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단 이 책을 나는 푸코의 진자와 바우돌리노를 다 읽은 다음 읽었다. 그러했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내내 푸코의 진자와 바우돌리노의 소설 내용을 떠올리게 되었다. 어찌 보면 푸코의 진자와 바우돌리노 책 속의 지적 유희와 거짓을 진실로 만드는 일을 이 책을 읽고 나서 읽었다면 흥미가 감해졌을 것이 분명하다. 책 속에 빠져 지내면서 책이란 진실을 말한다고 세뇌당하다시피 한 내게 푸코의 진자와 바우돌리노라는 두 소설은 재미있는 망상거리를 안겨주었고 또 이 거짓말의 전략은 역사가 기록한 내용에 대해서, 혹은 사람들의 입과 입을 통해 구전되는 내용들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우리는 과연 믿고 싶은 것을 믿는가, 아니면 진실이기에 믿는가 하는 원초적 질문을 가끔 해본다. 지금 진실로 믿어지는 거짓말은 아마 목적성이 있었을 것이고 필요성이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신비의 탈을 제공해야만 하는 시대적인, 혹은 사회적인 그 무엇이 있었을 것이다. 가끔 그 이면을 파보는 것은 재미있지만 이 재미 속에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어디까지가 진실이며 어디까지가 거짓인가 하는 점이다.
은비주의적인 면이, 음모론이 필요한 때와 필요한 곳이 있었고 시의적절하게 그것들이 그 시대의 사실 한가지와 엮이면서 하나의 색채를 더하여 새로운 것으로 탈바꿈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흥미진진한 일이 된다.
다만 나로서 이 책의 여러 장들을 읽으면서 힘들었던 것은 가볍게 웃고 넘길 수 있었던 만초니와 캄파닐레의 작품과 관련된 부분들을 그 작품들을 읽지 못했던 탓에 같이 공감할 수 없었던 점들이다. 낯선 작가들, 낯선 작품들을 만날 때면 확실히 나와 작가 사이의 지리적, 시대적 차이를 절감하게 된다. 함께 웃을 수 없다는 것이, 책 속에서 당혹감을 느끼는 것이 조금 아쉬웠던 독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