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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책을 읽고 나서 리뷰쓰기가 어렵다고 느낄 때가 있다. 소설분야가 아닌 책 중 특히 난해하거나 읽어도 읽어도 확연하게 개념을 잡을 수 없을 때에 더욱 그렇다. 그런 면에서 보면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에코 마니아 컬렉션의 경우가 딱 그런 경우다. 인문분야의 책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인문분야에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닌 어중간하게 '아! 이건 이렇고 저건 저런 것이구.'라며 감탄하는 것에 만족하는 내게 리뷰쓰기는 일종의 모험이다.
제대로 잡히지 않은 개념들을 사이에 두고 리뷰쓰기라는 어려운 길을 가고 있는 것이 그래서 어리석어 보이지만 한 번쯤 읽은 책들을 정리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에 밀려 리뷰를 쓴다.
이번에 읽은 해석의 한계도 지금까지 읽은 대개의 책처럼 내 머릿속에 확 들어오지 않는다. 그나마 흥미있게 읽은 부분은 소설가로서의 저자가 느낀 독자와 작가 사이의 해석상 차이점이다. 의도하지 않은 해석이 가능한 것과 작가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틀어지는 해석들. 여러 해석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작가와 독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에 대한 부분들이 흥미롭다. 과다한 해석, 그러나 그 과다함을 받아들이는 정도는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독자와 작가가 나누는 대화이다. 때로는 작가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고 때로는 의도와 전혀 다른 엉뚱한 해석이 나오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책이란 살아있는 생명체와도 같다. 그 생명체의 부분, 부분이 다른 해석을 낳는 것이다. 자신의 손을 떠난 작품의 해석, 어쩌면 그 해석의 한계에 대해 저자는 말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이 어려운 것은 그렇게 간단히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상징과 비유, 연금술적인 해석이 다시 군무를 춘다. 대체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를 놓고 벌어지는 이 춤판에서 사람을 궁지로 모는 것은 독보적인 연금술적인 해석과 비유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것들, 신비주의와 그노시스주의의 변주다. 아마 어쩌면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은 저자의 의도와 다른 것일지도 모르겠다. 학술적인 언어를 해석함에도 나는 문외한의 지위를 이용하여 마음껏 상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난 후 내 머릿속에 남는 것은 소설은 살아있는 생명체다라는 것과 그 생명체를 빌미로 꿈꾸는 독자들의 넘지 말아야 하는 선에 대한 독자들의 풍부한 상상력에의 제지와 연금술적인 해석과 비유에 대한 부분이다.
각설하고 이 두 가지 이외에도 몇 가지 소소한 것들이 기억에 남지만 그것을 글로 옮기기에 부족한 나를 느낀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이번 내 시도는 내 독서 인생에 있어 절반의 실패와 성공인 것 같다. 이해하지 못할 책들을 두고 씨름하는 일종의 오기. 그래도 해석이라는 분야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나보다는 더 잘 이해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