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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30대에 처음 읽었다. 나는 큰 충격을 받았고 동시에 큰 도전을 받았다. 강력한 도전을 받은 나는 소속 남전도회 헌신예배 때 이 책을 기반으로 한 연극을 기획하고 연습하여 회원들과 함께 예배당에 올렸다. 당시 남전도회 회장을 맡고 있었던 나는 매년 헌신예배 때마다 기존의 간단한 특송 위주에서 몇 달씩 연습하며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예배를 위해 연극 중심으로 헌신 예배의 모습을 바꾸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는 내가 서울로 올라오기 전 마지막으로 기획한 작품이라 더 기억에 남는다. 이번에 독서모임과 상관없이 홀로 다시 이 책을 집어들게 된 건, 젊은 시절 읽으면서 느꼈던 그 성령 임재의 감동을 다시 맛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 신앙이 너무 편안하고 고리타분해져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정말 신앙인의 길인지 다시 확인하고 재점검하고 싶었다. 정말 이렇게 편하게 신앙생활을 해도 되나 하는 자기반성의 물음표 끝에 집어든 책이었다. 오래 전 읽었지만 이번에도 나를 어떤 모습으로든 변화시켜 줄 하나님의 음성이 있으리라 기대했다. 레이먼드 시에서 가장 큰 제일교회의 담임목사인 맥스웰은 오전 11시에 예배당을 꽉 채운 성도들을 보며 만족한 표정을 짓는다. 맥스웰 목사는 유난히도 출석률에 민감했다. 소수가 앉아 있으면 설교할 흥이 나지 않았다. 날씨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오늘 오전 예배처럼 최고의 출석률에 최고의 날씨라면 컨디션은 최상에 이르렀다. 그럴 때면 설교가 진행되면 될수록 더 깊은 희열을 느꼈다. (13) 그런데 그날 예배를 마치기 직전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느닷없이 예배당 뒤쪽에서 신원 미상의 남자가 노래를 부르며 강대상 앞까지 걸어나갔기 때문이다. 그 노래는 바로 "세상을 구원한 십자가 나도 따라 가오. 죽어 가는 저들을 위해 나를 버리기 바라오." 사명이란 찬양이었다. 사실 "부름받아 나선 이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같은 찬양을 부를 때면 내가 이 찬양을 이렇게 불러도 되나? 하는 마음이 들 때가 많다. 가사가 주는 중압감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사명'이라는 복음송에서는 험한 산이든, 바다 끝이든 목숨도 아깝게 여기지 않겠다는 고백이 나오고,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찬양에서도 주만 따라 가오니 죽음인들 아깝지 않다고 고백한다. 나는 과연 이 찬송 가사처럼 그렇게 죽음을 아깝게 여기지 않고 주님을 따라갈 수 있는가? 그렇지만 그런 고민도 없이 앵무새처럼 같은 가사를 내뱉는 그런 신앙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소설 속에서 낯선 사내는 레이먼드 시에서 사흘이나 일자리를 구했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했다. 그는 레이먼드 교인들에게 당신이 찬양하는 가사와 말씀을 실천하고 있는지 물으며 통렬한 말들을 심장에 쏟아낸다. "목사님께서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살아야 한다고 하시며, 이는 순종하고, 믿음을 지키고, 사랑을 실천하며 그분의 삶을 본받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삶에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습니다. 여기 모인 성도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른다는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이 도시를 사흘 동안 구석구석 찾아 다녔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때마다 여기 있는 이 목사님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에게도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위로의 말 한 마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 제 아내는 4개월 전에 죽었지만 저는 아내가 이런 고통에서 벗어났다는 것이 오히려 위안이 됩니다. 어린 딸은 제가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만 친구에게 맡겨 두었습니다. 하지만 안락한 생활을 하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이 홀로 가신 그 길 나도 따라 가오, 모든 물과 피를 흘리신 그 길을 나도 가오.'라는 찬양을 부르는 것을 보면 머리가 아파오고 죽은 아내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집사람은 뉴욕의 월세 방에서 숨이 다 끊어지는 상황인데도 어린 것을 함께 데려가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더군요. 물론 여러분들이 기근이나 영양실조, 열악한 주거 환경으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들을 모두 구해줄 수 있다고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따라간다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일까요? ... 제 아내가 숨을 거두었던 셋방 주인도 교인이었는데, 그가 진정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았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일전에 어느 교회의 저녁 기도 모임에 참석한 성도들이 박수를 치면서 기쁜 목소리로 이런 찬송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내 모든 삶의 행동 주 안에 있네. 나의 숨쉬는 순간들도 내 모든 삶의 걸을 주 안에, 내 길도 주안에, 나의 숨쉬는 순간들도.' 나는 그 교회의 바깥 층계에 앉아 도대체 의미를 알고 저런 노래를 부르는지 한참 생각했습니다. 만일 그러 노래를 부르는 이들이 그 가사대로 삶을 실천해 나간다면 시시각각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끔찍한 문제들이 결코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여겨집니다. 제가 뭘 잘 모르고 있는 걸까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요? 과연 주님의 발자취를 따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18~20) 이 사내의 외침은 모든 성도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특히 멕스웰 목사는 온몸으로 사내의 도전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는 이제 다시는 이전 삶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았다. 