음 거리로 만든다. 자전거를 타자고 조르는 여친에게 "나는 당신의 자전거~" 하며 핸들 머리띠를 하고 어부바로 뚱녀 여친을 태운 남친을 보며 행인 2명이 시기 질투심에 혹은 부러움에 수군거린다. "저러다가 허리를 다쳐봐야, '아.. 그래도 직립보행할 때가 좋았구나~' 하지!"
책의 전개는 미드 하우스와 비슷했다. 운명의 그날, 종달새 저자는 새벽 5시 15분에 기상한다. 아침 식사로 식빵 4쪽과 사과 한 알을 먹고 5시 43분 직장을 향해 5호선 올림픽 공원 역을 출발한다. 6시 15분 종로 3가 역에 도착하고 6시 30분에 보령제약 지하 헬쓰클럽에서 운동을 시작한다. 7시 30분에 세미나를 시작하고 9시부터 병원 회진을 돈다. 점심을 구내 식당에서 마치고 종로3가 역으로 걸어가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도착하니 오후 1시, 산에 가기 위해 배낭을 챙기니 오후 1시 30분 후배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남한산성 산행을 한다.
벌봉바위에 앉아계시던 할머니 할아버지와 인사를 나누며 바위 정상에 발을 딛는 찰나 몸이 땅바닥에 꼬꾸라진다. 척추 손상으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는 상태에서 후배를 통해 응급 헬기를 부르고 환자가 된 저자가 응급처치를 진행시킨다.
제대로 된 응급처치가 사고 후 발생할 수 있는 치명적 손상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책을 통해서 배우고 실감했다.
저자가 당한 사고는 척추 C3,4의 디스크가 터져 나와 척수를 으깬 것인데 만약 호흡에 중요한 횡경막 신경인 C5가 다쳤으면 호흡마비로 즉사한다. 저자는 호흡중추가 무사한 것을 기적이라고 부른다.
뛰어나고 능력있는 의사였던 저자는 성실하고 교과서적인 환자였다. 알기는 해도 실천하는 것이 어렵다.
책 내용은 2004년 6월 5일 사고 이후 2005년 3월 2일 정식 출근을 하게 될 때까지의 병상 일기이다. 신경과 의사가 신경마비로 배뇨와 배변의 어려움을 겪고 통증 감각을 잃어 몸이 다치는 것을 염려하고 머리 감는데 6명의 도움이 필요하며 손가락 하나씩 10회 움직이고 손목 팔목 발목 어깨 운동을 하면서 온 몸이 땀에 젖을 정도로 힘을 쓴다.
2004년 7월 7일의 일기 제목은 '브라보, 앉아서 배변을 하다' 이다. 그동안 기저귀를 차고 누워서 용변을 보다가 드디어 사람들을 내보내고 혼자서 앉아 배변을 한다. ^^
솔직함은 가치관의 문제이다. 배뇨, 배변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은 저자의 직업이 '의사'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사고 소식을 8개월간 부모님께 비밀로 하고 아내와 자식들에게도 어느 정도 회복된 자신을 내보여줄 정도로 세상에 폐를 끼치기 싫어하고 조금이라도 흉이나 흠이 잡히는 것을 질색하는 타입의 저자가 배변을 위해서 성기에 호스를 삽입하고 변비 때문에 항문에 손가락을 넣어 똥 덩어리를 파낸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쓴 것은 직업상 이 모든 처치가 일상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았다.
어떤 식으로든 치부에 해당되는 일을 (일상적이어서 치부라고 생각을 못하든, 치부이지만 상대방을 믿고 드러내든!) 솔직하게 쓰는 것은 읽는 이를 편안하게 해준다.
가식을 읽는 것은 역겹다. 솔직하고 진실한 글은 앞 뒤가 맞아서 편안하다. 가식을 쓰려면 최소한 논리적으로 썼으면 좋겠다. 허무맹랑한 만화나 영화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은 논리적이고 구성이 짜임새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힘'을 아는 재능있는 의사는 고통스럽고 지루한 재활치료를 성실하게 수행하고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환자였다.
기적이라고 불리는 회복은 한 사람의 의지와 끈기의 결과이다. 겸손한 마음과 더불어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다져진다.
PS. 저자가 자신의 책에 대한 서평을 모두 찾아서 꼼꼼하게 읽는다는데에 만원 건다! ㅎㅎㅎ 그런 타입의 사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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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그릇이 다르다는 건 짐작하고 있었지만, 뭐 이런사람이 다 있나 싶다. 만약 같은 나이였다면 단순히 '공부 잘하고 학벌좋은 사람'으로 생각되겠지만, 위기에 대한 대처 자세를 보니 정말 대단하신 분임을 알수 있었다.
두려워하면서도 그 위기를 어쩌면 저렇게 잘 이겨내시는지,,,물론 그 사고로 생활하는데 어려움은 있겠지만, 그렇게 회복되기까지의 과정의 모습이 정말 대단하신 것 같다.
저자가 처한 위기에 대한 태도와 사고가 지금 내가 처한 위기(차원이 다르게 작아보여 비교조차 부끄럽지만)에 대한 태도가 정말 다르구나, 저 사람은 극복할수 밖에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고 부끄러웠다.
정말 무덤덤하게 글을 써서 무슨 진료기록을 읽는듯한 느낌이 들고 의학용어가 많아서 이해하기는 좀 어려웠다. 자격지심이겠지만, 빈부격차나 학연, 지연에 관련된 간접적 차별대우가 느껴져서 씁쓸하기도 하다. (내가 봐도 내가 이런 것에 민감해하는 나이인듯 싶다-좀 더 나이가 들면 세상사 다 그런거야 이런 생각이 들겠지만,,,^^)
어쨋든 정말 대단한 분이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