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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 그리고 북주 시대 이래 큰 세력과 명망을 자랑했던 관롱 집단이 연합하여 건국한 당나라는 측천 무후의 치세를 맞아 큰
전환점을 지납니다. 지배 계층으로서의 귀족 계급이 몰락하고, 능력 위주의 시스템 아래에서 대거 등용된 서민들이 본격적으로 권력
쟁패에 참여하면서, 급기야는 절도사와 군벌의 항쟁으로 나라가 엉망으로 치닫는 상황까지 가는데요. 이 와중에 유목 이민족들의
침입까지 겹쳐 황실은 체면을 돌볼 사이도 없이 말 그대로 내우외환에 시달립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중신, 황제의 측근 등이 수완을
발휘하여 체제의 붕괴에까지 이르지는 않고 위태롭게 몇 백 년을 더 버티기는 하는데요.. 이 무렵 어느 황제는 "절도사를 어루만지는
건 어렵지 않으나 붕당의 폐해를 수습하는 일은 진정 난제라 하겠다."며 고충을 털어 놓기도 했습니다. 예전에 개설서에서 이 말을
읽을 때에는 괜한 허세라고 생각했는데, 절도사의 번진이라는 게 황실을 향해 범절과 공경의 어느 선은 넘지 않는 경향이 있고,
자신들끼리 경계, 항쟁하는 게 더 우선이라 저 말이 그리 과장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진짜 문제는 민생의
파탄이었습니다. 과거에 여러 차례 낙방하여 사회에 대한 불만에 가득차 있던 황소란 자는, 소금 밀매로 큰 부를 쌓은 후 뜻이
통하던 무리와 작당하여 마침내 칭제건원하는 천자의 지위에 참람되이 오르기까지 합니다. 이때 그의 수하 중 유능한 자로 주온이라는
도적이 있었는데, 이 자의 결정적 배신으로 황소의 군벌은 치명타를 받게 되고, 결국 수괴가 자결한 채 세력이 와해됩니다. 당이
절도사나 오랑캐에 망한 게 아니라, 다스리는 백성의 마음을 잃어 펀더멘털이 무너졌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아울러, 일개 낙방거사가 세력을 모아 지존의 권위까지 넘볼 수 있었던 건, 천하의 인재를 두루 써 국정의 효율과 정국의 안정을
기하려는 의도로 도입된 과거제가, 당말에 이르러 확고한 기반을 이미 잡았다는 어느 정도의 반증도 되겠습니다(물론 일차적으로는
과거제 자체의 한계와 모순을 노정한 것입니다만).
황소가 파멸했다고 황실이 위기를 넘긴 건 전혀 아니었고, 오히려
악질적인 불안 요소를 배 속에 본격 배양한 셈이 되었습니다. 한 번 배신한 자는 열 번도 더 배신할 수 있다는 말처럼, 천한
인격과 교활함을 동시에 지닌 이 주온이라는 자에 대해 황실은 결코 안심할 수 없었습니다. 이름을 "전충(全忠)"으로 내려주기까지
하며 영지를 하사하고 후한 대우를 베풀었건만, 그는 정반대의 이름값을 하여 역적의 대명사로 누대 천년에 이르는 악명을 남겼습니다.
황소가 채 못다 이룬 찬탈의 번거로움을 그는 기꺼이 무릅쓰고, 그가 봉지로 받은 카이펑을 새 도읍으로 하여, 낙양의 마지막
황제를 겁박, 양위를 받은 후 천자의 자리에 오릅니다. 유약한 황제를 암살하고 후계자를 짐짓 옹립해 주는 등 괴뢰극을 벌이다가, 당
황실 그 마지막 주인의 장례식에서 하늘이 무너질 듯 대성통곡을 하며 천하를 기만한 후, 국호를 "양"으로 삼고 남면하게
되는데요.
사마천의 <사기> 열전에 보면 "대량(大梁)을 무찌르고.." 같은 표현이 여러 번 나옵니다.
진(晋)이 망한 후 나라는 셋으로 쪼개졌는데, 그 중 하나가 위(魏)국입니다. 이 나라가 수도로 삼은 곳이 바로 대량이고, 그
도시가 주전충이 근거를 두었던 카이펑이죠. 카이펑의 별칭은 변량(卞梁). 혹은 변경(卞京)이기도 했습니다. 이 도시는 진(秦)의
통일 이래 오랜 동안 방치되어 있다, 거의 천 이백 년 만에 본격적으로 역사의 주무대에 재등장한 셈입니다. 그간 장안과 낙양 양대
도시가 잦은 내란 외환으로 매우 지쳐 있었기에, 이처럼 중원의 다른 요충지가 대도시로 발전할 수 있는 여지를 주었기도 합니다.
당이 무너졌다고 바로 주씨의 천하가 온 건 아니었는데요. 첫째 혼란의 와중에 정권을 잡긴 하였으나 민심을 수습할 배포와 능력이
전충에게는 부족했고, 다음으로 군사적 우위를 확고히 쥐기에는 그의 득세를 상시로 위협했던 라이벌이 있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이
사람이 바로 이극용이었는데요. 그는 국제적 성격을 시종 유지했던 당 제국에서 그리 드물게 보지 않았던 이민족 출신으로, 돌궐 사타
부족 혈통의 대 세력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이극용의 사타 군벌은 타이위안을 중심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타이위안의
옛 명칭은, 위에 적은 진(晋)나라의 수도인 진양(晋陽)입니다. 이로써 천하의 패권을 두고 옛 춘추 오패의 하나였던 진 양공의
유지에서 두 군웅, 아니 건달들이 서로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이게 되었는데요. 이 오랜 투쟁은 당대에서 끝을 보지 못하고 그의
아들들의 세대에까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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