그는 중대한 결심을 하고 다음 주일에 강대상에 올랐다. "앞으로 우리가 어떤 일을 시도할 것인지, 다들 충분히 알고 있다고 봅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가 하려는 일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질문에 비춰서 우리의 모든 행동을 결정짓는 것입니다. ... 지난 주일 이후 저는 심각한 도전을 받았습니다. 이전에 저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던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되었고, 그것이 너무나 절실하게 다가와 오늘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 동일한 사랑이 여러분에게도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30) 그는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 직장생활, 가정생활, 사회생활 등 모든 영역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를 먼저 생각하고 살아갈 성도를 모집했다. 지난 주일 충격과 도전을 받은 많은 성도들이 자원하며 서약서를 작성했다. 이 책은 그 실천과 도전의 이야기를 마치 우리가 그 현장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들려준다. 술집이 더 이상 영업을 할 수 없도록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심지어 담임목사직을 내려놓고 빈민가로 들어가 목사의 지형을 바꾸는 대담한 도전을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많은 성도들은 자신들의 행동과 결정이 예수님의 뜻인지 아닌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런 시행착오들을 거치면서 성도들의 영적 수준은 올라갔고, 서서히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갔다. "성령님을 통해 예수님의 뜻을 아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31) "우리는 성령님이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내면의 음성에 귀를 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행동 기준이라고 해서 보편적인 우리의 행동양식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겁니다." (32) "명심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라는 질문에 대해 성령님으로부터 해답을 얻었다면, 그것을 실천에 옮기게 될 때 절대로 결과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33) 성도들은 자신의 일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듯,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를 생각하며 과감한 일들을 시도했다. 신문사 대표는 유일하게 주일에 발매해 인기를 얻었던 신문의 일요일 판매를 포기했고, 술 광고와 담배 광고를 더 이상 받지 않았다. 직장인은 회사 내 부정한 일을 고발하고 직장을 잃었다. 좋은 합창단 자리를 포기하고 빈민가 찬양사역자로 나섰다. "예수님은 데일리 신문에 위스키와 담배 광고 싣는 것을 용납하실까?" (47) 그러나 가족들은 그런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좋은 오페라 주인공 자리를 맡으면서도 충분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지 않느냐는 가족의 의견은 충분히 합리적이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직업을 포기하고 선교 현장으로 달려갈 수는 없다. 그러나 예수님의 음성이 들렸다면 지체하지 않고 순종해야 한다. "레이첼, 물론 나도 맥스웰 목사님이 하신 말씀의 의미는 충분히 이해한단다. 하지만 가족과 같은 네가 큰 오페라 무대의 주인공을 맡는다는 것은 정말 자랑스럽고 뿌듯한 일일 거야. 오페라 주인공으로 활동하면서 교회 생활도 열심히 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면 되지 않겠니?" ... "감정에 휩쓸린 결정은 반드시 후회를 가져오지. 너희들이 한두 번 그러고 말 일을 가지고 왜 중요한 일을 그르치려고 하는지 모르겠구나. 내 말을 명심하렴."(75) 이 운동은 시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수많은 교회가 같은 서약을 하며 동참했다. 실로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도 운동이 파도처럼 물결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교단을 초월해 종교 지도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한 사내의 죽음이 레이먼드 시를 뒤흔든 것이었다. <예수님이 이 백화점의 사장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1. 사업 운영의 기본 원칙은 이윤 추구가 아니라 모든 일에 우선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2. 사업상의 이윤은 결코 사유재산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류의 선을 위해 사용될 하나의 신탁자금이다. 3. 전 직원과는 노사 협조를 통한 상생 관계를 구축한다. 직원들은 모두가 다 구원받아야 할 전도 대상자들임을 한 순간도 잊지 않는다. 사업을 해 나갈 때 돈벌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영혼 구원이라는 생각을 늘 염두에 둔다. 4. 동종 업체와의 경쟁에 있어서 야비한 수법이나 비정직한 태도, 비리를 절대 저지르지 않는다. 5.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상대방의 유익을 우선시하는 이타심을 기본 지침으로 삼는다. 6. 동료 직원들, 고객들, 관련 업체를 상대하게 될 때 이런 원칙에 입각하여 전체 계획을 수립한다. (108~109) 그러나 어디를 가나 영적인 방해가 있다. 사탄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술집 허가를 반대한다는 말을 들은 사람들은 흥분하여 날뛰었다. 영적 전쟁은 만만치가 않았다. 고의적으로 집회를 방해하기 위해 성도인 양 집회에 참석해서 큰소리를 내며 설교를 방해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아예 술을 먹고 집회 장소에서 잠을 자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잘 참석하던 사람들이 아프거나 바쁜 일이 생겨 오질 못했다. 노방 집회에서 술집 허가를 반대하는 설교를 한다는 소문이 돌아 랙탱글 폭력배들이 쉬지 않고 드나들었다. 몇몇 성도들은 각목에 맞아 머리를 다치기도 했다. (151) 그러나 맥스웰 목사님의 헌신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더 예수님을 알기 원했다. 그리고 그들은 사회적 지위의 상실, 금전적 손해는 물론 물리적이고 신체적인 고난까지 감수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크고 작은 모든 문제를 놓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질문을 던질 때, 예수님에 대한 지식 역시 자라가야만 거기에 대한 올바른 해결책도 나오리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기 위해서는 우선 그분을 잘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174)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하는 이 질문은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묻는 내적 질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답으로 실제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결단하고 실천하게 하는 외적 질문이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자신의 것을 포기하지 않고 그대로 안고 갈 수는 없다. 내 제자가 되려면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자신을 따라오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자신의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을 모두 내려놓고 주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리스도인척 하는 사람들을 가려내고 알아차린다. 그리스도인이 결코 손해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이미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제자라는 칭호를 받지 못할 뿐더러 오히려 손가락질을 당하고 있다. 사실 목사님의 생활을 봐. 그 분도 정말 누릴 건 다 누리시면서 편안한 생활을 하고 계시잖아. 주위 사람들이 굶주림에 허덕인다고 해서 그분이 자신의 호화로운 삶을 포기하실 것 같아? 절대 그럴 리가 없지. ...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기울인다 해도 빈부의 차이는 없앨 수 없는 거야. (202) 교회는 어떤 모습인가. 값비싼 대리석으로 꾸며놓은 건물, 명품 가구들에 싸여 호사스런 생활을 하고 있는 몇몇 목회자들의 모습... 이것을 보고 그것이 교회 전체의 실상인 양 수많은 사람들이 증오심을 느끼고 있다네. ... 최근 들어 '이 지극히 작은 나의 형제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은 곧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라는 말씀이 부쩍 내 귀를 맴돌아. (240) 사람들은 스스로를 헌신하기보다는 물질로 대신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들이 베푸는 물질이 과연 참된 희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 돈 몇 푼 기부하는 것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일까? 이런 모습이 평생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자들의 적절한 행동이라 할 수 있을까? (278) 처음 이 책을 읽고 연극으로 헌신예배를 드릴 때 우리는 똑같이 실험해보기로 했다. 한 집사님이 그 역을 맡아 허름한 츄리닝을 입고 노숙자처럼 변장을 하고 교회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예배가 시작되기 전까지 그 교회 앞에 쭈그린 채 앉아 있는 한 사람에게 다가가 그의 필요를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결국 우리가 계획한 대로 헌신예배를 진행하는 중간에 강대상으로 올라와 주어진 대본을 외쳤다. 당시 그 지역에서 가장 큰 교회였던 우리 교회는 역시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책은 우리가 직장생활을 할 때, 신앙생활을 할 때, 가정에서 자녀와 부모님, 형제 자매를 대할 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고 말과 행동을 해야하는지를 실천적으로 알려주는 매뉴얼 같은 소설이다. 감동을 주고 지금까지의 삶을 회개하게 한다. 그리고 도전하게 한다. 내 삶이 지금과 같이 이렇게만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영적 결단을 하게 한다. 기독교 도서 중에서는 오래된 신앙고전에 속하지만 이야기가 미치는 영적인 힘은 여전히 강렬하다. 소설의 모습으로 예수님의 제자되는 삶을 그려낸 명작이다. 책을 읽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2024년 남은 시간, 예수님의 제자된 모습으로 살아가길 소망한다. 죄와 고통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을 외면하고 자신의 평안을 위해서만 예수님을 따른다면 그것은 참된 제자의 삶이 아닙니다. ...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참된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모본을 따라 예수님의 행동을 실천한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제자란, 주 되시는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3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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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신앙서적입니다. 내용도 어렵지도 않고 와닿는, 실생활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책입니다, 선물용으로도, 보관용으로도 강추!! 여러번 선물했는데 다들 정말 좋았다고 하더군요^^ 제목부터 기억에 남아서 자주 생각나는 그런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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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적 그리스도교 문화 - 특히 소도시를 중심으로 한 보수?적 미국식 복음주의 문화를 알 수 있는 책으로는 좋겠지만 영성책으로는 비추인 책이다.
현실세계와는 동떨어진 - 소설답게 어느 정도의 그럴싸 해 보임은 있지만 - 동화이다. 동화이기에 독자에게 훈훈함을 주기는 한다. 마음만 훈훈해지면 은혜?받았다고 느낄 분에게는 강추한다.
하지만 내가 바라던 내용은 아무래도 어거스틴이나 프란체스코, 루터, 로욜라 아니면 머턴 같은 사람들의 실화에 바탕을 둔 글인 듯하다.
사실 실화를 배경으로 하지 않은 소설이라는 점을 모르고 샀다는 것도 문제였지만 뭐랄까 이 책은 19세기 미국의 자본주의에 대한 미국스럽게 순진한 대안을 상상한 동화책처럼 느껴진다. "탐욕스런 자본주의를 예수님의 정신으로 순화하자" 정도?
차라리 책을 사 보지않고 그냥 제목만 되뇌는 게 훨씬 좋을 뻔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